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장. 내가 누구의 아들인지(1)
모순.
서로의 이치에 맞지 않는 일. 당착, 혹은 불합리.
사실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이용해볼까 생각했다.
'브리센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맹세의 인에 브리센을 배반하겠다는 인을 하나 덧씌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경우라면 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겠지요.'
'아니면 맹세의 인 때문에 죽지 않기, 혹은 기존의 맹세의 인 무시하기, 그냥 아예 안 죽기. 뭐 이런 걸로 새 계약을 하거나요.'
'왕자님. 시스파니안은 사려 깊은 고룡입니다.'
참으로 사려깊게도 앨런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 저 말을 르메인이 물었다면 앨런은 분명 시스파니안이 너처럼 생각 없이 맹세의 인이라는 마법을 만들었을 줄 아느냐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저런 질문을 플란츠가 받았다면 왜 또 짖느냐고 답했을 터였다.
그러니 둘러둘러 고운 말을 찾아 '왜 그렇게 멍청한 질문을 하느냐'라고 대답한 것에 고마워하는 칼리안에게 앨런이 말을 덧붙였다.
'맹세의 인이 서로 충돌하지 않을 틈을 찾아보실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제 심장 거는 것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락하는 삶은 완두콩을 보며 앨런의 말을 한 번 더 떠올려 본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하시는 김에 형님께서도 요구사항 적으십시오. 들어 드리겠습니다."
"쉽게도 말하시는군."
"쉬운 일 아닌 것을 아시는 분께서 정작 본인 심장 거는 것에는 주저하질 않으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계약하자 먼저 말할 때는 언제고 하겠다 하니까 잔소리다. 만약 안하겠다 답했으면 이미 한 번 묶은 심장 왜 이제와서 아끼느냐는 소리를 했을 거다.
플란츠가 종이를 툭툭 치며 칼리안이 적어 온 것을 가리켜보였다.
"이런 내용에 대고 뭘 더 쓰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뭐든지요."
"내가 무슨 말을 적을 줄 알고."
"무슨 말이든 형님 몫을 제대로 챙기셔야죠. 똑똑하시면 뭐합니까. 장식으로 있는지 허전해서 남겨놨는지 모를 머리 달고 다니는 후작이 계약하자 들었을 때도 그냥 '해' 하고 말았을 것 같은데요."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아침부터 시비를 거는 칼리안을 본 플란츠가 짜증 가득한 얼굴을 하려다 말고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다른 말 얹을 생각 없이 에반의 계약을 수락한 것도 맞았고 그렇게 심장을 걸어놓는 바람에 일을 더 크게 만든 것도 맞았으니까.
"됐어."
그런 얼굴을 본 칼리안은, 애매하게 찌푸려진 얼굴의 파릇파릇한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눈치챈 뒤 싹 무시하며 다시 말했다.
아니, 계속 멍멍거렸다.
"워낙 욕심이 없으셔서 그런가 말은 잘 들어주시니 편하고 좋긴 하네요."
"잠깐 사람 말 하더니."
"식사 좀 더 하시라는 말도 잘 들어주시면 참 좋을텐데. 그러다 형님 정말 키 안큽니다."
"그 새를 못 견디고 짖지."
"짖는 게 아니라 많이 드시고 쑥쑥 크시라고 응원해드리는 것 아닙니까."
"내 아우님께서는 카밀론에서 뭘 꼭 키우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사춘기도 빨리 끝내주시고요."
"그만 좀."
"앞으로는 그 심장 아껴 써달라 부탁드리는 겁니다. 제가, 형님께."
짖는 소리 끝에 붙어나오는 말에 플란츠가 입을 다물었다.
그 얼굴을 잠깐 쳐다보던 칼리안의 입에서 또 낙엽 바스락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살겠다 하셨으니."
살겠다 하셨으니 제대로 살아 주시라고.
한동안 대답 없이 칼리안을 보던 플란츠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포기한 듯 포기하지 않는 듯한 묘한 목소리의 대답이 뒤이었다.
"알았어."
어쩐 일로 한 번 더 싫다 소리 없이 대답한 플란츠는, 칼리안이 준비한 장난스러운 내용을 조금도 수정하지 않은 채 서약서에 서명만 했다.
"더 쓸 말 없어."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적혀있던 글자들이 떠올라 긴 띠를 이룬 채 플란츠의 팔을 타고 올라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보던 칼리안이, 자신의 심장에도 제약이 걸리는 것을 느끼며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익숙한 느낌이 들자 실리케의 목숨을 옭죄기 위해 썼던 맹세의 인을 실리케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써먹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탓이다. 왕의 길을 걸을 결심을 굳힌 이가, 절대로 왕이 되지 않겠다 하는 이를 굳이 살려놓기 위해. 온갖 잡소리를 해가면서.
우습게도.
정말, 우습게도.
* * *
니들렌이 그랬다.
"하지 말 걸."
아르센의 일을 도운 지 하루만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런 말도 못 하네. 하지 말 걸 그랬다는 말을 살지 말 걸 그랬다는 말로 잘 걸러들어 주실 분이 계시거든. 사직서 말고 유서 받아주실 좋으신 분."
지금 저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진실 뿐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니들렌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플란츠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인 루시에게 닭고기 육포 하나를 꺼내 주었다.
"어제 그렇게 많은 서류를 처리하고 돌아갔는데 아침에 오니 또 이렇게나 쌓여 있는 게 참 신기하네요."
증원을 앞두고 카이리스 전역에서 올라오는 발칸 지원 희망서와 추천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는 피로가 몰려오는데 이미 발칸에 속해 있는 대원들 개개인의 훈련 성과 평가 기간이 겹쳤다.
"제가 군단장님 집무실 앞에서 춤이라도 추면, 아 쟤가 바빠서 미쳤구나 하고 좀 살펴봐주시지 않을까요?"
"이미 해 봤네."
"네?"
"원래 카이리스 마법사들은 다 미쳐있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만 받았네."
"네?"
"농담이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농담인가.
그 범위에 따라 굉장히 무서운 말을 들은 것 같아서 당황한 니들렌이 아르센의 덤덤한 얼굴을 애써 못 본 척하며 다시 말했다.
"마나실 군단장님께서도 참 너무하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을 어떻게 다 떠맡기실 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제이아 경이라도 불러다 주셨으니 다행한 일이지. 어제 오랜만에 퇴근도 했지 않나. 그리고 평소에 일이 많기는 해도 이렇게까지 많은 적은 처음이네. 어차피 항상 이 정도인 것은 아니고 잠시 터진 일이라서 군단장님께서도 사람을 영영 늘려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나. 업무 내용 대부분이 기밀 투성이니 잠깐 바쁘다 해서 아무나 붙여 줄 수도 없으실 테고. 그러니 군단장님 원망은 하지 말게."
푹 쉬고 와서 마음이 갑자기 너그러워진 것인지 아니면 결국 좀 더 돌아버린 것인지를 의심할 만큼, 그리고 플란츠가 봤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살 줄 아는 사람이었나 놀랄 만큼 앨런을 배려하는 말로 니들렌을 다독거려 준 아르센이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사 베른 경이 치유사 베른 경 만나러 밖에 와있으니 참고하고."
"이런 씨."
키리에의 신념 중 하나가 '나의 귀는 곧 왕자님의 귀'라는 것임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인 니들렌이, 뒤에 어떤 험한 말이 살짝 붙으려던 것을 간신히 집어 삼키며 고운 색 머리카락을 박박 흐트러뜨렸다.
"퇴근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배우게 되었으니 군단장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 아무튼, 제이아 경. 가서 일이나 하게."
멀쩡한 집무실에 아주 우연한 사고인 것처럼 벼락이 떨어졌을 때 과연 자신이 벌을 받을까 칭찬을 받을까를 잠시 고민하던 니들렌이 일단은 화를 꾹꾹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에. 갑니다. 꾹꾹 참고 일하러 갑니다아."
그리고는 아르센이 넘겨 준 서류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집무실로 갔다. 왕자와 같은 집무실을 쓰는 것은 아르센 하나로 족했으니까.
- 달칵.
그리고 얼마 뒤 집무실 문이 열리며, 베이지 색의 멋진 재킷을 어깨에 걸친 플란츠가 레릭도 없이 혼자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 그렇게 갑자기 쉰 것은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듯한 얼굴에, 핑크빛 감도는 이름 모를 보석이 박힌 타이 핀이며 같은 종류의 커프스며 오늘도 여전히 왕자다운 모습을 본 아르센이 또 무어라 한 마디를 하려 했다.
그 주렁주렁함이 칼리안의 시녀인 메를린에게 질 수 없다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플란츠를 꾸며주고 있는 레릭에 의한 것임을 아르센은 몰랐으니까.
"닫아. 알아서 다 끝낼 테니까."
그리고 또 이런 말로 할 말이 막혀버렸다.
보통 두어 번은 받아주다 짜증을 내게 마련인데 오늘은 달랐다.
덕분에 아침부터 앨런도 플란츠도 원망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아르센이 여전히 시커먼 커피를 불만스레 마시고 내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
"아직 기운이 세서, 오시는 길에 마나 감응력 좋은 마법사 만나셨으면 들키셨을 겁니다. 티가 날까 걱정하셨으면 조금 더 있다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부군단장이신 왕자님."
그렇게 말하는 아르센의 눈초리가 플란츠의 심장 부근을 향해 있었다.
"마법사 아무도 안 만났어."
"그럼 됐습니다. 오후 쯤이면 거의 사라질 테니 비밀로 하셔야 하면 오늘만 조심하시면 될 겁니다."
"······ 또 누가 있는데."
서류 하나를 펼치려던 플란츠가, 다른 것은 묻지 않고 주의만 주는 아르센을 보며 짧게 물었다. 곧바로 알아듣지 못한 아르센이 플란츠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조심해야 할 사람."
"마나실 군단장님, 제이아 경, 피츠 경, 페일튼 경 정도 됩니다. 뒤에 둘은 오늘 이 쪽에 올 일 없는 놈들이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알았어."
"아. 물론 왕자님도 포함됩니다만 이미 아실 것 같습니다."
놈이랑 맺은 계약인데 놈이 모를 리가.
말 없이 인상만 찌푸린 플란츠가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볕 잘 드는 책상 위에 늘어져 있던 루시가, 서류 말고 나 보라는 듯 애옹거리며 서류 든 손을 툭툭 쳤다.
그런 루시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올려 둔 플란츠가 서류를 살피려다 도로 루시를 쳐다봤다.
"하."
계약 내용.
루시를 보니 헛점 투성이인 듯 아닌 듯한 이상한 계약 내용이 떠오른 탓이다.
- 플란츠는 왕궁에서 나가면 카이리시스의 브리센 후작저에서 고양이 키우면서 산다.
- 칼리안은 열심히 돕는다.
"······ 생각해보니 사람 말은 아니었나."
어떤 미친놈이 그딴 내용을 써놓고 심장을 걸자 하느냐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 * *
커피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따로 이유를 들은 적 없었으나 플란츠를 생각하면 추측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았다.
둘째에게는 모든 꽃이 르니에리 같을 것이고, 셋째는 커피에서 르니에리 향을 맡고 있으리라는 것을.
"미안하구나."
지독하리만치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좀처럼 잊기 힘든 그 향기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이 실리케의 탓이 아님을 알아서, 르메인은 혼을 내는 것을 미루고 사과를 전했다.
"커피도, 생일에 걸어 둔 종이 꽃도."
미안할 것이 그 뿐이겠냐만은 다른 것을 모두 꺼내두면 오늘 하루가 부족할 것 같아 겨우 두 개를 골라내어 이야기를 했다.
"아닙니다."
르메인의 온전한 사과를 받아도 좋을 사람은 플란츠였고 르메인이 섣불리 사과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란델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칼리안은 르메인의 사과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
때문에 다시 듣게 된 사과의 말에 이번에도 괜찮다는 말을 하지 못했음을 평생 모를 르메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말씀드리고, 허락받을 것이 있어 왔습니다."
이렇게 말한 칼리안이 잠깐 고개를 돌려 호위기사 렌 쪽을 쳐다봤고, 그것을 본 르메인이 주변을 물렸다.
그 후 칼리안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레이 브리센을 수도로 불러와 할 일이 생겼다고. 그 이유와 함께.
르메인이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플란츠가 에반과 맹세의 인을 맺은 일은 알고 있었으나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그것에 대해서도 할 말을 찾지 못하겠는데 자신의 아들이, 물론 이유가 있다고는 하나 누군가의 생명을 취할 계획을 만들었다 하니 어떻게 쉽게 대답하겠는가.
"어찌 생각하고 어찌 답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허락하시고 잊으시면 됩니다."
"쉬운 일은 아니구나."
"적어도 이 일에 대해서는 전하를 탓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플란츠 형님도."
선을 명확히 그어놓은 면죄의 말이 차라리 듣기 편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저렇게 대답하는 것도 안다.
"······ 미안하구나."
그래서 르메인은 대답할 수 있을 만한 말을 골라 어렵게 건넸다.
칼리안은 그냥 그 말을 듣지 못한 척 다른 대답 없이 드미레아가 골라낸 네 명의 새로운 변경백 후보를 건넸다. 비밀리에, 특히 플란츠를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절대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스럽게 검토하고 결정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세크리티아의 상황을 한 번 더 확인해 볼 생각이었으므로 엘프들의 어머니 나무를 찾아가 볼 예정이라는 말은 아직 하지 않았다. 르메인 역시 데블란의 요구사항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지를 묻지 않았다. 칼리안이라면, 때가 되었을 때 알아서 말을 해 줄 테니까.
오래지 않아 르메인과의 대면을 마친 칼리안이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앨런을 잠시 만나볼까 하다 오늘은 그냥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발을 돌렸다.
빌헬름 관에도 들르지 않고 그 길로 다시 체르밀 궁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리고 서 있는 누군가를 알아 본 칼리안의 걸음이 그 자리에 딱 멈췄다.
그가 누구인지 칼리안만큼 빠르게 알아챈 얀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레아가 왜······. 오늘은 대련 일정이 없습니다, 왕자님."
모르지 않았던 이야기에 고개만 끄덕이는 사이, 가까이 온 드미레아가 칼리안의 앞으로 와 예를 올린 뒤 바로 말을 꺼냈다.
"검을 수리하러 갔다가 어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일로 왕궁을 찾았는지 물으려던 칼리안이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제대로 된 인사의 말도 없이 곧바로 튀어나온 그 말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탓이다.
칼리안은 한동안 드미레아를 보고 서 있다 조용한 목소리를 냈다.
"얀. 잠깐만 얘기하고 들어갈게."
자신을 쳐다도 보지 않는 드미레아와 그런 드미레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칼리안을 보던 얀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비켰다.
멀어지는 얀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드미레아가 입을 열었다.
"설명하실 기회 드리러 왔습니다."
"무엇을."
"전부 다."
저 표정만 보아도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가 분명히 보인다. 지그프리드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니 말이다. 로튼 대장간의 주인으로부터 미심쩍은 이야기를 들은 것이겠지.
그를 저택에 들일 줄은 몰랐다.
아무튼 나도 참 대단하네, 하고 자조감 가득한 웃음을 짓던 칼리안이 입을 열었다.
"조금 늦게 왔어도 좋았을 걸."
"돌려 말하는 것 싫어합니다. 숨기는 것은 더 싫어합니다."
"드미레아."
"무엇을 숨기고 계십니까."
드미레아 한 명에게 비밀을 더 들키는 것 쯤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었다. 세상 사람 전부에게 들켜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심지어 르메인에게 들키더라도 어떻게든 속여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살았다.
드미레아를 앞에 둔 칼리안이 잠시 눈을 내리떴다.
"······ 부탁 하나만. 더 들어줘."
그래.
얀을 제외하고.
"무엇을 달라하든 갚을 테니."
얀을 붙들어 둘 자신 있었으나 그래도 가능한 몰랐으면 했으니까. 죽을 때까지 얀 하나만은 모르고 지냈으면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