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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42화 (42/1,021)

< #042 >

“박 차장님도 이제는 느낄 겁니다. 그 X 리포트를 마냥 거짓으로 보기 힘듭니다. 정 의심나면 다시 한 번 확인해보세요.”

박상기 차장은 물론이고, 다른 팀원도 당시 기획팀을 발칵 뒤집어 놓아서 분석했던 X 리포트 파일을 찾아서 오성 전자 부분을 추가해보고서야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맙소사.’

하지만 정성근 대리만큼은 다른 팀원 눈치도, 오성 전자 대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뽑은 협력 업체 매출과 현황에 대해서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미소만 지었다.

***

조성돈 팀장의 2차 보고서는 1차 보고서와는 달리 KM 전자가 처해있는 상황에 관한 내용이었다. 따라서 작성 자체는 어렵지가 않았다.

최민혁은 2차 보고서를 받아서 꼼꼼하게 확인하다가 영 오성 전자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느꼈지만 지금 자신의 역량을 잘 알았다.

‘플랜B가 하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봐.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줄 테니까.’

거기에 정성근 대리 이야기와 제안을 일단 우선 계획한 일이 우선이라서 당장은 킵 해두기로 마음먹었다.

“정 대리가 좀 괴팍하기는 하지만 함부로 나서는 친구도 아닌데, 일단 지켜보죠.”

신제품 양산화와 관련된 자세한 사정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조성돈 팀장은 오히려 최민혁에게서 자기가 했던 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듣자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대신 스트레스 받는 임직원을 위해서 기꺼이 법인카드를 내놓았다.

“쌓인 감정을 놔두면 팀워크에 해가 될 테니, 이걸로 오늘 저녁에 회식해서 직원끼리 쌓인 감정을 푸세요.”

“감사합니다.”

최민혁도 배종대 과장의 불만을 잘 알았기에 조성돈 팀장이 알아서 내부 정리를 잘한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로 회식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몰래 기획실 근처를 지나가면서 팀 분위기를 살폈다.

듣기로 원수처럼 싸우던 배종대 과장은 정성근 대리를 목을 비틀면서 같이 놀고 있었다.

“정 대리, 넌 진짜 천재야. 기획안을 이따위로 올리냐. 누가 보면 사업부 기획팀장이라고 착각하겠다.”

실제로 정성근 대리가 작성한 TV 사업부 협력 업체 리스트는 그들의 실적, 이익을 비롯한 미래 비전까지 다 담았다.

그런 자료를 받은 배종대 과장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회식 한 번 한 걸로 어제 있었던 불화를 다 잊어버린 배종대 과장의 대범함은 흔한 것은 아니었다.

박상기 차장은 중간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었다.

“두 사람 벌써 화해한 거야?”

“화해는 무슨 언제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조성돈 팀장도 남아있는 아픈 상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가족 같은 기획팀 분위기 덕분에 남은 갈등의 잔재조차 없었다.

최민혁은 자신은 절대로 저런 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확실히 분위기가 좋네. 어쩌면 저런 팀원 덕분에 최훈열 전무의 압박에도 한 사람의 이탈자 없이 견뎠을 거야.’

***

최민혁은 독특한 기획팀 분위기를 살피면서 본격적인 계획을 진행하기 이전에 우선 지금까지 묵혀둔 총알부터 확인했다.

“요즘 오성 전자 주가는 어때요?”

늘 굳어 있던 김명준 과장이 입가에 미소를 가득 지었다.

“18만 원입니다.”

“8만 원이라, 제법 조정을 많이 받았네요.”

“아닙니다. 18만원입니다.”

평균 매입 단가보다 두 배 조금 더 오른 주가에 최민혁도 다시 자신의 기억을 쭉 돌이켜보면서 화들짝 놀랐다.

“네?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최근 정부에서 증시 부양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코스피 자체가 폭등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혜택을 봤습니다.”

정확히는 이 소식만이 다가 아니었다.

X 보고서 사태가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면서 적지 않은 해당 기업은 다 무시했지만 그렇지 않은 몇몇 기업은 단기 차입금에 대해서 다시 확인해서 기존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라면 묻지 마 차입금이라고 해서 장단기 차입금을 마구잡이로 끌어왔을 기업이 자신의 차입금 문제를 재검토하면서 기업 내부 사정이 바뀌었다.

무리한 차입금으로 말미암은 이자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기업 주가는 최민혁 예측과는 달리 코스피 상승세에 올라탔다. 그중에 가장 큰 혜택을 본 기업은 역시 작년만 순이익 1조가 넘어서 현금이 넘쳐나는 오성 전자였다.

최민혁은 자신이 한 일이 일으킨 나비효과를 깊이 생각했다.

다만 확인이 필요해서 한 달 안에 발행된 신문을 펼쳐서 꼼꼼하게 기사를 확인했다.

김명준 과장은 매의 눈으로 최민혁이 보는 신문과 같은 신문을 들고 옆에서 같이 기사를 차분하게 확인했다.

하지만 그가 확인한 것은 한국 코스피 전체 종목 주가였고, 더 있다면 코스피와 관련된 다양한 경제 관련 기사였다.

-현재 코스피 상황은 사소한 악재만 나와도 큰 폭으로 주가가 내려갔고, 지난주에는 악재가 없어서 다행히 큰 변화가 없었다.

-뉴욕 주가가 폭등한 것 때문에 국내 주가 역시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예상했다.

-불행히도 최근 검찰의 작전 세력 죽이기와 KM 그룹의 차입금 스캔들 덕분에 중소형 종목은 모두 내림세를 계속 이어서, 금리가 너무 높아서 증시로 자금이 흘러가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김명준 과장은 다양한 기사 때문에 전체 흐름을 읽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채 신문 삼매경에 빠진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정말 신문 보고 미래 경기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일까?’

뜨거운 시선에도 최민혁은 비록 구치소는 아니지만, 이 시점이라면 뭔가 떠오르지 않을까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딱 이 시기에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옳지, 계속 코스피가 잘 나갈 리가 없어. 정부 주가 부양 어쩌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코스피 주가 9백 선이 붕괴하였구나.’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증시를 살려보겠다는 정부 정책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코스피 상황은 더 나쁘게 흘러갔다.

최민혁은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고 나자 코스피 조정 국면이 몇 개월 동안 지속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김 과장님, 일단 오성 전자 68만 중에 60만 주는 2주 안에 다 처리하세요.”

“네? 하지만 지금 분위기 봐서는 다시 코스피 1,000을 넘겨서 1,200, 아니 1,300까지 갑니다. 우영민 대리, 아니 우 과장도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최근 조직이 자리 잡히면서 과장으로 승진한 우영민 과장까지 언급한 김명준 과장도 이전과는 달리 주식 수익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최민혁은 주식에 투자해서 패가망신하는 이유가 바로 저 집착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주식에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 수익을 지키는 겁니다. 괜히 더 큰 미련에 집착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봅니다.”

“하지만 이번 주가 부양은 정부 역시 대기업 제품 인하에 대한 보상책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정부가 저렇게 적극적인데, 상황이 나빠지겠습니까?”

“지금까지 주가가 오른 것은 그 소문 때문인데, 실제로 주가 부양 정책이 뭔지 나온 것은 없습니다.”

주가 부양에 관한 언론 기사는 실제로 정부어천가를 불렀다. 코스피에 대한 장밋빛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끓어 올랐다.

“......정부 경제 담당자가 바보가 아닌데, 엉뚱한 짓을 하겠습니까.”

최민혁은 마치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처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걔들 등신 맞습니다. 그리고 신문을 그냥 읽으면 안 됩니다. 그 기사 내면에 숨겨진 의미를 읽어야죠. 아니 김 과장님이 증권 회사 직원이라면 정부안을 따르는 척하지만 차익 매물을 정리할 시기를 호시탐탐 노릴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마침 그 기회를 주는데, 그냥 있겠습니까. 얼씨구나 해서 다 던질 겁니다.”

그래도 김명준 과장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주가 부양책에 대한 자세한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혁신적인 정책이 아니고는 소용없습니다. 우리만 해도 오성 주식을 팔고 싶죠. 이런 사람 심리까지 고려할 때, 신문 기사를 너무 맹신하면 안 됩니다.”

신문을 읽고 시사 상식을 넓히라는 것인지, 신문을 믿지 말라는 것인지 모호한 대답에 김명준 과장도 결국 입을 다물었다.

“......”

그는 너무 허탈해서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실장님은 그게 보입니까?”

“신문 기사를 많이 읽어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도 이렇게 최민혁이 강하게 나오자 무조건 반대하지 못했다. 일단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판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알겠습니다.”

“네. 다시 말하지만 60만 주를 2주 안에 모두 정리하고, 나머지는 8만 주는......주가 부양 정부 발표가 나는 날에 다 던지세요.”

보통이라면 최민혁도 여기서 끝내겠지만, 구체적으로 더 지시했다.

“아, 물론 오성 전자 주가가 크게 흔들려야 하니, 매수세가 옅어지는 기회를 이용해야 합니다. 딱 한순간이면 됩니다. 그러면 갈등하는 세력이 차익 매물을 같이 다 던질 겁니다. 결국, 코스피 내림세로 추세가 바뀔 겁니다.”

“......”

그도 더 코스피 예측이 아니라 코스피 자체를 뒤흔드는 계획에 의문이 더 많았지만 최훈열 전무 몰락 작업을 지켜봤기에 더 질문하지 않았다.

“이 Y 리포트는 한영일보를 통해서 정부 발표가 난 후에 틈을 봐서 발표하라고 지시하세요. 코스피 주가가 완전히 폭락하게 되면 최두진 사장을 만나서 KM 전자 지분 매입을 타진해봐야 하니, 미리 준비해두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도 바보가 아닌데, 최민혁이 지금 무슨 계획을 진행하는지 깨닫고는 굳이 왜 그런 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여기에 또 다른 계획 한 가지를 머릿속에 구상했지만, 그것까지 당장 말하지는 않았다.

‘코스피 하락은 결정이 난 일이지만 KM 전자 폭락은 확신할 수가 없어. 계획대로 된다면 좋을 텐데, 지켜봐야겠어.’

***

최민혁이 계획한 일은 겉으로 봐서는 그저 단순한 작업 같지만 실상 일어날 일에 기름을 더 얹어서 불을 붙이는 것이다.

미래 비전과 이익이 탄탄한 오성 전자 같은 종목은 저가 매수가 들어와서 다시 반등하겠지만, KM 전자는 좀 다를 것이다.

KM 전자 주가는 코스피 하락에 따른 수급 불균형과 암울한 회사 미래 때문에 폭락에 폭락을 거듭할 것이다.

최근 승진한 우영민 과장은 Y 리포트를 읽으면서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합니다.”

“내가 주식을 잘 몰라서 그런데 정말 계획한 대로 될까? 만약 이대로 안 되면 손해가 적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손해라기보다는 볼 이익이 좀 줄어드는 거죠. 그런데 만약 KM 전자 지분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KM 전자 신제품이 나오면, 주가는 폭등할 테니, 그 시세차익이 더 클 겁니다.”

“이거 주가 조작 아닐까?”

“직접 KM 전자에 손을 댄 것도 아니고, Y 리포트는 X 보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이미 어지간한 증권회사에서 익히 다 아는 사실입니다. 특별한 회사 내부 정보도 아닌데, 그걸로 이익 봤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 과장 자네 처음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잖아.”

그는 지난 자기 의견을 슬쩍 바꾸었다.

“지금까지 계속 연기된 규제 완화 정책은 내부적으로 말이 많아서 재료로서 가치가 많이 사라졌고, 문제는 코스피가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반발 매도세가 생각보다 강할 겁니다.”

“우 과장, 무슨 말이 그래?!”

어깨를 으쓱한 우영민 과장도 최근 증권가에 떠도는 몇 가지 찌라시를 떠올렸다.

“신용한도 확대, 위탁증거금요율 인상같이 핵심적인 내용은 다 빠졌다는 소리를 믿지 않았는데, 실장님 지시를 들어보니 그게 또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빠지면 소용이 없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빠지면, 이익을 본 세력이 이때다 하고 막 던지겠죠. 오성 전자도 그런 분위기 때문에 매수세가 별로 없을 텐데, 8만 주를 던져버리면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기름에 끼얹은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혹시 큰 문제는 안 되겠지?”

“던져 봐야 알죠. 이 Y 리포트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만약 계획대로 코스피 폭락하면 KM 전자 사들이기에는 딱 좋습니다.”

“알겠어. 하지만 말이 없도록 조심해.”

“어차피 차명 투자 회사를 통해서 주식 물량이 나가고, 심지어 증권사의 여러 채널들을 통해서 매도되는 것이라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외국계 증권사가 하나둘도 아닌데, 누가 의심합니까?”

“알겠어. 가만 그런데 최 실장님은 그런 소식을 어떻게 알았을까?”

“저야 모르죠. 어쩌면 재정경제원에 아는 인맥이 있을 수도 있죠. 그것도 꽤 고위층이어야 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김명준 과장은 눈만 끔뻑거리면서 최민혁 일상을 돌아보았다. 딱히 출퇴근 이후에 꾸준하게 운동하는 것 외에는 정말 특별한 것이 없었다.

“혹시 이런 내용을 신문 보고 예측할 수 있을까?”

“보스도 참 바보 같은 소리합니다. 신문에 다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골라내느냐가 관건입니다. 실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걸 알면 주식의 신입니다.”

왠지 최민혁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김명준 과장은 혀를 차면서 별다른 질문을 더 하지 않았다.

***

< #04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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