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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8화 (108/1,021)

#108

젊은 시절부터 온갖 행패를 다 부리면서 재벌가 삶을 누린 안국호 부장은 오성 전자로 이직하면서 수석 부장이 된 김현우 상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안국호 부장은 특히 김현우 상무가 가진 비디오 특허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였다.

그가 한 방법은 간단했다.

“당신 정말 KM 전자의 상무 맞습니까? 아니, 그 경력에 회사를 이직한 후에 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알아보니 실적은 아무것도 없어, 팀원 죄다 칼퇴근에 심지어 지각은 밥 먹듯이 하더군.”

사업부 미팅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한 채 나온 이 이야기.

내막을 잘 모르는 다른 사업부장은 고개를 갸웃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안국호 부장은 수십 명의 실무진이 보는 자리에서 계속해서 김현우 수석 부장을 마구잡이로 씹어 댔다.

이미 여러 통로를 통해서 알아보는 중에 최근 이동호 교수에게서 진실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김 수석이 정말 비디오 특허를 고안한 것이 맞습니까? 제가 이동호 교수 팀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당신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비디오 특허 고안자가 김현우 수석 부장이라고 알았는데, 정작 다르다는 말에 다들 충격에 빠졌다.

이제는 아예 나서는 이도 없이 다들 김현우 수석을 쳐다보았다.

깜짝 놀란 김현우 수석 부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고삐를 잡았다고 생각한 안국호 부장은 숨김없이 그대로 김현우 수석 부장의 사생활과 부실한 조직 관리를 맹공격했다.

“그따위로 해서 도대체 일을 언제 하겠다는 소리입니까? 아니, 다른 사업부는 머리가 없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합니까? 도대체 그 대가리에 뭐가 들었기에 아예 눈치를 보지도 않는 겁니까?”

“안 부장, 근거도 없는 가짜 뉴스 가지고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지랄하네. 내가 다 확인한 사실이야. 당신같이 회사 돈을 축내는 쓰레기 따위가 할 말은 아니지!”

“……!”

사업부 실무장은 눈을 크게 치켜뜬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안국호 부장의 말이 심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내용이 정말 사실이라면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부들부들 떨면서 제대로 입도 열지 못했다.

안국호 부장은 그런 김현우 수석 부장을 계속해서 괴롭했다.

“아니, 회사 생활이 얼마나 편하면 저렇게 살만 피둥피둥 찌는 거야? 저걸 수석 부장이라니. 도대체 우리 회사 분위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겁니까?”

회의 내내 김현우 수석 부장을 향한 안국호 부장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회의 끝나고도 마찬가지.

게다가 회의 중에 나온 이야기에. 미팅에 참석한 이들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권태성 실장을 대리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임권수 부장은 눈빛을 반짝였다.

‘김 수석을 희생양으로 삼으면 되겠어!’

그 모습을 지켜본 황광수 차장은 김현수 수석 부장은 이것을 이용하려는 임권수 부장의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정말 지긋지긋하네.’

* * *

김현우 수석 부장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처음에는 안국호 부장과 대놓고 싸웠지만, 명분이 없었다.

‘도대체 그 새끼가 어떻게 안 거야? 그 꼬장꼬장한 이동호 교수가 헛짓을 했을 리가 없는데, 가만 최 실장 이 새끼가 정보를 흘린 거야? 엿 같네.’

이제까지 갑의 위치에서 밑의 직원을 관리했다.

막상 안국호 부장에게 당해 보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아예 대놓고 멱살 잡고 싸운 이후 사이가 더 나빠지면서 이제는 화해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고통.

피가 말라서 요즘은 제대로 밥도 못 먹었는데, 이것 때문에 피똥까지 싼다.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결국 차선으로 천선구 과장을 비롯한 오성 전자에 따라왔던 이들은 갈구었는데, 이들은 죄다 주말을 반납한 채 죽어라고 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

KM 전자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강행군이다.

더 황당한 것은 제대로 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냥 일도 없이 사무실에 앉아서 시간만 죽여야 했다.

업무 중에는 딴짓도 할 수가 없었다.

스토커 같은 안국호 부장이 불시에 닥쳐서 사업부를 뒤집었다.

“진짜 팔자 좋구나. 다른 팀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데, 업무 시간에 딴짓해? 야, 너 이름이 뭐야?”

“처, 천선구 과장입니다.”

“천선구? 가만, 너도 김현우 수석이랑 인척 관계였어?”

“그게…….”

“하, 정말 별 쓰레기가 다 있네. 어째 그 실력으로 회사 들어온 것이 이상하다 했어. 너 이 새끼야, 지난주에 4시에 퇴근했지?”

“그게 협력업체에…….”

“무슨 일로 협력업체에 간 건데? 너희가 하는 프로젝트는 비디오 관련 프로젝트야. 그 일에 왜 협력업체가 필요해?”

구체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안국호 부장의 행동에 천선구 부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여자 만나러 간 거야?”

“아, 아닙니다.”

안국호 부장은 창백한 천선구 부장의 뺨을 이리저리 치면서 쿡쿡 밀었다.

“대가리는 반짝반짝하는 게, 진짜 문어도 아니고, 꼴불견이다. 도대체 이런 개새끼가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러는 거야? 너희 돼지 김 수석이랑 패키지 불량 상품이야?”

“…….”

모멸적인 행동에 치를 떤 천선구 부장도 이를 악물었다.

“어? 이 새끼 표정 봐라. 기분 나빠? 저기 다른 사업부 직원을 봐라. 다들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너희 쓰레기가 오히려 사업부 전체를 썩게 하잖아.”

안국호 부장은 천선구 부장의 머리카락을 잡아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히죽 웃었다.

“호, 이 새끼 봐라. 잘하면 나에게 주먹 휘두르겠네. 너 같은 쓰레기가 이 회사에 다니는 것만으로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줘!”

쩌렁쩌렁한 목소리.

같은 층에 있던 다른 사업부의 백여 명의 시선이 따갑기만 했다.

천선구 과장은 모욕감에 이를 악물었다. 벌써 몇 번이나 이런 일을 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수위가 점점 넘어섰다.

KM 전자에서 이직해 온 이들은 다들 모니터에 얼굴을 박은 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주변 다른 사업부 직원이 오히려 안국호 부장을 응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현우 수석 부장 팀의 나태와 태만을 안 것이다.

누구는 죽어라고 일하는데, 누구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제까지 대단하다고 광고하던 비디오 특허도 저들의 결과와 심지어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그리고 안국호 부장은 그 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더 괴롭힌 것이었다. 새삼 공채덕 과장과 김홍준 과장이 한 말을 떠올렸다.

오성 전자는 분명히 좋은 회사이지만 그에게는 최악의 회사였던 것이다.

‘비, 빌어먹을.’

* * *

최민혁은 임기석 부장의 오성 전자 인맥을 통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하하하, 좋네요.”

전 직장의 이야기를 파악한 임기석 부장의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다.

“후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과거처럼 마냥 당하기만 하면서 사는 게 좋은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이 정말 안 좋습니다. 비디오 관련 프로젝트는 오성 사장단 회의에서도 말이 나왔습니다.”

“그게 저희랑 무슨 관계가 있나요?”

“아닙니다.”

“임 부장님은 사람이 너무 우유부단해서 큰일입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일도 일어날 텐데, 그때는 어떻게 감당할 생각입니까?”

오성 전자의 악독한 술수를 잘 아는 임기석 부장도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앞으로도 싫든 좋든 오성 전자와 계속 부딪칠 겁니다.”

‘첫째 큰아버지가 부추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일어날 일이지. 하나씩 가자. 오성 전자를 마무리 짓고, 우리 첫째 큰아버지에게도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지.’

내심 이를 뽀드득 간 최민혁은 역시 KM 산업의 독특한 속성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아직은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김현우 상무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런 점도 임기석 부장님 인맥을 통해서 넌지시 흘려보세요.”

“…알겠습니다.”

“뭐,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잖아요. 없는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의 치명적인 결과를 걸고넘어지는 거잖아요. 그거 다 오성의 손실을 줄이려고 해주는 겁니다.”

“…네.”

“단 티 나지 않게 잘 말해야 할 겁니다. 이동호 교수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랑 관계도 없지만, 걱정이 되어서 해주는 충고니까요.”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권투 파이팅 포즈를 취한 채 잽을 몇 번 날리면서 소리쳤다.

“자, 우리 김현우 상무를 한 번 벽으로 몰아봅시다. 과연 반응이 어떨지 정말 궁금해요. 그리고 이 정도는 해줘야 권태성 실장도 몸조심할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빨리 외부 정리를 끝내고 본 게임에 들어갑시다.”

임기석 부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채 힐끗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악마처럼 집요함에 새삼 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김명준 과장은 임기석 부장이 실장실을 떠나자 최민혁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아직 김 상무를 용서하지 않은 겁니까?”

“당연하죠. 우리 회사에 있을 때는 일을 벌이기 곤란했어요. 최훈열 전무 사태와는 또 다르니까요. 문제가 터지면 회사 분위기는 난장판이 될 겁니다. 내부에서 또 괜한 소문이 퍼지면 수습하기 쉽지 않아요. 할아버지 친우이기도 한 최두진 사장도 문제고요. 차라리 외부에서 정리하는 게 가장 깔끔하죠.”

“…….”

한동안 입을 다문 김명준 과장은 뭐라고 더 질문할까 하다가 관뒀다. 나머지는 안 봐도 그 역시 추론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김 상무는 어찌 될까?’

* * *

김현우 수석 부장도 자기 팀이 괄시를 받는 것을 봤지만 나설 수가 없었다. 이미 몇 번 나섰다가 안국호 부장과 크게 싸웠다.

문제는 이 싸움 때문에 김현우 수석 부장 팀의 능력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났다는 점이다.

심지어 오성 전자에 와서 적응 기간에 한 행동도 문제였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시간이 갈수록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안국호 부장이, 아니, 오성 기획 팀이 원하는 것을 더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넘긴 비디오 프로젝트 외에 두 가지 프로젝트를 더 넘긴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뒤늦게야 비디오 특허의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상업화 과정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임권수 부장을 통해 상황의 심각성을 뒤늦게 안 권태성 실장은 인력 스카우트 소동 때문에라도 가능하면 무시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그냥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다른 대안을 찾아보려고 다른 연구 팀장을 따로 만났다.

“정말 힘듭니까?”

“만드는 거야 다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역시 비용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효율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힘들죠.”

“아니, 그걸 왜 이제야 안 겁니까?”

“구현 과정에서 몇 가지 빠진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문제였습니다. 이동호 교수도 그 점은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이동호 교수도 사전에 알았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이동호 교수도 해결책이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는 그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디어와 실제 구현은 이야기가 좀 많이 다르다.

될 것 같은 것과 실제 결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동호 교수는 학자로서 이론적인 기반으로 중심으로 했을 뿐이다. 그 역시 문제점을 잘 알기에 구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오성 전자는 그것만 보고 잘될 것이라 생각해서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아마 김현우 수석 부장이 사전에 알렸다면 알 수도 있었다.

“김 수석은 왜 그걸 말하지 않은 겁니까? 지금 프로젝트를 다 진행해 놓고, 인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그 손실은 또 어떻게 합니까?”

“그거야…….”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팀장도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들 역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늘 경험하는 일이었다.

다만 이번 프로젝트는 워낙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른 한 가지라면 결과가 없다는 점.

권태성 실장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쓰레기 같은 안국호 부장이 오히려 고맙기만 했다.

‘개새끼.’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임권수 부장은 그런 권태성 실장에게 넌지시 한 가지를 말했다.

“이건 김현우 수석 부장의 사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경력이나 실적까지 조작한 것 아닙니까.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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