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62화 (262/1,021)

#262.

그는 누구보다 최용욱 회장이 TV 사업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대단한 지 잘 안다.

최용욱 회장은 국내 최초로 반도체와 컬러 TV를 생산했다.

한국 반도체의 선구자란 명예는 최용욱 회장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콜린스는 KM 전자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셈이다.

최용욱 회장이 굳이 최민혁을 그룹 정식 후계로 올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지금도 최용욱 회장이 늘 최민혁을 말할 때면 TV 사업부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던 것이다.

최용욱 회장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넘쳤다.

“그래, 우리 장 실장이 뭔가 이리 급해서 날 찾아왔을까.”

“그게 말입니다.”

장승일 실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최용욱 회장 눈치를 봤다. 막상 입을 열려니,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품에 이미 준비한 청심환을 다시 확인했다.

‘제길 이걸 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결국 순서대로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이 보고서를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까?”

최용욱 회장은 장승일 실장이 내놓은 ‘KM 전자 보고서’를 읽었다. 그는 돋보기안경을 꺼내서 다시 확인하면서 의아한 눈으로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이건 이미 다 보고를 한 거잖아. 장 실장, 이 친구야, 나도 알아. 그래서 계열사 구조조정을 허락한 것이기도 하고. 굳이 다시 이 이야기를 왜 하려고 하는 건가?”

“압니다. 그런데 그 보고서에 보면 KM 전자 TV 사업부 미래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보고서를 다시 넘기면서 TV 사업부와 관련된 항목을 찾았다. 이 부분은 너무 황당해서 참고만 했다.

실상 최민혁 보고서 전체를 다 참고할 수는 없어서 필요한 것만 살폈다.

“당연히 알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보고서에 불과해. 더욱이 지금 KM 전자의 콜린스는 이것과는 이야기가 달라.”

안다.

장승일 실장도 최민혁의 폭탄선언을 듣기 전까지 똑같이 생각했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기분 좋은 얼굴을 한 최용욱 회장의 표정이 곧 바뀌었다.

“장 실장,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모든 일은 다 하기 나름이야. 필요한 것을 참고하는 것은 맞지만 단순히 그런 보고서만으로 사업을 판단할 수는 없어.”

“물론입니다. 저도 회장님 의견에 찬성합니다. 하지만 TV 사업 트렌드가 바뀐 것은 또한 사실입니다. 제 말은 TV 사업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날로그 TV가 결국 디지털 TV에 밀린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건 다들 하는 이야기지. 그런데 우리 기업인은 당장 현실에 가능한 것을 간과할 수는 없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제 말은 오성 전자가 디지털 TV 공략에 더 집중했습니다. 새로운 차세대 디지털 TV를 위한 늘린 투자액만 해도 5,000억이 넘습니다.”

오성 전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LC 전자, 대운 전자, HY 전자 역시 투자액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대폭 투자를 늘렸다.

그들 모두 콜린스 타도 전선에 합류한 것이다.

최용욱 회장도 그런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아무리 오성이라고 해도 PDP TV나 LCD TV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워.”

장승일 실장이 바로 반박했다.

“만약 오성 전자가 그 문제점을 뛰어넘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오성 전자가 콜린스 대응 모델에 집중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거야 콜린스의 기술적인 제약을 넘기 어려우니, 그렇겠지. 나도 분해된 내부를 봤는데, 아주 장난이 아니었어. 부품 하나하나 공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그건 도저히 베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안건민 회장 스스로 인정한 것이니까. 그건 민혁이 그놈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뜻해.”

“그 최민혁 실장님이 3~4년 안에는 오성 전자는 결국 디지털 TV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 했습니다.”

“민혁이가 그런 소리를 했어?”

최용욱 회장도 손자 최민혁 이름이 나오자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미 최민혁의 꼼수를 지켜봤기에 더 심각했다.

“최 실장님 말로는 오성 전자가 콜린스 대응 모델에 소극적이라고 했습니다. 오성 전자는 겉으로는 콜린스에 당할 수 없다고 말을 하지만 뒤로는 이미 디지털 TV에 결사 항전의 자세로 덤벼드는 중입니다.”

“…진담인가?”

“네.”

“…….”

최용욱 회장은 먹던 술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놓은 채 의아한 눈으로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장승일 실장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구조조정 문제 때문에 그래?”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장승일 실장은 힐끗 최용욱 회장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놔서 최용욱 회장이 충격을 크게 받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고민했다.

“장 실장!”

“…그게 최민혁 실장님이… TV 사업부 매각을 준비 중인 것 같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서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응, 오큘러스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리야? 그거야 이동호 교수나 송한성 교수에게 투자해서 얻은 지분인가 본데, 대충 예상한 그림이잖아.”

“아, 그게 아닙니다. TV 사업부 매각을 검토한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바로 발끈했다.

“이봐, 장 실장, 황당한 소리는 그만해! KM 전자에 TV 사업부를 빼면 뭐가 있다고 매각을 하니 마니 하는 거야. 그건 속된 말로 회사를 정리하겠다는 소리와 같잖아. 아니,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세상 사람이 다 미쳤다고 할 거야!”

분노한 최용욱 회장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장승일 실장에게 삿대질했다.

“내가 부회장 말을 그냥 흘러들었지만 이번에야 알겠어. 장 실장 자네도 정신 좀 차려. 말도 안 되는 소리 따위는 하지도 마!”

“회, 회장님, 자, 잠깐만…….”

장승일 실장이 다급하게 일어나서 최용욱 회장 뒤를 따라지만 수행원이 막았다. 그는 안절부절못한 채 결국 자리에 풀썩 앉고 말았다.

‘젠장 역시 이럴 줄 알았어.’

* * *

최용욱 회장도 한때는 이런저런 많은 어려움을 경험한 기업가다. 고객 신뢰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KM 산업이 성장한 것도 이런저런 많은 애환이 있었다.

반도체 사업만 해도 초창기에는 수주되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다.

불과 2년 만에 종업원 1,000명을 거느린 기업으로 키웠다.

그런 그도 세계 시장을 선도할 TV 사업부를 매각하겠다는 황당한 이야기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장승일 실장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 달려오라고 전화기를 고래고래 외쳤다.

[민혁, 이 녀석아, 당장 본가로 와!]

하지만 최민혁은 이미 장승일 실장을 보낸 후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고려했다. 지금은 자신이 설득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겠지.’

[장 실장님에게 이야기를 다 들으셨습니까?]

[다 듣고 말고가 아냐. 말도 안 되는 개소리는 집어치워!]

[그러면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너, 이 녀석이 지금 그게 할아비에게 할 말이냐?]

[할아버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장 실장 이야기를 다 들어보세요. 그다음에 제가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해드릴 테니까.]

[민혁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내가 콜린스 이전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다.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잖아!]

최민혁은 장승일 실장 이야기만 하고,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보고 당장 와서 이야기하라고만 주장했다.

통화는 계속 길어졌다.

휴대전화기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최민혁은 격한 반응의 최용욱 회장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렸다.

시간이 지나자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이성을 차린 것 같았다.

[회장님, 콜린스를 고안한 것도 제가 했습니다.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관여한 것도 제가 손을 썼습니다. 그리고 신사업에 대한 것도 다 제가 기획한 겁니다. 크게 보면 다 목적이 있어서 한 것입니다. 콜린스는 실상 신사업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불과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최용욱 회장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최민혁 이야기는 그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단호하게 일축했다.

[장 실장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도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때는 마음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이놈의 자식이!]

최용욱 회장도 황당한 최민혁의 반응에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저택에 돌아온 후에도 최민혁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했다. 너무 흥분해서 미처 간과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일은 손자 최민혁이 한 것이었다.

최민혁이 자신이 한 사업 가치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최용욱 회장은 한동안 이성을 차리지 못했다.

다행히 채윤집 집사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도련님이 뭔가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 실장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결론을 내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채 집사, 자네도 이 황당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건가?!”

“아닙니다. 그래도 도련님이 최근에 와서 회장님을 실망하게 한 적은 없습니다.”

채윤집 집사는 자신의 설득이 먹힌다고 판단하자 곧바로 장승일 실장을 호출했다.

다시 나타난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에게 받은 MP3를 번개처럼 먼저 내놓았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이 MP3를 사용하면 느낀 소감과 이 제품의 가능성을 말해주었다.

“이 MP3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아이템입니다. 카세트 플레이어에 대응하는…….”

최민혁이 한 이야기 그대로 말이다.

“이게 뭔…….”

처음에는 놀란 최용욱 회장.

실시간으로 거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최용욱 회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장승일 실장 이야기에 집중했다.

특히 내부 구조도에 들어가 있는 칩과 특허 관련된 부분을 보면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나이가 있다고 해도 이 MP3 특허 가치를 모를 수가 없었다.

카세트 플레이어와 비교하면 MP3가 가지는 강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식은땀을 닦은 장승일 실장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특히 냅스트로 인해서 새로 생긴 트렌드 흐름을 직접 설명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MP3가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PC 프로그램으로 즐기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기기가 출시된다면 모바일 기기로 MP3 음원을 플레이할 수 있는 기기는 이게 세계 최초입니다.”

MP3 산업의 시작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

보통 사람과는 달리 수십 년간 KM 그룹을 이끌어온 최용욱 회장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묵묵히 경청했다.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마치 지난 삶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최용욱 회장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물 석 잔을 연거푸 마신 후에 혀를 차고 말았다.

“…미, 믿을 수가 없구나.”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의 안배에 놀랐다. 아니 그는 MP3 관련 특허를 보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MP3 핵심 특허는 물론이고, 최근에 나온 모든 특허를 KM 전자가 다 보유하고 있었다.

그도 MP3 산업 시장 범위를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냅스트를 통해서 급격히 늘어나는 MP3 시장을 전혀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을 타켓으로 해서 유럽 시장만 공략해도 그 수요는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했다.

특히 수익성만 놓고 본다면 콜린스와 비교해도 한 수 위였다.

콜린스가 비록 고가 제품이기는 하지만 한 대 팔아서 남는 것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아니, 다른 제품에 비해서 그나마 콜린스가 양호하지만, MP3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허, 이건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어. 민혁이 그놈은 도대체 언제 이런 계획을, 아, 이거야 원,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지?”

횡설수설하는 최용욱 회장은 쉽게 이성을 차리지 못했다.

평소에는 감정 변화를 잘 보이지 않던 채윤집 집사도 옆에서 최용욱 회장이 건낸 자료를 묵묵히 읽으면서 침묵했다.

그 역시 상상을 벗어난 최민혁 실장의 새로운 사업 플랜에 경악했던 것이다.

“…….”

장승일 실장은 최용욱 회장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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