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45화 (145/1,021)

#145

[…하지만 지적 재산권으로 먹고사는 시즈벨이 특허를 내놓을까요?]

[우리가 가진 특허가 있으니까요. 만약 그쪽에서 거절하면 깽판을 치면 됩니다. 우리 특허가 그들 특허의 앞길을 다 막고 있으니까요.]

[…….]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임기석 부장은 특허 출원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정작 다른 지적 재산권과 권리 충돌에 대해서는 미처 간과했다.

그런데 뒤늦게 최민혁의 이야기에 특허를 확인하고서야 문제점을 파악했다.

[…아, 그렇죠. 맙소사 정말 그렇군요. 서, 설마 이런 것까지 다 계산하신 겁니까?]

[글쎄요.]

[…저, 정말 대단하십니다. 실장님의 혜안에 진짜 놀랐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후후후, 그 정도로 하죠. 아, 시즈벨과 협상에 대비해서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 놓기 바랍니다. 그들을 압박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안현수 팀장이 그걸 확인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 * *

임기석 부장을 통해서 MP3 관련 특허 진행 상황을 확인한 최민혁은 다음 수순으로 장승일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승일 실장도 평소와는 달리 최민혁의 유럽 행보를 격찬했다.

[콜린스 대박, 축하합니다. 국내 언론도 난리가 났지만, 그보다는 KM 전자 주가가 벌써 17,000원을 돌파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별로 놀라지도 않는군요. 벌써 10배 넘게 올랐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보다는 안현수 팀장의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지난달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벌써요?]

[아무래도 최훈열 전무 재판도 있지만 최문경 부회장님하고도 트러블이 좀 있었습니다. 최문경 회장과 저의 갈등이 심해질 때 불똥이 안현수 팀장에게 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업무 인수인계 때문에 붙어 있을 뿐입니다.]

안현수 팀장은 소심한 성격으로 그룹 소송 문제만을 맡고 싶어 했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이 사사건건 끼어들어서 온갖 잡일을 다 떠넘겼다.

겉으로는 최문경 부회장과 대립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상처를 많이 입어 왔다.

그게 최훈열 재판 사건에서 폭발한 셈이다.

최민혁도 자세한 내막은 뒤늦게 알고는 혀를 찼다.

[그렇군요.]

[갑자기 왜 안현수 팀장에 대해서 질문하시는 겁니까?]

[제가 관심이 있으니까요. 안현수 팀장에게 전화해서 이탈리아로 당장 와 달라고 전해주세요.]

[이탈리아요? 아니, 이미 콜린스 일은 다 끝난 것 아닙니까? 유럽 바이어 접촉은 영업 팀에서 담당하지 않습니까. 더욱이 회장님도 빨리 실장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일이 좀 더 있어서 어쩔 수 없네요. 할아버지에게는 잘 좀 말해주세요. 그리고 안현수 팀장은 장 실장님이 한번 잘 설득해서 이탈리아로 보내주세요. 만약 그 미션만 성공한다면 저도 그에 대한 보상을 드리죠.]

[보상이라……. 흠,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실상 최민혁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가 특히 관심을 둔 것은 기조연설 따위가 아니라 비디오 특허와 관련된 부분이다.

독일과 미국의 도움을 얻어서 소니를 압박하는 모양은 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일단 실장님이 부탁한 대로 해줄 수밖에 없겠어.’

* * *

콜린스의 성공은 KM 전자만 아니라 KM 그룹에도 영향을 줬다.

특히 KM 그룹 기조실은 완전히 계열 분리가 된 KM 전자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계열 분리만이 아니라 거래 자체가 완전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문경 부회장이 노골적으로 KM 그룹 계열사를 압박해서 거래를 다 끊어버리면서 두 회사의 연결 고리는 이미 다 끊어졌다.

기조실 직원도 이제는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콜린스 폭탄이 터졌다.

지금 당장 유럽 국가 쪽에서 요청한 물량만 10만 대를 가볍게 넘어섰다. 그런데 이 물량이 얼마나 늘어날지도 모른다.

단순 계산만으로 초기 예상한 판매 대수 10만대 매출 외에 수천억 매출이 그냥 생긴 셈이었다.

이제는 거꾸로 KM 그룹 계열사가 콜린스 홍보를 이용해야 할 상황이었다.

장승일 실장도 고함이 쩌렁쩌렁 울리는 최문경 부회장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난리가 났군. 최두진 사장과 만남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 보네.’

아마 분노로 미쳐 돌아갈 지경일 것이다.

그 역시 최두진 사장을 몇 번 만나봤지만, 태도가 이전과는 아주 달라져 있었다.

‘하긴 이제 KM 전자는 계륵이 아니지. KM 그룹의 핵심 계열사나 마찬가지니까. 문제는 최 실장님이 그걸 용인할까 모르겠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최민혁은 처음부터 KM 그룹에서 KM 전자를 독립시킬 계획이었던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헛짓을 했으니.

문제는 지금부터다. 특히 KM 산업 경우에는 아파트 건설과 콜린스를 같이 끼워서 영업하면 매출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그걸 호락호락 허락할 리가 없었다.

‘다른 건설 업체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질 테니까.’

이제는 KM 그룹이 최민혁 실장에게 가서 허리를 숙여야할 상황이었다.

법무팀 역시 콜린스 관련된 법적인 문제를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안현수 팀장조차 콜린스 관련된 복잡한 특허를 확인하면서 눈빛을 빛냈다.

그가 특히 놀란 것은 최근 임기석 부장을 통해서 올라온 새로운 비디오 특허 관련 안건이다. 기존 특허를 무력화하는 이 놀라운 특허를 보면 볼수록 놀랍기만 했다.

한국 기업 중에 세계적인 원천기술을 가진 경우는 없으니까.

장승일 실장은 굳이 심력을 기울여서 안현수 팀장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안 팀장님, 최 실장님이 이탈리아에서 보자고 하는데, 어쩔 생각입니까?”

갑작스러운 제안에 안현수 팀장도 귀를 쫑긋했지만 이미 사직서를 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 이미 장 실장님에게 사직서를 냈습니다.”

“아마 최 실장님이 안 팀장님에게 따로 제안할 것이 있나 봅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도 나름 플랜이 있습니다.”

독립의 꿈.

비록 시작은 어렵다고 해도 가려고 하는 목표는 명확하게 있었다.

하지만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았다.

“제가 보기에는 국내에서 그렇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최 실장님 제안을 따르는 것이 더욱더 빠르게 꿈을 이룰 겁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장승일 실장은 천천히 걸어서 안현수 팀장 옆자리에 앉았다.

별다른 감정이 없는 안현수 팀장은 말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성격 때문에 변호사보다는 특허 쪽의 일을 더 팠다.

거기에 전공도 그의 성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덕분에 법보다는 공학적인 일을 더 선호했다.

장승일 실장은 안현수 팀장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최 실장님은 지적재산권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걸로 압니다. 단순히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쪽이죠. 비디오 특허만 봐도 좋은 증거죠.”

“…하면 이 비디오 특허가 다가 아니란 말입니까?”

다른 사람과는 달리 최민혁 행보를 늘 유심히 지켜본 장승일 실장은 이미 최민혁이 뭔가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워낙에 보안이 철저해서 제대로 파악이 어려워 아쉽기만 했다.

그 정보 일부를 얻는다면 KM 그룹 미래 경영 전략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다고 최용욱 회장마저 씹어버리는 최민혁 실장에게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없었다. 이번처럼 최민혁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는 것이 답이었다.

‘지금까지도 최 실장님에게 잘해왔는데, 찍히면 곤란하지.’

“네. 그래서 이탈리아로 당장 와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직접 그곳에서 보여주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글쎄요.”

“안 팀장님도 이탈리아에서 직접 최 실장님의 제안을 들어보면 좀 다를 겁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절 믿고 한번 가보세요. 최 실장님이 빈말을 한 것은 아닐 겁니다.”

“…….”

부드러운 설득.

고집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안현수 팀장도 새로운 특허에 마음이 기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역시 KM 그룹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다만 최훈열 부회장과 같은 이와는 궁합이 너무 맞지 않았다.

특히 자기 측근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술수가 지긋지긋했다.

최민혁은 어떨까.

처음에는 재벌 3세 풋내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콜린스 사태 이후 최민혁의 행보는 그의 상상력을 가볍게 뛰어넘어 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전 이미 사직서…….”

장승일 실장은 이미 설득이 끝났다고 판단하자 피식 웃었다.

“가서 최민혁 실장님을 만나보세요. 그런 종이 쪼가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최훈열 전무 사태 때 직접 부딪친 최민혁 실장의 놀라운 행보를 떠올리던 안현수 팀장은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 모습에 이미 예약한 이탈리아행 항공권을 내밀었다.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됩니다.”

발 빠른 장승일 실장의 행동에 혀를 내두른 안현수 팀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어떤 장담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방긋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잘은 모르지만 안 팀장 당신이 원한 일이 딱 그것 같은데,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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