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34화 (334/1,021)

#334.

“자자,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어요. 전 본사 기획 팀의 임웅 대리고, 저 친구는 박광민 사원입니다. 저희가 할 일은 여러분이 자신이 올린 기획안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아, 그러면 설마 저희가 올린 기획안이 채택된 것입니까?”

“네!”

“와아.”

강준석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뒤에 동행한 팀원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여섯 명은 이번 기획안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듣고 있던 다른 교육생은 모두 부러운 눈으로 강준석 팀원이 사라지는 것을 봤다. 그들도 이번 신입 사원 교육에서 최민혁 실장이 약속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실제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박광민 사원은 그런 신입 사원 교육생 모습을 보면서 뒤늦게야 이번 일을 밀어붙인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깨달았다.

비록 이번 기획안 도전에 실패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희망과 도전 의식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자신에게는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신입 시절에 저랬는데…….’

* * *

김창호 부장도 최병연 팀장에게 불만을 하소연했을 때, 딱히 기대하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공장 상황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획 팀에서 이번 일을 적극 검토하나 싶었는데, KM 그룹 신규 인력을 전부 다 KM 전자로 할당 받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특히 이번 신입 사원 교육은 오성 그룹 교육원을 빌려서 진행된 일이다.

안산 공장에서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혀를 내둘렀다.

“그 많은 돈은 어쩌고, 오성 전자 등골을 빼먹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늘 소심하던 윤선기 과장은 과장 진급한 후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우리 KM 전자가 320명이나 되는 대규모 채용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니 본래 쓰던 곳은 수용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가 없잖습니까. 결국, 교육 장소를 대여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오성 그룹 설비가 좋지 않습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전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신입 사원 교육 설비를 이번 기회에 늘리는 것이 나았어.”

“회사에 돈이 많다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아껴야 하지 않을까요? 전 최 실장님의 이번 행사를 적극 지지할 뿐입니다.”

“아주 과장 달았다고 열렬한 최민혁 실장 지지자라도 된 거야?”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죠. 우리 최 실장님이 은근히 느린 것 같지만 딱 기회가 싶으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지 않습니까? 설마 이번 대규모 채용에 반대하시는 겁니까?”

“…….”

김창호 부장은 어이가 없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김현우 상무나 이일태 이사가 쫓겨났던 기억을 떠올리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설마 반기를 들었다고, 날 자르지는 않겠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전혀 예상을 못 한 일이 일어났다.

기획 팀이 아직 신입이라 뽀송뽀송한 강준석 팀을 데리고 안산 공장을 찾았다.

“임 대리, 저 친구들은?”

“아, 이번 신입 사원 교육을 받는 친구들입니다. 이번 교육 과정에서 괜찮은 기획안을 내놓아서 이들을 공장에 데려온 것뿐입니다.”

마른 체격에 눈빛을 반짝이는 강준석이 냉큼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번 KM 전자 신입 사원인 강준석이라고 합니다.”

뒤를 이어서 강준석 팀은 줄줄이 김창호 부장에게 인사했다.

김창호 부장도 신입 사원이란 말에 강준석 팀을 냉대할 수는 없었다.

“어, 그래.”

적당히 조직 생활을 잘하는 임웅 대리는 냉큼 끼어들었다.

“이번 신입 사원 교육을 받는 중에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들입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신입 사원 교육은 진행 중인 것으로 아는데?”

“물론입니다. 다만 이 친구들은 워낙에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최 실장님이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최민혁 실장’ 이야기에 김창호 부장은 인상을 와락 구기고 말았다. 그저 신입 사원 견학 수준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콜린스 경우가 있듯이 최민혁 실장이 단순하게 이 일을 밀어붙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임웅 대리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막상 지시를 받아서 안산 공장에 내려왔는데, 뒤늦게야 현실을 마주했다.

공장은 말 그대로 현실과 직면한 부서다. 환상과 같은 말 따위가 그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어설픈 기획안에는 노골적으로 반대를 할 것이다.

그는 복잡한 관계를 잘 풀어가는 박광민 사원 등을 떠밀었다.

앞으로 쭉 밀려 나간 박광민 사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힐끗 한쪽에 서 있는 강준석 팀원 얼굴을 살펴보았다.

다들 바짝 얼어 있었다. 이제 사회생활을 처음 해본 터라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총대를 멨다.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서 강준석 팀이 기획안을 내놓았는데, 그게 현실성이 꽤 높습니다.”

“설마 우리보고 저 핏덩이 지시를 따르라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있습니까? 최구만 과장님이 이미 안산 공장에 내려왔을 텐데, 혹시 연락받지 않았습니까?”

“오늘 오기는 왔어. 설마 그 친구가 온 것도 쟤들 때문이야?”

“네.”

“…….”

김창호 부장은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늘어난 신규 충원 인원을 떠올리고 나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민혁 실장이 순순히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일이 어쩌면 그 연장선일 수도 있었다.

그는 지금 이 굿판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갈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최민혁 실장이 직접 지시를 내린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거야. 하지만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는 마.”

박광민 사원은 방긋 미소 지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따라와. 안내는 내가 해줄 테니까.”

“네!”

강준석은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다 온 덕분에 눈치가 빨랐다. 그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그저 몸을 사렸다.

솔직히 그 자신이 김창호 부장 입장이었다면 크게 분노했을 테니까.

새삼 언론을 통해서 접한 최민혁 실장 영향력을 실감했다.

‘역시 최민혁 실장님이구나.’

솔직히 이런저런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렇게 돗자리를 깔아준 상황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이 기회를 붙잡을 생각이었다.

‘난 할 수 있어, 아니, 반드시 할 거야. 이번에 치고 올라간다!’

* * *

최구만 과장은 MP3 개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자 주로 KM 전자 본사 연구실에서 주로 일했다. 안산 공장 쪽은 잘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최민혁 실장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산 공장에 내려왔다.

‘아, 정말 모르겠다.’

김창호 부장의 구박은 단순히 그의 주장만은 아니었다.

안산 공장 내부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본인이 콜린스 시장 출시를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쁨은 이미 사라진 지가 오래다.

안산 공장은 찔끔찔끔 늘어나는 콜린스 물량에 치여서 다들 죽을 맛이다.

최근에는 대규모 계약 소문 때문에 바짝 긴장했다.

부품 주문부터 산적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콜린스는 양산하기가 꽤 힘든 면이 많았다.

아주 사소한 실수도 고객 클레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콜린스 생산에 매달린 공장 직원은 개발 팀을 욕할 수밖에 없었다.

최구만 과장은 덕분에 안산 공장 지인 몇 사람을 만난 이후에 공장 지인을 피했다. 그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라도 전원 칩 디버깅에 집중했다.

MP3 프로젝트 일정이 늘어지면서 전원 칩 기능도 복잡해졌는데, 그 덕분에 칩 디버깅도 점점 난도가 계속 올라갔다.

잡았다고 생각한 버그에서 생각도 못 한 문제가 계속 나왔다.

그중에 하나가 Sleep 상태(전원 OFF가 아님)에서 칩이 깨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전원 문제인지, 칩 설계 문제인지, 아니면 펌웨어 자체의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양산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최구만 과장도 한때는 최민혁 실장이 왜 MP3 출시를 질질 끄는지 몰랐다. 나름 시장성 때문이란 변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생각도 못한 버그가 너무 많았다.

콜린스는 KM 전자에서 쌓인 노하우가 있었지만, MP3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마치 흰색 도화지 위에 하나하나 새로운 집는 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완성도를 높여도 문제는 끊이지 않고 나왔다.

콜린스처럼 2-3만 대가 아니라 20-30만 대씩 팔려 나갈 것을 고려하면 식은땀이 절로 나왔다.

‘역시 최 실장님 이야기가 맞네.’

최구만 과장도 나름 실력이 뛰어난 엔지니어였지만 이런 일 자체가 처음이라서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전원 칩 설계 쪽 전문가인 이주옥 과장은 계속 툴툴거렸다.

“굳이 이 복잡한 전원 칩을 왜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품만 해도 너무 오버 스펙입니다. 이것 때문에 문제가 계속 생깁니다.”

‘이건 모두 최민혁 실장님이 너무 욕심이 많아서 생긴 일입니다!’란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전원을 켜고, 끄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전원 칩은 SLEEP 동작과 관련해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포함되었다.

따라서 이상 동작을 할 때 전원 칩이 알아서 자동으로 처리한다. 기존 초기 전원 칩에서 대규모 수정을 몇 번이나 한 것이다.

이주옥 과장은 불필요한 기능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구만 과장도 꾹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번에는 반박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일을 이렇게 만들 이유가 없잖아. 다른 노리는 수가 없다고 생각해?”

“설마 최 과장님은 이 전원 칩을 다른 제품에도 적용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러지 않을까. 이와 유사한 반도체 칩을 찾아봤는데, 나오는 것이 없어. 기획 팀 이야기로는 아예 이 칩만 팔아도 된다고 하니까.”

초창기부터 같이 개발하면서 고생을 제법 한 이주옥 과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이렇게 중요한 칩을 따로 팔까요?”

“그럴 수도 있지.”

촉새처럼 따불 거리는 이주옥 과장은 딱히 최민혁 실장을 비난한 것이 아니다. 그의 성격 자체가 입이 가벼운 것뿐이다.

최구만 과장은 그런 이주옥 과장이 딱히 싫지는 않았다.

일을 배우기도 좋았고, 같이 일하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경력이 쌓이면 꼰대 성향이 다분히 나타나는 다른 엔지니어와는 달랐다.

최구만 과장은 솔직히 지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이제는 대견스러웠다.

그는 전원 칩이 ver 3.0단계를 넘어가면서 이제는 어느덧 전원 칩 설계 엔지니어가 된 것을 확신했다.

“…하긴 최 과장님 발전 속도를 본다면 다른 의도도 있겠어요.”

그렇다고 TV 고압 변성기나 전원 칩은 둘 다 전원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최민혁 주장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과장님 단독으로 작은 아날로그 칩 설계를 직접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불과 몇 달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한 겁니다.”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전 세계 어떤 회사를 살펴도 직원에게 이런 특혜를 베푸는 곳은 없다.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이는 최구만 과장은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난 별로야.”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이런 기술력이면 앞으로 엔지니어로 최소 20년 이상은 버틸 테니까요.”

“그럴까?”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날로그 TV 전원 설계는 미래가 없잖아요. 만약에 디지털 TV 시대가 오면 치킨집이나 해야 할 겁니다.”

“치킨집이라.”

최구만 과장은 엔지니어 비애를 새삼 느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이 왜 갑자기 저러나 싶었는데, 지금은 피부로 느꼈다.

안산 공장 쪽의 다른 지인은 아직도 자신을 잘 이해를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이 KMPM ver 3.0 칩을 최민혁 실장님이 설계했다는 거야. 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주옥 과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어, 최병연 팀장님이 설계한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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