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72화 (472/1,021)

#472.

한국의 다른 중견 기업을 떠올려 봐도 최문경 부회장 만한 인물은 없었다.

최민혁은 문득 자신이 언론 플레이를 한 덕분에 다시 KM 전자 주가가 올랐다는 점을 확인했다.

언론에서 연일 KM 전자의 주가 변동 폭과 관련해서 주가 조작이 아닌가 의심하는 보도를 때려댔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KM 전자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살폈다. 혹시라도 샐로먼 브러더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까 기대한 것이다.

‘거의 도움이 안 되네. 하긴 샐로먼 브러더스가 일을 벌였다면 어설프게 증거는 남기지 않겠지. 이번 일은 날 얕잡아 봐서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봐야지.’

그런데 마침 기다리던 아맬리오 이사와 스티븐이 자신의 방문 소식을 듣고 회의실에 나타났다. 그들은 최민혁과 악수를 하면서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특히 아맬리오 이사는 최근 스티븐에게 뭔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상기된 얼굴이었다.

“최 실장님,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작 아들뻘 나이인 최민혁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에플 이사회가 최민혁 실장을 크게 신뢰한다는 의미였다.

옆에 있던 스티븐조차 깜짝 놀랐다. 그는 매사에 극보수에 가까운 아맬리오 이사가 에플 이사회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잘 알았다.

“대주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에플에게 도움이 된다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최민혁은 두 사람과 악수를 하면서도 힐끗, 뒤를 따라서 회의실에 들어온 에플 실무진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부장급 이상의 에플 실무진들로 이번 KM 전자와의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는 이들이다.

그들 중에는 최민혁 실장을 어느 정도 아는 이도 있었다.

최근 에플 엔지니어 사이에서 ‘MP3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최민혁 실장을 넋을 잃은 채 멍하니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최병연 소장 사단과 같이 일하면서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전설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들 믿지 않았다.

하지만 에플 내부는 좁은 동네다. 아는 지인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파악하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최병연 소장의 입을 통해서 들은 최민혁의 마치 영화와도 같은 재벌 3세 스토리였다.

“맙소사 진짜 최민혁 실장님이잖아!”

최근 K투스 3.0 발표 이후에 최민혁의 명성은 미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민혁의 이야기가 너무 황당하다 보니 쉽게 믿기 어려운 탓이다.

다만 이곳에 참석한 에플 엔지니어는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최병연 연구 팀과 같이 일하면서 내심 한국 엔지니어들의 능력에 찬사를 터뜨렸다.

특히 최구만 과장의 설계 능력에는 내심 경악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최민혁 실장을 찬양하는데, 그걸 불신하기는 힘들었다.

특히 근거리 통신망 쪽을 연구하는 이들은 다들 K투스의 완벽함에 혀를 내둘렀다.

블루투스를 여전히 고집하던 이들도 이제는 두 손을 다 들고 말았다.

가장 큰 요인은 속도 때문이다.

이제 고작 1Mbps 남짓한 속도를 연구 중인 이들 처지에서 24Mbps는 하늘 위에 하늘이었다.

그런데 이 특허를 처음 설계한 이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참지 못하고 최민혁 실장 앞에 나가서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스티븐의 눈치조차 보지 않은 이들은 대다수가 박사 학위를 가진 실력자들이었다.

그리고 스티븐도 그런 이들의 행동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실상 여기 참석한 이들은 대다수가 스티븐조차 어느 정도 자율성을 부여할 정도로 실력자였다.

최민혁은 줄을 서서 자신에게 인사하는 이들을 겨우 다독거린 이후에야 에플 이사회를 대행하는 아맬리오 이사와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최민혁의 에플 실무진과의 인사는 이 정도면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최민혁 실장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 * *

최민혁은 에플 실무진과 인사를 끝낸 후에 스티븐의 사무실로 움직였다.

주변에 사람이 몇 없자 아맬리오 이사의 얼굴이 많이 달라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우려를 드러냈다.

“최 실장님, 상황이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지금 좋지가 않습니다.”

그는 지금 보이는 아맬리오 이사의 반응이 아니라 인생 1회 차 기억으로 아맬리오 이사가 바지사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에플 이사회에서 말이 나오나 보군요.”

“정확히는 에플 이사회 역시 이쪽저쪽에서 압력을 받는 상황입니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스티븐이 물론 자기 사람으로 에플 이사회를 구성하기는 했다.

그런데 아닌 이들도 있었다.

기존 에플 이사회 구성원들 중에 여전히 남은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새로 들어온 에플 이사회 쪽 투자자와 만나서 협의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스티븐조차 미처 간과한 부분이 생겨났다.

스티븐이 끌어들인 이사와 기존 에플 이사가 서로 손을 잡은 경우다.

이들이 굳이 입을 다문 것은 스티븐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에플 내부의 복잡한 사내 정치였다.

최민혁은 이미 스티븐을 통해서 알음알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굳이 에플을 인수한 것은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 1회 차 스티븐의 행보로 미루어 보아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알고 있었다.

‘스티븐이 알아서 잘하겠지.’

“아무래도 우리 KM 전자가 마음에 들지 않은 친구들이 많은가 보군요.”

“…많은 정도가 아닙니다.”

아맬리오 이사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한 걸음 물러났다.

최근 스티븐이 칼자루를 마구잡이로 휘두른 덕분에 많은 이들이 회사를 떠났다.

대표적인 이들이 마쿨라 이사와 벤틀리 수석 같은 경우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의 해고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점을 내세워서 에플을 상대로 소송을 예고했다.

최민혁은 아직도 오성 전자에 잘 붙어 있는 김현무 상무의 경우를 떠올리면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많이 다르다고 하는데, 한 꺼풀만 벗겨 보면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어쨌든 지금 상황은 에플 사내 분위기에도 썩 좋지가 않았다.

‘예상보다 상황이 안 좋구나.’

최민혁도 인생 1회 차를 통해 지금 에플의 상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원래라면 에플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한다.

그러면서 내부 갈등도 극에 달한다.

토비 CEO의 뒤를 이어서 바통을 받은 아맬리오 이사는 나름 에플 이사회를 설득해서 꾸려 나가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에플 매각도 물 건너가 버린다.

결국 에플 이사회가 선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스티븐이었다.

하지만 스티븐도 에플 이사회가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기에 임시 고문직으로만 에플을 돕기 위해서 나선다.

둘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생각보다는 그 깊이가 깊었다.

에플을 살리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았지만 언제라도 상대의 등에 비수를 꽂고도 남을 일이었다.

스티븐은 물론 실적으로 에플을 키운 후에 결국 이들 에플 이사회를 다 갈아 치운다.

이번에도 그러면 될 일이다.

최민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스티븐이 걸어간 여로를 다시 떠올렸다.

‘픽사의 성공이 컸지. 그게 아니었다면 스티븐이 에플 구원투수가 된다고 해도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도 스티븐에게 가야 할 목표를 분명히 해 두면 되겠지.’

최민혁은 상의를 벗어 던진 후에 사장실 내의 화이트보드 앞으로 나섰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간단히 몇 자만 적었다.

-시장, 인문, 기술의 융합!

[아이컴의 목표를 잘 보면 드러나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네트워킹, 즉 인터넷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스티븐은 깜짝 놀랐다. 아이컴은 겉으로 봐서는 고가의 장식용처럼 보이지만 실상 노린 바는 전혀 달랐다.

아이컴이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바로 인터넷이었다.

그런데 이런 점은 아직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에플 이사회에서도 몇 사람이 그나마 이해하는 정도였다.

아맬리오 이사를 비롯하여 사장실에 들어온 소수 핵심 실무진들은 고개를 갸웃한 채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최민혁은 넌지시 스티븐 쪽을 쳐다보았다.

“스티븐은 이런 인터넷을 시작으로 해서 어떤 지향점을 그리고 있습니까?”

“그거야…….”

스티븐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고작 인터넷 쪽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다니까. 하지만 있다고 한다면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뒤늦게야 자신이 염두에 둔 생각을 풀어놓았다.

“…MP3, 영화, 소설과 같은 문화 콘텐츠 사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민혁은 방긋 웃었다.

“좋네요. 그렇다면 제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최민혁이 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KMP-02 시제품이었다.

오성 전자와 LC 전자 협상을 통해서 부품 공급을 확정 지은 바.

어느 정도 완성도가 있는 부품을 사용한 KMP-02 시제품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백색 바탕에 달랑 달린 것은 2.7인치 LCD가 다였다.

따지고 보면 여러 면에서 사연이 많은 물건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이 물건이 세상에 나올 수가 없었다.

놀람은 당연한 일이다.

무려 시대를 10년이나 앞서간 혁신적인 제품이니까.

“……!!”

경악한 스티븐은 곧장 최민혁 실장에게서 KMP-02을 빼앗듯이 받아서 확인했다.

그는 전원 버튼을 누른 후에 LCD 화면을 이용해서 가볍게 사용 방법을 익혔다.

“맙소사 이거 설마 MP3 차세대 버전입니까?”

“네.”

최민혁은 팔짱을 한 채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스티븐이 놀란 모습을 쳐다보았다.

스티븐은 이미 KMP-01을 철저하게 분석한 덕분에 KMP-02가 지향하는 바를 금방 파악했다.

그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오직 LCD 터치만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맙소사!”

비록 2.7인치 사이즈는 작아서 많은 한계가 있다.

그래도 있을 만한 것은 다 있었다.

두 손가락을 이용해서 화면 확대를 할 수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굳이 버튼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다른 핵심 실무진 역시 혀를 내두르기는 매한가지다. 그들은 모서리가 부드럽게 빠진 날렵한 KMP-02 모습에 경악했다.

다만 한창 KMP-02에 빠져 있던 스티븐은 뒤늦게 한 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올라와 있는 상용 음원이 적군요.”

최민혁은 감탄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차후 미국에 판매할 때 그게 족쇄로 작용할 겁니다. 유저가 불법 파일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메이저 음반 업체는 그걸 두고만 보지 않을 겁니다. 대안이 필요합니다.”

“…가만 설마 메이저 음반사 쪽과 협상을 하란 말입니까?”

“그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괜히 스티븐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자세한 대안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스티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KMP-02의 음원 파일을 확인하고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한 가지는 물었다.

“…설마 결제 시스템까지 다 갖춰진 겁니까?”

“네, 한국에서 이미 마스터카드를 비롯한 카드사 몇 곳과는 이미 합의를 봤습니다. 따라서 결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당연하다.

카드사 대부분이 아직 유료 음원 서비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음반 업체는 아예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이들이 중간에 방해를 놓으니, 이와 관련된 뉴스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민혁은 물론 지금까지 이 문제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술만 확보해 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전환점이 필요했다.

“지금은 다들 이런 온라인 결제 서비스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냅스트의 상황은 스티븐도 잘 알지 않습니까. 불법 파일 내려받기는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설마 불법다운로드를 허락할 생각입니까?”

“제 말은 안 되는 일에 굳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죠. 아마 메이저 음반사도 이 문제를 가지고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겁니다. 그들도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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