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18화 (318/1,021)

#318.

외모는 연예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선을 받을 만했다. 다만 분위기가 일반적인 남자와는 많이 달랐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그 모습에 안지연 그녀도 호기심을 느꼈다.

“안지연 씨?”

“최민혁 씨?”

“네, 반갑습니다. 최민혁이라고 합니다.”

최민혁은 묘한 표정을 한 채 안지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 이후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기소개도 없었고,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다.

딱히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지인의 대다수인 자기 자랑을 하는 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많이 달랐다.

그런데 오성 그룹 총수 안건민 회장이 소개한 남자인데, 그런 일반인과 같은 리가 없었다.

“…….”

안지연은 놀란 눈으로 최민혁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살짝 놀랐다. 최소한 20대 후반 정도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자신과 비교해도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프로필을 자세히 읽어봤어야 했는데…….’

선입견을 품지 않기 위해서 상대 프로필을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이미 소개 이전에 안지연을 알았다. 그녀가 몇 년 안에 자살한다는 것도 말이다. 이유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서 추론만 할 뿐이다.

‘아무리 봐도 재벌가와는 어울리지 않네. 지금은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적인 갈등이 생길 때는 좀 다르겠지. 혼사 문제라면 안건민 회장도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입고 있는 옷부터 딱히 고가 브랜드가 아니었다.

최민혁도 인생 1회차 기억을 떠올리면서 안지연을 살폈다. 딱히 여자로서가 아니다. 그저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간단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전 솔직히 이 자리가 너무 불편해요.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이 아니네요. 제 나이에 약혼이라니, 정말 끔찍하네요.”

“공감입니다. 하지만 제 할아버지도 그렇고, 안 회장님도 진지하게 생각해서 골치에요.”

“그렇죠?”

안지연도 소탈한 최민혁의 반응에 손뼉까지 쳤다.

최민혁도 분명히 선을 긋고 싶어서 한 가지 점을 분명히 해두었다.

“사실 전 마음에 둔 사람이 있습니다.”

“진짜에요?”

“그럼요.”

하지만 안지연 입장에서는 썩 기분 좋은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형식적으로 만나자고 해도 자기 앞에서 딴 여자가 있다고 하다니.

그녀는 겉으로는 손뼉을 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괜히 심술이 났다.

최민혁은 아예 작정하고 자기 내키는 대로 떠벌였다.

“감히 오성 그룹 총수 안건민 회장님이 소개해 주는 자리인데, 저 같은 무명소졸이 그 제안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마음 편하게 생각하세요.”

“…네.”

안지연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 이 남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은근히 화가 났다.

최민혁은 아예 작정한 듯 오만한 남자 코스프레를 시도했다.

그런데 때마침 뉴스 속보가 나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궁화 위성 1호 발사와 관련된 뉴스였다.

바로 위성방송 시대 개막에 대한 소개였다. 위성방송 시청을 위한 여러 가지 안내와 소개도 같이 천천히 나왔다.

최민혁에게 살짝 질려 있던 안지연은 슬쩍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무궁화 위성이 드디어 발사되네요.”

최민혁 역시 짭짤한 수익을 챙길 수 있었던 무궁화 위성 발사 장면을 보면서 지난 일을 떠올렸다. 위성 지분이 있었다면 자신도 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딱히 자신이 한 행동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저런 자리에 굳이 나설 이유는 없었다.

‘IFA 강연과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니까.’

“그러게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궁화 위성이 드디어 발사되나 보네요.”

깊은 감정이 담겨 있는 말에 안지연은 묘한 눈으로 최민혁을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저 일과도 관련이 있으세요?”

“전혀요.”

“흠.”

두 사람은 잠깐 대화를 멈춘 채 TV 화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궁화 위성 1호 발사 관련해서 말도 많았기 때문이다.

방송용 중계기 3개와 통신용 중계기 12개를 탑재한 무궁화 위성 1호는 한국 인공위성 방송 시대를 활짝 연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나운서는 특히 디지털 위성방송 시대가 열린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안지연도 오빠 안재운을 통해서 디지털 무궁화 위성에 대해서는 제법 들었다.

“접시형 안테나가 있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방송 시청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볼수록 신기하네요.”

안지연은 특히 오빠 안재운이 위성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것을 알았다. e오성이 시작한 첫 사업이 바로 무궁과 위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안건민 회장조차 이번 사업에 대해서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굳이 최민혁에게 하지는 않았다.

최민혁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KM 그룹 계열사 실장이라는 것 정도다. 심지어 서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빠가 정신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힐끗 최민혁 얼굴을 쳐다보았다. 외모만 보면 정미선 DNA를 받아서인지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촉새처럼 입방정을 떠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무궁화 1호 위성이 적도 상공 정지 궤도에 무사히 진입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위성 발사를 지켜보던 관계자들은 무사히 위성이 발사된 것에 서로 포옹하면서 환호했다.

그리고 뉴스 진행자는 어느 사이에 이번 위성 발사를 주도한 김문호 박사에게 입을 열었다.

-박사님, 이번 무궁화 위성 발사를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위성 사업과 관련해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특히 오늘은 축하주를 터뜨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나 봅니다. 한 가지 이야기만 예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김문호 박사가 위성 사업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 어려운 일을 떠올리면서 목소리를 살짝 떨었다.

-디지털 위성 사업은 시작부터 무리수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초반에 결과가 제대로 안 나와서 프로젝트를 접을 뻔했습니다.

-그건 제가 들은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이번 디지털 위성 솔루션은 가장 발전된 기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난관이 생겼을 때 돌파구를 연 분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KM 그룹의 최민혁 실장님입니다.

앵커는 굳이 최민혁 실장 이야기를 질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혹시 다른 큰 문제는 없었습니까?

-다른 문제라면 로켓 퓨즈 문제를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보조 로켓이 제때 분리되지 않았을 겁니다. 위성이 정상궤도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최악의 상황에 위성이 폭발했을 수도 있습니다.

앵커도 요식적인 질문에 대한 예상을 벗어난 답변에 깜짝 놀랐다.

-맙소사 그게 사실입니까? 아니, 그런 문제를 사전에 어떻게 해결한 겁니까?

하지만 장승일 실장 통해서 부탁을 받았던 김문호 박사는 다시 최민혁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저희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록히드 마틴이나 맥도널 더글러스 사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님이 사전에 발견했기에 최악의 사태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앵커도 이제는 최민혁 실장을 그냥 간과할 수가 없었다.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이라면, 혹시 IFA 기조연설에 나섰던 그 최민혁 실장님 말입니까?

김문호 박사는 이미 최민혁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기에 딱히 장승일 실장 부탁이 아니라도 이런 자리가 있으면 하고 싶은 최민혁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네, 바로 그분입니다. 그 분 덕분에 이번 위성 사업도 무탈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디지털 위성 솔루션에 담겨 있는 특허도 그분이 직접 제안했으니까요.

-그건 정말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최민혁 실장님은 겸손한 분입니다. 자기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은 부담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이 세상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앵커도 크게 당황해서 담당 PD를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PD가 계속하라는 신호에 어쩔 수 없이 질문을 이어갔다.

김문호 박사는 딱히 숨길 것이 없다는 식으로 이번 위성방송과 관련된 최민혁 실장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는 실로 쇼킹한 것이었다.

“…….”

최민혁은 상상을 벗어난 TV 방송에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김문호 박사가 딱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저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버하네.’

그는 힐끗 안지연을 쳐다보았다.

안지연 역시 조금 전에 최민혁에 대해서 가진 부정적인 인식을 버린 채 힐끗힐끗 최민혁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 설마 저분이 말하는 최민혁 실장이 민혁 씨를 말하는 거예요?”

“동명이인일 겁니다.”

“하긴 민혁씨 나이를 고려하면 도저히 맞지 않은 것 같네요. 가만 그런데 조금 전에 KM 전자 실장이라고 한 것 같은데요?”

“아, 그러네요. 흠, 이상하네요.”

“정말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

그제야 최민혁은 툴툴거렸다.

“솔직히 전 이제 대학교 1학년이죠. 김문호 박사님이 과장하는 겁니다. 로켓 퓨즈 관련된 것도 실무진 선에서 찾은 것이고요.”

“하지만 실무진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가짜 뉴스죠.”

“진짜에요?”

“그럼요. 제가 굳이 제 자랑 가지고 지연 씨에게 거짓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흠.”

안지연은 그제야 뉴스와 최민혁 얼굴을 교대로 쳐다보았다.

뉴스에서는 가면 갈수록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크게 다루었다.

심지어 방송 화면 한쪽에는 최민혁 사진까지 올라왔다.

뉴스를 보는 사람조차 뒤늦게 최민혁 실장 모습에 탄사를 터뜨렸다. 그들도 디지털 위성 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설마 저분이 최민혁 실장이야?]

최민혁은 따가운 주변 시선에 계속 자리에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특히 카페 앞에 서 있는 차량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범 기자군.’

하지만 그는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안지연의 보석 같은 눈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정략결혼설을 이용하더라도 안지연 본인과 굳이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골치네.’

“산책이나 할까요?”

“좋아요!”

안지연도 첫인상과는 조금 색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장승일 실장의 예상처럼 최민혁에게 흥미를 느꼈다. 최민혁이 남자로서가 아니라 도대체 위성 사업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게 궁금했다.

뒤늦게야 최근 안재운이 설립한 e오성이 디지털 위성 사업 지분을 얻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최민혁 태도가 어쨌든 그와 관련이 있는 김문호 박사의 태도는 다르게 볼 수밖에 없었다.

‘가만 오빠가 그 난리를 피운 것도 설마 저 일 때문인가?’

* * *

범용구 기자도 최경진 편집장의 지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한영 일보 내에서 최민혁 실장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최 실장이 정말 안지연을 만난다는 말입니까?”

“나도 몰라. 하지만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이니, 자네가 가서 한번 확인을 해봐.”

“…알겠습니다.”

범용구 기자는 딱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두 남녀가 만나는 데이트를 굳이 자신이 기사화해야 하는 부담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KM 그룹과 오성 가문의 결합이라.’

두 가문의 정략결혼설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 주가에도 반영되어서 두 가문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물론 조정장을 거치면서 다시 떨어지기도 했지만 반등하기도 했었다.

다만 범용구 기자는 이미 최민혁 실장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집안에서 정략결혼을 밀어붙인다고 그가 따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이 진짜일까 의심했다.

솔직히 만난다고 해도 잘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최광수 기자는 푸념을 털어놓았다.

“애들 데이트나 찍으려고 제가 경제 파트에 들어왔나 싶네요.”

“두 사람은 돈이 많지 않습니까. 안지연 양만 해도 증여 받은 지분 가치가 수천억을 넘죠.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죠.”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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