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44화 (244/1,021)

#244.

최용욱 회장도 최민혁의 보고서를 마냥 믿지는 않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운 손자 최민혁의 능력 때문이다.

최민혁이 바라보는 미래의 사업 전망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이전처럼 손자라고 해서 가볍게 보고 말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은 고민을 거듭할수록 쉽게 결론 내리지 못했다.

“…설마 민혁이, 이 녀석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번민하던 최용욱 회장은 문득 최민혁의 반응이 궁금했다.

“가만 민혁이, 그놈은 지금 뭘 하고 있어?”

“그게…….”

장승일 실장은 머뭇거렸다. 그가 가서 본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정말 생뚱맞았기 때문이다.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 망설였다.

당연히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의 행동이 궁금했다.

“장 실장!”

“으음, 사실 음악 연습실을 만들어서 노래 연습하는 것 같았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황당한 최민혁의 행보에 어이가 없었지만 비웃지는 않았다. 다만 크게 놀라서 소리쳤다가 쓰게 웃고 말았다.

“뭐? 음악 연습실?! 하긴, 그 녀석이 돈을 많이 벌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 가만 설마 기획사를 만들어 연예계에 손을 쓸 생각인가? 여자 만나려고 그러나?”

최용욱 회장의 말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톤이다. 그는 재벌 3세가 여러 여자를 거느린다고 해서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외부에 문제가 없다면 말이다.

장승일 실장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오해가 없도록 입을 열었다.

“그건 최 실장님 스스로 아니라고 했지만, 규모가 만만치 않습니다. 6층 빌딩을 차명으로 사들여서 어지간한 기획사보다 규모가 컸습니다.”

최용욱 회장도 어지간한 재벌 3세가 그랬다면 비웃겠지만, 손자 최민혁이 시작한다니 그럴 수가 없었다. 본인이 번 돈으로 뭔가 한다고 하는데, 질책하기 어려웠다.

다만 지금 KM 전자가 얼마나 바쁜지 뻔히 아는데, 뜬금없는 음악 연습실이란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나 이거야 원.”

최용욱 회장도 기가 찼지만 그렇다고 과거처럼 최민혁의 생활에 간섭할 수도 없었다.

이미 최민혁이 1조가 넘는 주식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차명으로 관리하는 재산은 또 얼마가 되는지 지금에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자기 앞에 닥친 문제에 대해 더 고민을 거듭했다.

바로 오큘러스 프로젝트다. 뻔히 손자 최민혁이 손을 떼라는 자세를 취했다. 거기에 밤마다 자신을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장남 최문경 부회장도 문제다. 아무리 자신이 회장이라도 이번 일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딱 지금 정도가 좋아. 문경이 그 녀석도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까.’

최문경 부회장 딴에 자기 측근을 모아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사업은 스스로 정리했다.

최용욱 회장이 특히 쉽게 결정을 내린 근거로는 손자 최민혁의 행보다. 만약 최민혁의 보고서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면 차라리 오성 전자보다는 DL 그룹에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넘기는 것이 나았다.

‘투자도 받고, 매각 대금으로 이익도 보잖아. 아무리 DL 그룹이라도 단기에 수천억이 빠져나가면 부담이 될 거야. 그게 차라리 한 방 먹일 방법이니까…….’

“오큘러스 법인 설립 현황 가져오고 김상구 회장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그것부터 확인해 봐.”

장승일 실장도 딱히 최용욱 회장 의견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 말씀은 DL 그룹에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넘기겠다는 말씀입니까?”

“대신 얻은 것을 다 얻어. 투자금이든, 매각 대금이든 말이야. 문제가 되는 TRS 인원은 KM 계열사 쪽으로 돌리고, 필요하다면 KM 전자 쪽으로 배당하는 것을 고민해 봐. 민혁이 그 녀석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큰 녀석은 지금도 TRS 매각 때문에 지오텍과 협상 중이지?”

“네.”

“그러면 오큘러스 관련된 사안은 부회장에게는 아직 알리지 마.”

“…네.”

장승일 실장은 왠지 최용욱 회장이 최문경 부회장에게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최 실장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것일지 모르겠어.’

* * *

최민혁은 장승일 실장과의 전화로 최용욱 회장의 의사를 들었다.

본인도 이미 충분히 사업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고 판단하자 최용욱 회장을 더 압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한 가지가 생겨났다.

최문경 부회장이 갑자기 TRS 사업 매각의 난관 때문에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당분간 홀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당면한 TRS 사업 매각부터 먼저 끝내고 난 후에 오큘러스 사업의 인수는 신중하게 결정하는 의도였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의 이런 행동은 최민혁을 엿 먹이자는 뜻도 있었다.

가능한 한 빨리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려고 한 최민혁으로서는 그 결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민혁은 결국 정성근 대리를 통해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계속 압박했다.

최민혁의 행동에 어이가 없던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나름 KM 그룹을 상대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움직였다. 그가 내세운 수단 중의 하나는 미국 연방 법원에 제소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는 지인 통해서 이미 사전 정지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최민혁 실장의 모기업인 KM 그룹을 상대로 나름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막 이탈리아에서 도착한 소송 전문가 10명을 데리고 KM 그룹 본사를 다시 찾아갔다.

양복 군단의 습격에 KM 그룹 반응도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이 가득했다.

KM 그룹의 임직원들은 떼로 몰려온 수트 군단이 익숙하지 않았다.

상대는 미국 소송을 위한 사전 준비 서류를 꺼내놓았다.

소송 전에 요식적인 협상 테이블이란 점을 분명히 해둔 것이다.

소송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진행된다는 것도 문제였다.

미국 연방 법원을 상대로 한 소송에는 경험이 없는 KM 그룹은 난리가 났다.

안 그래도 최용욱 회장 때문에 분노한 최문경 부회장이 결국 나섰다.

최문경 부회장은 협상단 바로 코앞에서 삿대질했다.

“야, 이 개새끼야, 알아보니, 너희는 지오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런데 왜 우리 일에 나서서 사사건건 방해야?!”

충혈된 최문경 부회장 모습은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나 다른 바가 없었다.

오히려 KM 그룹 비서실이 당황해서 최문경 부회장을 말렸다.

“…….”

하지만 신선한 문화 충격을 경험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오히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한 것보다 더 재미있게 돌아가는 상황이 즐거웠다.

‘최 실장과 갈등하는 이가 최문경 부회장이라고 했었던가?’

그도 뒤늦게야 최민혁 실장이 뭘 원하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갖춘 능력이 보다 중요했다. 이번 일을 잘만 해결하면 최민혁 실장과 앞으로 든든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진정으로 원하는 거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중회의실 의자에 홀로 앉은 채 담배까지 베어 물었다. 딱 술 한 잔이 생각났다.

“여긴 술 없습니까?”

단란 주점에서 와서 술과 여자를 요구하는 딱 그 모양새였다.

노골적인 무시에 KM 그룹 비서실 직원조차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막장극을 벌인 것만은 아니다.

“자, 합작 법인 투자 파기에 따른 실패 보험부터 봅시다. 합작이 깨지면 현지 파트너가 상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통과, 기술 영업권 보호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계약 종료에 따른 위약금이 있군요.”

합작 법인 파기에 따른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항목이 계약서에 나와 있었다.

회계의 투명성도 한 문제였다.

파트너 사이에서 관계 변화에 따른 구체적인 보상 내역도 있었다.

합작 법인 계약서상에는 사업 구조에 따른 다양한 다툼의 소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강행 규정이 엄격해서 제약이 너무 많았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이런 법 항목 하나하나를 찍어가면서 KM 그룹 법무 팀을 상대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이렇게 계약 규정을 강제하면, 위약금 보상도 더 엄격해집니다. 심지어 합작 법인 파기에 따른 기회 손실 비용이 이 항목 때문에 다 정해집니다. 보통 합작 법인은 원활한 사업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하지 않는데,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돈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합작 법인 파기할 생각이 없는 건지 말입니다.”

“…….”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담당한 법무 팀은 다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소심한 법무 팀 모습에 재미를 느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이를 갈고 있는 부회장을 넌지시 보면서 히죽 웃었다.

“거기 부회장이란 양반은 계약서를 제대로 보기는 한 겁니까. 최고 경영자란 양반이 술집에 가서 계집질만 한 겁니까? 아니면 첩을 상대로 재미나 본 겁니까?!”

“……!!!”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본 최문경 부회장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말리는 비서실 직원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멱살을 잡은 채 팔을 뒤로 제쳤다. 제대로 안면에 한 방을 먹이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워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권재홍 비서실장이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부회장님, 폭력은 절대로 안 됩니다. 멈추세요!”

다행히 최문경 부회장 주먹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안면과 딱 한 치 앞에서 멈추었다.

최문경 부회장 역시 가슴이 철렁했다. 여기서 주먹을 휘둘렀다가는 진짜 경찰에 잡혀갈 수도 있다. 아마 뉴스에도 그런 상황이 나온다면 완전히 조롱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히죽 웃으면서 최문경 부회장 팔을 치웠다. 그는 넥타이부터 가볍게 옷맵시를 정리했다.

뒤에서 나서는 이들을 슬쩍 괜찮다고 뒤로 물린 후에 얼굴을 다시 최문경 부회장에게 내밀었다.

“자, 때려보세요.”

“…….”

최문경 부회장은 권재홍 비서실장이 잡아끄는 손에 결국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차가운 눈을 번뜩이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태도에 질린 것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흘러가는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아주 재미있습니다. 설마 협상장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분이 다 있다니. 제가 유럽에서 수십 년간 활동하면서 이런 경험은 또 처음입니다. 하하하.”

낄낄거리면서 조롱하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행동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이를 악문 채 최문경 부회장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을 대신해서 나섰다.

“이곳은 협상 자리입니다. 그런 식으로 무례하게 나오면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러면 우리 한번 미국 법정에서 정식으로 싸워봅시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그제야 상황을 깨닫자 이를 악물었다.

“…정말 협상할 생각은 있는 겁니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왜 이 자리에 왔겠습니까? 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어차피 소송할 때 거치게 되니까. 미국 법정에서 말입니다.”

권재홍 비서실장 안색은 좋지가 않았다.

오히려 낄낄 웃으면서 떠나는 제이미 니콜라스의 이사 태도가 더 무서웠다.

소송에 지고, 이기고가 문제가 아니다. 말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 문제다. 시간이 갈수록 최문경 부회장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쉽게 정리될 것으로 생각한 지오텍 합작 법인 정리는 간단하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큰일이다. 이렇게 질질 소송이 끌려가면, 부회장님에게 정말 안 좋아.’

* * *

KM 그룹 내에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활극 소식은 들은 최민혁 역시 한동안 낄낄 웃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주먹을 휘두른 것은 너무 나간 행동이었다.

“우리 큰아버지가 제대로 털렸어요.”

“…….”

조성돈 팀장은 딱히 최민혁 말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최민혁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KM 그룹 본사가 웃음거리가 된 것이 썩 좋아하지 않았다.

최민혁도 보수적인 조성돈 팀장의 행동에 혀를 차면서도 질책하지 않았다. 이런 조성돈 팀장 모습이 있기에 믿고 맡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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