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그렇기 때문에 MP3에 대해 외부에서는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내막을 알기 어려웠다. 정확히는 MP3 플레이어 개념 자체가 없는 시점에서 이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강준석이 이 정보를 아는 이유는 KM 전자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조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강준석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네.”
강준석은 자신이 얻은 정보와 KM 전자의 행보를 토대로 추론한 내용을 가감 없이 말해주었다.
그는 특히 KM 전자가 벌이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이 생각한 바를 털어놓았다.
“최민혁 실장님이 STB 사업부, 위성 사업부를 매각한 것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을 거야. 특히 오큘러스 프로젝트 관련된 부분은 누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정작 프로젝트를 다 마무리 짓고 나서는 다 팔아치웠으니까.”
“설마 그 이유 하나로 그렇게까지 했을까?”
“아니. 난 그렇다고 봐. TV 사업부 매각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 지금 나오는 이야기도 그저 흘러나온 말은 아닐 거야.”
“설마 진짜로 TV 사업부를 매각한다는 소리야?”
“이 MP3 사업이 성공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특히 디지털 사업과 관련된 쪽으로 포지션과도 일치하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강준석의 주장은 꽤 논리 정연했다. 이를 듣는 팀원은 다들 순순히 수긍했다. 그들도 강준석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강준석은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 모습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지금 내놓은 자료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자료는 그가 신입 사원 교육 이전에 KM 전자에 대해서 철저하게 고민했던 흔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팀원은 강준석을 시기하기도 했지만, 그와 합류한 이들은 좀 달랐다. 그들은 잘만 하면 이번 신입 사원 교육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알았어. 내가 뭘 하면 될까?”
“일단 우리가 MP3 관련 뭔가를 직접 만들 수는 없어. 하지만 프로그램은 좀 이야기가 다르잖아. MP3로 최대한 이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면 되니까.”
쉽게 말해서 MP3 아이템을 응용한 새로운 형태의 수익 사업이다. 자연스럽게 모바일 개념이 나왔다. 다만 구체성은 좀 떨어졌다. 기술적인 한계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강준석은 스스로 한계를 잘 알았다. 이 기반은 KM 전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뒀다. 막연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KM 전자의 기반 기술을 최대한 활용했다.
“괜찮네?”
강준석의 팀원들은 순수한 강준석 열정에 반해서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번 일이 잘만 하면 좋을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 * *
오성 그룹 신입 사원 교육도 기획에 종사할 사람은 직접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과정을 포함한다.
실제 업무 수행 시에 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 컸다.
대표적인 경우가 조직 몰입과 조직 적응에 대한 문제다.
이 부분은 많은 대기업에서도 신입 사원 교육에서 검토하는 내용이다.
권태성 실장은 이런 오성 신입 교육 과정을 잘 알기에 KM 전자 신입 사원 과정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과정에서 KM 전자가 오성 그룹 신입 사원 교육 시설을 이용한 덕분에 KM 전자 신입 사원 과정을 보고받을 수 있었다.
불행히도 특별한 사안은 보고받지 못했다.
‘역시 최 실장도 신입 사원 교육에는 뾰쪽한 수가 없는 건가?’
오히려 자신이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겉으로 봐서는 신입 사원 교육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KM 전자 기획실은 권태성 실장과는 입장이 달랐다.
조성돈 팀장은 강준석 팀이 올린 보고서 내용을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설마 누가 정보를 흘린 거야?”
기획 팀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이번 신입 사원이 올린 기획안을 보면서 경악했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이 이번 신입 사원 교육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다고 할 때는 놀랐다. 다만 딱 그 정도였다. 이제 갓 교육을 받는 신입 사원이 내놓을 수 있는 기획안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준석의 보고서는 좀 달랐다.
배종대 과장이 슬쩍 반박했다.
“여기 올라온 보고서를 잘 보면 언론사에서 기사화된 자료가 그 기준입니다. 톰슨 경우는 좀 다르지만, 프랑스 기사를 읽을 수 있다면 MP3 특허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내 보안 정보가 따로 새 나간 것은 아닙니다.”
확실히 강준석 보고서는 기획 팀에서 다루는 정보와는 질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흘러가는 방향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기획 팀에서 전혀 생각도 못 한 부분을 지적했다.
미국 IT 사업의 방향과 인터넷 발전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산업 방향을 예측했다.
이런 부분은 소프트웨어적인 수정이 필요했다. 특히 MP3 기획 수정이 따라야 한다.
이 부분은 물론 최민혁 실장이 늘 외부에 나가서 한 이야기와 일치했다.
즉 강준석은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보인 외부 자료를 토대로 자신만의 기획안을 내놓았다.
도저히 신입 사원의 안목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정성근 대리가 바로 이 부분을 지적했다.
“늘 회사 일이 바빠서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질 못했는데, 딱 핵심을 찍었네요. MP3 아이템이 된다면,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도 가능하잖아요. 그렇다면 소형 LCD에 대한 기획안도 검토가 필요해요.”
배종대 과장이 바로 반박했다.
“정 대리 말도 일리가 있지. 그런데 소형 LCD는 기술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어. 지금 기술로는 넘을 수가 없어!”
다들 그제야 고민했다. 실제로 차세대 LCD에 관한 조사는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진행 중이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많아서 손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박상기 차장 역시 한계가 많은 이 보고서를 높이 평가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여력이 안 되어서 못 한 겁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한번 제대로 확인할 필요는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순순히 팀원의 평가를 인정했다.
그런데 배종대 과장이 강준석 프로필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단순히 운인지는 모르겠네요. 전 실장님이 갑자기 최고 성적을 받은 신입 사원을 대리로 진급시키는 것이 어이가 없었는데,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광민 사원과 정영일 사원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그제야 분위기를 읽은 다른 팀원도 다들 침묵한 채 고민했다.
그들은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아무리 신입 사원 교육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도 대리로 조기 진급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나온 기획안이 정말 성과가 나타난다면 상황이 좀 달랐다.
그러니 이제까지 고인물이 된 기획 팀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실장님이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일까?’
조성돈 팀장은 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조용히 회의를 끝냈다.
‘가만 강준석 이 친구 한 사람뿐이야. 다른 친구도 이 친구처럼 나왔다면 우리 꼴이 우습게 돌아갈 뻔했어. 그런데 신기한 친구야. 이런 식으로 튀는 친구는 또 처음이네. 정말 최 실장님이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한 것일까?’
* * *
조성돈 팀장도 뒤늦게 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는 설마 최민혁이 의도적으로 이런 일을 만들 생각으로 이번 일을 만들었을까 고민한 채로 강준석의 기획안을 들고 최민혁을 찾아갔다.
오히려 최민혁이 조성돈 팀장 보고서에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기획 팀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멋모르는 신입 사원 기획안까지 들고 와서 일일이 다 검토하고 말이죠.”
“…실장님이 늘 말씀하신 부분과 일치하는 보고서입니다. 그래서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조성돈 팀장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번 일을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혹시 이번 신입 사원 중에 가능성이 높은 친구를 염두에 두고 이번 신입 사원 교육을 진행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저도 신입 교육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직무 특성이나 진취적인 행동과 같은 부분은 나름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제가 그런 것까지 알 리가 있습니까?”
모른다고 하면서도 정작 주절주절 다 언급하는 최민혁 이야기는 꽤 전문적이었다. 다만 이 내용은 대체로 인생 1회차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다. 일테면 미래에 일어날 일이다.
우습게 들을 내용이 아니었다.
조성돈 팀장은 어이가 없어서 일단 묵묵히 듣다가 불쑥 반문했다.
“그런 것치고는 꽤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큰 의미는 없어요. 중요한 것은 결과니까.”
최민혁은 강준석 보고서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피식 웃었다. 얼핏 봐서는 혁신적인 보고서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최민혁 자신이 이곳저곳에 나가서 한 말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했다.
다만 아닌 부분이 20% 존재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실상 IT 산업의 미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고 해도 무시할 수는 없지. 이걸 잘만 활용하면 되니까. 엉뚱한 짓을 하면, 내가 적당히 손을 써서 터치 타입 MP3 쪽 정보를 흘리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어.’
최민혁은 새삼 집요한 강준석의 기획안을 꼼꼼히 살피면서 감탄했다.
‘중요한 핵심은 MP3를 알아볼 정도로 집요한 성격이지. 우리 회사 구조조정 방향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가 있으니까. 이 정도면 베스트야.’
최민혁은 인생 1회차에서 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계속 자신이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행동 대장이 필요했다.
그 자신이 원한 것은 바로 고인물이 되어버린 기획 팀을 비롯한 다른 팀의 변화를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자신이 원한 바도 있었다.
‘터치 타입을 고려한 것은 좋았지만, 기술적인 한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네.’
최민혁은 자신이 기회를 준다면 이 기획안을 잘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신입 사원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다.
‘과연 끝까지 잘 갈 수가 있을까?’
문득 호기심도 생겼다. 자신이 진행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만약 자신을 대신해서 신입 사원이 이 일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충격을 받은 임직원의 태도도 바뀌어 과거처럼 고인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을 한창 구상하던 최민혁은 결국 결론 내렸다.
“이렇게 합시다. 이왕 이렇게 의견이 나왔으니, 이 친구들을 한번 밀어줍시다.”
“네? 어떻게 말입니까?”
“지금 한창 신입 사원 교육을 받는 상황 아닙니까. 따라서 그 교육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으로 나가죠. 이들이 MP3를 보고 판단할 기회를 주죠.”
“하지만…….”
최민혁은 기획 팀 분위기를 생각해서라도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 물론 말이 많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실무진을 불러 정식으로 진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정 결과가 안 좋으면, 그때 가서 접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한 성과를 너무도 잘 아는 조성돈 팀장은 보고서를 들고 나가면서도 힐끗 밝게 웃는 최민혁 얼굴을 쳐다보았다. 질문은 많았지만 묻지는 않았다.
‘아무리 봐도 실장님이 이 일로 장난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 * *
시스템 전체를 총괄하는 최병연 팀장, 원천 기술을 주로 책임진 임기석 부장, OS를 주로 담당한 오상현 과장, 칩 개발을 책임진 최구만 과장은 갑작스러운 지시를 받고 난 후에 소회의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들은 갑자기 받은 지시에 영문을 몰랐다.
그들은 조성돈 팀장에게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세 사람은 서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도 적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오성 전자에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최구만 과장, 오상현 과장 안색은 썩 좋지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번 신입 사원이 내놓은 기획안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딱히 실장님 지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신입 사원 이야기까지 따라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