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3화 (73/1,021)

#73

“지금 자네가 본 것은 대주주 지분 매각 뉴스일 뿐이고, 아직 아무것도 결정 난 것은 없어.”

“정말입니까?”

“그냥 그렇게만 알게.”

조성돈 팀장도 굳은 안색을 한 채 더 말해주지 않았다. 그 역시 최민혁에게서 계속 구조조정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진행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도대체 최두진 사장은 왜 지분을 매각했을까?’

* * *

이정원 과장은 다른 일도 하지만 주로 STB 사업부를 관리하면서 이쪽 직원과는 꽤 친했다. 그는 실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각 파트별로 아는 인맥이 꽤 있었다.

최두진 사장의 지분 매각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차에 마침 이들 중에 공채덕 과장에게서 연락을 받자 머뭇거리다가 결국 본사 옥상 휴게실을 찾았다.

공채덕 과장은 평소와는 달리 굳은 안색을 한 채 이정원 과장을 휴게실 구석으로 데려갔다.

“이 과장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자꾸 이상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오늘 신문에 대주주가 바뀌었다는 소리도 있고요. 도대체 회사 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게…….”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이정원 과장.

숙맥인 공채덕 과장도 비록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과장님, 최소한 저에게는 말씀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제까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정말 열심히 도왔습니다.”

“…….”

이정원 과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말해도 공채덕 과장에게 충격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라면 쉽게 포기할 공채덕 과장도 이번만큼은 집요하게 매달렸다. 회사에 불만이 많아도 어지간해서는 토로하지 않은 공채덕 과장도 이제는 쌓인 앙금을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도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사전에 뭘 알아야 이직을 알아보던 할 것 아닙니까. 이건 뭐 윗선에서는 그냥 입만 다물고 있고, 우리 임 부장님은 자꾸 혼자 어디로 나갑니다. 김 상무는 계속 임 부장님을 불러서 따로 이야기만 하고, 천 과장 그 새끼는 계속 이죽대는데, 아주 죽겠습니다.”

이정원 과장도 결국 입을 열고야 말았다.

“지분은 매각한 최두한 사장은 이미 KM 전자에서 손을 뗐습니다. 즉 김현우 상무도 끈 떨어진 신세이니, STB 사업부 매각의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진 겁니다.”

“저, 정말 우리 사업부를 다 매각한다는 말입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아니,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왜 아무도 해주지 않는 겁니까?”

버럭 소리친 공채덕 과장의 입을 다급하게 막은 이정원 과장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공 과장님, 지금 여기서 그렇게 소리치면 어떻게 합니까?!”

아닌 게 아니라 옥상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다른 임직원은 의아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 눈치 빠른 이는 갑자기 대주주가 바뀐 정보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 중이었다.

착잡한 이정원 과장은 공채덕 과장을 위로해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뒤늦게 현실을 파악한 공채덕 과장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휴게실을 떠나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최 실장님이 오고 나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잖아.’

* * *

천선구 과장은 이미 김현우 상무에게서 돌아가는 상황을 들었기에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창백한 공채덕 과장을 비웃었다.

“공 과장님도 요즘 정신 차렸나 봅니다. 세상 만만하지 않지 말입니다.”

“지금은 당신이랑 할 말이 없습니다.”

“쯧쯧, 그러기에 줄을 잘 잡아야지. 썩은 줄을 잡고 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지.”

“자꾸 이럴 겁니까.”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늘 시키는 일만 할 줄 알지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니까.”

“이 양반이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어, 이거 잘하면 한 대 치겠네. 어디 한번 때려 봐요.”

얼굴을 들이민 천선구 과장은 숨김없이 그대로 공채덕 과장을 자극했다. 그는 평소에 공채덕 과장의 능력을 시기해서 좋아하지 않았다.

공채덕 과장 역시 천선구 과장이랑 상종조차 하기 싫어서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그는 김홍준 과장을 만나서 지금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서는 임기석 부장을 직접 찾아갔다.

임기석 부장은 요즘 최민혁 실장의 지시에 따라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도대체 돌아가는 영문을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공채덕 과장에게서 대주주가 바뀐 정보를 듣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게 정말이야?”

“기획 팀의 이 과장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말도 안 돼!”

그는 펄쩍 뛰었고, 오혜정 비서에게 전화해서 최민혁 실장과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그런데 최민혁에게서 바로 뜻밖의 지시를 받았다.

[임기석 부장님이 STB 사업부에서 믿고 신뢰할 만한 이들을 모두 추려서 저녁 8시까지 소회의실로 데려오세요.]

[?]

[평소에 임 부장님이 믿고 따르는 직원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들을 설득해서 다 데려오란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는 영문을 몰라서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최민혁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최민혁의 실력에 대해서는 익히 몸으로 경험해서인지 흥분을 가라앉혔다.

‘뭔가 있구나. 설마 STB 사업부 매각 목적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 * *

임기석 부장은 당황한 공채덕 과장을 비롯한 자신이 믿을 만한 직원을 하나씩 골라냈다. 그 숫자는 고작 열 명이었다.

다른 직원은 모르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영향을 미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나머지는 김현우 상무의 영향 아래 놓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원래는 STB 사업부 내에도 꽤 괜찮은 사람이 있었지만, 김현우 상무의 압박에 하나둘씩 그만두고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임기석 부장도 도깨비장난 같은 최민혁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막상 사람을 선별하고서는 참담하기만 했다.

막상 STB 연구소에 대한 실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OS, 펌웨어, 하드웨어 쪽의 상당수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천선구 과장의 주도에 따라서 김현우 상무에게 줄을 댔다.

그들은 업무 시간에도 제대로 일은 하지 않은 채 김현우 상무에 줄을 대기 바빴다.

심지어 김현우 상무 아내가 행사할 때면 우르르 몰려가서 그 일을 더 매달렸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번 VCR 개발처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대다수 접을 일이 많았다.

그러니 매사 의욕이 떨어지고, 김현우 상무 리더쉽에 불만을 토로하기 바빴다.

김현우 상무는 문제가 터지면 그 일을 밑에 실무자에게 떠넘겨서 다 회사에서 내쫓았다.

매사에 휘둘리기만 하던 임기석 부장은 뒤늦게 자기 주변을 돌아보고서야 탄식했다.

‘언제 이렇게 된 것일까?’

임기석 부장은 불안한 십여 명과 같이 대회의실로 가면서도 떠나면서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했던 이들을 하나 둘씩 떠올렸다.

넋이 나가서 회의실 문 앞에서 멈춘 그를 공채덕 과장이 불렀다.

“부장님!”

“아, 미안.”

“정말 괜찮습니까?”

“어.”

* * *

정신을 차린 임기석 부장은 앞으로 어떤 처신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뒤늦게 회의실 안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회의실 안에는 두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최민혁은 한쪽에서 조용히 앉은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직 10분 전이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인원이 이게 다입니까?”

“그게 좀…….”

“뭐 그렇게 죄지은 표정을 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STB 사업부에서 작년에 그만둔 사람이 모두 스무 명이 넘는 것은 아니까. 새로 뽑은 사람은 전부 김현우 상무가 직접 손을 썼더군요. 아, 인사 비리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다 아니까.”

“…네.”

“최훈열 전무도 그 일에 손을 썼겠죠?”

“그렇습니다.”

그나마 문형섭 부사장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 혼자만의 힘으론 한계가 있었다. 오영근 사장은 최훈열 전무 압력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최민혁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그 역시 STB 사업부 매각에 손을 대면서 인력 프로필을 확인했는데, 그중에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들이 있었다.

이유를 확인하다가 뒤늦게 최훈열 전무가 이번 일에도 관여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중견 업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놀라울 것도 없다.

다만 최민혁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나니,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자격 미달인 직원은 제대로 일을 할 리도 없을 뿐 아니라, 오성 전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아마 사업 시작하기도 전에 다 털려서 망하고 말겠지. 새로운 사업을 해도 마찬가지야. 믿을 만한 인력은 단순히 면접이나 소개만으로 알 수가 없어. 이렇게 직접 부딪쳐서 경험하는 방법 외에는 없어.’

이건 오성 전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LC 전자나 대운 전자를 비롯한 한국 10대 그룹은 거의 다 비슷했던 것이다.

최민혁은 자신이 왜 최문경 부회장을 염려하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권력이나 금력을 이용한 편법 분야가 있다면 세계 최강이 바로 첫째 큰아버지니까.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견제는 없는 거야. 만약 진실을 알았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테니까.’

최민혁은 새삼 최문경 부회장의 능력을 하나 둘씩 헤아리면서 결의를 다졌다.

“저기 실장님…….”

“아, 이런. 사람을 기다리게 했네요. 자,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자리에서 일어난 최민혁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열 명의 직원들을 보면서 피식 웃고는 말했다.

“너무 어려울 것은 없어요. 제가 하려는 말은 딱 한 가지니까.”

공채덕 과장이 슬쩍 말했다.

“실장님, 제가 듣기로 STB 사업부 매각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여기까지 온 마당에 최민혁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맞습니다.”

열 명의 임직원은 다들 당황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사업부 매각은 그룹 본사에서 결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 본사에서 이미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울한 그런 구조조정은 아니에요.”

“네?”

역시 상식을 벗어난 최민혁 주장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그 당사자가 오성 전자가 될 테니까요. 특히 계약상에 고용 승계 문제를 명시해서 여러분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오성 전자의 직원이 될 겁니다.”

“…네?”

공채덕 과장은 황당해서 질문하지를 못했다. 도대체 최민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가능하면 이 일을 웃으면서 해결할 계획이었다.

‘이미 이익은 충분히 봤으니까.’

“여러분도 요즘 일자리가 넘쳐나서 갈 곳이 많은 것을 잘 알 것 아닙니까. 물론 오성 전자 같은 대기업은 예외죠. 거긴 경쟁이 치열하니까.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에게 오성 전자 직원이 될 기회를 줄 생각입니다.”

그는 오른손을 펴서 붉은 천으로 덮여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쪽에 가서 앉으면 여러분은 오성 전자 직원이 되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게 될 겁니다. 그건 STB 사업부 매각 조건에 포함되는 일이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리고 다른 왼팔을 펴서 파란 천이 깔린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곳에 앉으면 여러분은 기존처럼 KM 전자 직원이 되어서 미래를 위한 도전을 하게 될 겁니다. 아마 쉽지 않은 미래가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겁니다. 월급도 새로운 아이템 시작 전에 삭감될 겁니다. 대신 그 고난을 극복한다면 아마 평생 월급쟁이로는 만져보지 못한 돈과 명예를 얻게 될 겁니다.”

“…….”

다들 상상도 못한 제안에 침묵했다.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영문을 몰라서 서로 눈치만 봤다.

하지만 임기석 부장만큼은 최민혁의 장난스러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대단한 비디오 특허를 이용해서 STB 사업부를 매각하려는 최민혁 계획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김현우 상무는 덤이겠지.’

의문은 구름처럼 떠올랐지만 자신감 넘치는 최민혁의 얼굴을 보자 단순히 생각만으로 이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도저히 한 가지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비디오 특허가 고작 그 가치에 지나지 않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문득 그 비디오 특허가 아직은 표준화에 채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어렵다는 말일까?’

자연스럽게 최민혁 실장이 취임한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하나씩 떠올렸다.

처음에는 다들 대학교 1학년 기획실장을 보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최훈열 전무의 구속은 그중에 가장 압권이었다.

그 일이 일어난 이후에 KM 전자 분위기는 군기가 잔뜩 잡힌 군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부정과 부패는 굳이 누가 나서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되었다.

가망이 없는 미래 속을 살던 공장 임직원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물론 외부적으로 최훈열 전무 재판 때문에 KM 전자의 악명은 더 가파르게 올라갔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결속이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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