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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사육의 길
“밀라니아 님이?”
“…….”
“육아를 한다고요?”
“사육.”
밀라니아는 우아한 말씨로 정정했다.
“육아가 아니라 사육을 하는 거란다.”
체라의 얼굴이 거대한 불신에 잠겼다.
“어쨌든요. 밀라니아 님의 육아 솜씨가 처참한 건 온 마녀가 다 아는 사실인데요.”
그 말을 모른 척하며 밀라니아는 새장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창살을 이빨로 뜯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여전히 잘근거리는 그레칸은 입술이 침으로 젖어 눅진거렸다.
“……더럽구나.”
“원래 뭐든 생물이 새끼 때는 좀 더러워요. 키우실 수 있겠어요?”
걱정한 건 언제고, 꼴 보기 싫은 늑대 수장을 엿 먹인다는 생각에 흥미진진해진 체라가 그레칸을 흘끔거렸다.
“그나저나 늑대는 뭘 먹여야 하나?”
“비비 주는 거 주면 될까?”
체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건 관심 없다는 태도라 밀라니아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래.”
체라가 떠나고, 밀라니아는 새장을 가지고 맨 꼭대기에 있는 대마녀의 방으로 이동했다.
천장과 이어진 줄 끝에는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진 고리가 있었다. 원래 새장이 걸려 있던 곳이었다.
밀라니아는 고리에 그레칸이 든 새장을 걸어 두었다.
“그러고 보니 비비 이후에 살아 있는 게 들어간 건 처음이구나.”
비비는 거대한 매였다.
상처 입은 새끼 매를 치유해 주자 떠나지 않고 남아 그녀의 반려동물이 된 새.
“크르르르…….”
새삼 추억에 잠긴 밀라니아를 향해 그레칸이 사나운 목울음을 울렸다.
납치당한 셈이니 긴장으로 피곤할 텐데도 그런 기색일랑 없이 사나웠다.
시간이 지나도 그녀에 대한 그레칸의 적의는 작아지기는커녕 커지는 것 같았다.
“싫어하면 내가 널 싫어해야지, 네가 날 왜 싫어하누?”
밀라니아는 그레칸이 못마땅해서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그래서 혼란스러웠지.
집요한 그레칸과 의뭉스러운 르베리안즈. 그들에게 당한 기억이 자신에게는 이렇게 생생한데, 회귀한 세상에서 그들은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원수가 분명한데 본인이 왜 원수인지 모르는 원수라.
답답해서 바위에 머리를 찧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어째서 회귀할 때마다 그레칸의 성질머리는 점점 더 사나워지는 걸까.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영혼은 기억한다는 건가?”
어차피 망가진 세상이니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놀랍지 않았다.
“컹, 컹, 크르렁! 컹컹컹, 크어어엉!”
밀라니아가 혼잣말을 하자 그레칸이 못마땅하게 울부짖었다.
밀라니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시끄럽구나.”
“크르렁, 컹컹컹컹!”
“입.”
“…….”
마녀의 술을 걸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만족스러워진 밀라니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레칸을 납치하기 위해 아침도 먹지 못해서 배가 아주 고팠다.
밀라니아는 그레칸에게 등을 돌린 채 마녀목의 잎사귀와 사과를 씹어 먹었다.
다 먹은 뒤에는 모자란 수면량을 보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밀라니아는 침대 위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컹컹컹, 크르르르르르, 컹컹!”
밀라니아는 눈을 번쩍 떴다.
“크르르르, 컹! 커엉컹컹!”
울음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아직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한 밀라니아의 금안에서 귀기가 흘러나왔다.
새장 안에서 그레칸이 울부짖고 있었다.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탓에 새장이 떨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시간을 확인하자, 마녀의 술을 걸어 둔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근데 벌써 마법이 풀렸다고?”
마녀의 술은 상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반나절은 지속할 수 있었다.
‘수장들은 힘이 강하니 만큼 오래 지속되지 않더라도, 아직 인간으로 탈태하는 방법도 모르는 새끼 늑대 정도야 반나절은 너끈할 텐데.’
상황을 파악한 밀라니아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빌어먹을 세계인지고…….”
이놈의 세상은 어떻게 된 건지 균형이 아주 지랄 맞았다.
대마녀 밀라니아는 여주인공의 치료약으로써 죽어 줘야 할 운명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절대자 중 한 명인 그녀는 남주인공들에 한해서는 그 힘이 제한당했다.
이건 몇 번이고 그들과 싸워 본 그녀가 몸으로 체득한 이 세계의 법칙 중 하나였다.
밀라니아는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것도 원수 중의 원수인 그레칸의 울부짖는 소리 때문임에야.
“크엉, 컹컹, 컹컹컹!”
‘마녀의 술을 건다고 해도 금방 풀린다면 다시 시끄러워지겠지.’
“컹, 컹, 크르렁, 컹!”
밀라니아가 다가오자 그레칸의 짖는 소리가 한층 격렬해졌다.
밀라니아는 새장을 고리에서 뺐다.
드륵.
방문을 열고 새장을 던졌다.
쿵!
새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컹?”
“나가서 짖거라.”
잠이 부족하여 평소보다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동자는 얼음으로 빚은 것처럼 싸늘했다.
그레칸이 새장을 씹어 먹을 것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크릉, 커어어어……!”
탁.
문을 닫자 소리가 차단되었다.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얇지만 따뜻한 이불을 목 아래까지 끌어와 덮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레칸에 대한 생각은 말끔히 지워 버린 후였다.
* * *
네 시간 후, 부족한 수면 시간을 채운 밀라니아가 눈을 떴다.
금빛 눈에서 온화한 빛이 흘러넘쳤다.
“잘 잤군.”
머리맡에 두었던 물을 홀짝이며 머리를 기울였다.
“뭔가 잊은 것 같은데.”
한참을 생각에 잠기고서야 떠올랐다.
“아, 그레칸.”
‘다시 시끄러워지겠구나.’
그런데 생각보다 조용했다.
‘뭐지?’
문을 조금 더 열어젖혔다.
밀라니아는 새장 앞에 무릎을 쪼그려 앉았다.
몸을 웅크린 새끼 늑대에게선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째서 조용한가 했더니 잠이 들었구나.
“조…….”
습관적으로 혼잣말을 하려던 밀라니아는 그레칸이 다시 깨서 시끄럽게 굴까 봐 입을 다물었다.
‘조용하니까 좋구나.’
철창을 옮길까 하다가 역시 그레칸이 깰까 봐 그만두었다. 대신 그레칸을 유심히 관찰했다.
시커멓고 까칠한 털로 뒤덮인, 영락없는 새끼 늑대였다. 못 먹어서 왜소하고 꼬질꼬질한 늑대.
꼬리 옆에 빼꼼 나온 얼굴은 주둥이만큼은 매끄럽게 쭉 뻗어 있었다.
밀라니아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레칸을 구경했다.
대부분의 전생에서는 그레칸과 르베리안즈를 성체 때 만났던 터라 그녀는 그들의 인간형 모습이 더 익숙했다.
‘이 짐승이 나중에는…….’
미추 같은 건 천 년을 살아온 밀라니아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지만 퍽 봐 줄 만하게 생겼던 청년 그레칸을 떠올려 보았다.
역사상 가장 잘생긴 미남으로 손꼽는 8대 황제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얼굴이었던지라, 봐 줄 만한 것보다는 나을지도 몰랐다.
밀라니아는 청년 그레칸보다 새끼 늑대의 생김새가 더 마음에 들었다.
새끼 주제에 제법 앙칼지게 굴고는 있지만 지성체로 취급되지 않는, 마녀의 생태로 따지면 갓난애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래 봤자 어리고 약한 수인.
‘그래. 그레칸은 어차피 새끼다.’
아무리 난리를 쳐도 도망가지 못하고, 이 망가진 세상이 완전히 미쳐 날뛰지 않는 이상 하루아침에 스무 살을 더 먹거나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의 그레칸은 그녀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비처럼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굳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말이다.
‘비비 때에는 어떻게 했더라…….’
방법이고 뭐고 없이 수월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그녀 앞에서 얌전해지곤 했으니.
‘비비는 어릴 때 이렇게 유난스럽지 않았지만.’
먹이고 놀아 주고 재워 주었을 뿐.
밀라니아는 팔짱을 끼고 관자놀이를 괸 채 고민에 빠졌다.
첫 번째로 우선, 음식, 잠자리, 옷……은 필요가 있나?
두 번째는 놀거리? 비비와 놀아 줄 때는 보물찾기를 많이 활용했다.
비비가 좋아하는 물건을 숨긴 후에 찾아오는 놀이였다. 그러니까 놀이 겸 훈련이려나?
세 번째. 음.
슬슬 머리를 쓰는 게 귀찮아졌지만, 세 번째까지는 채워야 할 것 같아 밀라니아는 좀 더 생각을 이어 가기로 했다.
그레칸은 늑대기이는 하나 인간 말을 할 수는 있으니.
‘말을 가르쳐 볼까.’
세뇌를 하려면 대화가 필수지.
밀라니아가 관찰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잘 자던 그레칸이 눈을 번쩍 떴다.
나름 계획을 세웠다고 뿌듯해진 밀라니아는 그레칸을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웃는 마녀에게 침 뱉지 못한다지 않누.’
“킁! 크릉! 컹컹컹컹, 커어어어엉!”
그레칸이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미소를 허물어뜨린 밀라니아가 아무렴 어떻겠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예외도 있을 테니까.’
근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탓인지, 밀라니아는 세상 만물에 호불호가 뚜렷하지 않았다.
마녀의 근원은 자연. 나무에서 태어난 대마녀의 기질은 자연을 그대로 빼닮았다.
무엇이든 그러려니 하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려보낼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늑대족과 박쥐족만 그나마 ‘싫은 축’에 속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싫어하는 것이 생겼다.
늑대족과 박쥐족 역사상 최고의, 또는 최악의 젊은 수장.
그레칸과 르베리안즈였다.
[마녀야, 심장을 내놓아라.]
무심한 눈으로 당당하게 요구했었지. 첫 만남부터 그레칸은 재수 없는 말을 찍찍 뱉어 댔다.
[이제 죽을 몸, 그 몸의 심장으로 곧 죽을 요정을 살릴 수 있다니 좋은 거잖아.]
고작 스무 살을 조금 넘긴 어린 늑대. 천 살 가까이 살아온 밀라니아에겐 코웃음을 칠 만한 상대였다.
역사상 가장 포악한 늑대 수장이라는 그의 강인한 손이 심장을 꿰뚫을 때까지는.
[그대의 요정을 살리기 위해서 굳이 심장이 필요한 건 아니야. 일단 내 말을 들어 보려무나.]
[마녀 따위의 말을 어떻게 믿지? 잔말 말고, 내게 심장을 줘.]
그게 반복되자 이제는 그 말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새카만 머리칼과 눈동자. 본능이 우선시 된 잦은 싸움으로 여기저기 자잘한 흉터가 있는 얼굴. 사나운 성질이 그대로 돋보이는 높게 뻗은 콧날. 적의를 줄기줄기 내뿜고 있는 눈빛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했다.
위압적인 근육이 들어찬 몸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그레칸은 밀라니아의 악몽이자 짜증이 되었다.
“……이런.”
눈을 뜬 밀라니아는 숙면을 망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레칸과 르베리안즈에 대한 악몽을 꾸는 날은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레칸이 근처에 있어서인지, 악몽 또한 여느 때보다 생생했다.
“휴우…….”
한숨을 쉰 밀라니아의 귓가에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홱, 고개를 돌린 밀라니아는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두 개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어리둥절했다.
‘분명 밖에다 내놨는데?’
다급히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문이 살짝 열려 있는 채였다.
그레칸은 인간으로 탈태하지 못하는 상황.
‘어떻게 저 문을 열었지?’ 하는 의문은 지금 시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닥에 몸을 낮춘 그레칸이 맹렬한 개구리처럼 튀어 올랐다.
“이런!”
밀라니아가 재빨리 속박의 술을 걸고 몸을 피했다.
“결(結)!”
마력의 파동이 그레칸을 향해 쏘아졌다.
술은 그레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몸을 돌려 마법을 피한 그레칸이 밀라니아가 누워 있던 나무 침대에 안착했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발톱에 나뭇잎 이불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번에는 손가락을 튕겼다. 소환된 비비의 새장이 떨어졌지만 그레칸이 재빨리 피해 버려 철창은 침대 위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크엉!”
그레칸이 밀라니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고작 성인 머리통의 두세 배밖에 되지 않는 몸집이었지만 달려드는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막 그레칸이 나오는 악몽을 꿨던 밀라니아의 머릿속에 심장이 꿰뚫리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구우우!”
“크으, 크르렁!”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린 그레칸이 새를 향해 울부짖었지만 그레칸의 몸집보다 배는 큰 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카로운 부리로 그레칸의 머리를 쪼았다.
“크와아앙!”
그레칸이 한 팔을 새를 쫓기 위해 흔들고, 입은 활짝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댄다.
그레칸의 관심사는 밀라니아에게서 새롭게 등장한 거대한 새로 옮겨진 듯했다.
그 틈을 타 밀라니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새장이 그레칸의 위로 떨어졌다.
쾅!
그레칸을 놀리는 것처럼 발톱과 부리를 이용하여 쪼아 댔던 새가 푸드덕 날아올라 밀라니아의 팔뚝에 내려앉았다.
“크으아아앙!”
철창에 갇힌 그레칸이 괴성을 질러 댔다.
밀라니아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레칸을 거침없이 공격했던 새가 밀라니아에겐 얌전히 부리를 내밀고 뺨에 비벼 댔다.
부리는 서늘하고 매끄러웠다. 밀라니아가 손가락으로 새의 머리를 살살 긁어 주었다.
“구구, 구구구.”
새가 기분 좋은 듯 깃을 흔들며 울어 댔다.
새장에 갇힌 그레칸은 주둥이를 창살 사이에 끼워 놓은 채 그 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잘 놀다 왔니, 비비?”
밀라니아의 다정한 말에 비비가 고개를 끄덕이듯 부리로 밀라니아의 뺨을 위아래로 쓸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두 손을 합친 정도의 크기였던 비비는 10년이 지나자 어지간한 소년보다 큰 덩치의 매로 성장했다.
매는 독수리와 더불어 하늘의 사냥꾼, 하늘 위의 제왕이었다.
기력과 덩치를 키운 비비는 나름대로 할 일이 있는지 밖을 쏘다니다 가끔씩 마녀의 성에 들르고는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타이밍이 썩 좋았다.
손가락으로 비비의 얼굴을 긁어 주며 밀라니아가 철창에 갇힌 그레칸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은 그레칸의 눈이 샐쭉해졌다.
“크르르…….”
인간의 얼굴이 아닌데도 사납고 거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휴, 이걸 어떻게 키울지.”
무사히 영면에 이르려면 그레칸을 변화시켜야 하는 게 첫 단추인데, 처음부터 이렇게 난관에 부딪히다니.
밀라니아는 한숨을 쉬고 철창을 봉한 뒤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다시 문을 열고 밖에다 던졌다.
“크릉!”
“시간이 지나면 독기도 빠지겠지.”
일단 지켜보아야겠다.
* * *
그러나 그 후로도 그레칸의 적대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분명 철창에 가둬 두었는데 어떻게 탈출했냐는 의문은 어렵지 않게 풀렸다.
‘범인을 잡아야 하느니.’
밀라니아는 그레칸을 밖에 내두고 살짝 열어 둔 문틈으로 그레칸을 몰래 관찰하고 있었다.
비비의 방해로 공격이 실패한 그레칸은 그 뒤로도 밀라니아를 덮쳤고, 이번에는 단단히 방비를 하고 있던 밀라니아는 빠르게 대처했다.
어김없이 새장에 갇혀 쫓겨난 그레칸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뭉툭한 발로 창살을 툭툭 쳐 댔다.
‘저렇게는 탈출할 수 없을 텐데.’
새장의 빗장을 풀기 위해선 인간의 손놀림이 필요했다.
밀라니아는 의아했지만 잠자코 관찰을 계속했다.
탁, 탁.
그레칸이 발로 철창을 대충 치더니 얌전히 발을 내렸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
계단에서부터 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레칸의 귀가 쫑긋해졌다.
밀라니아는 계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소리가 자꾸 났는데.”
등장한 이는 어리숙한 생김새의 마녀였다.
마녀의 성에는 인간 세상처럼 누군가를 고용하는 일은 없었다.
자급자족을 삶의 중요 방식으로 여기는 마녀는 각자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함으로써 마녀 공동체를 굴러가게 만든다.
그런 와중에도 대마녀인 밀라니아의 주변을 청결히 하겠다고 봉사 형식으로 나서는 마녀들이 있는데, 저 마녀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강아지?’
밀라니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게 어딜 봐서 강아지라는 건가.
‘짖는 거 한 번만 봐도 정체를 알 텐데.’
쯧쯧, 혀를 차며 그레칸을 바라본 밀라니아는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끼잉…….”
밀라니아만 보면 미친 듯 짖어 대던 그레칸이 마녀를 향해서 연약한 신음을 흘리는 것이었다.
검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마녀를 올려다본다.
밀라니아는 눈을 비볐다.
‘무엇인고?’
“아유, 불쌍해라. 이렇게 갇혀 살면 클 것도 제대로 못 크는데.”
마녀의 성에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유롭게 풀어진 채 돌아다녔다.
그레칸을 평범한 개로 알고 있다면 마녀의 반응은 특이할 것도 없었다.
그레칸은 나이도 어리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여 왜소한 편이다.
얼핏 보면 강아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끼잉, 낑.”
밀라니아는 연약한 개처럼 행동하는 그레칸의 모습에 정신이 혼란해졌다.
“혹시나 해서 말린 육포 가져왔는데 잘됐다.”
마녀의 손에서 육포도 잘 받아먹었다.
밀라니아는 황당해서 고운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레칸이 짭짭대며 육포를 씹어 먹었다.
‘어쩐지, 먹이도 적게 줬는데 왜 계속 생생한가 했더니 저래서였누!’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커라, 아가.”
마녀가 철창의 빗장을 풀어 주었다. 밀라니아는 이마를 짚었다.
저이가 범인이었구나.
“린다, 여기 좀 와 봐!”
“응, 알았어!”
벌떡 일어난 마녀가 계단을 내려갔다.
타닥, 타닥.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 육포를 질겅이며 그레칸이 한쪽 발로 새장 입구를 툭, 밀었다.
많이 엇나간 불량배처럼 어슬렁어슬렁 새장을 빠져나와 밀라니아의 방을 바라본다.
문틈으로 그레칸의 ‘탈출 비밀’을 확인했던 밀라니아는 그레칸과 눈이 마주쳤다.
“…….”
“…….”
그레칸의 새까만 눈이 번들번들해졌다. 꼭 웃는 것처럼 주둥이가 벌어졌다.
쾅!
문이 굉장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레칸이 뛰어 들어왔다.
몸을 낮추어 점프를 위한 추진력을 얻고, 그대로 밀라니아에게로 뛰어들었다.
그의 벌어진 주둥이 사이에서 이빨이 날카롭게 빛났다. 뾰족한 이빨이 밀라니아의 허벅지를 물었다.
그리나 잠시 후, 짓쳐들어왔던 속도만큼 빠른 속도로 뒤로 튕겨 나갔다.
“키엥!”
영문을 모르는 그레칸의 눈동자가 튀어 나갈 듯 커졌다.
쾅!
벽에 부딪친 그레칸은 스르륵, 벽을 타고 힘없이 미끄러졌다.
“끼이잉…….”
충격이 어지간히 큰 게 아니었는지 몸에서 흉흉한 기운이 빠지고 축 늘어졌다.
밀라니아는 재빨리 그레칸이 물었던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옷감 거미의 거미줄로 자아냈던 은빛의 원피스는 허벅지 부분에 두 개의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그레칸이 얼마나 강하게 물었는지 구멍 주변이 너덜너덜했다.
허어, 밀라니아는 탄식했다.
“미리 방어 마법을 걸어 놓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구나.”
그랬다면 허벅지에도 구멍이 날 뻔했다.
그레칸의 움직임이 잽싸 마법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밀라니아는 미리 걸치고 있는 옷에 마법을 걸어 두었다.
방어의 술. 시전자를 공격하면 그 공격한 힘을 그대로 돌려받는 마법이었다.
“그랬는데도 옷에 구멍이 뚫리다니.”
아직 보통의 늑대보다도 약한 새끼 상태일 텐데. 어마어마한 집념에 밀라니아는 혀를 내둘렀다.
쓰러진 그레칸에게로 걸어가 그레칸의 목덜미를 들어 올렸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그레칸은 밀라니아가 손을 대는데도 컹컹대지 않고 축 늘어진 채 대롱거렸다.
밀라니아는 그레칸을 얼굴까지 들어 올린 채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성적으로 사육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거지.”
그레칸을 며칠 관찰하고 사투를 치른 결과 깨달은 게 있었다.
밀라니아가 요정 여주 앨리지를 위해 심장을 잃는 게 이 세계의 정해진 흐름.
이 세계는 망가진 상태에서도 그 흐름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레칸이 그녀를 향해 적개심을 내뿜는 것 또한 그 맥락이라 본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육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을 터였다.
가축처럼 사육하는 게 목표라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밀라니아는 그레칸을 어르고 달래, 그녀의 심장을 노리려는 그 행위 자체를 포기시키고 싶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 * *
복종의 밤.
단어만 들으면 은밀한 밤을 연상하는 것 같지만 물건의 이름이다.
흑계의 미치광이가 본인의 노예들을 다루기 위해 발명한 물건으로, 복종의 밤을 착용한 이는 시전자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밀라니아는 그레칸을 다루기에 딱 적절한 방법을 생각해 냈지만 차일피일 미루었다.
물건 자체는 혹할 만큼 매력적이나, 물건의 주인 말란도르가 꽤 곤란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
처음 생각했던 대로 독기부터 빼 보자고 결심한 밀라니아는 일단 그레칸을 굶기기로 결정했다.
“그걸로 될까요?”
마침 성 아래서 패밀리어들에게 먹이를 주려던 체라는 밀라니아의 계획을 듣고 시큰둥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레칸을 새장에 가두고, 다른 마녀들의 출입도 금지시킨 밀라니아는 그레칸이 짖는 소리가 지겨워 피신해 온 상태였다.
미간에 주름을 잡은 밀라니아는 팔짱을 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얼굴이다.
어깨를 으쓱인 체라가 한쪽 무릎을 땅에 꿇었다.
“이리 온.”
주먹 쥔 손등으로 흙바닥을 가볍게 두드리자 고요하던 덤불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역부족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생물의 3대 욕구를 건드리는 건 효과적일 것이니. 배가 고파서 힘이 없는데 뭘 어떡하겠누? 내 말을 듣는 수밖에.”
“그건 그렇지만 털북숭이들이잖아요? 뭐, 아직 새끼기는 해도 그 고고하신 성격에 배고프다고 무릎을 꿇을까요?”
덤불에서 작고 까맣고 축축한 코가 툭 튀어나왔다.
체라가 손바닥에 으깬 호두를 올리고 흔들자 코를 킁킁한다.
곧이어 덤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열 마리 남짓의 회색 쥐었다.
긴 몸통에 꼬리까지 더하면 그 길이가 손목에서 팔꿈치 정도 되는 쥐들이 체라를 향해 앞발을 올렸다.
찍찍.
찍찍찍.
“밥 먹자, 얘들아.”
체라는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내민 앞발에 호두를 올려 주었다.
밀라니아는 팔짱을 끼었다.
“아무리 그래도 배가 고픈데 별수가 있겠느냐. 똑똑하면 알아듣겠지.”
현 늑대족 수장 발칸은 사별한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유명했다.
그런 발칸을 존경하는 이들은 그를 ‘흔들리지 않는 발칸’이라 부르며 추종했다.
고고한 늑대.
평생 단 하나의 배우자를 맞아들이는 기상만 일컫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썩은 고기는 취하지 않는 그들의 고급스러운 입맛도 ‘고고한 늑대’의 일면이었다.
물론 이 역시 늑대족을 호의적으로 보는 이들이 붙인 말이고, 체라는 ‘뱃가죽이 등에 붙어 봐야 정신 차릴 족속들’이라 칭했다.
“그 자칭 고고한 늑대가 말이죠?”
“…….”
“뭐, 거만한 털북숭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복종한다면, 제가 먼저 나서서 그 자식들의 밥줄을 끊어 볼게요. 재밌겠는데요?”
마녀들은 청결한 걸 좋아해서 노린내를 풍기는 늑대족을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체라는 그중에서도 특히 심했다.
“포비아라는 게 알려지면 좋지 않아. 시대가 달라지고 있잖느냐. 이제는 대립이 아니라 화합의 시대란다.”
체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전대 늑대 수장이 저한테 사과하면요.”
“바르칸은 여행 갔지 않니. 아내랑.”
“그럼 돌아와서 사과해야죠.”
체라는 어림도 없다는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녀의 주위로 모여든 작은 친구들이 눈치를 보며 호두를 받아먹었다.
몇몇은 마음을 풀라며 체라의 손가락에 얼굴을 비볐다.
밀라니아와 달리 많은 패밀리어를 거느린 체라는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마법 제어력은 좀 떨어지지만 육아도 잘하고 동물도 잘 키우는 다정한 성품의 체라가 ‘핏빛의 체라’가 되어 늑대들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이유는 바로 전 수장 바르칸 때문이었다.
때는 체라 나이 열 셋.
체라는 섬세한 신경을 가진 소녀였다.
어느 날,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산에서 꽃을 따던 그녀는 머리 위로 똥이 떨어지는 참사를 겪게 된다.
바르칸이 체라가 있던 곳 바로 위의 절벽에서 볼일을 봤던 것이다.
체라의 찢어지는 비명에 바르칸은 고개를 쭉 내밀어 아래를 확인했고, 작은 마녀의 푸들거림에 다시 고개를 집어넣었다.
용케 살짝 내민 그의 얼굴을 확인했던 체라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그녀의 비명을 들은 동료 마녀들이 달려와 그 참사를 발견하기 전까지.
예쁜 꽃을 따러 나갔다가 난데없이 똥 세례를 받고, 더불어 무시까지 당한 체라의 핏빛 분노는 바르칸, 나아가서 늑대족을 향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 늑대 새끼를 애완 늑대로 만들려면 힘 좀 쓰셔야 할 거예요.”
“휴우…….”
시큰둥한 체라의 말에 밀라니아는 한숨을 쉬었다.
“애를 먹이는구나. 아예 정신 개조를 시켜 버리는 건 어떻겠누.”
막 생각했지만 시도해 볼 만한 것 같아 진지해진 밀라니아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방을 응시했다.
문득 밀라니아는 이상한 기색을 느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방에 난 창으로부터 까만 게 툭 튀어나왔다.
‘저기는…….’
그레칸이 있을 텐데.
“……어?”
밀라니아가 어리둥절해하는 순간, 까맣고 부피 있는 것이 창문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맹렬한 속도로 밀라니아를 향해 떨어졌다.
밀라니아의 얼굴색이 급변했다.
체라는 진즉 패밀리어들을 품에 안고 덤불 너머로 몸을 피한 상태였다.
밀라니아는 훌쩍 몸을 띄워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다시 땅에 닿자마자 원래 그녀가 있던 자리에 검은색 물체가 떨어졌다.
콰앙!
굉음이 울렸다. 박살이 난 게 분명했다.
밀라니아는 정체 모를 물건이 떨어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덤불 사이로 머리를 숨겼던 체라가 슬그머니 다가와 땅을 내려다보았다.
쪼르르 따라와 그녀의 발치에 모인 회색 쥐들도 찍찍대며 구경했다.
“……이거 비비 새장 아니에요?”
침묵을 깨고 나온 체라의 말에 밀라니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장이 떨어졌던 밀라니아의 방 창문에 그레칸이 작은 머리를 내밀고 아래를 구경하고 있었다.
뭉툭한 주둥이가 호선을 그리고 있다.
꽤 먼 거리임에도 비웃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인간으로 치면 히죽히죽 웃는 얼굴일까.
“짐승이 따로 없네요.”
체라가 질린 듯이 말했다.
“짐승 맞느니…….”
멍한 표정의 밀라니아가 정정해 주었다. 짐승이 따로 없는 게 아니다. 짐승이다.
“대체 새장에선 어떻게 나왔는고?”
“탈태했네요.”
“…….”
“손만.”
밀라니아가 자세히 보자 정말이었다. 창틀을 짚고 있는 손만 인간의 손이었다. 저 손으로 스스로 새장을 열고 나온 모양이다.
침묵이 감돌았다.
“……저게 가능한 것이냐?”
“새장에서 정말 탈출하고 싶었나 보죠?”
“제가 본 늑대 새끼 중에 제일 미친놈인 것 같네요. 새끼 때부터 저렇게 싹수가 노래서…… 큰일이군요.”
얼굴을 구긴 밀라니아와 달리 체라는 나름 흥미가 생긴 듯했다.
“혹시, 새끼라서 물불 안 가리고 날뛰는 걸까요?”
“아니야.”
“크면 더 하느니.”
“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체라를 힐끗한 밀라니아가 침울하게 한숨을 쉬었다.
새끼라서 그런 게 아니다. 크면 더하다. 징글징글한 남주 같으니.
“그냥 복종의 밤 쓰세요.”
“너는 늑대랑 박쥐는 싫어하면서 걔는 괜찮으냐? 그놈은 유황불에서 뒹구는 애란다.”
“적어도 여기선 깨끗하게 하고 다니잖아요.”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구나.”
쯧쯧 혀를 찬 밀라니아가 손을 들어 지팡이를 소환했다. 은빛 자작나무 지팡이가 오른손에 쥐어졌다.
“처리하고 오마.”
“네. 이참에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 놓으세요. 어디 늑대 주제에.”
꿍얼대는 체라는 밀라니아가 건방진 새끼 늑대를 혼쭐 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얼굴이었다.
이 세계의 특성상 밀라니아의 능력이 남주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니 나오는 반응이다.
밀라니아는 몸에 보호의 술을 단단히 걸어 놓고 계단을 올랐다.
속전속결.
이럴 때 하는 생각이란 비슷하기 마련이다. 밀라니아는 마법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문 뒤에 숨어 있겠지!’
“크왕!”
예상대로 숨어 있던 곳에서 튀어나와 달려드는 그레칸을 향해 침착하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대마녀의 위대한 마법은 그레칸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밀라니아는 지팡이를 가로로 잡고 달려드는 그레칸의 목을 압박했다.
그리고 달려오다가 지팡이에 맞고 뒤로 나뒹구는 그레칸의 위로 지팡이를 박았다.
“크아아아앙!”
화가 나서 버둥거리는 그레칸 때문에 휘청이는 지팡이를 단단히 쥐었다. 뱀을 잡을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늑대에게도 통할 줄은 몰랐다.
이것도 그레칸이 어리기 때문에 통할 수 있는 거다.
‘더 크면 어림없겠지. 이대로는 곤란해.’
정말 곤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