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43화 (243/1,021)

#243.

MP3를 임팩트 주기 위해서 미래 히트곡 중의 하나를 가져왔다.

‘내가 적당히 유명한 곡을 가져와서 편집하거나 작사한 것으로 처리하면 되니까. 지수 만나서 선물로 들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가수가 문제인데, 이건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이 노래 원주인인 이를 잠깐 떠올렸지만, 상황이 쉽게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MP3에 음원을 넣어서 판매하는 것 자체가 모험적인 시도였기 때문이다.

‘대박은 확실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나 외에는 없으니까. 굳이 내가 아쉬운 소리 해서까지 가수를 영입할 이유는 없어. 차라리 무명 가수라도 내 지시에 따르는 사람이 좋아.’

스승이자, 한 때는 연인이었던 이지수도 아마 이 노래를 보면 정말 좋아할 것이다. 실상 그녀와 만날 시기는 아직 멀었지만 가볍게 인사를 하는 인연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만들 수도 있었다.

‘겸사겸사 도움도 좀 받고.’

“…정말 훌륭한 노래입니다.”

내막을 잘 모르는 장승일 실장이나 구길모 차장은 아직도 최민혁의 노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특히 랩을 제법 아는 구길모 차장은 심상치 않은 눈으로 최민혁을 봤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뭐 그렇게 대단한 실력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장승일 실장은 힐끗 100평이 넘는 노래 연습장을 쳐다보았다. 전문 기획사도 쉽게 볼 수 없을 수준의 연습장이다.

방음 설비는 기본으로 피아노를 비롯한 어지간한 악기는 다 있었다.

심지어 이 음악 연습실이 있는 6층 빌딩은 지난주에 벨린 투자에서 매입했다.

이런 설비를 그냥 단순히 취미 삼아서 매입했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큰 노래 연습장을 만든 이유라도 있습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한 채 아르바이트 연주자와 잠깐 인사만 나눈 채 툴툴거렸다.

“제 사생활이 많이 궁금한 가 봅니다. 아니, 노래하는 것까지 시비를 겁니까?”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에요. 그냥 해본 말입니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저도 고상한 취미를 한번 가지고 싶어서요. 나쁘지 않죠?”

“…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음악 연습실 규모는 어지간한 중대형 기획사보다는 규모가 컸다.

장승일 실장도 본래 목적이 있었지만, 최민혁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라도 넌지시 질문했다.

“…죄송한 질문입니다. 혹시 음악 기획사까지 하실 생각입니까?”

“비슷한데, 조금은 달라요. 다시 말하지만 제 개인 취미 생활이라고 해두죠. 사내 직원도 이곳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둘 생각이고요. 그나저나 요즘 이리저리 절 귀찮게 하는 사람이 많아서 저도 피곤해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도 그렇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 괜찮습니다. 뭐한 가족끼리 그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니죠.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또 이렇게 절 찾아온 겁니까?”

“이걸 한번 봐주십시오.”

최민혁은 장승일 실장이 내놓은 최민혁 보고서 분석 앞부분을 보다가 흠칫했다. 자신과 조성돈 팀장이 합작한 보고서가 토대가 된 것을 바로 알아봤다.

다행히 내용 자체는 그의 예상과는 좀 달랐다.

지오텍 매각과 관련된 검토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지오텍 매각을 계속 검토하면서 기존 보고서와 일치하는 점을 찾았구나.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야. 원래 보고서를 더 보완하고, 추가했어.’

그다음은 쉬웠다.

현재 외화보유액의 변화가 그것이다.

특히 차입금 규모가 대폭 늘어나면서 외화보유액이 요동을 쳤다.

엔고에 따른 정부 대응책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세계 경제가 별문제가 없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가 있다.

아니면 한국 정부가 잘 처신하면 문제는 없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불행히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그렇지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밟아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 하나하나를 따로 놓고 보면 특이점을 찾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걸 다 합쳐서 하나로 만들면 이야기가 다르다.

마치 빠진 퍼즐을 메꾸는 것처럼 현재 경제의 흐름이 최민혁 보고서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부족한 퍼즐도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당연히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내 금융시장의 경색이다.

장승일 실장이 기겁한 이유다.

최민혁 역시 보고서에 빼놓은 부분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혀를 찼다.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섰다가는 비난을 받을 수 있으니, 바로 월가의 사냥개를 동원하겠지. 그렇지. 이제는 좀 눈에 들어오네.’

최민혁은 한국의 IMF 상황이 참 재수가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일본에서 난 초대형 화재가 결국 한국으로 번져갔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정부 행동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초대형 화재에 대한 초동 대처 이전에 근본적으로 화재에 대한 준비 자체가 없었다. 아니, 기름통을 옆에 쌓아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투자는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 것이 좋다.

“오큘러스 프로젝트 투자 때문입니까?”

“네. 이 보고서만 봐도 최 실장님이 얼마나 한국 경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아, 물론 실장님이 이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좌우지간 만약 이 보고서대로라면 앞으로 우리 KM 그룹도 적절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지오텍 매각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오큘러스 법인 인수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장승일 실장은 당연히 최민혁이 문제없다는 식으로 변명할 것으로 생각해서 한 말이다.

그런데 최민혁 이야기는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네?”

깜짝 놀란 장승일 실장도 크게 당황했다. 최민혁이 설마 저렇게 솔직하게 말을 할지는 몰랐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저도 오큘러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지는 몰랐습니다. 우린 위성 사업부를 매각하면 간단하니까요. 그리고 관심이 있는 곳도 있고요.”

“설마 그 대상이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은 아닐 테고, 설마 DL 정보통신의 김현탁 본부장입니까?”

“아마 그쪽은 위성 사업부에 눈독을 들일 겁니다. 돈이 안 되지만 인수하고 나면, 우리 사업부 지분을 이용해서 끼어들 여지가 있으니까요.”

거기에 오큘러스 지분까지 얻는다면 위성 수신기 공급도 덩달아 할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어지간한 중견 기업 계열사 수준은 된다.

더욱이 정부 지분이 있다는 측면에서 공기업이나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꿀 빠는 사업이다.

아직 부실한 DL 정보통신 입장에서는 괜찮은 사업안이었다.

장승일 실장도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몰라서 머리를 굴렸다. 그는 도대체 최민혁이 뭘 하려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말씀은…….”

“제가 예언가도 아니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오큘러스 프로젝트가 더 빨리 자리를 잡는다면 투자금은 금방 회수가 가능해요. 하지만 그 반대 경우라면 또 문제가 되겠죠. 이 보고서처럼…….”

“…후유, 그러면 우리 KM 그룹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민혁은 김명준 과장이 내민 양복 상의를 입으면서 툴툴거렸다.

“그건 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 실장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비즈니스에는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설마 제가 상까지 차리고, 음식을 입에 떠먹여 줘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렇게 조언해 주는 것도 전 최선을 다한 겁니다. 판단은 KM 그룹이 하는 겁니다. 위성 사업을 잘 받아서 할아버지가 경영 잘하면 대박인 거고, 만약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쪽박이죠. 제가 그런 점까지 신경 써줘야 합니까?”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묻고 싶은 것은 산더미 같았지만, 더 질문하지 않았다. 최민혁이 얼마나 주고받는 것이 철저한 지는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오성 전자나 DL 정보통신에 위성 사업부를 매각할 생각이었구나. 오큘러스 프로젝트 때문에 인수 자체를 반대하지 않겠지. 아니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인수할 수밖에 없어. 오큘러스 법인 지분을 내세운다면 그 제안을 거절하기는 어려울 거고.’

다만 KM 그룹 제안에 굳이 최민혁이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은 이쪽에 매각하나, 저쪽에 매각하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지. 우리 KM 그룹 매각을 명분으로 KM 산업 지분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거면 최문경 부회장에게 큰 타격을 줄 수도 있어.’

아이러니한 사실은 최민혁이 먼저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은 점이다. 장승일 실장이 먼저 나섰으니까.

그리고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나저러나 위성 사업부 매각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네. 이일태 이사는 결국 퇴출당할 수밖에 없고, 가만, 이거 설마 이일태 이사 때문일까?’

뒤늦게야 이일태 이사 정리를 위해서 이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한 것이 아닌가 깨달은 장승일 실장은 멍하니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심각한 번민에 빠진 장승일 실장의 모습을 보자 김명준 과장이 옆에서 툴툴거렸다.

“너무 냉정한 것 아닙니까? 그래도 회사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한 분인데?”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경영 컨설팅 비용은 따로 받겠습니다.”

“흠.”

김명준 과장은 매몰찬 최민혁의 말에 결국 그냥 웃고 말았다. 그가 나서면서 장승일 실장 입장만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승일 실장은 원망 섞인 시선으로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괜히 끼어들었네.’

* * *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듣고 나서는 최용욱 회장을 다시 찾아갔다.

최용욱 회장도 장승일 실장의 보고를 듣고 나서는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장승일 실장은 추론이라고 말하지만 최용욱 회장 또한 이일태 이사가 이 일의 원인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당시만 해도 지분 증여 문제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낸 것 때문에 최민혁이 발끈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보복을 한 셈이다.

‘허허.’

한동안 어이가 없어서 최용욱 회장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최민혁이 왜 일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그 원인을 들여다보니 간단한 일이다.

신출귀몰한 기괴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래서 이일태 이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오큘러스 프로젝트 이전이라면 KM 전자의 위성 사업부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많이 쳐줘도 10~20억 안팎입니다. 주로 연구 용역이 많이 들어갔는데, 몇 번 엎어지면서 다 날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기존에 투자한 것이 있어서 지분 일부는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오큘러스 프로젝트 투자 지분에 따라서 금액이 다를 겁니다. 경영권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적어도 200~300억 정도에,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큘러스 법인 지분을 이용하면 꾸준한 위성 수신기 공급이 가능하다. 그 공급량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최대 10만 대 이상 물량 공급도 가능했다.

“50억 매출인가, 생각보다는 작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으로의 수출도 가능합니다. 심지어 오큘러스 프로젝트 수준이 이미 미국 위성 방송 시스템보다 더 발전된다는 소리가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아무도 모릅니다.”

“위성 시스템까지 서비스한다면 수익은 더 커지겠군.”

“네.”

“거기에 이일태 이사 정리는 덤이고. 아니, 자기 손에 피 하나 묻히지 않고 정리할 수가 있겠어.”

“…….”

장승일 실장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파악한 바로는 이미 위성 사업부 구조조정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아직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는 스무 명이 있지만, 그들은 희생양일 뿐이다.

설사 다른 회사가 그들을 인수한다고 해도 몇몇 핵심 인재를 제외하고는 남겨둘 리가 없었다. 최민혁은 위성 사업부의 뼈와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은 셈이다.

‘진짜 무섭구나.’

“…장 실장 생각은 어때? 우리가 이런 내막을 다 알면서 위성 사업부를 인수해야 할까?”

“사실 최 실장님은 저희가 손을 떼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그걸 내색할 수가 없으니, 사실을 말한 것 같습니다.”

“하면 오성 전자나 DL 정보통신에 매각할 계획이란 말인가?”

“네. 그것도 비싼 가격에 말입니다.”

“아니 왜 일을 그렇게…….”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최민혁 보고서를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자신은 그래도 최민혁 덕분에 어느 정도 내실을 다시 다졌지만 다른 기업은 좀 다르다.

DL 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현금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부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방만하게 벌여놓은 다른 사업이 문제가 된다.

‘만약 보고서대로 된다면 철강이나 중공업 쪽은 타격이 크겠지. 그러면 DL 그룹도 휘청할 수가 있어. 설마 정말 그렇게까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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