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55화 (355/1,021)

#355.

KM 그룹 본사 대회의실은 평소와는 달리 심각했다.

비서실을 비롯한 KM 그룹 관련 최문경 부회장 측근은 이번 회의에 다 참석했다.

최문경 부회장은 KMP-01을 꺼내서 음악을 듣는 중이었다.

그리고 비서 팀 중에서 눈치 빠른 이들이 제품 몇 대를 추가로 구해 와서 돌려보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회의실 분위기를 살피면서도 흥분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KMP-01의 완성도 때문이다.

[이거 진짜 죽여줍니다.]

[완전 대박이에요. PC 통신 게시판에 가면 제품 리뷰가 있는데, 음질 수준이 기존 카세트 플레이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런 물건을 어떻게 만든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위에 있는 길쭉한 TN 디스플레이는 플레이 되고 있는 음악 파일 정보를 보여주었다. 딱 그 용도로만 동작했다.

나머지라면 몇 가지 버튼이 있고, 다른 하나는 중앙에 있는 동그란 버튼이다. 상하 좌우로 누를 수가 있었다. 중앙 버튼을 누르면 플레이가 되었다.

딱 그게 다다.

흰색, 검은색 두 가지 타입은 너무 심플해서 깔끔했다.

재질 자체도 손에 착착 감기는 독특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이게 무슨 용도인가 의아스러운 제품이었다.

그런데 이 안에 무려 20곡이나 수록이 가능한 대용량 메모리가 내장되어 있었다. 기존의 카세트 플레이어와는 비교조차 하기 힘든 놀라운 모델이었다.

“…….”

권재홍 비서실장은 잔뜩 굳어 있는 최문경 부회장 눈치를 봤다. 다른 일과는 달리 이 제품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 제품의 특징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최문경 부회장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칼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참수당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살기가 가득한 최문경 부회장 시선을 받자 결국 솔직한 심정을 토했다.

“…아무래도 이 제품이 최민혁 실장이 몰래 개발하던 제품인 것 같습니다.”

“이 제품 내부 분석은 어떻게 되었어?”

이웃집 아저씨 같은 구명진 비서실 3팀장이 슬쩍 나섰다.

“PC 통신에 보면 이 제품을 분해한 내용으로는 MP3 전용 칩을 따로 넣었습니다. 아예 기존에 없던 물건입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회의실 한쪽에 앉은 구명진 부장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 MP3는 음원 압축과 관련된 표준으로 작년에 나왔습니다. PC에서는 이 음원 파일을 내려받아서 쓸 수 있습니다. PC 성능이 좋아서 소프트웨어적인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은 좀 다릅니다. 그래서 플레이가 가능한 전용 칩이 필요한데, 그걸 KM 전자에서 개발한 것 같습니다.”

구명진 부장은 PC 통신을 차용했지만 엔지니어 출신답게 제법 많은 것을 추론했다. 그의 설명이 더해갈수록 회의실 분위기는 더 좋지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 얼굴은 마치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폭탄 같았다.

일단 다른 것을 떠나서 그렇게 KM 전자를 조사했는데, 이 새로운 제품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단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황당한 것은 그 정보를 KM 전자 대리점 통해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품 내부 정보는 PC 통신 통해서 파악했다.

최문경 부회장 표정이 심각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는 놀랍게도 심호흡을 하면서도 마음을 추슬렀다. 힐끗 권재홍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이번에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란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게 어디 한 번 두 번이야지 않겠나.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권재홍 비서실장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는 분노보다는 당면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게 우선이었다.

“…반응은 어때?”

“폭발적입니다. 초대박입니다 판매 첫날에 입소문만으로 2만 대가 반나절 만에 매진되었습니다. 제품 안정성과 신뢰도 때문에 PC 통신 내에서 입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추가로 8만 대가 오늘 점심때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팔고 있었다. 이미 대리점 예약 물량만 무려 10만 대를 훌쩍 넘어갔다.

“…300억인가?”

“단순 계산만으로 그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제품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칩 단가라고 해봐야 1~2천 원 안팎입니다. 제일 비싼 부품이 낸드 메모리인데, 이것도 제가 알아보니 오성 전자와 300만 대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낸드 메모리 단가도 많아 봐야 3만 원에 불과합니다. 이걸 30만 원에 팔았습니다. 뭐 기술적인 면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많이 남을 겁니다.”

콜린스 한 대를 400만 원에 팔면, 영업을 비롯한 이것저것도 다 빼면 정말 많이 쳐줘도 30만 원이 남으면 많이 남는다.

그런데 KMP-01은 한 대 팔면 단순 추정으로 남는 것이 15만 원이 넘는다.

“잘은 모르지만, 이 MP3 원천기술 저작권이 문제인데, 그걸 감안해도 많이 남습니다.”

정확히는 이 원천 기술 비용은 들어가지 않았다. 즉 한 대 순이익이 15만 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콜린스 2대 팔아서 나오는 이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

최문경 부회장도 단순 계산만으로 불과 일주일 만에 무려 150억 넘게 KM 전자가 벌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이 제품이 얼마나 팔릴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흥분해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구명진 부장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봐, 구 부장.”

“네?”

구명진 부장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태생적으로 긍정적인 성격 때문에 최문경 부회장 입장을 간과했다.

‘아, 부회장이 최 실장님을 싫어했지. 정말 눈치도 없다니까.’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여기서 뭔가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말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었다.

“아, 네, 으음, 이건 좀 뭐한 이야기이지만 아마 음반 업체가 이 제품을 보면 철렁할 겁니다. 만약 MP3 파일 통해서 유저가 불법으로 내려받으면, 앨범 판매 부수가 급락할 테니까.”

“……계속해 봐.”

“단적으로 지금 PC 통신이 난리가 났습니다. 음반 업체가 4개 PC 통신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진행 중이니까요. 그래서 공개 자료실에 있는 MP3 파일을 다 지웠지만, 아직 소송이 취하된 것은 아닙니다.”

“하면 이 제품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

“글쎄요. 달랑 제품만 내놓은 건데,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불법 MP3 파일 조장하는 겁니다. 이걸 문제 삼으면 제법 타격을 입을 겁니다.”

“가만 차라리 통신에 있는 MP3 파일만 다 막아버리면, 이 제품 인기도 한풀 꺾이겠어?”

“가능만 하다면 그럴 겁니다. 그런데 과연 불법 파일을 막을 수 있을까요?”

“…….”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이 제품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았다. MP3 파일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면 카세트 플레이어를 구입할 사람은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구명진 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국에 있는 대형 메이저 음반 업체와 미팅을 한번 잡아봐.”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오성 전자 쪽은 제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최문경 부회장도 분노를 터뜨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역시 KM 전자 신입사원 연수원까지 직접 찾아가서 돌아가는 상황을 체크했다.

그 당시에도 MP3 플레이어와 관련된 정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그도 바보가 아닌 탓에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KM 전자 주가 폭등에 이 MP3가 관련된 것일까? 하지만 주가 상승폭이 너무 커. 이제 300억 매출인 제품 하나 때문에 그렇게 주가가 오른 것일까?’

* * *

구명진 부장이 직접 음반 업체를 만난 것은 효과가 있었다.

그들 역시 뜬금없는 KMP-01에 크게 당황하고 있다가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문제는 법리적으로 볼 때 KM 전자에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다.

결국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4대 PC 통신, 기존에 불법 MP3 파일을 올린 유저, 심지어 불법 MP3 파일이 뜬 CD를 가지고 이득을 본 용산 전자 상가 업체를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4대 PC 통신도 갑작스러운 소송에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대책 회의에서 공개자 료실의 순기능, 저작권 침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다.

심지어 이 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PC 통신사는 저작권 침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메이저 음반 업체와 직접 소통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PC 통신 유저 불만은 오히려 이 때문에 더 반발했다.

[지랄한다. 내가 너희 통신 안 쓰고 만다.]

다만 이 문제는 결국 문화체육부와 같은 정부 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문화체육부는 굳이 이 문제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불법 파일을 주고받는 이들이 바로 그들의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괜히 저작권 문제로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역풍을 받을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은 이는 또 있었다.

바로 오성 전자다. 그들도 처음에는 MP3와 대응되는 제품이 없어서 지켜만 보고 있다가 뒤늦게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특히 임권수 부장이 받은 타격은 그 누구보다 컸다. 그도 자기 아들이 구입한 KMP-01을 보고서야 내막을 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랴부랴 추가 조사를 통해서 더 안 좋은 사실도 밝혀냈다.

바로 KMP-01과 관련된 특허다. 무려 200건이 넘는 이 황당한 특허 물량은 아예 작정하고 작업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파다 보니, 뒤늦게야 관련 MP3 특허를 더 발견했다.

바로 최민혁이 그렇게 감추어둔 MP3 관련 원천특허였다.

임권수 부장은 황광수 차장을 비롯한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서 모든 특허 현황을 다 파악했는데, 그 숫자는 무려 1,000건을 넘었다.

‘MP3’가 들어간 특허는 죄다 KM 전자에서 사들인 것이었다.

“…….”

권태성 실장은 최근 최민혁의 미국행 때문에 실리콘밸리 조사에 정신이 없었다. 가용한 모든 기획 팀을 최대한 동원해서 최민혁이 미국에서 뭘 하나 조사 중이었다.

그런데 정작 드러난 것은 전혀 엉뚱한 것들이었다.

현황 파악과 동시에 이미 게임은 다 끝나 있었다.

“…MP3 플레이어 제품 개발은 할 수 있겠어?”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단순한 MP3 원천 기술 외에 관련 디자인 특허도 또 있습니다. 그 물량만 해도 500건이 넘습니다.”

“…결국 하드웨어, 디자인, 소프트웨어, 칩 모든 원천 기술을 KM 전자에서 다 쥐고 있는 셈이네. 하, 이거야 원.”

기획 1팀 정형식 팀장을 비롯해서 기획 팀 2팀 강석영 부장도 혀를 내둘렀다.

특히 강석영 부장은 해외 쪽을 주로 담당해서 다양한 IT 기술에 대한 안목이 제법 있었다. 그런 그도 이런 MP3 플레이어 제품은 본 적이 없었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군요. 이건 막말로 혼자 다 먹겠다는 의도입니다.”

“정말 그럴까?”

“네, 아무래도 우리 오성 전자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을 겨냥한 것 같습니다. 카피캣을 사전에 다 봉쇄해 버린 겁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겠어.”

“…이미 오래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콜린스 이전부터 말인가?”

“네. 여기 특허 이전 날짜를 봐도 콜린스 이전 날짜입니다.”

그는 차마 콜린스 초대박 때문에 이런 제품 개발을 했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권태성 실장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도대체 돌아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은 사실일까?’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한 제안이 그냥 단순한 제안 같지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일으킨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정작 KM 전자 내부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설마 아니겠지?’

혹시나 싶어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었다.

“지금 대리점 예약 누적 물량만 무려 20만 대를 넘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마 재고가 있었다면 그 이상의 물량이 팔려 나갔을 겁니다.”

그리고 이 인기에 대한 추론이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한 가지였다.

“아무래도 음반 업체가 이번에 PC 통신을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 가장 큽니다. 그 때문에 MP3 불법 파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짜 MP3 파일을 돌릴 수 있는 MP3가 나오고 말았다.

PC 통신 사용자 시선이 KMP-01에 꼽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