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69)

“도성내 수많은 양반들과 유생들이 지금 붙이는 공표문을 본다면 기절하겠군요.”

“어차피 우리들이 해야할것은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만 이행하면 되는것이네.”

“맞습니다.”

관원들중 한명이 대답했다.

얼마후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볼수있도록 공표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중에 한명이 질문하였다.

“나리들. 조금전 붙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전하께서, 그리고 승정원에서 발표한 올해 진행될 과거시험에대한 절차와 내용에대한 설명들일세. 여기있는 사람들중 과거시험을 응시할 인원들은 잘 읽어보고 숙지하시길 바라오.”

“과거시험이야 이전부터 해오던 것인데, 크게 달라진 거라도 있습니까?”

“글쎄. 읽어보면 알것이요.”

공표문을 붙이던 관원이 대답하며 미소지었다.

몇개의 공표문이 부착되자 그것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붙여진 공표문은 조선내 백성들이 알수있도록 쉬운 정음(한글)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얼마후 그들은 공표문을 읽더니 경악했다.

“저거 정말이야?”

“무슨 내용인데 그래?”

“임금께서 어명으로 내리신 것인데, 올해 치뤄지는 과거시험에는 시험문제를 정음으로 출제할 예정이고 답안도 모두 정음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하는군. 그렇지않은 응시자는 무조건 불합격 처리한다는 내용이야.”

“정음이라면 나도 아는데.”

“그래도 과거시험에는 전국팔도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기껏 정음을 아는것으로 시험을 볼수가 있겠나?”

“하긴 그렇군. 어쨌든 주상전하는 대단하신 분일세. 과거시험을 정음으로 보다니 말이야. 세상에 이런일도 생기네 그려.”

“지금까지 한문깨나 쓴다고 거들먹거리던 사대부나 양반 유생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기분일거야.”

주위에서 수근거림이 흘러나왔다.

관원들이붙인 공표문을 보기위해 모여든 사람중에는 갓을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던 유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공표문에적힌 내용을 보더니 부들거렸다.

과거시험을 정음으로 보다니?

자신들이 평생동안 꿈꿔왔던 과거시험에대한 모독이다.

어릴때부터 천자문을 독파하고 사서삼경과 오경, 그리고 수많은 성리학과 유교경전을 읽고 달달외우며 시험준비를 해왔다.

어려운 한문을 공부하기위해 얼마나 머리를 싸맸던가.

그런데 모든 노력과 고생한 시간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였다.

“대체 무슨 천박한 일인가? 정음으로 과거시험을 본다면 한문도 모르는 아랫것들까지 시험을 본다고 달려들것이 아닌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유생의 모습.

순간 주위에있던 백성들은 싸늘한 눈길을 보내었다.

그것을 확인하자 유생이 몇차례 헛기침을 하더니 눈치를 살폈다.

여기서 떠들어봐야 본전도 못찾을거 같았다.

잠시후 울분을 터뜨리던 유생이 그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런 유생들의 뒤를향해 행인들이 조소를 터뜨렸다.

이제까지 과거시험은 한문을 배우고 성리학과 유교경전을 떠들던 유생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과거시험이 바뀌었다.

이제는 평범한 그들에게도 기회가 온것이다.

물론 과거시험이 쉬운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도전조차 불가능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거야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듯한 기분인데. 지금 눈앞에있는 저 공표문의 내용만해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안될 정도인데.”

“꿈이아닐세. 못믿겠으면 볼이라도 꼬집어줄까?”

대화를 나누던 행인들이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 * *

“그것이 사실인가?”

“자네는 소식이 늦어서 문제군. 한양에서는 이것때문에 사대부와 유생들이 한바탕 떠들썩할 지경이야.”

“믿을수없어. 무슨 개같은 상황이야?”

“그러게 말이야. 고귀한 과거시험을 하찮은 정음(한글)따위로 보다니. 시험문제도 정음으로 출제하고 답안지까지 정음으로 작성을 해야한다니. 이럴려고 천자문과 사서삼경, 그리고 유교경전을 외우면서 공부했다니.”

불만섞인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들은 조선에서도 엘리트 유생들로 평가받는 성균관 학생들이다.

그들은 특별시가 치뤄진다는 소식에 잔뜩 기대를 하였다.

성균관 유생들중 일부는 발빠르게 움직이며 권세가인 김좌근과 안동김씨에게 줄을대기도 하였다. 그러나 믿었던 안동김씨 세력이 박살나며 모든게 수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얼마전 진행된 조정내 대신들의 임명도 전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더니. 이제는 과거시험에까지 어명이라는 이름으로 먹칠을 할줄이야.”

“누가아니래. 임금은 과거시험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한명이 시작하자 불만의 목소리를 삽시간에 터져나왔다.

그러나 동료들의 모습을 한심하게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나이가 30대 중반이였고 옷도 허름하게 입었다.

성균관 유생들 대부분이 이름깨나있는 양반자손들이고, 그들은 평소에도 잘먹고 잘입고 다니는 상황이였다.

그에반해 유동민은 성균관에서 대접조차 못받던 몰락양반의 자손이다.

얼마후 유동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들 말이야. 여기서 불만이나 터뜨린다고 전하께서 승정원을통해 발표하신 공표문이 바뀔거라고 생각하는가?”

“뭐라고 하는거야? 여기는 너같은 잔반 나부랭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유동민을향해 다른 유생들이 쏘아댔다.

이말에 울컥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걸 모르고 있었다.

그는 새임금인 철종이 즉위하고 그뒤에 진행되는 사건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제는 과거시험에대해 혁신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이 모든것이 의미하는건 한가지다.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잔반으로 멸시받으며 성균관에 유생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여기서 보고 느낀건 허탈함과 실망이 대부분 이였다.

동료 유생들은 과거시험에 붙기위해 부정도 마다하지 않았고 자신들만의 세계에갖혀 오만했다.

성균관에 들어와배운 학문들도 상당수는 뜬구름잡는 소리들이고 실제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 때문에 유동민은 틈틈이 다른 학문에도 관심을갖고 탐독했다.

이것에대해 동료들은 비웃었다.

유동민이 관심을가진 학문들은 성리학과는 거리가 먼 실용학문이 많았다.

어떤 동료는 그를향해 잡과를 준비중이냐고...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주변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유동민은 스스로를 준비했고 기회가 온것이다.

임금이 과거시험을 정음(한글)으로 출제하고, 해답을 정음으로 제출하라는건 한가지 의미였다.

실력있는 인물을 등용하겠다는 것.

유동민이 동료들을향해 조소를 머금고 있을즈음 몇명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자네들 여기서 뭣들하고 있나?”

“이번에는 무슨 일인데 그래?”

“한양의 양반들은 물론이고, 성균관 유생들이 모두 합심해서 조정에서 발표된 과거시험에대해 반대상소를 올리기로 하였네.”

“그것이 정말인가?”

“물론이지. 집단상소를통해 신성한 과거시험이 먹칠당하는걸 막아야하지 않겠나.”

“한두명이 반대한다면 어렵겠지만, 모두가 집단상소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당연하지. 어떻하든지 이번 사태를 막아야지. 과거시험을 정음으로 보겠다니? 한문도 모르고 성리학 경전도 모르는 어중이 떠중이들이 과거시험을 보겠다고 나서는꼴 아닌가.”

“맞아. 못배운 상것들이 우리들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건 수치일세.”

“우리도 가만 있을수없지. 행동을 개시하세.”

주변의 유생들이 소리치며 움직였다.

자신들의 특권이 무너진다는 불안감.

못배운 상것들이 과거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낀것이다.

집단행동을위해 달려가는 동료들의 모습.

그것을보며 유동민은 고개를 저었다.

창덕궁에있는 새임금이 어떤 존재인가?

즉위하고 얼마후, 나는새도 떨어뜨리는 김좌근과 안동김씨 일족까지 박살낸 인물이다.

기껏 양반들과 성균관 유생들이 집단상소 따위로 그분의 의지가 꺽이겠는가?

“멍청한 친구들이군.”

툭 내뱉더니 유동민이 자신의 방으로 향하였다.

요즘 그가 탐독중인 책들은 상업과 광산에대한 것인데 새로운 세상에 눈을뜬 것처럼 흥미가 있었다.

이거야말로 그가 원하던 제대로된 학문들이고, 만백성을 이롭게하는 진리였다. 얼마후 유동민이 그중에 한권을 꺼내더니 펼쳤다.

* * *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과거시험을 먹칠하는 행위입니다.”

“선대 임금들과 종묘사직에 부끄러운줄 아셔야 합니다.”

유생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모여있는 장소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의 넓은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한양내부는 물론이고 성균관 유생들까지 합심해 단체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들중 일부는 창덕궁 내부로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어딜 접근하려는 것이냐?”

“비켜라. 고귀한 유생들이 임금을 만나려고 하는데 감히 병졸들이 가로막다니. 미쳤느냐?”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요! 더이상 접근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돈화문에 늘어선 병졸들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투입된 병졸들 숫자도 최소 100명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몇명 유생들이 몸싸움을 벌이며 진입을 시도했다.

막고있던 병사가 방패로 유생들을 튕겨냈다.

텅- 묵직한 굉음이 들리며 유생들이 나가 떨어진다.

“어이쿠! 저놈들 봐라.”

“상것들이 고귀한 양반과 유생들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유생들이 소리지르자 몇몇 병졸들이 위축되었다.

그러자 부하들을 지휘하던 군관 최민경이 나섰다.

“너희들은 맡은 임무를 충실히해라. 저들중 한명이라도 전하가 계시는 궁궐로 들여 보내거나 전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내가 너희들을 용서치 않으리라!”

최민경이 허리에서 환도를 뽑아들며 외쳤다.

그것을본 병사들을 환호성을 내질렀고, 문앞을 철통같이 지켰다.

그러자 집단행동을 시도해 창덕궁으로 들어갈려던 유생들은 당황했다. 자신들보다 신분낮은 병졸들마저 저런식으로 나올줄이야?

그러나 포기할수는 없었다.

이윽고 힘에서밀린 그들은 집단상소를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돈화문 주위로 한양내의 백성들이 지나갔고, 그들은 유생들이 집단상소를하는 모습을보며 조소를 띠었다.

지금 유생들이하는 집단상소가 국운이나 대의를 위한것이 아니고, 단지 자신들의 사욕을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비를 서고있는 병졸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백성들도 많았다.

이것을보며 유생들이 발끈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그들의 권위와 체면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 * *

“오늘도 줄기차게 떠들어 대는군.”

“황송하옵니다. 전하.”

“송내관이 죄송할 필요가없지.”

종걸이를향해 대답했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희정당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시작된 유생들의 집단상소.

정문인 돈화문앞에 모인 수백명의 유생들이 외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한두번이면 무시하겠는데 벌써 며칠째다.

승정원 도승지 박주선에게 과거시험에대한 지침을 전달했을 때부터 예상된 상황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당하자 뻔뻔스럽게 들고일어나 창덕궁 정문에서 집단상소를 해대다니.

속물근성에 분노와 허탈감이 터져나올 수준이다.

처음에는 며칠정도 떠들다가 제풀에 지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꽤 오래버티고 있었다.

“유생들이 기득권을 지킬려고 발악하는군.”

“소신은 보잘것없는 내관이라서 자세한건 모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새로운 과거시험을통해 수많은 백성들에게도 기회를 주실려고 하는건 좋은 선택이십니다.”

송내관이 고개를 숙였다.

세종대왕께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최고의 문자인 한글이 있는데 과거시험을 구시대적인 한문으로 보다니?

그거야말로 등신짓이다.

문제는 창덕궁 정문에서 떠드는 유생놈들인데.

성질 같아서는 호위청이나 금군 병사들을 파견해 한바탕 매타작 잔치라도 벌일까라는 충동도 생겼다.

하지만 이것은 유생들이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원인만 줄 뿐이다.

따라서 머리를 써야지.

그것을위해 적당한 작전을 생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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