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92화 (192/1,021)

#192.

김현우 수석 부장 이슈는 오성 전자 내에서도 주 관심사였다. 과연 그가 언제까지 오성 전자에서 버틸 수 있을 지 다들 관심을 두고 지켜봤다.

그런데 최근 이창명 이사와 김현우 수석 부장이 화해했다는 소식이 돌았다.

오성 전자 임직원은 당연히 이 소식을 믿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하잖아.]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어서 그래. 우리 회사가 회사에 반기를 든 임직원을 그냥 둘 리가 없잖아.]

[김현우 수석 부장 집에 돈이 많다는 소리가 있어.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김현우 수석이 심지어 오성 방계 혈족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당장에 이 소식을 들은 권태성 기획실장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이창명 이사가 제정신일까?”

권모술수에 능한 임권수 부장은 힐끗 넋을 잃은 황광수 차장을 일별한 후에 입을 열었다.

“저희도 이일태 이사가 살아나기를 원하는 것처럼 이창명 이사도 비슷할 겁니다. 결국, KM 전자 내부에 손을 써야 하는데, 가장 전문가라고 할 사람이 김현우 수석 부장뿐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법정에서 그렇게 싸우던 사람들이 과연 화해할 수가 있을까?”

“회사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가 있겠습니까. 이창명 이사도 이번 김현우 수석 부장 일로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입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제야 한쪽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긴 황광수 차장을 칭찬했다.

“하긴. 그러고 보니, 황광수 차장 자네 덕분이야.”

“아, 아닙니다.”

“아니 차라리 잘 되었어. 비록 이창명 이사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이번 일을 내버려 두면 결국 우리 쪽으로 불똥이 튀어. 그것을 막은 것만으로 잘한 거야.”

김현우 수석 부장 때문에 ETRI 내부 일도 이미 오성 전자 내에 알만한 사업부는 다 아는 상황이다. 설사 문제가 생겨도 권태성 실장이 책임질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창명 이사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 못 한 책임을 다 뒤집어쓸 것이다.

그런 이창명 이사로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지금처럼 KM 전자에 대해서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자 KM 그룹을 조사한 결과에 대해서 질문했다.

“이제 한숨 좀 돌리겠어. 아, KM 그룹에 대한 내사는 어떻게 되어 가? 그렇지 그 우원 건설과의 사업 말이야.”

“우원 건설과 컨소시엄 사업을 다시 재검토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눈치가 빠르네.”

한부 그룹의 우원 건설 인수 이후에도 계속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부 그룹은 지난 91년 수선 사건으로 계기로 그룹이 해체될 위기까지 간 상황에서 최근 부활의 날갯짓을 펴고 있었다.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앞 종합 철강 단지, 수보엔지니어링 인수, 수보데이터시스템 설립, 연이은 상이 제약 인수에 이르기까지 한부 그룹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연 이어왔다.

심지어 6,000억 규모의 무연탄 화력발전소 건립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작년에 이루어진 정음 생명공학연구원 설립과 심화신용금고 인수는 그 전의 행보에 비하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우원 건설까지 인수했다.

도대체 한부 그룹의 막대한 자금줄이 어디서 나오는지 의문을 토하는 이들이 많았다.

임권수 부장은 오성 기획실에 들어온 이후에 얻은 정보를 통해서 이 내막을 파악했다.

“제가 듣기로 정치권이나 권력 실세 쪽에서 그룹을 다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물론 그것 때문에 문제가 터질 거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거야 일이 안 터지면 그렇겠지.”

“설마 문제가 될까요. 그거 푸른 집에서도 꽤 먹었다는 소리가 있던데…….”

“임 부장,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

“죄, 죄송합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임권수 부장을 더 타박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쉽네. 최용욱 회장 욕심을 봐서는 쉽게 포기할 사업이 아닌데…….”

“호찌민 고속도로 건설이 잘못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몰라. 다만 지금 한부 그룹 부채 비율 봐서는 자금 압박이 심할 거야. 은행 돈으로 돌려막기는 하는데, 한계는 있으니까. 만약 호찌민 고속도로 사업에 KM 건설이 끼어들면 자금 경직이 심해질 거야. 최훈열 전무 소송 때문에 이제야 자금 압박에서 회복한 KM 그룹에도 안 좋지.”

실상 오성 전자 기획실은 KM 건설만이 아니라 다른 KM 그룹 계열사에도 계속 작업 중이었다.

과거였다면 냉큼 받았을 달콤한 사업 제안에도 KM 그룹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철저한 검사 후에 조금이라도 수익성에 문제가 있다면 손을 떼는 형국이다.

황광수 차장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들은 바가 있었다.

“장승일 기획 조정실 실장이 중간에 다 차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지난 KM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도 이 일 때문에 소란스러웠습니다. 전부 다 장승일 실장이 나섰는데, 그 명문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KM 전자였습니다.”

“KM 전자라……. 하긴 올해 예상 매출액만 5천억이 넘는다고 했지?”

“기획실 예상으로는 최대 7천억 이상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7천억이라니.

해마다 줄어서 2천억대로 떨어진 KM 전자의 매출이 불과 반년도 채 안 되어서 7천억대로 올라서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하.”

권태성 기획실장도 혀를 차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몰랐다면 상관이 없다. 그런데 TV 사업부 인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그 일의 책임자는 자신이었다.

문제는 KM 전자가 TV 사업부를 통해서 사상 최고의 실적을 냈을 때 그 역풍이 자신에게 다 돌아온다는 점이다.

‘이제 KM 전자의 TV 사업부 인수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하나? 후유, 이건 뼈아프네. 나중에 말이 나올 것 같아.’

그는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계속 상황을 주시하게. 김현우 수석 부장도 저렇게 부활했잖아. 아직은 희망이 있어. 분명히 기회는 올 거야.”

“알겠습니다.”

두 사람 안색 역시 좋지가 않았다. 만약 권태성 기획실장이 물러나게 된다면, 두 사람 다 회사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 * *

김현우 수석 부장이 다시 부활하면서 오성 전자 내부에서는 계속 시끌시끌했다. 오성 전자 내에서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다들 김현우 수석 행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최민혁도 어렵지 않게 오성 전자로 이직했다가 다시 돌아온 최병연 팀장의 지인 통해서 김현우 수석 부장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도 자신이 만든 일이 제대로 풀렸다는 것에 기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이용해서 다시 부활한 김현우 수석 부장의 소식에 혀를 내둘렀다.

‘진짜 대단하네.’

인생 1회차에서 KM 전자를 말아먹은 최고의 공신은최훈열 전무이다. 그런 그의 최측근으로 행동 대장 역할을 한 사람이 김현우 상무였다.

김현우 상무는 자신의 인맥과 직위를 이용해서 KM 전자를 악착같이 빨아먹었고, 심지어 IMF 이후 KM 전자가 공중분해 된 후에도 자산을 헐값에 팔아치워서 재미를 봤다.

유령 회사까지 만들어서 헐값에 사들인 KM 전자 자산을 다시 중국 업체에 팔아넘긴 그의 수법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김현우 상무는 이때 번 돈으로 다시 부동산에 투자해서 최고의 인생을 살았다.

최민혁이 굳이 김현우 상무를 번거로운 방법으로 제거한 것도 김현우 상무의 생존 능력과 뒤에 있는 최두진 사장을 염두에 뒀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그렇다고 해도 이미 오성 전자 임직원이 다 봤는데, 화해됩니까?”

“그래서 사무실을 옮긴다고 합니다. 다른 파트 쪽에 옮겨 놓으면, 일단 시선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말을 하는 최병연 팀장도 내심 혀를 내둘렀고, 이번 일 때문에 김현우 수석 부장의 동선을 같이 알아본 임기석 부장 역시 감탄했다.

“제 아는 지인들은 다들 오히려 김현우 수석 부장의 뚝심에 혀를 내두른 친구도 적지 않습니다. 오성 전자가 워낙에 직원 관리를 빡빡하게 하기 때문에 회사에 불만이 많은 이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설마 그들이 김현우 수석 부장을 옹호하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겉으로는 눈치가 보여서 그러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지지할 겁니다.”

“그거 계속 놔두면, 오성 전자로서도 문제가 되겠네요.”

“안 그래도 오성 그룹 본사에서도 김현우 수석 부장을 따로 관리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입니다. 자르고 싶어도 쉽지가 않아서 골머리를 앓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이런 일까지 생겼으니, 답답하겠죠. 하지만 대안이 없으니까요.”

“…놀랍네요.”

하지만 임기석 부장은 이미 김현우 상무를 내쫓는 일에 한 역할을 했기에 최민혁 실장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 예상하셨던 것 아닙니까?”

“예상이라뇨.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현우 상무가 자발적으로…….”

“어허, 다 지난 일이에요!”

“네.”

최민혁은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두 사람과 옆에서 묵묵히 듣기만 한 조성돈 팀장 시선을 무시한 채 속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내가 기억하는 인생 1회차 기준으로 봐도 우리 김현우 상무가 어떤 사람인데, 오성 전자에 좋을 일할까.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점점 오성 전자란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 거야.’

“일단 지금은 김현우 수석 부장의 동선을 살피는 것에 집중하죠. 아마 오성 전자의 공격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 * *

김현우 수석 부장은 안국호 부장과 협의를 한 지 일주일 만에 천선구 과장을 비롯해서 여전히 잘 붙어 있는 이들을 불렀다.

그들에게 지금 사정을 말해주자 다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들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좋아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오성 전자 내에 한구석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는 점이다.

팀 전체가 다른 직원과의 불화 문제 때문에 아예 다른 연구소 건물의 구석에 사무실을 차린 것이었다.

그것도 밀폐된 공간으로.

김현우 수석 부장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단 오성 전자 내부 일이 해결되자 천선구 과장에게 앞으로 새 프로젝트에 대한 일을 넘긴 후에 최두진 사장을 찾아갔다.

물론 문전 박대를 당했다.

최두진 사장 경호원이 아예 김현우 수석 부장을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집 대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며칠을 기다렸다.

그 독기는 실로 대단했다.

경호원조차 질린 눈으로 김현우 수석 부장 눈치를 봤다.

그리고 그 집요함이 결국 통했다.

최두진 사장은 각오를 다진 아들을 보게 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몰래 낳은 자식.

특히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의 아들이라서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KM 전자 상무로 만들어서 어떻게 잘살아가라고 판을 깔아주었다.

그 좋은 회사에서 조용히 붙어만 있어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었다.

욕심을 내더니 갑자기 오성 전자로 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온갖 평지풍파를 다 일으킨 후에 다시 자기 앞에 나타났다.

최두진 사장조차 이제는 오성 전자와 소송이 부담스러웠다.

“앞으로 오성 전자와의 소송은 어떻게 할 거냐?”

“오성 전자 측과 타협 보기로 했습니다.”

“타협이라고? 오성 전자 노조까지 끌어들여서 온갖 분탕질을 다 벌여놓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찍어내려고 할 거다.”

“아닙니다. 정말 협상을 봤습니다. 해체한 제 팀도 다시 살렸습니다.”

“정말이냐?”

“소송이 곧 취하되면 다 알인데,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흠.”

최두진 사장도 의아한 눈으로 김현우 수석 부장을 쳐다보았다. 능력은 쥐꼬리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은 아들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니 도대체 오성 전자를 어떻게 설득했다는 말일까?’

김현우 수석 부장은 굳이 자세한 내막까지 밝히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작정한 일에 더 정신을 집중했다.

“제가 알기로 아버지가 KM 전자 지분을 매각한 시기가 1,500~1,600원대인 것으로 압니다. 지금 KM 전자 주가가 8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그때 일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사기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만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최두진 사장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최민혁을 고소하려고 했었다. 다만 최근 와서 조금 마음을 바꾸었다.

소송한다고 해도 도의적인 문제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더욱이 자칫 김현우 수석 부장과 관련된 일이 폭로된다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할 수도 있었다.

‘자칫하면 현우 이놈이 감옥에 갈 수도 있어. 아니 민혁이 그놈이 지금까지 한 짓을 보면 그렇게 하고도 남아. 어쩌면 증거도 이미 철저히 준비해 놨을 거야. 이놈은 지금 제 무덤을 판다는 것을 알기라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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