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05화 (105/1,021)

#105

최민혁은 만약을 위해서 추가로 만들어 놓은 보고서 하나를 던졌다. 아니, 정확히는 기존에 이미 만들어진 보고서를 수정한 것이었다.

“…….”

기존 콜린스에 대한 프로젝트 드롭에 대한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최민혁은 그 기반 자료를 토대로 해서 자신이 콜린스 프로젝트를 새롭게 진행한 결과를 아주 합리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진짜 대단하십니다.”

장승일 실장도 이제는 감탄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지간한 일에 반응도 보이지 않던 그였지만, 기가 막혀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은 제품 판매도 안 되었는데, 모르는 일이죠.”

“아니, 이 콜린스 모델은 통합니다.”

“그런가요?”

장승일 실장은 콜린스 프로젝트를 다시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사실 기조실 내에서도 이런 모델을 딱 원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지 못한 겁니까?”

“후유, 최훈열 전무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조실 의견도 다 무시했습니다. TV 연구소에서는 어렵다고만 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집이 강한 최훈열 전무는 외부 이야기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가 좋고, 나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지시를 받은 조상도 연구소장은 아예 KM 전자 연구소를 쥐고 흔들었다.

정작 멀쩡하게 돌아가는 프로젝트조차 강제로 다 없애 버렸다.

그 때문에 아까운 시기를 놓쳤다고 봤다.

그런데 최민혁이 바로 그 과거의 기술을 통합해서 하나로 만든 것이었다.

장승일 실장이 그렇게 원했던 결과를 몇 단계나 더 뛰어넘었다. 그로서는 그저 꿈에서만 기대하는 수준이었다.

흥분한 장승일 실장은 보고서를 다시 몇 번이나 보고 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민혁은 냉정했다.

“보고서는 놔두고 가세요.”

“네? 저 기조실 실장입니다. 이런 중요한 안건은 기조실에서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경영 기획안 수정뿐만 아니라 내년 경영 기획에도 반영할 겁니다.”

“의도는 알아요. 하지만 후일에 다 외부에 알리겠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아직 마무리 못 한 일이 있습니다.”

뒤늦게 최문경 부회장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은 장승일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저희를 못 믿는 겁니까?”

“장 실장님은 믿죠. 그런데 기조실도 과연 그럴지는 의문입니다.”

뒤늦게 회사를 배신한 임권수 부장이 생각난 장승일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 라인인 이들 명단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죠.”

장승일 실장은 새삼 콜린스 프로젝트를 다시 살핀 후에 최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의문은 여전히 많았다.

켕기는 것이 많은 최민혁도 어색한 듯 웃으며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장승일 실장도 왜 최민혁이 최근 와서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새삼 깨닫고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랬어. 그랬구나.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지. 다 노림수가 있었어. 특히 이 콜린스 모델 발표가 나면, KM 전자 주가는 작년 주가를 회복할 거야. 그것만 해도…….’

천문학적인 이익을 떠올린 장승일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 * *

장승일 실장은 본사로 돌아가기 무섭게 권태성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특히 32명의 엔지니어는 절대로 오성 전자에서 했던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설득했다.

최병연 팀장이 오성 전자와의 갈등 때문에 이직을 결심했다는 점을 피력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자기 실적을 로열패밀리에게 다 털렸다면 누구라도 분노할 일입니다. 옆에서 그 일을 목격한 이들도 오성 전자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니까요.]

장승일 실장 주장은 한결같았고, 별다른 흠이 보이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최병연 팀장이 오성 전자 내에서 당한 일이다.

누가 보더라도 오성 전자 내의 조직 관리가 문제가 될 일이다.

나머지 인원 역시 자신이 오성 전자에서 핍박당한 점을 피력했다.

대다수는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손을 댄 안국호 부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인력 스카우트는 오성 전자에서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압니다. 만약 이게 법적 분쟁이 된다면 기존 직원도 다 문제가 됩니다. 설마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실 겁니까?]

자세한 내막을 들은 권태성 실장도 더 태클 걸기는 어려웠다. 그 역시 KM 전자에 같은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권태성 실장도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안국호 부장의 패악에 치를 떨었다.

“안 부장 그 새끼 때문에 일이 어렵게 되었어.”

이번 일 때문에 상당히 위축된 임권수 부장이었으나,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아닙니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습니다. 그걸 감추기 위해서 안국호 부장 타령을 하는 겁니다.”

“그렇겠지. 나도 알아.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 아니, 임 부장, 자네는 무슨 의도가 있다고 생각해?”

“네? 그거야…….”

“자네 말은 이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알면서 왜 그런 수작을 부린 것 같아? 더욱이 지금 봐서는 장승일 실장도 내막을 잘 몰랐어. 결국, 다른 작자가 손을 쓴 거야. 있다고 한다면 최 실장뿐인데…….”

지난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최민혁 실장이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다. 도대체 그런 꼬맹이가 이런 문제를 벌였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굳이 장승일 실장을 찾아간 것도 그가 최민혁을 부추긴 배후라고 생각했다. KM 그룹이 끼어들지 않고서야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아니,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화가 났다.

자신이 담당한 업무 중에 KM 전자 포지션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다.

비디오 특허 일 때문에 KM 전자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사사건건 문제였다.

“빌어먹을!”

책상에 주먹으로 후려친 소리에 화들짝 놀란 임권수 부장은 눈치만 봤다.

황광수 차장은 어이가 없어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임권수 부장이 시작한 스카우트 작전의 결과는 정작 KM 전자가 오히려 오성 전자 기획 팀에서 관리하는 핵심 인재를 줄줄이 빼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권태성 실장은 결국 임권수 부장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임 부장,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거야?”

“네? 그건…….”

그는 장승일 실장과의 전화 내용을 떠올리면서 이를 갈았다.

“자네 때문에 문제가 이렇게 커진 거잖아. 이제는 법적인 문제로 걸고넘어질 수도 없어. 장승일 실장의 반응은 뻔해. 우리가 자기들 인력을 빼갔단 것을 폭로한 것 아냐. 그런데 이렇게 물러날 수밖에 없어. 방법을 생각하란 말이야. 설마 당하고만 있을 거야?”

“…….”

어지간한 일에 화 한 번 내지 않던 권태성 실장의 분노에 임권수 부장은 입을 다물었다.

임권수 부장은 차마 뭐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권태성 실장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아무런 대응이 없다면 위에서 난리가 날 거야. 세상에 이런 병신도 또 없잖아. 임 부장 자네가 책임을 다 져야 할 거야!”

이게 문제다.

당하고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인사 팀에서도 아직 돌아가는 내막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승일 실장이 괜히 인력 스카우트 전쟁을 들먹이며 문제를 만들 사람은 아니었다.

권태성 실장은 차가운 눈으로 임권수 부장을 쳐다보다가 조용히 입을 다문 황광수 차장을 보았다.

“황 차장,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잠깐 망설이던 황광수 차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여기서 접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솔직히 KM 전자 규모도 크지 않은데, 굳이 계속 일을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계속해 봐.”

“어차피 인력 퇴직이 문제이기는 해도 없던 것도 아닙니다. 안국호 부장 문제를 직접 거론하면 인사 팀도 입을 다물 겁니다.”

나쁘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긴 했지만, 그래도 방계인 이상 안국호 부장을 자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분하지만 이 정도로 문제를 덮어버리면 더 이상의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형 TV 쪽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우리 오성 전자라면 금방 따라잡습니다. 1년이면 충분히 KM 제품에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오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네는 KM 기조실 직원이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쉽지 않으니, 지금 이 난리가 난 것이잖아. 더욱이 프랑스의 가전 회사인 톰슨 멀티미디어는 이미 파산 직전이야. 우리에게는 지금이 프랑스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말이야!”

대형 TV 외국 시장이 커지고 있음에도 유럽 가전 회사 상태는 좋지가 않았다.

오성 전자와 LC 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과 일본 대기업 때문에 매출이 격감하고 있는 톰슨 멀티미디어는 조 단위 적자로 죽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대운 전자가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에 끼어들었다는 이야기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오성 전자 기획실에서도 톰슨 멀티미디어를 지켜보고 있었다.

기획 팀 해외 담당 파트를 통해서 이 사실을 잘 아는 황광수 차장도 이 점을 수긍했다.

“압니다. 그런데 최훈열 전무 재판 사태를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저쪽도 꼼수라면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KM 산업은 저희도 어떻게 손을 댈 방법이 없습니다. KM 산업은 우리 반도체 사업과 엮여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건드려 봐야 오히려 저희 손실이 더 큽니다.”

“하긴.”

권태성 실장도 뒤늦게 이성을 찾고 나서야 KM 그룹 구조를 떠올렸다. 고만고만한 시장을 가진 KM 계열사는 오성 전자가 파고들 틈이 없었다.

오히려 그쪽에 집중하는 것으로 말미암은 손실이 더 컸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일도 최문경 부회장의 수작이었지.’

뒤늦게야 이 사태가 최문경 부회장이 흘린 정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자 탄식하고 말았다.

뻔히 아는 수작에 휘둘려서 괜히 욕심을 부렸다. 집착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어서 삽질하다가 스스로 깨진 형국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권태성 실장은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한 가지를 확인했다.

“혹시 이 일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자네 둘 빼고는 더 없지?”

“네.”

“그러면 없던 걸로 해. 회사를 떠난 그 친구들은 안국호 부장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걸로 몰아. 만약 이 일이 외부에 흘러 나가면 책임은 임권수 부장 자네가 져야 할 거야. 그러니 철저하게 정리해!”

“아, 알겠습니다.”

임권수 부장은 한숨을 돌렸지만, 안색이 편치는 않았다. 그는 슬쩍 시선을 피하는 황광수 차장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이 새끼가.’

하지만 황광수 차장의 눈빛도 이전 KM 기조실에 있을 때와는 달랐다.

‘이전처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어!’

* * *

오성 전자의 갑작스러운 엔지니어 사직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있었다.

인사 팀에서는 이 일을 간과하지 않고, 여러 경로로 조사했다.

필요하다면 이 일에 연루된 직원을 하나씩 불러 확인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안국호 부장이 퇴직자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안국호 부장은 자기 실적 때문에 이 엔지니어를 상대로 온갖 갑질과 폭언을 행사했다. 심지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폭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다.

인사 팀에서는 사내 감사 팀에 보고하려다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임권수 부장이 이때 슬쩍 끼어들어서 기획실과는 무관한 일 양 언급하면서 오히려 인사 팀의 부적절한 점을 따졌다.

그러다 보니 인사 팀을 비롯해 안국호 부장과 관련이 있는 이들은 다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담당 임원도 다들 몸을 사렸다.

그들 역시 안국호 부장의 일에 자유로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안국호 부장은 실상 오성 로열패밀리와도 관련이 있었는데, 윗선에서 오성 전자 내부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안국호 부장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결국 엔지니어 다수가 퇴직한 이슈에 관한 조사는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

요란한 오성 전자 분위기와는 달리 KM 전자는 사뭇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영근 사장도 최근 KM 전자가 최민혁 실장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잘 알았다. 보고가 올라와도 뭔가 빠진 것을 느꼈다.

그런데 최민혁이 경영권을 다 쥐고 있어서 하소연도 못했다.

그저 문형섭 부사장을 비롯한 다른 임원에게 불만을 토로했을 뿐이다.

“진짜 이제는 더 못 해 먹겠네.”

문형섭 부사장이 그를 다독거렸다.

“최 실장이 그럴 사람은 아닙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못 해 먹겠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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