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17화 (317/1,021)

#317.

“알아. 안다구. 내가 뭐 병신이냐. 이거 내가 표적이라는 것을 알아. 그래서 더 화를 참을 수가 없어!”

분노로 방방 뛰는 김현탁 사장.

박태정 비서실장도 딱히 이번 일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소송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흥분하다가 자칫하면 정말 살인 교사범으로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김희찬 부사장님이 알아보고 있으니, 기다리시죠.”

“씨발.”

분개한 김현탁 사장이 난리를 쳤지만, 이번 일에 대응책은 없었다. 자칫하다가 DL 화재에도 다시 불이 붙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 *

김현탁 사장 살인 교사범 이야기는 돌고 돌아서 최용욱 회장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이 소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희찬 부사장에게 보고를 받은 김상구 회장이 다시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다.

[최 회장님, 정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이야기입니까?]

[허, 참 억울합니다. 아니 전 이번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물론 김상구 회장도 정확한 내막을 몰랐다. 다만 최근 사태가 모두 KM 그룹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글쎄요. 아니 그러면 누가 이딴 헛소문을 퍼뜨린다는 말입니까?]

[전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최용욱 회장은 실제로 DL 그룹 기조실을 동원해서 이번 사건을 추적했다. 하지만 소문의 출처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미 이곳저곳에서 정보가 올라와서 누구인지 확언하지 못했다.

다만 이번 사태를 일으킨 손자 최민혁이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이 있다고 추론했다.

최용욱 회장은 결국 다시 정미선을 찾아갔다.

정미선도 다시 찾아온 최용욱 회장에게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버님, 이번 혼사 문제는 민혁이에게 알아서 하라고 해두었습니다.”

“아니, 넌 어미가 되어서 어떻게 자식 혼사 문제를 그런 식으로 다루냐?”

“집안끼리의 혼사 문제이니 오히려 제가 끼어들 여지가 더 없는 것 같습니다.”

슬쩍 발을 빼는 정미선.

그녀도 아들 최민혁을 믿기에 물러나서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허참.”

최용욱 회장으로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도 정미선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확신하자 장승일 실장을 호출했다.

“장 실장, 김현탁 사장이 정말 살인 교사를 한 것이 맞는 거야?”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당시 사건을 조사한 형사 팀 이야기로는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단순 증언만으로 장담하기 어렵잖아. 아, 좋아. 그렇다고 하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이번 문제도 민혁이 그놈의 짓이지?”

“…죄송합니다. 너무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번에는 확인을 못 했습니다.”

“그렇겠지. 민혁이 그놈도 바보는 아니니까.”

최용욱 회장은 이미 잠정적으로 최민혁 짓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때문에 이번 정략결혼을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었다.

“큰놈은 민혁이 결혼을 결사반대하던데, 자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글쎄요.”

장승일 실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그도 최민혁의 여자 문제만큼은 확신하지 못했다.

“…제 의견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회장님 의도대로 되려면 최민혁 실장님이 따라줘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고 봅니다. 최민혁 실장님 입장에선 여자가 아쉽진 않을 겁니다.”

“오성 가문의 여자라고 해도 말인가?”

“지금 최 실장님이 소유한 자산 가치는 이미 1조를 넘었습니다. 더욱이 이번 벨리 투자가 주식 매각으로 또다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수익이 컸다는 소리가 있기는 하던데, 그렇게 많이 벌었어?”

“제가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부동산이나 주식을 제외하고 벨린 투자가 현재 보유한 현금만 무려 4천억이 넘습니다.”

“4천억이라…….”

최용욱 회장도 순간 숨이 막혀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손자 최민혁 자산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더욱이 저 자산은 자신과는 무관한 돈이었다.

비록 그 시작은 자신이 증여한 재산을 기반으로 쌓은 돈이다.

“수익률이 100배입니다. 한국 증시 사상 믿을 수 없는 수익률입니다. 그런데 그 수익률이 아직도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

최용욱 회장은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자기와는 동떨어진 돈이라서 그 돈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서야 금액이 천문학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

장승일 실장은 혀를 찼다.

“최 실장 행보가 이런 식이니. 오성가의 안 회장님이 이번 혼사를 굳이 반대하지 않고, 회장님도 최 실장님이 돈키호테처럼 날뛸 것을 염려한 것이겠죠.”

“…….”

최용욱 회장도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냉정한 장승일 실장은 묵묵히 기다렸다. 그는 이번 일이 자칫 잘못되면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번 혼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최 실장님보다 오히려 여자 측에서 적극 나서야 합니다.”

“그 아이가 그럴 것 같지는 않더군.”

“당연합니다. 이제 대학에 입학한 안지연 양이 굳이 한 남자에게 매달릴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도록 손을 써야 합니다.”

“어떻게 말인가?”

“두 사람이 만나는 시간을 무궁화 위성 1호 발사 시기에 맞추고, 이왕이면 방송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님의 성과를 공개하는 겁니다.”

“계속해 보게.”

장승일 실장의 계획은 간단했다. 디지털 위성 사업과 관련해서 최민혁이 이제까지 한 행보를 다 까발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방송을 통해서.

탁월한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실제로 독보적이었다.

“만약 만나는 데이트 자리에서 여성분이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호기심을 가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건 안지연 양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용욱 회장은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민혁이 이놈은 무궁화 위성 발사와 관련해서 아예 손을 뗐군.”

“제 생각으로는 최 실장님은 굳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럴까? 난 민혁이 그놈이 딴 꿍꿍이가 있다고 확신해.”

“최 실장님이 왜 지분을 전량 다 매각하고, 디지털 위성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는지 그 이유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위성 이야기가 나오자 한 가지를 걸고넘어졌다.

“무궁화 위성 퓨즈를 민혁이가 해결해 줬다는 소리가 있던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실 장승일 실장도 최근 무궁화 위성 퓨즈 사건에 대해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역시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이해할 수가 없는 게 최민혁 실장의 행보였다. 굳이 디지털 위성 사업에 손을 다 뗀 후에 그 사실을 오성 전자에 흘린 부분이다.

‘만약 그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면 오성 전자를 엿 먹이려고 했을 거야. 다만 왜 굳이 그 진실을 말했을까?’

최용욱 회장도 장승일 실장이 장승처럼 멍하니 있자 다시 질문했다.

“그 녀석은 뭐래?”

“최 실장님 이야기로는 위성 사업 AS였다고 합니다.”

“하.”

최용욱 회장은 어이가 없어서 탄식하고 말았다. 다만 뒤늦게야 장승일 실장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자네 말은 그 아이가 방송을 통해서 민혁이 행보를 안다면 매력을 느껴서 매달릴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네.”

“좋아. 한번 자네가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봐.”

“알겠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아내 이영주를 통해서 최민혁에게 넌지시 만날 사람에게 대한 정보를 흘렸다.

다행히 최민혁은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뭐 만나보는 거야 문제가 되겠습니까.]

* * *

최민혁은 살인 교사범으로 재조사를 받고 있다는 김현탁 사장 소식에 크게 웃고 말았다.

“DL 스카이 사장에서 물러난 김현탁이 결국 중앙지검에 출석해서 카메라 조명을 받았다고요?”

“네. 저녁 뉴스에도 나왔습니다. 그 일 때문에 DL 그룹 법무 팀도 난리가 났습니다.”

“좋네요. 잘 지켜보세요.”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눈치를 보다가 정미선의 사내 방문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번 혼사는 정말 진행할 예정입니까?”

“집요하시네요.”

“저도 이번 일이 콜린스 매각설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일은 할아버지가 시작했지만, 오성 측에서 의도적으로 퍼뜨린 겁니다. 그런데 첫째 큰아버지는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어서 방해를 놓겠지. 그러니 자꾸 이상한 불협화음만 나오는 거죠.”

“그 말씀은 실장님은 결코 안지연 씨를 만나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까?”

“아뇨. 만나야죠.”

“네?”

“이왕 일을 벌였는데,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조성돈 팀장은 정략결혼설 이슈가 나올 때마다 크게 요동치는 KM 전자 주가를 떠올렸다.

“…설마 주가 때문입니까?”

“아, 그런 것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주식을 탐내는 SB 같은 인간들이 있어요. 마침 돈도 필요해서 이번 기회에 주식 일부를 정리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자칫 그러다가 금감원에서 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최민혁은 어이가 없어서 툴툴거렸다.

“주가조작 말입니까? 여자 만나는 게 무슨 주가조작입니까?”

“…알겠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쪽에서 미는데, 일방적으로 맞받아치는 것도 안 좋습니다. 가끔은 밀려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딴에는 나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당해줄 때는 당해줘야지요.”

‘물론 재미도 보고요.’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네.”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이 어느 정도 수긍한 것 같자 김명준 과장에게 슬쩍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데이트 장소와 시간을 한영 일보 측에 흘리세요. 아마 그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과 김명준 과장은 둘 다 허탈해서 대꾸하지 못했다. 최민혁이 무슨 꼼수를 부리는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주식이나 살까?’

* * *

안지연은 막 이원 여대에 입학 후에 나름 캠퍼스 생활에 적응했다. 그녀는 자신이 오성가 출신이라는 것을 주변 지인에게는 전혀 밝히지 않았다.

다행히 경호 팀이 일정한 거리를 둔 덕분에 대학 생활은 보통 재벌가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다닐 수 있었다.

그런 그녀도 남자를 만나보라는 아버지 요구에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맹렬하게 반대했다.

안건민 회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네가 지금까지 받은 주식 가치만 해도 수천억이 넘는다. 네가 받은 만큼 가문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니. 당장 남자와 만나서 결혼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다. 그게 어려운 요구냐?”

“…….”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여기서 더 나가면 안건민 회장은 자기 레퍼토리를 내놓을 것이 분명했다.

바로 안건민 회장 본인도 할아버지가 정해준 상대를 만나서 바로 결혼한 과거를 시시콜콜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도 그런 요구를 한 셈이다.

황당한 것은 안건민 회장뿐만 아니라 어머니 박서현도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이가 없는 것은 무궁화 위성 퓨즈 사건을 뒤늦게 알고 한동안 충격에 빠졌던 오빠 안재운의 태도였다.

“나도 아버지 말에 찬성한다. 지금 당장 만나서 결혼하라는 것이 아니잖아. 지금은 서로 친하게 지내고, 마음에 들면 약혼이나 하면 되잖아. 그리고 좀 더 시일이 흐른 후에 결혼하면 된다고 생각해.”

“…….”

오빠 안재운의 이야기는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안지연도 가족이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자 한편으로 상대가 어떤 남자인가 궁금했다.

“알았어요.”

“잘 생각했다. 괜찮은 남자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녀는 대신에 만나는 남자 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지 않았다.

* * *

장소는 신촌의 한 커피숍이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아빠가 이렇게 호들갑을 피우는 걸까?’

그녀는 상대가 솔직히 20대 후반이거나 아니면 30대 초반 정도로 생각했다. 10대 대기업 장남 프로필을 쭉 떠올려 보았다. 마침 아는 지인이 몇몇 떠올랐다.

‘HY 전자의 그 오빠일까?’

10대 대기업 가족끼리는 간혹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기억하는 사람이 몇몇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타난 사람은 그녀가 아는 그 어떤 사람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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