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31화 (331/1,021)

#331.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아니, 이 일이 최 사장님께 오히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자칫 하다가는 가족 불화로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수익은 KM 전자로 충분히 봤지 않습니까?”

“…….”

최두진 사장은 한동안 최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올 초에 KM 전자 지분을 인수하러 왔던 최민혁 모습을 기억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최민혁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때도 KM 전자 지분을 위기 위해서 갖은 수작을 다 부렸는데,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협박이 아니라 교묘한 팩트만 전한 것이 다를 뿐이다.

“너라면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최민혁은 쓰게 웃었다.

“이번 일은 하나의 큰 흐름입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설사 할 수 있다고 해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유는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최두진 사장은 좀 더 다른 이야기를 내놓았다.

“난 생각이 좀 달라. 내가 너 정도 능력이 되었다면 부드럽게 이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연구했을 거다.”

“과연 그렇게 될까요? 세상이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당장 우리 첫째 큰아버지를 보세요. 과연 최두진 사장님은 우리 첫째 큰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전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네 주장은 주민이 녀석도 똑같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그 이야기는 저에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최 사장님 문제이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지분입니다.”

“…얼마면 되겠냐?”

“6%입니다.”

“…좀 많다고 생각한다만?”

“최주민 사장님 문제는 결코 간단하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자칫하다가 최 사장님까지 다 엮여 들어가서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도 남습니다. 그 일을 막아준 대가입니다.”

“…좋다. 다만 한 가지만 더 묻고 싶다.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건 이번 가족 문제를 정리한 후에 나중에 가서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컨설팅 비용을 내셔야 합니다.”

“…그래 알겠다. 그런데 난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이번 일이 그룹 신규 채용 인원을 다 떠안는 조건으로 하는 일이 맞아?”

“물론입니다.”

최두진 사장은 혀를 차면서 민기식 고문 변호사에게 턱짓했다.

민기식 고문 변호사는 이미 준비해 둔 KM 산업 지분 매각 서류를 내밀었다.

최민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계약서를 살폈다.

‘이로써 KM 산업 지분이 8%구나. 10%는 넘기는 것이 좋은데, 필요하다면 장내 주식 매입도 한번 고민을 해봐야겠어.’

* * *

최두진 사장은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오히려 상황이 나빠진다는 것을 알기에 최주민이 관여한 이들을 만나서 하나씩 중재해 나갔다.

손실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손을 썼다.

다행히 최주민은 최두진 사장 움직임을 알지는 못했다.

KM 산업 지분 인수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벨린 투자자를 내세워서 6% 지분을 주당 30,000원에 인수했다. 대략 600억 규모다.

최민혁이 추가로 장내에서 3%를 더 슬그머니 사들였는데, 300억 규모다. 합쳐서 11% KM 산업 지분을 매입했다.

차명 지분을 내세운 덕분에 굳이 이 사실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조차 지분 변화를 미처 간과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민혁은 KM 산업 지분을 더 늘리지는 않았다. IMF 이후에 KM 산업 주가가 추락한다는 것 정도는 예상하기 때문이다.

‘딱 이 정도면 좋겠어.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머리를 잡고 쓰러질 거야.’

최문경 부회장이 가진 지분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가 만약 최민혁이 KM 산업 지분 11%를 들고 있는 것을 안다면 패닉에 빠질 일이다.

최민혁이 그다음에 한 일은 역시 신입 사원 교육이었다.

그는 권태성 실장을 만나서 오성 전자 신입 사원 교육 시설을 대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닐 겁니다. 321명이나 되는 인원의 교육 편의를 위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KM 전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자금적으로 그렇죠.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그럴 여유가 없어요. 일단 오성 그룹 도움을 얻는 것이 가장 편하니까.”

“…….”

권태성 실장으로서는 황당한 제안이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세상에 오성 그룹 신입 사원 교육 시설을 대여해 달라는 인간은 최민혁 실장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민혁도 마냥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설마 무궁화 위성 퓨즈 사건을 벌써 잊었다는 소리는 아니겠죠? 저는 지금 그 일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것뿐입니다.”

“후유, 일단 알겠습니다.”

알고 말고가 없었다.

위성 사업이 뜨면서 일약 주목을 받기 시작한 e오성 덕분에 겨우 해외 도피성 유학에서 벗어난 안재운이 이번 일을 수락했다.

결국 권태성 실장은 최민혁 실장 제안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도 최민혁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KM 전자가 떠안은 인력이 무려 321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KM 그룹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자신은 KM 전자 인력 채용을 더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은 이번 KM 그룹에 신입 사원으로 합격한 이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강준석은 특히 이런 변화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는 뒤늦게 신입 사원 교육 일정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에 고개를 갸웃했다.

‘오성 그룹 신입 사원 연수 시설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좋아할 일이기는 하지만 생뚱맞았다.

물론 언론에서는 난리였다.

[KM 전자와 오성 그룹이 신입 사원 교육에 힘을 합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이게 의외로 먹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주식 시장이다. 등락을 거듭하던 KM 전자 주가가 결국 19만 원을 뚫더니, 20만 원에 안착해 버린 것이었다.

고등학교 후배로 같은 학과를 다니는 박진한은 강준석을 구박했다.

“형, KM 그룹은 어떻게 되어가요? 입사하기는 하는 거예요?”

“그래.”

“어? 진짜요?”

박진한은 깜짝 놀랐다. 그 역시 강준석과 같이 이번 KM 그룹에 지원해서 최종 합격했다. 하지만 계속 기다리란 이야기에 결국 포기했기 때문이다. 박진한은 그 후, 다른 회사에 지원해 LC 전자에 합격했다.

“너만 하겠냐. LC 전자라면 한국 대기업 중에 손에 꼽히는 기업이잖아.”

“하긴 그렇죠. 그러지 말고 이번에 형도 차라리 LC 전자에 지원해 보는 것이 어때요? 제가 추천해 줄 수도 있어요.”

넌지시 제안을 하는 박진한의 모습은 사뭇 당당하기만 했다.

삼수로 어렵게 대학에 들어온 강준석은 학비 때문에 잦은 휴학을 했다. 그런 그의 처지에서는 썩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박진한만이 아니라 다른 과 선후배도 비슷했다.

그들 역시 강준석이 악착같이 KM 그룹 채용에 매달리는 이유를 잘 몰랐다.

“준석아, 차라리 이제 오성 전자를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 네 학점 정도라면 오성 전자도 충분히 가능하잖아.”

“괜찮습니다.”

비꼬는 이는 있었다.

강준석은 자기 사정에 대해서 입을 꾹 다물었는데, 집요한 박진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정을 밝혔다.

“사실 KM 그룹이 아니라 정확히는 KM 전자로 입사한다.”

“어? 진짜 KM 전자에 입사하는 거예요?”

“KM 그룹 구조조정 때문에 신규 인력 채용이 대폭 줄어서 여력이 되는 KM 전자가 나머지 인원을 다 흡수하는 것으로 결정 났대.”

“흠.”

박진한 표정이 썩 좋을 리가 없었다. KM 그룹에서 KM 전자만은 돌연변이로 취급받았다. 콜린스 대박 신화로 이미 어지간한 대기업 계열사를 찜 쪄 먹을 수준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KM 전자의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LC 전자만 해도 신입 사원 연봉이 3,000만 원은 넘어요. 혹시 KM 전자 연봉은 어때요?”

“이번에 여러 가지 사정이 바뀌면서 확정 난 것은 없어.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

“설마 2천 초반은 아니겠죠?”

“모른다니까.”

강준석도 딱히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는 연봉보다는 회사 가치를 높이 봤다. 특히 KM 전자는 그 자신이 목표한 회사였다.

‘대규모 인력 조정으로 이제까지 사람이 많이 빠져나갔잖아. 하지만 그 이후로 회사는 계속 커졌고, 인력난 때문에 고통 받는 회사야. 그러니 삼수 때문에 나이가 많은 나로서는 최고의 회사야.’

보통 신입 사원 나이가 26~27살인 것을 고려할 때 29살은 많은 편이다.

다른 신입 사원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따돌림을 받을 수 있었다.

강준석은 특히 오성 전자처럼 틀이 잡혀 있는 회사에 들어가서는 사내 내부 압력 때문에 쉽게 성장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때문에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잘될 거야.’

하지만 박진한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그렇게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강준석의 태도에 영문을 몰라서 고개만 갸웃했다.

* * *

신입 사원 교육이 현장 위주로 바뀌는 이야기는 늘 나왔다.

강연이나 오리엔테이션 같은 교육보다는 오히려 경쟁사 인기 제품을 조사하거나 경쟁 기업 벤치마킹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KM 전자 신입 사원 교육도 이와 같으리라는 것이 이번 신입 사원 최종 합격자의 생각이었다.

강준석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신입 사원 교육 첫날에 나타난 최민혁 실장에게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신입 사원에 대한 교육 강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번 신입 사원 교육도 그런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단순한 훈련을 위한 훈련으로 이번 신입 사원 교육을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제대로 성과를 낸 이들에게는 철저한 보상을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신입 사원 교육에서 최고 성적을 낸 이는 바로 대리로 진급하게 될 겁니다.]

[……?]

강준석은 깜짝 놀랐다. 그건 이번 교육을 받게 된 다른 신입 사원 합격자도 다르지 않았다. 상상을 벗어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을 한 이가 나왔다.

[실장님, 질문 있습니다. 정말 이번 신입 사원 교육에서 최고 성적이 나오면 대리로 진급하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필요에 따라서 새로운 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교육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바랍니다.]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KM 전자는 이미 상식을 벗어난 경영 성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신입 사원 교육 역시 파격적이었다.

안 그래도 오성 그룹 설비를 빌려온 것만으로 황당했다.

그런데 성과조차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강준석은 이번 신입 사원 교육이 자신에게 최고의 기회라고 확신했다. 그는 때문에 지금까지 시간이 날 때면 연구했던 KM 그룹 보고서를 다시 살폈다.

그가 이제까지 언론에서 나온 KM 전자 관련 기사를 다 모은 자료에서 현실성이 있는 기사를 하나씩 꼼꼼하게 살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주로 언급한 디지털 사업의 변화를 정리해서 필요한 자료를 모았다.

거기에는 인터넷 사업의 미래를 높이 평가했다. 비록 지금은 미국만 해도 느린 인터넷 때문에 말이 나오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강준석이 손 꼽은 분야는 바로 MP3였다.

강준석의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서 팀에 합류한 권우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MP3? 그거 혹시 인터넷 음원 파일을 말하는 거야?”

“어.”

“그게 신규 아이템이 될까? 이미 PC 통해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

“PC 통해서는 그렇지. 하지만 그 파일을 이용해서 듣는 것은 한계가 있어.”

“그게 의미가 있을까. 난 MP3 관련 사업을 선정한 이유를 모르겠어.”

강준석도 팀원을 설득하기 위해서 히든카드를 슬쩍 내밀었다.

“솔직히 나도 잘 몰랐어. 그런데 KM 전자 관련 기사를 조사해 보면 꼭 나오는 것이 MP3야. 그래서 KM 전자는 일찍부터 이 MP3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어.”

예상을 벗어난 소리에 다들 깜짝 놀랐다.

“그런 소리는 처음인데?”

“그거야 KM 전자가 자신의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그래.”

그가 슬쩍 내놓은 것은 바로 톰슨 멀티미디어가 가진 MP3 원천 기술이다. 이 기술이 KM 전자로 넘어간 자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톰슨 멀티미디어는 계약 후에 특허 소유권자가 바뀐 점이 명백했다. 다른 자료는 없었다. 최민혁이 굳이 늦출 수 있는 정보는 계약상에 아예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정보를 아는 이들은 최민혁이 근거 자료를 실제로 흘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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