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09/169)

“경은 그처럼 중요한 사실을 왜 지금에서야 말한다는 것인가?”

“전하께서 대왕대비 마마께 심려를 끼쳐드릴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만약의 사태를위해 대비마마 분들을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켜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피신이라면? 역적들의 무리가 생각보다 강대하다는 뜻인가?”

“그러하옵니다. 김좌근이 지휘하는 역모군은 자신들을 신조군이라 칭했고 그 숫자는 50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에반해 전하께서 데리고 출정한 호위청과 금군의 병사들은 모두 합쳐도 1200명의 수준이라 승패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때문에 전하께서는 대비마마 두분을 먼저 피신시키도록 소신들에게 명하였습니다. 밤사이에는 별고가 없었으나 조금전 창덕궁을 감시중인 역도의 무리들중 일부를 발견해 체포했습니다. 이때문에 창덕궁에도 언제 역도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라... 소신들이 대비전으로 오게된 것입니다.”

이윽고 순원왕후는 남동생인 김좌근이 5000명의 병사들을모아 반역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대체 그녀석이 뭣때문에....”

순원왕후가 고개를 내저었다.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던 것이다. 이조판서로서 조정내에서 권력도 쥐고있고 충분히 부귀영화를 누리던 상태였는데 말이다.

다만 그녀는 김좌근이 철종을 상대를 반역을 결심한 이유등을 알수는 없었다.

얼마후 그들이있는 장소로 다른 대비전에있던 신정왕후가 측근 상궁들과함께 다가왔다.

“대왕대비 마마! 역모가 있다는 소식을듣고 왔습니다.”

신정왕후는 며느리다보니, 그리고 김좌근이 순원왕후의 남동생이기에 일부러 김좌근의 이름은 입밖에내지 않았다.

“믿기지않는 사실이지만 좌근이가 종묘사직과 선대들에게 씻을수없는 대역죄를 범하고 말았구나.”

“대왕대비 마마. 한시가 위급하오니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하셔야 합니다.”

박주민이 재촉했다.

그러자 순원왕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만약에 금상이 역도들과의 싸움에서 패한다면 내가 창덕궁에서 좌근이를 막아야 하는것이다. 좌근이가 역모를 일으켰다해도 자신의 누이인 나를 어쩌지는 못할것이다.”

순원왕후가 눈을 질끈감으며 외쳤다.

그녀로서는 철종의 군대가 김좌근의 역적군에게 병력으로 열세란것을 들었다. 때문에 김좌근이 승리해도 창덕궁을 차지하는걸 자신의 몸으로 막겠다는 의지였다.

순원왕후의 결심에 박주선과 송내관도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김좌근이 어떤 인물인가?

박주선은 김좌근이 자신의 누나를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걸 이미 파악했다.

“대왕대비 마마. 김좌근이 역모를 일으킨 이상 그는 자신의 가족과 누이라도 방해하면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을것입니다. 또한 김좌근 그자가 손을 쓰지않더라도 누군가를 시켜서 끔찍한 만행을 할수있기에... 대왕대비 마마의 깊은 뜻에는 소신들도 동감하오나 지금은 안전하게 피신하여 이후의 상황을 지켜보는것이 최선인줄로 생각됩니다.”

“.....”

“어머니. 좌부승지의 말이 타당합니다.”

신정왕후까지 나서며 말하자 순원왕후는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김좌근은 측근들에게 창덕궁을 점령하는데있어 누이인 순원왕후가 방해한다면 없애라는 지시까지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것은 사병집단인 사검대에게 내린 명령이다.

그래도 차마 자신의 손에 피를 뭍히는대신 부하들을 시켜 누나를 제거할려는 방법이였다. 처음에는 고집을 부렸던 순원왕후도 주변의 요청에 따랐다.

“어디로 피난을 가는것인가?”

“운현궁이 적당한 장소로 생각됩니다.”

“흥선군도 그곳에 있는가?”

“흥선군과 병조참지 박규수는 전하의 부름에따라 역도들을 막기위해 참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이하응과 박규수는 뛰어난 충신들이니 분명히 전하를 잘 보필해서 역도들을 막아낼 것입니다.”

신정왕후가 말했다.

그녀는 평소에 이하응을 아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의 역모를 막아내는 전투에 이하응이 참가했다는걸 듣자 안심이 되었다.

얼마후 일행들은 상궁, 내관들과함께 흥선군 이하응이 지내던 운현궁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이하응의 부인인 민씨가 버선발로 달려나와 두명의 대비들을 맞이했다.

“대왕대비 마마! 누추한 곳까지 오셔서 황송하옵니다.”

“아닐세. 지금은 역모사건이 벌어진 위급한 사태이니 당분간은 이곳에서 신세를 지겠네.”

“망극하옵니다.”

민씨부인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얼마후 두명의 대비들이 안채로 들어간걸 확인한 박주선이 운현궁의 주위로 병사들을 배치했다.

운현궁은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때 창덕궁에 비해서 방어가 쉬웠다. 그리고 여차하면 두명의 대비들을 다른 장소로 피신시키는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정말로 길고긴 하루가 되겠군.”

박주선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닦았다.

그리고 긴장된 시간이 진행되고 늦은 오후쯤이 되었을때 운현궁으로 전령이 도착했다.

전령이 보내온 서찰에는 철종의 군대가 김좌근의 반역도들을 토벌했다는 것이다.

박주선과 송내관은 그제서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시에 운현궁에서 가슴을 졸이며 지내던 두명의 대비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순원왕후는 남동생이 벌인 대역죄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로서는 김좌근이 혈육이라도 어떻게 할수없는 지경에 이른것이다.

* * *

“조금후 궁궐에서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이오면 너희들은 이제부터 이나라의 왕자들, 즉 세자들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왕후가 되시는 건가요?”

“물론이지. 너희들의 아버지는 이나라 조선의 임금인 국왕으로 등극하시는 것이다. 조선의 수많은 백성들이 우리 가족들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무릅을 꿇게된다.”

“흐흐! 생각만해도 신나는데요.”

“맞아! 마음에 안드는 놈들이 있으면 잡아다가 마음껏 곤장을 때려 버려야지.”

“호호홋! 당연하지. 너희들의 아버지가 국왕인데 누가 반항을 할수 있겠느냐?”

김좌근의 아내 장수미가 악녀처럼 조소를 지었다.

그녀가 김좌근과 결혼한뒤, 온갖 계책과 술수를 써가면서 남편을 안동김씨 일족의 수장으로 만들어온 보상을받는 것이다.

이번에 남편이 일으킨 역모는 실패할수 없었다.

상대는 기껏해야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촌뜨기에다 애송이.

노련한 남편의 상대가 아니였다.

거기다가 조정내 핵심적인 대신들과 관료들. 심지어는 안동김씨의 내노라하는 일족들이 대부분 참가했다.

단기간에 5000명이란 막대한 군사를 동원했고 남편에게 매수된 부하들이 창덕궁으로 향하는 길까지 활짝 열어놓은 상태다.

‘농사나짓던 어린놈이 마음에들지 않았는데 잘 되었어. 그리고 이참에 방해가되는 두명의 대비들도 모조리 없애야해. 그래야 내남편이 국왕으로서 마음껏 권력을 휘두를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에게도 방해가되는 늙은이 들이니까.’

장수미가 살기를 드러내었다.

그녀는 반역이 성공하면 순원왕후와 신정왕후를 없애기로 결정해둔 것이다.

얼마후 장수미가 밖을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궁궐에서는 아직도 사람이오지 않은것이냐?”

“마님. 좀더 기다리셔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요. 저택에는 사검대의 무사들 100명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니 말이지요.”

“아무튼 오늘은 중대한 날이니 차질이 없도록 해라.”

장수미가 대기중인 사검대의 무관에게 지시했다.

그사이에 장수미는 아들들 두명에게 준비해왔던 용포들을 입혔다.

이것은 궁궐의 세자들이 입는것이다.

따라서 김좌근의 아들들이 이것을 입는다면 그것자체로 대역죄다.

하지만 장수미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역모는 성공할 것이고 남편은 조선의 왕이 될것이다.

창덕궁을 차지한 남편이 부하들을 보내면 자신은 왕후복장에, 그리고 아들들은 세자들의 용포를입고 당당하게 창덕궁으로 입성하는 것이다.

그것을 상상하자 장수미는 금방이라도 왕후가된 기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기분좋은 상상은 금방 박살났다.

“네놈들은 누구냐?”

“적이다! 막아라.”

“역적 김좌근의 집을 포위해라.”

탕! 타타탕! 맹렬한 총격음이 터졌다.

“어머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설마...?”

장수미가 경악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순간 부서진 대문을통해 백두철포와 현무철포를든 간도정찰대원들이 돌진해 들어왔다.

사검대가 칼을뽑으며 방어를위해 나섰지만 정찰대원이 발사한 일제사격에 쓰러졌다.

타타탕! 타탕! 퍼퍽! 크악! 차례로 피를뿌리며 쓰러지는 사검대들.

선봉으로 돌진해온 정찰대원들의 후방으로 금군의 병사들이 말을타고 달리며 기병도로 적들을 베었다.

장수미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을수 없었다.

“아들아! 어서 달아나자! 아무래도 반정이 실패한거 같다.”

“그럴수가?”

두명의 아들들이 장수미를따라 도주를 시도했다.

이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저곳에 역적의 수괴인 김좌근의 아내와 아들들이 있다.”

탕! 타탕! 크악! 도망치던 김좌근의 큰아들이 다리에 총격을 당하며 쓰러졌다. 겁에질린 장수미가 둘째아들이라도 데리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녀의 앞길을 정찰대장인 박민준이 막아섰다.

쉬잇! 칼날이 장수미의 목에 드리워졌고 그녀의 온몸이 공포로 부들거렸다. 장수미와 김좌근 아들들이 입고있던 용포를보던 박민준은 냉소를 지었다.

“왕후의 복장과 용포라... 후후! 창덕궁에서 그옷을입고 주인행세를 하고 싶었던가?”

“제, 제발 목숨만...”

“걱정마라. 너희들의 죄값은 전하께서 결정할 것이니까. 뭐하느냐? 이것들을 포박해라.”

박민준이 명령을 내렸고 정찰대원들이 달려와서 장수미와 김좌근의 아들들을 밧줄로 묶었다.

김좌근의 막내는 몇차례 발버둥 치다가 대원에게 두들겨맞고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들어 버렸다.

“역적의 아들놈이 어디서 반향이야. 빨리걸어.”

얼마후 저택에서는 살아남은 적들이 포박을당해 줄줄이 끌려나갔다.

증기선 발명가 월터

“월터!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알고있어. 하지만 포기할수 없잖아! 베론, 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노력까지도 물거품이 되는건 참을수 없어.”

월터가 단호하게 말했다.

두명의 옷차림은 노동자들의 작업복과 비슷했다.

그에반해 그들을 통과해 들어가는 사람들의 복장은 고급스런 슈츠에 중절모, 그리고 일부는 하인들까지 동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명이 들어갈려는 클럽의 위쪽에는 캐멀롯(Camelot)-라고 쓰여진 큰 간판이 있었다.

유럽에서 사교와 향략의 문화를 주도하는건 프랑스다.

그중에서 파리는 사교모임의 중심지였다.

이때문에 프랑스를 여행하거나 살아본 영국인들은 자국에서도 프랑스의 향락문화를 일부 도입했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물랭루즈(Moulin Rouge)-같은 향략적인 클럽은 청교도적인 생활을했던 영국인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만 영국인들이 청교도적인 생활을 우선시해도 욕망의 동물인건 어쩔수없다.

그때문일까?

파리에서 유행하던 사교클럽은 런던에도 도입되었고 이후에는 런던내 상류층들이 모이는 인기장소들이 된 것이다.

그중에서 캐멀롯은 런던에서 큰 규모의 사교클럽이면서 영국에서 상류층을 형성하는 신흥 자본가들이나 귀족들도 자주 방문했던 것이다.

“소문으로 들었던 캐멀롯이 이런 곳이였다니!”

“베론 정신차려! 우리들이 놀러온것은 아니잖아.”

“아참. 그렇지.”

내부의 화려한 모습에 정신이 팔렸던 베론은 월터의 질책을듣자 정신을 가다듬었다.

북적거리는 통로를지난 두명은 넓은 홀(Hall)로 향했다.

그곳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대화를 진행중에 있었다.

월터가 그중에 한명, 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중년사내를 발견했고 긴장된 표정으로 다가갔다.

* * *

“단장님을 따라서 오기는 했는데, 여긴 정신이 없군요.”

“영국인들은 평소에 음식도 소박하고해서 근면한 생활을 하는줄 알았는데, 여기 클럽에오니 완전히 딴세상 같습니다.”

“사람이란게 다 똑같은 거지. 누구든지 좋고 맛있는 음식을먹고, 좋은 옷을입고, 비싼 술을 마시며 놀고 싶어하는 것이지. 그것은 영국인들이라고 다른건 아냐. 어쩌면 여기 캐멀롯 클럽은 영국 상류층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해소하는 곳이라고나 할까.”

“조선으로 치면 기방(妓房)같은 곳인가요?”

“하하. 역시 너는 이해가 빠르구나.”

정대상이 김도진을향해 칭찬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김도진은 선죽상회에서 생활했고, 그때문에 다양한 경험들이 있었다.

그에반해 오경석은 어릴때부터 언어천재의 능력으로 다국어를 배우며 능통했지만 공부만 열심히한 범생같은 느낌이다.

때문에 카멜럿 클럽에서 주위로 지나가는 여자들의 유혹하는 몸짓과 표정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몰라했다.

한편 오경석이나 김도진, 두명다 영국식의 복장과 단발머리, 그리고 말끔하게 꾸며놓으니 상당한 미소년들로 보였다.

이때문에 동양에서 온 미청년들에게 호기심을느낀 클럽내의 여자들이 쳐다보기도 하였다.

“앞으로 너희들은 전하의 어명에따라 영국과 유럽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활동해야 하니까, 이런것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단장님.”

김도진과 오경석이 대답했다.

정대상은 유창해진 영어와 영국식의 악센트까지 사용하며 카멜롯-에서도 여러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철종이 정대상에 내린 지시들중 하나는 영국과 유럽에서 조선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것.

그것을 위해서는 상류층들이 모이는 사교모임에 틈틈이 참가하며 친조선적인 인맥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다.

정대상이 단지 외국에서온 일개 동양인의 신분이라면 영국내 상류층에서 활동하는게 쉽지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대상은 런던에서도 명성있는 시필드 가문과 연계된 동양인이라는 또다른 후광이 있다보니 그 부분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정대상은 철종을통해 상당한 활동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래서 사교모임에서 정대상을 만났던 영국의 상류층들은 그를 동양에서온 젊고 돈많은 부자로 생각했다.

“미스터 정(Jung), 당신을 여기서 만날줄이야.”

“오랜만에 뵙는군요. 벤자민씨. 요즘 의정활동은 어떠십니까?”

“하하. 생각보다 쉽지가 않군요. 알다시피 정계에서는 언제나 파벌과 내부의 권력싸움이란게 있다보니.”

벤자민이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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