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13화 (413/1,021)

#413.

“와컴이라면…….”

귀에 익은 기업이라서 우영민 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의외로 조성돈 팀장이 와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혹시 일본의 컴퓨터 입력 장치 기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켐코 사업부 인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나온 최민혁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최민혁 실장 주장대로라면 두 기업이 서로 연결 고리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 관련이 있구나. 유리라면 결국 표면 유리를 말하는 거고, 와컴은 컴퓨터 입력 장치 기업이니까. 그렇다는 이야기는…….’

“…혹시 그래픽 태블릿 장치 솔루션을 염두에 두신 겁니까?”

최민혁은 팔짱을 낀 채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비슷합니다.”

그는 힐끗 인상을 찡그린 우영민 부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우영민 부장은 뒤늦게야 와컴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펀드 투자자로 일본 기업 중에 괜찮은 기업을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다른 기업과는 달리 와컴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컴퓨터 입력 장치 분야만큼은 기술 독점적인 기업이기 때문이다.

“…와컴은 사업부 인수합병이 어려울 겁니다. 원천 기술 보유한 것도 문제지만 수익성이 탄탄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와컴은 원천 기술 보유권자다.

최민혁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Postion Detecting Apparatus’라는 미국 특허 4,878,553을 직접 보여주었다.

89년에 나온 이 특허는 포지션 인식 장치 특허로 시장 독점적인 원천 특허다.

와컴은 보수적인 성향이 큰 기업이다. 굳이 외부 투자까지 받을 이유가 없다. 사업 규모를 키우고 싶다면 일본 자본을 이용해도 된다. 굳이 한국 기업의 투자를 받을 리가 없다.

따라서 최민혁이라고 해서 이 특허를 피해갈 방법이 없다.

아니, 최민혁이 좀 더 고민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번거로운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지금은 인생 1회차에서 오성 전자가 와컴 지분 5%를 얻는 시점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스마트폰에 관한 이야기는 없지. 그리고 PDA 시장은 가능성 자체가 안 보이니까. 물론 와컴이 이 시장을 포기하지는 않을거야.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어느 정도 시장 가능성을 보니까.’

“굳이 서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와컴도 상황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기술은 여전히 시장에서 독보적이지만 한계는 있습니다.”

“와컴 특허의 단점을 이용하란 말씀이군요.”

“거기에 일본 경제 거품이 꺼진 후에 불황이 문제입니다. 일본 기업도 이런 상황이 관동대지진 이후 사태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실제로 일본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 보고서는 일본 정부에서 먼저 언급했다. 부도난 신용조합의 대출자는 일본 정부를 맹렬히 비난했다.

“하긴 일본 경제가 나쁘다는 말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조성돈 팀장은 문득 X 리포트의 예측 상황과 맞아 들어가는 것을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

최민혁은 현재 일본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했다.

“거기에 우리가 보유한 원천 기술은 와컴이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아마 손을 잡자고 하면 마냥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조 팀장님이 그쪽을 한번 파고들어 보세요.”

“…알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우리 첫째 큰아버지나 둘째 큰아버지 외가 쪽인 DL 그룹 쪽은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안에 신경을 쓰란 말입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사사건건 지켜볼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이번만큼은 불가사의 퍼즐을 푸는 기분이 아니라서 눈빛을 반짝였다. 켐코와 와컴을 잘 이어보면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성 전자, LC 전자, KM 그룹, DL 그룹이 벌이는 갈등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최훈열 전무나 최문경 부회장의 견제를 피해서 이렇게 하나씩 일을 풀어가는 것 보면, 정말 놀랍다니까.’

* * *

“결국 켐코 사업부를 인수했군.”

김용만 전무는 미국 뉴욕 포스트에 난 짧은 기사를 읽으면서 혀를 찼다.

지금은 커닝 내부 갈등 때문에 미국 언론조차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내 대기업은 저마다 새로운 LCD 패널에 대한 탐욕 때문에 아예 관심을 끊었다.

황당한 것은 자신의 할아버지 김상구 회장조차 이 일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최훈열 전무 사태를 보면서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유심히 살폈기 때문에 작은 정보를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최근 DL 그룹 내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피곤했다.

이제는 단순히 KM 전자를 노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칫하면 DL 그룹이 영향을 받았다.

DL 화재가 휘청한 것이 그 좋은 예다. 그 때문에 자금력이 탄탄하다고 유명한 DL 그룹 전체가 위기 상황에 놓일 뻔했다.

비록 DL 화재에 대한 욕심을 포기했다고 하지만 그냥 넘길 일은 아니었다.

김용만 전무는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도끼눈을 한 여동생 김여정이 자신을 째려보는 중이었다.

“오빠, 어떻게 되었어?”

김용만 전무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집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는 김여정 눈치를 보다가 거실을 나가 버렸다.

살쾡이 같은 김여정에게 시달리다가 도피를 한 것이었다.

김여정은 냉랭한 어조로 소리쳤다.

“언니는 없어.”

“없다니?”

“몸이 안 좋아서 외가로 잠깐 가 있겠데.”

김용만 전무는 황당해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용만의 아내도 요즘 김여정에게 된통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김여정 말을 믿기는 했지만, DL 화재가 휘청이는 것을 본 후에는 자신이 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에는 김여정과는 아예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여정은 김용만 전무 아내를 여전히 들들 볶았다.

그녀가 나서서 김용만 전무를 설득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김용만 전무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질린 아내가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네 솜씨야?”

“난 아무 소리 하지 않았어. 그냥 우리 그이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정확히는 KM 전자를 손아귀에 넣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제 김용만 전무에게 남은 것은 그나마 DL 전자였다. 물론 이 DL 전자가 한창 성장하는 단계에 있다. 문제는 DL 화재가 휘청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쉽게 말해서 김용만 전무가 증여받은 재산이 쪼그라들 확률이 높다는 거다.

김용만 전무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제기랄.”

“뭐?!!”

“아, 아니다.”

그는 증오로 가득한 김여정 시선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모든 일이 다 자기 때문이란 시선이었다.

김용만 전무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거지? 최민혁 그놈을 내버려 둔 것이 잘못이었나. 최훈열 전무에게 무리수를 둬도 최민혁 그 녀석을 먼저 정리해야 했나?’

솔직히 20살도 안 되는 풋내기가 기획실장 자리에 앉아서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방심이 아니라 그게 상식이었다.

그래도 뭔가 조처를 할 수도 있었다.

당장 최민혁 실장이 제대로 자리 잡는데, 조성돈 팀장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조성돈 팀장을 잘라야 했어. 그랬다면 상황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거야.’

이런저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런데 인제 와서는 너무 많이 늦은 상황이었다.

김용만 전무는 옷을 갈아입고 나서 거실로 다시 나왔다.

김여정이 냉랭한 어조로 소리쳤다.

“앞으로 어쩔 거야.”

“나도 모르겠다.”

“무슨 소리야. 이제까지 민혁 그놈이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 아냐?”

“그랬지. 이번에 커닝의 켐코 사업부를 결국 인수했다더라.”

그가 던져놓은 신문을 읽은 김여정은 눈살부터 잔뜩 찌푸렸다. 그녀도 자신의 이런 행동이 달갑지 않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켐코 사업부가 뭐야?”

“특수 유리 만드는 회사야.”

“아니, 민혁 그놈이 왜 특수 유리 만드는 회사가 필요한 거야?”

김용만 전무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 켐코 사업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이 능력만 있다면 막고 싶었다.

“내가 알고 싶은 부분이다.”

“아니, 민혁 그놈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오빠가 모르면 누가 알아?”

“그렇지.”

김용만 전무는 젖은 수건을 가져와서 얼굴 위를 덮어버렸다. 이제 좀 스트레스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옆에서 계속되는 김여정의 푸념이 문제다. 계속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내가 어쨌으면 좋겠냐?”

“오빠, 정말 이럴 거야. 몇 달 전에는 안 이랬잖아. 도대체 민혁 그 녀석이 뭐가 무서워서 그러고 있는 거야. 아버지에게 부탁해서라도 행동으로 옮겨야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뭐가 안 간단한데, 그리고 나 황당한 소리 들었다. 오빠는 아빠가 한 IPS LCD 사업 제안을 거절했다면서?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김용만 전무는 동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확실히 자신의 행동은 뭔가 큰 장애를 만난 사람 같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상황이 될 수는 없다.

뭔가 명확한 원인이 있어야 했다.

‘설마 내가 민혁이 그놈을 두려워하는 건가?’

아니, 그럴 수 있다.

장남인 김기범이 감방에 갔다가 보석으로 풀려났고, 둘째 김진역은 아직도 감방에 가 있었다. 아들 둘 다 최민혁과 연관되어서 감옥에 갔다.

하지만 진작 더 큰 문제는 DL 화재였다. 그 탄탄한 기업이 휘청이는 것을 보자 겁이 덜컥 났다.

그는 새삼 최훈열 전무, 김현우 상무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 일이 역시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

아니, 확실했다.

그렇다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자신이 될 확률이 높았다.

자신은 감방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멀쩡한 것은 최민혁과 거리를 둬서 빌미를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최민혁 실장과 엮이는 순간에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했다. 최민혁을 제거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감방에 가든지 말이다.

‘젠장맞을.’

자신 속도 모르고 계속 욕만 하는 여동생 때문에 새삼 마음이 무거웠다.

“그만해. 알았으니까. 나도 민혁 그놈을 최대한 지켜보다가 손을 쓸 테니까. 지금 당장은 너무 쪼지 좀 마라. 간단한 일은 아니니까.”

“정말이지? 우리 그이 복수를 반드시 해주는 거지? 나도 화나면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다 폭로해 버릴 거니까.”

그놈의 최훈열 전무.

이젠 지긋지긋했다.

“…그래. 알았다.”

김용만 전무는 내심 동생 욕을 하면서도 켐코 사업부 인수를 다시 고민했다. 다른 사람은 죄다 IPS LCD 정신이 팔려서 이 일을 가볍게 생각했다.

‘민혁 그놈이 이걸 노린 것일까. 그런데 켐코 사업부 인수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한번 알아봐야겠어.’

* * *

켐코 사업부 인수 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딱히 무슨 기술적인 변화와 같은 행보가 없기 때문이다.

김용만 전무가 이 과정에서 특별한 변화를 찾을 리가 없었다.

그건 KM 기획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쪽은 와컴 사업부 인수에 대한 지시를 받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와컴 이야기는 너무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막 돌아온 정성근 대리 생각은 달랐다.

그는 딱 한마디로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결론 내렸다.

“터치 모바일 제품입니다.”

딱 이 힌트면 충분했다.

KM 기획실 직원은 각자 나누어서 와컴 사업부를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와컴이 이 새로운 터치 시스템 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LCD와 연결이 된다.

이 과정에서 왜 켐코가 끼어들었나 하는 의문도 풀렸다.

“강화 유리였구나.”

그랬다.

켐코 유리는 일반 유리와는 달리 경도가 높았다. 어지간해서는 흠집이 나지 않았다. 결국, 터치 모바일 장비에서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다.

배종대 과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최 실장님이 켐코 사업부를 인수하려고 했던 거였어. 하면 모바일용 디지타이저를 개발할 생각이신가 보네.”

실리콘 밸리에서 돌아온 정성근 대리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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