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169)

세종대왕의 역대급 발명품

쏴아아! 파도를 헤치며 8척의 선박들이 나아갔다.

선두에서 항해하는 선박과 갑판에있는 램버트는 긴장된 표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도전을하는 몇달동안의 항해.

그사이에 몇가지 사건들이 있기는 했지만 무사히 극복했다.

이제는 그들의 눈앞으로 조선이란 국가와 육지가 보이고 있었다.

영국의 리버풀에서 출발했던 램버트와 캐링턴 방직공장의 직원들은 아프리카의 남단을 통과해 인도양, 그리고 광저우에 먼저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이스트 프론티어(East Frontier)의 사장인 시필드 제이든에게 환영을 받았고 선박들이 싣고온 화물중에 일부는 하역하였다.

제이든의 이스트 프론티어가 취급하는 물품중에는 영국에서 운송하는 것들도 있었기에 제이든에게는 나름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제이든씨. 조선의 국왕은 어떤 분입니까?’

‘나이는 어리지만 램버트씨, 당신의 인생에 큰 변화와 기회를 줄수있는 사람입니다.’

제이든의 대답에 램버트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처음에는 멀고먼 아시아의 낯선국가에 간다는게 막막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이미 광저우에서 명성높은 시필드 가문과 협력을 진행중에 있었다. 이것을보며 램버트는 조선이 기회의 땅이 될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조금후에 여러분들은 조선의 항구인 개성에 도착할 것입니다. 램버트씨와 직원들이 긴 항해에도 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드리고 싶군요. 여러분들 덕분에 조선에대한 것들도 알게되었고, 심지어 저의 직원들중에 조선어를 배우고 말하는 사람들도 나왔으니 말이지요.”

램버트가 동행한 두명의 조선인들에게 말했다.

정대상은 램버트 일행들을 안내하기위해 영국에서 출발전에 2명의 인원들을 배정해 주었다.

두명은 영어도 능숙했고 영국내에서의 활동과 여러가지 상황들을 철종에게 보고하기위해 같이 출발한 것이다.

잠시후 그들 앞으로 개성의 선착장이 보였다.

거기에는 연락을받은 선죽상회의 인원들이 나와있었다.

개성은 이전부터 해외무역항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철종의 지시를받아 선착장을 포함한 부두시설이 커지고 있었다.

앞으로 조선에서 진행되는 수출입 화물의 물동량은 더 증가할 것이고 부두에서 중량물을 하역하는 시설들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이런 중량물의 하역과 선적을위해 선죽상회를 필두로 개성내의 거상들이 합심해 여러곳에 중대형 거중기들을 만들어 놓았다.

정조시기 대학자이자 발명가였던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는 수원성을 축조하는데 사용했고 효과가 상당했던 것이다.

다만 서양식의 본격적인 크레인 수준만큼은 아니여도 단단한 참나무를 이용해 제작된 거중기는 무거운 화물도 충분히 내리거나 적재할수 있었다.

“영길리국에서 온 손님들을 안내하고 하역작업을 개시해라!”

끼리릭! 끼릭! 선죽상회의 부행수 김도영이 대기중이던 인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두에 도착한 8척의 선박들중에 선두의 2척에는 램버트를 포함해 방직공장에서 활동했던 직인들과 가족들이 있었다.

승객들이 가져온 짐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들에게 조선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터전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아빠! 이제부터 우리는 여기서 사는거야?”

“그래. 엘리샤! 영국과는 다른 분위기의 낯선 곳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정이 느껴지는거 같구나.”

램버트와 함께온 방직공장의 기술자 스토너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 *

“전하. 램버트씨와 대표단 일행들이 도착했습니다.”

“잘되었군. 송내관은 그들을 여기로 모셔오게.”

“알겠습니다.”

송내관이 대답하고 물러났다.

창덕궁내의 희정당에서 도착한 램버트 일행들을 만나는것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후원인 부용정에서 예판인 장우영, 그리고 공조판서등과 몇가지를 논의하던 중이였다.

“전하. 램버트라면 얼마전 보고내용에 올라온 영길리국에서 방직공장을 운영하던 사람이군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조선의 방직산업과 섬유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인재들입니다.”

“영길리국이 보유한 방직기술과 생산능력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산된 막대한 양의 모직물들을 전세계로 수출까지 하더군요. 소신에게도 그 부분이 참으로 부럽고 조선이 발전시킬 중요한 부분들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잘 되었습니다.”

공조판서인 김석민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는 상공업에대한 지식과 실무적인 능력도 뛰어났다.

동시에 조선의 산업시설이 매우 열악하다는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광저우의 이스트 프론티어를통해 들여온 다양한 서적들, 그중에서도 유럽의 상공업에 관련된 서적들을 번역하고 읽으면서 더많은 깨우침을 얻은것이다.

얼마후 송내관의 안내를 받으며 램버트 일행들이 들어왔다.

“어서오시요. 램버트씨. 영국에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전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이 우리들을 안내해주고, 조선에 도착한뒤에 환대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용정의 전각에는 신료들과 사용하던 회의용 탁자가 있었고, 이곳에 램버트를 포함한 몇명이 앉았다.

조선의 임금이라는 위치지만 영국에서온 그들에게까지 조선식의 예를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과거 청나라에서는 영국에서온 특사단이 청나라 황제앞에서 엎드리지않고 삼배와 구배를 거부했다고 개난리(?)치는 상황도 만들었다.

이것은 청나라의 수준과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중에 하나다.

램버트는 대표로서 내앞에서 간략하게 무릎을꿇는 방법으로 예의를 표시했고 그것이면 족한 것이다.

그리고 램버트와 이런저런 계획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가 바닥에 머리를 쳐박고 있으면 무슨 말이 서로 통하겠냐?

“사전에 설명을 듣기로 전하께서는 조선에서 방직공장을 세우고 저와 캐링턴 방직공장의 직인들이 갖고있는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모직물의 생산을 계획하고 계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대로 보았습니다. 지금 조선내에서도 일정부분 방직물과 모직물을 생산중에 있지만 생산량이나 효율이 떨어집니다. 그때문에 조선내의 수요를 충족시키기도 상당히 부족합니다. 따라서 램버트와 캐링턴 방직공장에서 경험을쌓은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그에대한 보답으로 조선에서도 여러분들을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어디에 공장을 세우실 예정이십니까?”

램버트가 질문하였다.

송내관에게 신호를했고 지도를 가져왔다.

이것은 김정호가 지시를받고 만주로 떠나기전 그가 완성시킨 조선에대한 지도인 청구도다.

역사에서는 이후에나온 대동여지도의 바탕이되는 것이며, 청구도 자체만으로 조선에대한 지형들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계획중인 첫번째 공장은 여기, 제물포에 건설할 것입니다.”

“위치를보니 수도인 한양에서 가까운 곳이고 저희들이 도착했던 무역항인 개성과도 근거리에있어 탁월한 선택이신거 같습니다.”

램버트도 나의 계획에 동의했다.

제물포(인천)-는 개성과함께 본격적인 무역항과 공업도시로 발전시키는데 적합했다.

그리고 제물포에 세울 램버트의 방직공장은 앞으로 조선내에 세워질 여러곳의 섬유산업 단지들중에 하나가 될것이다.

21세기에들어 섬유산업이 일부 사양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것은 먼 후대의 일이다.

지금 1850년대 시기에서 방직과 모직, 그리고 섬유는 국가산업의 핵심중에 하나다.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성장하는데는 증기기관을통한 산업혁명이 큰 역활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상당한 기여를 한것이 바로 영국이 생산해낸 대량의 모직물과 그것을통한 수출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1850년대 이후부터 섬유산업에는 혁명적인 변화들이 생길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조선이 이런 섬유산업에서 주도권을쥐고 선도하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준비를 해놔야하는 것이다.

“조선 섬유공사라... 전하께서는 벌써 그것까지 염두에두신 것입니까?”

램버트가 놀라고 있었다.

그럴것이 램버트가 생활했고 공장을 운영했던 영국에서는 경공업의 핵심중에 하나인 방직이나 모직, 그리고 섬유산업들은 대부분 민간에의해 자율경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초기에는 영국의 섬유산업을 발전시킨 측면도 있었지만 냉정한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란 폐단때문에 램버트같이 기술좋고 능력있는 사람도 결국에는 경쟁에서 밀려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걸 알고있기에 조선의 상업과 산업을 민간에게만 맡길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제대로 기반이없는 상태에서 민간에게만 산업전반을 맡기면 그대로 개판이된다.

현재 조선의 상황에서는 조선의 실정에맞는 산업개발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그것에는 국가주도형의 패스트 트랙(Fast Track)의 체계를 사용해야 하는것이다.

때문에 조금전 램버트에게 말한 조선 섬유공사는 조선내의 섬유산업 전반을 관리하고 체계화시키는 콘트롤 타워와 같은 것이다.

“전하의 설명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 저로서는 같이온 캐링턴 방직공장의 직원들까지 보살피고 그들의 생활을 보장해야할 책임이 있기에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방직산업과 섬유산업에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저희들을 조선으로 부르신것도 원대한 포부와 체계적인 설계에의한 것임을 깨달았기에 이제부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램버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앞으로 그가 조선의 섬유산업 발전과 확대를위해 얼마나 큰 역활을 해줄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 * *

“전하께서 발표한 신임 대신들과 각부의 명단때문에 도성내부가 떠들썩한 상태입니다.”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긴 하군.”

도승지인 박주선을향해 대답했다.

승정원은 임금에게 있어서 직속기관임과 동시에 현대로치면 대통령 비서실같은 역활과 위치였다.

이런 승정원에서 최상급의 직위가 도승지이다.

21세기 현대로치면 대통령 비서실장과 같은 위치와 역활.

김좌근의 역모를 토벌한뒤 승정원을 대폭적으로 개혁했다.

그리고 새롭게 승정원 도승지가 된 인물이 과거 좌부승지였던 박주선이다.

신임 도승지가된 박주선은 역활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혹시 공석이된 좌의정과 우의정. 두명의 정승등을 재야에서 활동하던 인물들로 등용해 그런것인가? 하지만 그들은 과거에 조정에서 판서로서 직책을 수행했고 무엇보다 영의정인 정원용의 추천을받아 선발했네. 두명다 경험과 신망이 두터운 인물들이기도 하고.”

“전하께서 임명하신 좌의정과 우의정들은 충분히 그 직책을 맡을 자격이 있습니다. 의정부의 권한이란것이 실질적인 업무나 정책보다는 대체로 협의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신임 좌의정과 우의정의 등용에 대해서는 큰 소란이 없습니다. 문제는 흥선군 이하응에 대한 것입니다.”

도승지 박주선이 설명하였다.

불만은 역시나 흥선군 이하응을 이조판서로 임명한 부분이다.

이조는 6조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기관이고 다양한 권한들을 갖고있었다.

이런 이조판서 자리를 흥선군 이하응에게 주었으니 도성에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 것이다.

이전에도 양반들중 상당수가 이하응을 우습게 보고있었다.

그런데 벼락출세한 이하응이 6조의 최고인 이조판서 자리까지 올라버렸다.

“한양을 포함해 조선팔도의 양반과 유생들이 이하응을 꺼려한다면 그것만으로 반은 성공한 것이군.”

눈치빠른 그가 내뜻을 모를리 없을것이다.

이윽고 도승지 박주선은 얼마전 발표한 신임대신들과 내각의 구성에대해 도성내와 세간의 반응을 전해주었다.

파격적인 인사에 놀라는 양반들과 유생들도 많았고 불만도 흘러나왔다.

그에반해 한양내 백성들은 호의적인 모습이였다.

동시에 조정내의 내각구성과 인사분야를 성리학 꼰대들의 취향에 맞춰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에게 중요한것은 조선의 백성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보탬이되는 인물이라면 누구든지 환영이다.

잠시후 송내관이 준비해온 차를마시고 있을때 박주선이 다른 주제를 꺼내었다.

“전하께서는 금년에 특별시를 하시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그것에대해 복안을갖고 계신지요?”

“그러고보니 올해 특별시가 있었군.”

박주선의 말에 기억이 떠올랐다.

작년에 강화도에서 올라와 철종으로 즉위하면서 대소신료들의 앞에서 발표한 것이다.

“도승지가 적시에 과인에게 일깨워 주었군요.”

“황송하옵니다.”

올해 진행될 과거시험인 특별시는 중요했다.

조선팔도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찾아내고 등용할 기회다.

조선내에 성리학 꼰대들이 상당수였지만 그럼에도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다.

그들이 지금까지는 목소리를 내지못하고 주늑들어 있었지만 기회만 준다면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올해에 실시될 과거시험은 조선역사를 통틀어 획기적인 사건이 될것이다.

“복안이라... 먼저 올해 진행될 특별시는 정음(한글)로 문제를 낼것이고 지원자들도 정음으로 답안을 작성해야 하네.”

“.....”

박주선이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가 이상한가? 조선인이 정음을 사용하는것이 당연한 것인데.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생들이 정음도 모르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전하.”

박주선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성리학에 미친 유생들이 대부분이고, 한문으로된 성리학과 유교 경전만을파는 상황이지만 정음을 모르는 유생들은 그닥 없을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정음(한글)은 너무도 쉬운 문자이기에 양반가문의 자제들이나 유생들도 어릴때 대부분 습득을 마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반들이나 유생들끼리 서신을 주고받거나 문서를 작성할때 정음을쓰면 제대로 왕따를 당한다.

그럼 양반들이나 유생들이 정음을 쓸때는 언제인가?

주로 중인들이나 한자를 못배운 상것들을 상대로 문서를 쓰거나 전달할때 사용한다.

또는 한문을 모르는 여성들에게 문서를 보낼때도 쓴다.

이처럼 양반들이나 유생들이 정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일부러 쓰지않았다.

왜냐면 그들이 인생목표로 삼고있는 과거시험.

과거시험 문제가 한자로 출제되고 시험에 나오는 과목들이 한문을 사용한 책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선의 과거시험은 기본부터 글러먹은 것이다.

그것을 고치기위한 첫번째 과제가 시험문제 자체를 정음(한글)로내고 답안까지 한글로 쓰게 만드는 것이다.

“이보게. 도승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대부와 유생들이 정음(한글)조차 모른다면 개가 웃을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만약에 답안을 정음이아닌 한문으로 작성하는 유생들에 대해서는 어찌하실 것입니까?”

“임금이 시험답안을 정음으로 작성할 것을 명했는데 그것을 어긴다면 아무리 해답이 좋아도 탈락이지.”

내말에 박주선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하의 말씀대로 올해의 과거시험을 정음으로 출제하고, 해답을 정음으로 작성하는것이 가능하다면 조선내 많은 백성들이 지원을 할것으로 예상됩니다.”

“더좋은 현상이지 않는가? 임금과 국가를향해 봉사할수 있는 기회를 더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니 말일세. 그리고 이번 과거시험에는 한가지 다른게 있네.”

“어떤 것입니까?”

“올해 실시될 과거시험은 6조에서 일하게될 인재들을 선발하는 것이니만큼 이조, 호조, 병조, 형조, 예조, 공조등 각각 시험날짜도 달라질 것이네. 따라서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지원자는 6조의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는 분야에 응시하며 중복으로 하는것은 불가능일세. 만약 중복으로 지원할 경우에는 운좋게 합격이 된다해도 취소될 것이고 말일세.”

“.....”

박주선이 처음에는 이해조차 못해 눈만 껌뻑거렸다.

조선의 과거시험은 크게 2개로 분류된다.

가장 인기있는 시험인 문과, 그다음이 무과다.

문과는 성리학이나 유교경전에대한 문제를 시험으로 내었다.

문과에 합격하면 이후에는 의정부를 포함해 삼사, 그리고 6조에있는 빈자리에 채용이 되었다.

무과에 급제한 경우에는 병조에 속해있는 부서등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잡과가 있는데 중인들과 기술자들이 지원했고 정음(한글)으로 시험을 보았다.

잡과에 합격해도 대부분은 하급관료로 지냈다.

고위직 승진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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