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72화 (172/1,021)

* * *

최민혁은 두 사람과 협의를 끝낸 후에 본사로 가는 차량 안에서 김명준 과장에게 오혜정 비서와 관련된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들었다.

“박두영 부장검사 측에도 적당한 선에서 끝내라고 일단 이야기해 놓았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이 정도 일로 오성 전자 못 건드립니다. 이번에는 이창명 이사를 자극하는 선에서 끝내야 합니다.”

“유영진 팀장이 구속되는 것으로 아마 이번 일이 끝이 날 겁니다.”

“이왕이면 KJ 엔터 측에도 경고를 해두세요.”

“이미 조치했습니다. 아마 두 번 다시 실장님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좋네요.”

딱히 최민혁이 KJ 엔터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바로 어머니 정미선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는 있었지만, 동선을 다 살피고 있었다.

“제 엄마는 어때요?”

“사모님은 늘 똑같습니다. 비록 지난 영화가 망했지만 큰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난 영화 스텝이나 지인과 자주 만나서 여행도 가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활력을 더 얻는 것 같았습니다.”

“뜻밖이군요.”

“아무래도 의지가 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우울증도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실장님이 난 기사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많이 웃으시고요.”

“그런가요?”

최민혁도 뒤늦게 인생 1회차에서 정미선 건강이 나빠진 것이 자신이 감옥에 가고 난 다음이라는 것을 새삼 확신했다.

한창 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접할 때면 정미선 건강도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주치의 의견은 어때요?”

“주치의 말로는 상당히 호전되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제가 나서지 말라고 하던가요?”

“네.”

‘쯧, 할아버지가 도대체 엄마에게 뭘 어떻게 했기에 그러는 것일까? 어쩌면… KM 전자 지분을 준 것도, 증여한 것도 어머니 일 때문일까?’

최민혁도 사실 최병문, 정미선, 최용욱 회장 사이 일을 잘 몰랐다. 최병문은 이미 죽었고, 정미선은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다.

최용욱 회장이 지난 일에 대해서 언급할 리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잘 모를 수도 있지. 우리 할아버지가 꼰대 기질이 다분해서 밑에 사람 생각을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최용욱 회장이 모진 것도 있지만 정미선이 정서적으로 쉽게 상처 받는 타입인 것도 문제다. 둘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면 정미선이 더 큰 타격을 받으니까.

지금은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다.

아니, 최민혁은 만약을 대비한 보험을 생각했다.

“혹시 모르니까, KJ 엔터 이용해서 다른 기획사나 방송국 쪽에도 계속 살펴보세요. 필요하면 언제라도 손을 쓸 수 있게.”

“알겠습니다.”

김명준 과장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최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실장님 마음 씀씀이가 진짜 놀라워.’

최민혁은 괜히 민망해서 주제를 바꾸었다.

“이창명 이사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세요. 아마 곧 일을 벌일 겁니다. 이왕이면 ETRI도 그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 테니,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한번 제대로 흔들어 보죠. 거기에 다른 대기업까지 같이 엮으면 꽤 재미있는 그림이 만들어질 겁니다.”

“…알겠습니다.”

* * *

김명준 과장은 이동호 교수와 송한성 교수를 만나서 진행하는 일을 이전처럼 조재현 박사를 통해서 이창명 이사에게 슬쩍 흘렸다.

이창명 이사는 오늘도 검찰에 가서 오혜정 비서에 관한 조사를 받는 중에 최민혁의 이야기를 듣자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박두영 부장검사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 일로 바쁜 것은 알지만, 대답을 잘해 주셔야 합니다. KJ 엔터의 유영진 팀장에 대해서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유영진 팀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까?”

“아, 검사님도 좀 생각을 해보세요. 제가 왜 KJ 엔터와 엮입니까?”

“유영진 팀장 핸드폰 통화 내역을 보면 안국호 부장과 지속적인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 안국호 부장이 이창명 이사 상관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놓은 자료는 이창명 이사가 오혜정 비서와 만나는 장면이다.

사진 속에는 이창명 이사가 오혜정 비서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강제로 손을 잡아서 끌고 나가는 장면도 있었다.

심지어 수행원을 시켜서 오혜정 비서를 차량에 태운 장면도 있었다.

호텔에 강제로 끌고 가려다가 지나가던 행인 때문에 실패한 장면도 있었다.

“…….”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 사진을 다 찍은 거야?’

이창명 이사도 굳은 얼굴을 한 채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행히 동행한 변호사가 나서서 일일이 다 답변했다.

“그 이상한 분들이군요. 아니, 검사님은 연애 한 번 안 해보셨습니까. 남녀가 서로 좋아서 하는 일 아닙니까. 이게 어떻게 강제로 추행했다는 증거가 됩니까?”

“흠.”

박두영 부장검사도 혀를 찼다. 그 역시 증거 사진을 받기는 했지만 다 미수에 그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교묘하게.

‘누군가 뒤에서 오혜정 비서를 봐준 것이겠지. 이렇게 사진을 다 찍은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으니.’

문제는 그 증거.

따라서 조사는 계속되었다.

“이 사건 때문에 워낙에 여론이 나빠서 대충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아, 그러면 문제가 된 그 친구를 잡아넣으면 되지 않습니까?”

“유영진 팀장 말입니까?”

“유영진인지, 지랄 영진인지 저는 모르는 사실입니다.”

박두영 부장검사가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 역시 여론을 의식해서 계속 조사를 하고 있지만 이창명 이사를 이 일로 잡아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그래도 멀리는 가지 마십시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이창명 이사의 시선에도 피식 웃고 말았다. 이번 일도 최민혁 실장이 끼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아니, 심지어 적당히 수사하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하지만 그가 아는 최민혁 실장이 고작 이 정도로 이 일을 끝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 최훈열 전무에게 한 짓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사람을 완전히 결딴냈으니까.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겠지.’

* * *

이창명 이사는 검찰청에서 나오면서도 기자에 계속 시달렸다.

[이창명 이사님, KJ 엔터 유영진 팀장을 이용해서 오혜정 비서를 협박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이창명 이사님이 오혜정 비서를 강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입니까?]

[이창명 이사님이 KJ 엔터에 압력을 넣어서 오혜정 비서를 스폰을 하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

[176]

레이저 같은 강렬한 시선으로 달라붙는 기자를 물러나게 한 이창명 이사도 몰려드는 기자 때문에 일단 멈추어 섰다.

뒤늦게 아차 싶었던 것이다.

[검찰에서 충분한 소명을 했습니다. 이번 일로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꾸벅 허리를 정중하게 숙인 이창명 이사.

하지만 조금 전에 살벌한 시선을 받은 기자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방송 카메라를 보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소환된 이창명 이사에 대해서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다.

특히 오성 전자와 관련해서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싫든 좋든 오성 전자까지 이 흙탕물 사태에 집어넣고 말았다.

‘기레기 새끼들.’

이창명 이사는 이를 갈면서 기자를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 유영진 팀장을 통해서 오혜정 비서를 협박했는데, 이게 특수협박이라는 것을…….]

[…….]

섬뜩한 시선에 마이크를 들이대던 기자는 흠칫 놀라서 주춤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주변에 몰려온 기자 카메라 플래시 수십 개가 동시에 펑펑 터졌다.

수행원이 보다 못해서 이창명 이사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진짜 엿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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