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20화 (320/1,021)

#320.

위성 사업부 입구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던 김문호 박사는 쪼르르 최민혁에게 달려가서 악수를 청했다.

오늘 강연 때문에 위성 사업부를 방문한 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무궁화 위성 발사를 성공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김문호 박사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따가운 시선에 최민혁은 김문호 박사를 째려봤다. 김문호 박사는 헛기침하면서 슬쩍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 방송은 뭡니까?”

“…보셨습니까?”

“무궁화 위성 발사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안 볼 수가 있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무궁화 위성 발사와 관련된 뉴스 시청률이 무려 32%를 넘었다. 최대 시청률은 39%에 육박했다.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잘 보여주는 지표다.

폭발적인 주목을 받는 뉴스에서 최민혁 실장을 대문짝만 하게 보여주면서 이번 위성 방송을 주도한 천재 사업가라고 떠들어댄 셈이다.

“딱히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을 주도한 사람이 누구인지 진실을 알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고요.”

“제가 원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압니다. 실장님이 원한 것은 비디오 관련 MPEG 원천 기술에 대한 확보와 영향력 확대겠죠. 실제로 이번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사용된 기술에 관해서 관심이 더 커졌습니다. 아마 표준화도 무난하게 진행될 겁니다.”

“흠.”

최민혁도 뜻밖의 이야기에 김문호 박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았다. 굳이 위성 지분을 다 팔아 치운 것과 굳이 무궁화 위성 퓨즈 문제를 알린 이유가 이번에 적용된 위성 기술 표준화 때문이었다.

무궁화 위성에는 다양한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번 위성 발사를 시작으로 국내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리고 김문호 박사가 나서면서 다른 나라의 관심을 받았다.

그것은 무궁화 위성 발사 이후에 위성 방송 테스트를 완벽하게 끝냈기 때문이다.

특히 에러와 보안 기술은 기존에는 없던 방식이기도 했다.

결국 이게 다 돈이다.

최민혁은 비디오 영상 원천 기술 일부를 확보하면서 오디오 압축 영향력을 좀 더 키울 수 있는 기반을 얻은 셈이다.

그는 굳이 내심을 드러내기 싫어서 김문호 박사 안내를 받아서 ETRI 안으로 들어갔다.

소식을 뒤늦게 들은 ETRI 연구원이 우르르 몰려와서 인사했다.

그 숫자는 무려 오십 명을 넘었다.

“…이전에 비해서 연구원이 많이 늘었네요?”

김문호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다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아서 사업이 좀 더 커졌습니다. 위성 관련 사업체를 상대해야 하고, 다양한 투자도 받아서입니다.”

“이번 장사는 잘되나 보군요.”

“말도 마십시오.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석박사 과정이 쳐다보지도 않던 우리 위성 사업부가 ETRI 내에서 일약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무궁화 위성 발사 성공은 ETRI에도 기념비적인 일이다.

정보통신부 역시 이번 무궁화 위성 발사를 이용해서 대대적으로 정치 공세 중이다.

그러니 메이저 방송국에서도 김문호 박사를 계속 찾았다.

덕분에 최민혁 명성은 고공 행진을 거듭하면서 일약 주목을 받았다.

최민혁은 신바람이 난 김문호 박사를 보자 피식 웃고 말았다.

“다 좋은데, 왜 굳이 저를 걸고 들어간 겁니까?”

“전 이런 일을 숨길 생각이 없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한 성과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벌써 오성, DL 그룹, 심지어 정보통신부에서도 실장님 이름을 지우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

최민혁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 자신이 원한 것이다. 공무원이라면 얼마든지 자기 실적을 덮기 위해서 수작을 부린 것이 뻔했다. 자신이야 돈만 벌면 그뿐이었던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군.’

* * *

최민혁은 ETRI 방문 중에 박재호 실장이나 김승구 팀장을 만나지는 못했다. 한 사람은 독일 연구소에 가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미국 MIT 강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위성 사업부의 현재 위상이었다.

무궁화 위성 발표 전까지는 그저 단순한 연구에 불과했지만, 무궁화 위성 발표 후에는 그 연구가 실제화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최민혁 입장에서는 썩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결국 김문호 박사에게 가능하면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한 후에 자리를 떠났다.

덕분에 서울로 가는 차량 안에서 휴게소에서 구매한 신문을 볼 수 있었다.

자신과 안지연이 떡하니 만나는 사진이 들어간 기사였다.

[최민혁 실장은 오성가 사위가 되나?]

남녀 연애 문제가 어떻게 경제란에서 언급되는지 의아한 일이었다. 경제란에 나온 이 기사는 어떻게 보면 황당했다.

안 그래도 정략결혼설이 돌고 있는 와중에 나온 이 사진은 결정타였다.

두 회사 간의 딜이 이미 어느 정도 물밑 협상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콜린스 사업부가 만약 오성 전자로 넘어갔을 때 대한 시나리오가 나왔다.

오성 전자가 콜린스 사업부를 통해서 벌어들일 수 있는 예상 매출이 대략 5~6조였고, 다른 가전 사업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고려하면 무려 10조가 넘었다.

오성 전자 주가가 폭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KM 전자는 콜린스 사업부 매각으로 말미암은 이익을 고려해서 주가가 폭등했다.

다만 부정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KM 전자의 캐시 카우인 콜린스 사업부가 없어지고 나면 과연 회사 성장이 무엇으로 될까 하는 의문이었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도 있었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 대금은 최하가 1조가 넘잖아. 기존에 이미 사업부를 팔아 치운 돈과 콜린스 사업부 수익을 감안하면 1조 8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생기잖아. 그 돈으로 뭘 못 해?!]

[아마 기업 체질 개선을 통한 KM 전자의 도약을 이루겠지!]

덕분에 KM 전자 주가 역시 15~17만 원선에서 맴돌다가 결국 20만 원을 돌파했다.

완전 주가 거품이었다.

콜린스 사업부 수익성을 고려하더라도 KM 전자 주가가 20만 원인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보다는 최민혁 실장과 오성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였다.

그리고 최민혁은 이 기회를 절대로 그냥 간과하지 않았다.

[일단 팔려고 준비해 둔 주식 200만 주를 다 정리하세요.]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은 최민혁 지시를 받아서 눈치를 보는 중에 결국 200만 주를 20만 원선에서 추가로 팔아 치웠다.

무려 4,000억 물량이었다.

하지만 KM 전자 주가는 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21만 원을 돌파하더니, 22만 원에 안착했다.

[…200만 주만 더 팝시다.]

두 번째 물량 정리로 얻은 주식대금은 모두 4,500억을 넘었다.

어마 무시한 물량이지만 이 물량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외국인 투자자였다.

다만 KM 전자 주가에도 결국 악영향을 주었다.

벨린 투자에서 단기에 막 팔아 치운 덕분에 KM 전자 주가도 조정장을 거치면서 20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가 18만 원선을 지나서 다시 17만 원대로 폭락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거래량 자체는 폭증해서 그렇게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거래량이 아예 없는 KM 전자 주식도 서서히 늘어난 것이었다.

“…….”

최민혁은 법인 계좌에 찍힌 수익 규모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정략결혼설을 잘만 이용하면 돈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으음, 놀랍군요.”

우영민 부장은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칫하면 금감원에서 조사할 수도 있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여자 만난 것이 무슨 주가 조작하고 관련이 있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 역시 최근 최민혁과 안지연과 관련된 기사로 가득한 신문을 힐끗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증권가 커뮤니티에서도 실장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올라옵니다.”

“그런가요?”

최민혁은 순순히 그 비판을 받아들였다. 재벌가 여자를 만나는 것만으로 이렇게 짭짤한 수익을 올려서 나쁘지는 않았다.

“이 문제만큼은 언론에도 언급할 때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설마 제가 안지연과는 그저 소개로 만난 것 뿐이다고 언론에 인터뷰하겠습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IMF에 대응하기 위한 총알을 준비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래도 우 부장 조언처럼 확실히 조심해야겠어. 괜한 입방아에 올라서 좋은 것이 없으니까.’

* * *

무궁화 위성 방송을 통한 최민혁의 인지도 상승 이후에 안지연과의 만남 사건은 최민혁의 명성을 비약적으로 올리고 말았다.

최민혁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침 출근 시간에 임직원의 변한 시선에서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실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죠.”

단기에 무려 8,500억을 벌어들인 최민혁 입장에서는 들뜰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지분 15%를 팔아치웠지만,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KM 전자 가치를 잘 보면 MP3 성장세를 제외한다면 지금 주가는 너무 거품이 많이 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최민혁도 임직원의 존경에 가득한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했다.

조성돈 팀장조차 최민혁 눈치를 봤다. 다만 아침부터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김현탁 사장 건부터 시작했다.

“네? 김 사장이 구속되었다고요? 하, 정말 살인 교사를 한 겁니까?”

‘정말’이란 말에 조성돈 팀장은 오히려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을 둘러싸고 일어난 의혹이 한두 가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혀 있던 트럭 운전수가 돈을 받고 살인 교사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건 정말 놀랍군요.”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이 사건을 담당한 형사 팀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뉴스에는 나오지 않던데요?”

“무궁화 위성 사건과 실장님 정략결혼설로 덮어서 그럴 겁니다.”

“아, DL 그룹이 손을 썼나 보군요.”

다만 최민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인생 1회차 기억을 돌이켜 봤다. 그런데 그가 아는 기억 범주 내에서 살인 교사 관련된 기사는 없었다.

‘이상한데…….’

조성돈 팀장도 영문을 모르기는 매 한 가지다. 그는 이 사건을 처음에는 부담 없이 진행하다가 덜컥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실장님은 이미 사전에 알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아니, 제가 점쟁이도 아닌데,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아, 네. 그렇죠.”

“그리고 김현탁 사장이 살인 교사범이든, 아니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구속됐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니까.”

조성돈 팀장은 김현탁 사장 구속을 몇 번 언급하다가 특히 무궁화 위성과 관련된 부분으로 슬그머니 주제를 바꾸었다.

“뭘 그런 눈으로 봅니까. 조 팀장님은 이미 위성 사업에 대해서는 매각 진행까지 진행했는데,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아, 물론입니다. 하지만 무궁화 위성 발사 이후에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 같습니다. 최 실장님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고요.”

“그런가요?”

“네. 솔직히 저도 몇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분이 있어서요. 그중에…….”

이미 김문호 박사에게 한 방 맞은 최민혁은 위성 방송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막았다.

“이해하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그런 거지. 지분 팔고 싶으면 파는 거지, 거기에 무슨 딴 이유가 있겠습니까?”

“…네.”

최민혁은 부담스러웠던 임직원 시선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어수선한 사내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LCD 기술 쪽을 먼저 시작해야 하니까.’

“요즘 사내 분위기는 어때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래요? 한번 정리해서 보고를 좀 올려주세요. 사내에 이상한 정보가 돌면 특히 그것을 중점으로 정리해 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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