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06화 (206/1,021)

#206.

문형섭 부사장 역시 앞으로 MP3가 얼마나 팔릴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카세트 플레이어 시장을 다 장악해 버리면……. 그 수량이 얼마나 될지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회장님에게도 당당히 나설 생각입니다.”

“혹시 내가 도와줄 일은 없나?”

“회장님에게 괜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중간에서 교통정리만 해주십시오.”

“…알겠네. 이일태 이사는……. 아니네. 오늘 이사회는 여기까지만 하세.”

최민혁은 큰 충격을 받은 원종상 전무를 힐끗 살펴보았다. 사실 이제는 MP3 관련된 정보가 외부에 새어 나가도 상관은 없다.

‘이번 일 통해서 원종상 전무는 한번 지켜보면 알겠지. 이일태 이사처럼 무능한 것도 아니고, 김현우 상무처럼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은 아니니까.’

* * *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레이크우드 골프장은 세계 최고 디자이너 로 꼽히는 데이비드 데일이 직접 설계했다.

이 골프장에서 미국 메이저 대회도 가끔 열릴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36홀 전체적으로 산길, 숲길, 물길이 잘 구분되어 있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자연경관이다.

최용욱 회장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스윙에 한창 집중했다.

동행한 골프 코치가 자세를 몇 번이나 지적해 주었다.

“회장님, 다시 말하지만, 힘을 너무 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허리 회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스윙에 힘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만 집중해도 몸에 무리는 가지 않습니다.”

“최 프로,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그게 잘 안 되네.”

최용욱 회장은 갑자기 연락하고 찾아온 오영근 사장을 보자 골프채를 옆에 동행한 장승일 실장에게 넘겼다.

골프 코치도 눈치껏 뒤로 물러났다.

최용욱 회장은 시원한 물을 꿀꺽 마신 후에 힐끗 오영근 사장을 쳐다보았다.

어제 술김에 내심을 털어놓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영근 사장이 벌써 자신을 찾아온 것이 신기했다.

오영근 사장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고민했던 것을 털어놓았다.

“어제 이사회를 통해서 확실히 느낀 것이지만 KM 전자의 가치를 키운 것은 최민혁 실장입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회장님의 지분 증여가 딱히 지나친 것은 아닙니다.”

“……?”

최용욱 회장은 예상도 못 한 오영근 사장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창립 멤버라고 해도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장승일 실장은 잔뜩 긴장한 채 오영근 사장의 입에 집중했다. 그는 괜히 최용욱 회장을 자극할 말이 나오면 중간에 차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영근 사장은 이미 단단히 작정하고 왔다.

“물론 지분 가치가 너무 커서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압니다만…….”

“허허, 오 사장, 자네도 이번 일이 꽤 신경 쓰이나 봐. 이렇게 급하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봐서는. 그런데 내가 그렇게 좀스러운 사람은 아니네. 6%, 아니 10% 지분 정도였다면 나도 말을 하지 않아. 그런데 내가 증여한 지분은 모두 40%가 좀 안 되네. 물론 민혁이 실적 때문에 회사 가치가 큰 것은 알아. 지금 KM 전자의 모양새는 벤처에 투자했더니 대박이 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통상적으로 보면 벤처에 투자한다고 해서 지분을 다 넘기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대박 나면 투자자 역시 이득을 보니까.

최용욱 회장도 그런 기분에서 본다면 지분의 일부를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지분을 몽땅 최민혁에게 다 넘긴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최 실장은 처음엔 회장님 지분을 사들이려 한 것으로 압니다. 지분을 넘긴 것은 회장님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렇기는 하네만…….”

최용욱 회장도 지금 생각해 보니, 민혁이 그 녀석이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기가 지분을 몽땅 다 넘긴 것은 실수였다.

‘신중했어야 했어.’

과거에는 전혀 보인 적이 없던 공격적인 오영근 사장의 반응에 뒤늦게 자책하던 최용욱 회장은 신기한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신이 아는 오영근 사장은 절대로 저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설마 자네도 민혁이 그 녀석에게 넘어갔나?”

“…그게 중요합니까?”

“당연히 중요하지. 내 말이라면 끔뻑 죽던 자네가 지금 민혁이 그놈 부하 노릇을 하고 있지 않나. 난 그게 더 신기해.”

“그건 최 실장의 능력을 어제야 비로소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KM 전자 지분의 가치는 그저 운이 좋아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최 실장이 그린 그림대로 나온 결과일 뿐입니다.”

“…….”

최용욱 회장은 자기 손자 찬양에 빠진 오영근 사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지만 오영근 사장은 최민혁 평가에서만큼은 보수적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의 업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최 실장의 능력은 제가 평가할 수준이 아닙니다. 굳이 그런 최 실장에게 굳이 나쁜 할아버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허허.”

최용욱 회장은 전혀 다른 사람 같은 오영근 사장 말에 어이가 없어서 힐끗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장승일 실장 역시 눈이 동그랗게 변한 채 멍하니 오영근 사장을 쳐다보았다. 그가 아는 오영근 사장은 절대로 저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MP3를 보고 난 후에 다시 그 가치를 밤을 꼬박 새워서 고민한 오영근 사장은 이전처럼 나갈 수가 없었다.

콜린스, MP3 프로젝트와 관련된 최민혁의 행보를 하나하나 돌이켜 보고서야 최민혁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한 것인지 깨달았다.

자신이 최민혁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이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맞아.’

최민혁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직 내막을 잘 모르는 최용욱 회장을 위해서다.

“전 지금까지 회장님이 최 실장과도 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뒤로 물러나서 지켜보기만 해도 됩니다. 그것만으로 회장님이 증여한 가치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흠.”

최용욱 회장은 영문을 몰라서 오영근 사장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오영근 사장의 성정을 하나씩 떠올렸다.

‘날 배신할 친구는 아냐. 그렇다면 이야기는 정말 날 걱정해서라는 말인데, 허, 민혁이 그놈의 능력이 내가 그냥 조용히 물러나 있는 것이 좋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말인가?’

기가 막혀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손자 최민혁 그놈의 능력이 뭐길래 오영근 사장이 하루 만에 저렇게 사람이 바뀌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보통 기업 총수였다면 오영근 사장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의 몇 없는 장점 중에 하나는 밑에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이다.

“…이유는 말해줄 수 없고?”

오영근 사장은 최민혁 실장의 입장도 생각해서 MP3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실 아직 오 사장도 잘 모르는 것이 많았다. 최용욱 회장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내고 싶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간단히 말할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는 단순한 말을 믿고 넘어갈 분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시간을 두고 지켜보시면 조만한 알게 될 겁니다.”

“그런가? 자네 정말 많이 변했어.”

“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회장님을 모셔왔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다 회장님을 위해서입니다.”

“그런가?”

‘또 민혁이 이 녀석에게 뭔가 있다는 이야기 같아. 그동안 무엇을 했다는 말일까?’

최용욱 회장은 오영근 사장 행동이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문득 자신이 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첫째와 둘째 며느리 말을 다시 떠올렸고, 전경련에서 김상구 회장이 했던 말을 다시 기억했다. 그들이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다. 그저 자신 역시 사람이기에 그들 말에 귀를 기울 것뿐이다.

‘하지만 문경이도 그렇고, 다른 손자 녀석을 고려하면 형평성 문제가 크지.’

오영근 사장이 그 의미를 모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민혁 실장 편을 드는 것은 형평성 문제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도대체 민혁이 그놈이 또 무슨 일을 벌이고 있기에 오영근 사장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고민은 제법 길었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 실장이나 며느리보다 오영근 사장을 더 신뢰했다.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들어야지.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민혁이 그놈이 스스로 이룩한 성과에 욕심내는 것은 못 할 짓이지. 비록 1조가 넘는 지분이라고 해도 말이네. 하지만 이일태 이사 문제만큼은 내 뜻대로 해주게. 최두진, 그 친구의 아들 김현우 상무와도 관련이 있어. 최두진, 그 친구는 지분도 헐값에 넘겼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거야.”

“그건 제가 중간에서 잘 중재하겠습니다.”

“그래.”

“회장님, 죄송합니다.”

“괜찮네. 그저 손자에게 한 방 맞았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 사실 아직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정말 당혹스럽군.”

“감사합니다.”

오영근 사장이 이야기를 마친 후 바로 자리를 떠나자 최용욱 회장은 이런저런 추측을 해봤다. 도저히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장승일 실장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장 실장이 아무래도 KM 전자를 앞으로 더 철저하게 살펴야 할 것 같아. 도대체 오 사장 저 친구가 왜 갑자기 저렇게 변했는지 정말 궁금해.”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 * *

장승일 실장도 오영근 사장의 태도에 충격을 받아서 이전과 달리 KM 전자를 더 철저하게 살폈다.

최민혁은 덕분에 장승일 실장의 행보를 금방 알아봤고, 전화를 걸어서 확인까지 해봤다.

오영근 사장의 행보를 듣고 나서는 피식 웃고 말았다.

‘설마 오 사장님이 날 위해서 저렇게 나서줄 줄은 몰랐네.’

딱히 지금은 문제가 없어 보여도 할아버지와의 틈이 벌어지면 문제의 소지가 컸다.

최민혁은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서 MP3 카드까지 보여주었다.

그런데 오영근 사장이 나서면서 다행히 할아버지를 잘 설득했다.

그는 이번 일 통해서 첫째 큰어머니와 둘째 큰어머니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좀 더 면밀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어.’

하지만 그는 이 일을 굳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지금까지는 일이 너무 쉽게 풀렸다.

‘이런 반응도 있어야지.’

최민혁은 이 일에 집중하기보다 오히려 MP3를 알게 된 임직원의 모습을 더 유심히 살폈다.

‘아직은 MP3 가치를 잘 느끼지 못할 거야. 아마 생활에서 스스로 알게 될 거고,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잘 움직일 테니까. 자신감을 가지면, 태도도 많이 달라질 거야. 그들이 균형을 잡으면, 이일태 이사 같은 소동이 일어나도 크게 흔들리지 않겠지.’

실제로 김부영 영업 팀장은 MP3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예 시중에 그런 제품 자체가 없으니, 기준을 잡을 수가 없었다.

김부영 영업 팀장은 카세트 플레이어 기준으로 해서 살펴보기에 정확히 MP3가 가지는 의미를 쉽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는 보고서를 살피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하나하나 알아갔다.

다른 영업 팀 직원들에게도 보안 문제 때문에 아직 이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 날은 집에 가자 딸아이가 어학용 카세프 플레이어를 들고 있는 것을 봤다.

이제 대학생인 딸은 그 물건을 애지중지 다루었다.

밥 먹을 때도 계속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터라 아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문득 김부영 영업 팀장은 들고 다니는 MP3를 딸에게 보여주었다.

“어? 그게 뭐예요?”

“우리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신제품.”

“저 좀 봐도 돼요?”

“어.”

김부영 영업 팀장은 딸아이 반응을 살폈다. 딸을 구박하던 아내조차 호기심을 드러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가 신기했다.

놀라운 것은 딸이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아도 바로 알아서 전원 버튼을 눌러서 자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MP3에서 가장 마음에 든 점은 바로 무게와 크기였다.

티셔츠 주머니에 들어간 MP3는 가볍게 움직여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액세서리를 이용해서 목에 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온 반응.

“대박!”

아내도 눈치를 보다가 냉큼 딸에게서 물건을 빼앗아 음악을 들었다.

그녀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김부영 영업 팀장을 쳐다보았다.

“신기하네요. 도대체 음악을 어떻게 플레이 하는 거예요?”

김부영 영업 팀장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설명을 해주었다.

아내는 쉽게 알아듣지 못했지만 딸아이는 달랐다. 그녀는 탐욕 어린 눈으로 MP3를 계속 노렸다.

“아빠, 이거 저 주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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