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09화 (309/1,021)

#309.

최민혁는 이미 정미선 주변에 이리저리 사람을 박아놓았다. 따라서 정미선 주변에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장 실장 말입니까?”

김명준 과장도 최민혁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승일 실장도 사모님을 직접 찾아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민혁은 놀라지 않았다. 당연히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콜린스 매각설에 따른 나비효과였다.

“장 실장이 나섰다면, 아마도 우리 첫째 큰아버지 때문일 겁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제 혼사가 진행되길 원치 않을 테니까.”

“네?”

“뭘 그렇게 놀랍니까.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오성 일가 쪽과 혼사가 진행되는 것을 무조건 막아야 할 사람이 우리 부회장님이네요.”

이건 김명준 과장도 정말 알고 싶은 부분이었다.

“…정말 이번 혼사를 진행하실 겁니까?”

“김 과장님도 절 그렇게 못 믿습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오성가라면…….”

최민혁은 단호하게 일축했다.

“저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김명준 과장도 다시 질문할까 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최민혁 이야기는 일관성이 있었다. 여자가 없다면 저런 태도를 보일 리가 없다.

최민혁은 따가운 김명준 과장 시선에 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요. 어차피 이번 일도 콜린스 매각설 때문에 시작된 일이잖아요. 차라리 이 혼사 문제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그리고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다. 혼사는 깨라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에 김명준 과장도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무, 무슨 말씀입니까?”

“혼사를 밀어붙이는 것은 양 집안 마음이지만, 혼사를 결정하는 것은 제 마음입니다. 뭐 뻔히 알면서 뭘 묻고 그럽니까?”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설마 혼사를 진행하는 척하다가 끝장낼 생각입니까.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최민혁은 경악한 김명준 과장의 질문에도 심각하지 않았다.

“욕 좀 먹으면 되죠. 결혼이 뭐 애들 장난입니까. 신부 손잡고, 주례 앞에 서기 전까지는 누구도 장담 못 하는 것이 결혼이죠.”

“으음.”

김명준 과장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하지만 최민혁도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아도 내심은 콜린스 매각설로 시작된 나비효과인 중매 이야기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사실 혼사 문제로 생기는 난리는 그가 알 바 아니다.

어머니 정미선이 이 혼사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문제였다.

아니, 최민혁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유야 어쨌든 최용욱 회장이 정미선에게 가서 사과했기 때문이다. 주치의 통해서도 정미선 상태가 괄목할 정도로 호전되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최민혁은 문득 인생 1회차의 정미선 기억을 하나씩 돌이켜 봤다. 그녀의 상태가 극적으로 나빠진 변환점이 된 시기가 바로 자신이 감옥에 간 이후다.

‘지난 마약 사건 이후에 구속되어야 했는데,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아마 그 일 이후에 어머니 상태가 급속히 좋아졌을 수도 있어. 거기에 할아버지 방문이 방아쇠를 당겼다고 봐야 해. 결국, 어머니의 건강은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미선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런데 목소리는 이전과 확연할 정도로 달라졌다.

물론 정미선은 매몰찬 최민혁 행동에 푸념을 털어놓았다.

[민혁아, 너 정말 전화를 오랜만에 한다.]

하지만 인생 1회차에서 어머니 건강에 멍에를 가진 최민혁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로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죄송해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이제 좀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래, 나도 그건 안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쯤은 전화해야지.]

[앞으로 꼭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요즘 지내기에는 어때요?]

[네가 보내준 경호원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괜찮겠니. 경호원 두 명이면 인건비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회사 경호 팀 소속으로 되어 있으니까. 그보다 혹시라도 제가 도와줄 만한 일이 있습니까?]

[당장은 딱히 네 도움은 필요가 없어. 그보다 네 혼사 이야기가 나오던데,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버님이 큰 기대하는 것 같던데?]

최민혁은 그제야 정미선 목소리에서 혼사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확인했다.

[그건 만나서 이야기할게요. 제가 한번 찾아갈게요.]

[아니다. 한가한 내가 가야지.]

최민혁도 원래는 자신이 어머니를 보러 갈까 하다가 문득 자신의 상황을 떠올렸다. 최훈열 전무가 있을 때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 자신은 KM 전자를 소유한 진정한 오너였다.

지금 자신의 현실을 정미선이 본다면 어머니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굳이 말보다는 한번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괜히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 혼사 문제도 쉽게 풀어갈 수 있어.’

[그러면 언제 한번 회사에 놀러 와보세요.]

정미선은 안 그래도 혼사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차에 최민혁이 제안을 내놓자 망설이다가 결국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럴까?]

[그럼요. 어머님이 아들 회사 구경하러 오는 건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최민혁은 안 그래도 정미선 사회 적응 문제 때문에 고민했다. 더욱이 최용욱 회장을 믿기는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심진모 감독에게 족쇄를 걸어 둘 필요성을 느꼈다.

방법은 간단했다. 지금 자신의 위치를 그들에게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하죠. 어머님이 아는 지인도 같이 데려오세요. 영화 찍는다고 했으니, 스텝도 같이 소개해 주세요. 필요하면 제가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그건 확인해 봐야 해.]

[아, 자리가 불편하면 한번 약속 잡아서 만나는 것으로 하죠. 제가 근사하게 대접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니?]

[안 그래도 요즘 여유가 생겼습니다. 요즘은 제가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봅니다. 오히려 반대죠. 다른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저에게 예민하니까.]

별거 아닌 말이지만 이미 직접 경험한 정미선은 자신만만한 최민혁 대답을 그저 단순하게 듣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 최문경 부회장도 최민혁 눈치를 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되려면 도대체 최민혁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심 기쁘기만 했다.

[정말 고맙구나. 내가 도와준 것은 없는데, 이렇게 잘 커서 말이다.]

[그런 말씀은 마세요. 그러니 제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그러면 촬영 스텝과 이야기해 보고 나서 다시 연락할게.]

[네. 기다릴게요.]

최민혁은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하이에나’와 관련된 프로필을 다시 확인했다. 심진모 감독 성향과 남자 주인공 최재현을 비롯한 김승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김승연이 이번 영화를 찍고 나서 영화계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인생 1회차 기억에서 떠올렸다.

‘아마 질려서겠지.’

딱히 김승연을 개인적으로 도와줄 생각은 없다. 다만 어머니 정미선의 사회생활 동료라는 점 때문에 고민했다.

‘어머니 건강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선에서 밀어줄 필요는 있겠어.’

* * *

최민혁은 정미선 문제나 최문경 부회장 반격도 있고 해서 회사 내부 상황을 한번 재점검했다. 그중에는 최용욱 회장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벨린 투자도 빼놓을 수가 없었다.

KM 그룹 기조실에서 살핀 덕분에 벨린 투자 측에서도 계속 보고를 해왔다.

이상한 것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반응이었다. 그는 투자자를 물색해 준다고 하고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래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만났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말입니까?”

“네. SB가 KM 그룹과 SB 증권 합작사를 만든 것은 잘 아실 겁니다. 미국의 SB 측에서 KM 전자 지분을 원합니다.”

SB 증권은 설립 자본금이 500억으로 KM 그룹은 20% 지분을 확보했다. 다른 중견 기업도 이 연합 SB 증권에 합류했다.

다만 최민혁도 SB가 꽤 유명하다는 것을 알지만, 자세한 것은 몰랐다.

‘아닌가? 가만 이놈들이 IMF 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더라?’

불행히도 최민혁도 이 문제만큼은 제대로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는 그래서 더 의아했다. 왜 자신이 SB를 모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뒤늦게야 인생 1회차 기억을 확인해 보고 나서 몇 년 후에 이 SB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설마 KM 그룹 투자 때문은 아니겠지? 아니, 어쩌면 외국 차입금 배후가 이놈들이라면 상황이 전혀 무관하다고 하기 힘들어.’

KM 그룹이 공중분해 되면서 법정 관리로 넘어가는데, 당연히 초기에 투자한 이들은 막대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빠르게 국내 쪽과 손을 끊고, 해외로 튀었으니 말이다.

당시 KM 그룹은 KM 건설을 비롯한 핵심 계열사가 법정 관리로 넘어가면서 공중분해 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 와중에 그는 핵심 패키지 미국 법인을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누구도 예상을 못 한 일이었다.

‘하긴 이들이라면 다른 펀드 세력과 비교하면 KM 그룹을 많이 알겠어.’

최민혁은 덕분에 SB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무슨 요구를 합니까?”

“주당 18만 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 과장님, 오늘 주가는 어떻게 됩니까?”

“13만 원을 넘었습니다.”

“딱히 무리한 요구는 아닌데요?”

“그런데 SB는 특별히 KM 전자가 얻을 것이 없는 상대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실장님이 손해 보는 장사가 될 겁니다.”

“아, 이권을 줄 것은 없는데, 적당히 올려서 지분은 얻고 싶어 한다는 그 말입니까?”

“네. 필요하다면 한국 권력자를 이용해서 압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최민혁은 가소로운 듯 피식 웃었다.

“재미있네요. 제가 알기로 딱히 우리가 무슨 나쁜 짓을 한 적은…….”

“차명으로 투자한 부분은 알고 있다고 문제 삼고 있습니다.”

“증거는 있고요?”

“증거는 없다고 해도 증권거래감독위원회에 제소하면 번거로워질 겁니다.”

“그런가요?”

최민혁은 뒤늦게 최문경 부회장이 야당 쪽에 손을 쓴 사실을 떠올리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말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해외 법인 통해서 한 투자라서 일단 절세 규모가 문제였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면 난리가 날 일이다.

솔직히 그 자신도 벨린 투자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몰랐다. 벨린 투자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이 미국에서도 꽤 유명한 펀드 투자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것도 아니지. 그래도 마녀 사냥이 될 확률이 높아.’

“일단 시간을 끌어보세요. 그런데 SB는 제이미 이사님도 마음에 드는 상대는 아닌가 봐요.”

“다른 투자자와는 성향 자체가 다릅니다. 아무래도 KM 그룹 측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정보를 얻은 것 같은데…….”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정보를 흘렸을 겁니다.”

“네? 정말입니까?”

“우리 최문경 부회장님이 이런 수법을 좋아해요. 특히 자기 손가락 까닥하지 않고, 다른 세력을 통해서 이간질하는 거죠.”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최문경 부회장 모습을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 그도 자신을 향해서 달려들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런 계획을 꾸몄다는 것을 선뜻 인정하지 못했다.

“하면 SB 쪽과는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최민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제이미 이사님도 SB가 성가셔서 협상을 거절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차라리 계속 채널을 열어서 이야기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다른 투자자를 이용해서 SB를 압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것도 썩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런 일을 그들이 그냥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SB 쪽이 생각보다는 집요하게 나왔다. 그들은 콜린스보다는 MP3 관련 기술을 더 높이 본다고 봐야 했다.

최민혁은 오히려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콜린스 매각설 때문에 아마 더 몸이 달았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지분 인수 할 마지막 기회이니까요. 그러니 굳이 SB에 끌려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