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6/169)

“나의 이름은 정대상 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런던에있는 시필드 가문과함께 사업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시, 시필드 가문이라니?”

램버트의 눈이커지며 술이 단번에 깨었다.

맨체스터가 런던에서 좀 떨어진 곳이지만, 그도 사업가이기에 한때 런던에서 명성높았던 시필드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봤던 것이다.

한편 램버트는 자신앞에 나타난 동양인에게 위압감을 느꼈다.

“그런데 무슨일로 나를 찾아온 것입니까?”

“먼저 램버트씨. 당신이 리버풀의 바닷물에 뛰어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두번째로 당신과 캐링턴 방직공장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위한 것이요.”

“......”

정대상의 말에 램버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절망으로 가득했던 상황에서 희망이 보인다는걸 느꼈다.

* * *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쉽지않은 문제군요. 하지만...”

마일스가 대답했다.

그는 램버트 사장이 캐링턴 방직공장을 세울때부터 함께했던 초창기 멤버들중에 한명이다.

정대상에서 엄청난 제안을받은 램버트.

그는 정대상이 자신을 놀리는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상대는 시필드 가문과함께 하는 인물이고 보여준 능력마저도 엄청난 수준이였다.

그럴것이 램버트가 리버풀 바다에 뛰어들 생각까지 했던, 막대한 채무를 순식간에 갚아줄 능력까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정대상이내건 조건이 램버트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고, 캐링턴 방직공장의 직원들에게도 충격이다.

‘우리는 아시아의 동쪽끝 조선에서 온 사람들이요. 그리고 램버트씨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것은 조선의 임금께서 진행중인 거대한 프로젝트의 한 부분입니다. 현재 전하께서는 조선의 섬유산업을 발전시키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영국에서 능력있는 인재들을 조선으로 데려와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하도록 지원해줄 계획입니다.’

정대상이 한말이 머리를 스쳐갔다.

아시아의 동방에 조선이란 국가가 있다는걸 처음 알았고, 그곳에서 꿈을펼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램버트 혼자 가는것이 아니라, 캐링턴 방직공장에있는 직원들중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간다.

때문에 램버트는 문을 닫아버린 캐링턴 방직공장에 남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중대발표를 한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그들이지만, 램버트의 설명을 들으며 이해를 하였다.

“어차피 영국에서는 더이상 희망이없지 않습니까? 그럴바에는 새로운 세상에서 도전이라도 해봐야지.”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모여든 직원들중에서 계속해 찬성표가 나왔다.

여기있는 램버트 사장과 직원들은 다른 공장들보다 유대관계가 돈독했다.

또한 램버트의 직책은 사장이지만 과거에는 자신들처럼 방직공장에서 경험을쌓고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때문에 램버트대한 신뢰감도 컸던 것이다.

얼마후 피치못할 사정때문에 영국을 떠날수 없었던 일부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80명 이상의 직원들이 램버트와함께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모든건 미스터 정(Jung), 당신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그저 전하의 뜻에따라 능력있는 인재와 사람들을 선발한거 뿐입니다.”

정대상이 웃으며 대답했다.

수십척의 배들이 정박해있는 리버풀 항구-

이곳에는 조선으로 출발할 8척의 선박들이 준비중에 있었다.

각각의 선박들은 시필드 매칸티의 지원을받아 정대상이 준비한 것들이다.

동시에 램버트와 그의 직원들을 조선까지 안내할 인원들도 탑승을 하였다.

승선하던 캐링턴 방직공장의 직원들은 잠시동안 항구쪽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램버트와함께 떠날 직원들중에는 가족들을 동반한 인원들도 많았다.

“이후 조선에는 잉글랜드 타운(England Town)-이 생길것도 같군요.”

“전하께서는 조선이 강대해 질수록 더많은 외국의 인재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조선에서 정착할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하셨네.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전세계의 인재들을 조선으로 데려오고, 그들이 조선의 발전에 큰 역활을 할것이네. 그것이 조선제국이 나가야할 길이라고 하셨지.”

“정말로 기대가 됩니다.”

오경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2척의 배에는 조선으로 떠날 램버트와 직원들이 탑승하였고, 나머지 6척의 배에는 각종 방직기계와 면직기계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램버트 사장 스스로 뛰어난 기술자였고, 그에게 배운 직원들도 솜씨들이 좋았다.

그에따라 캐링턴 방직공장에있던 방직기계들을 분해해 적재하였다.

그뒤에 램버트는 정대상에게 지원받은 자금을 이용해 맨체스터내의 다른 공장들에서도 방직기계들을 구입했다.

조선이 지금은 영국같은 방직기계들을 제작해 낼수는 없다. 그러나 6척의 대형 화물선에 실려있는 기계들이 조선에 도착하고 이후에 조선의 장인들이 기술을 전수받고 한뒤에는 더 발전된 기계들을 만들어낼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조선의 방직산업은 <조선 섬유공사>를통해 발전하고 확장될 것이네. 이후에는 섬유공사를통해 생산된 수많은 제품들이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타국에도 수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값싸고 질좋은 옷감을 사용할수 있겠지.”

정대상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 조선에서 면직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기껏해야 가내 수공업에 불과했다.

이것으로는 조선내의 수요도 맞추지 못했고 언제나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조선의 섬유산업은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가고, 그것이 가져올 변화는 엄청날 것이다.

얼마후 출항준비가 완료되었다.

뿌우우! 한차례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조선을향해 8척의 선박들이 파도를 헤치면서 나아갔다.

제 2 의 광해군이 나왔다

“주모, 여기에 막걸리 한병 더!”

“무슨 좋은 일이있길래, 오늘은 대놓고 마셔, 벌써 몇병째야?”

막걸리와 안주를 가져오던 중년여인이 말했다.

그녀를향해 탁주를 주문했던 사내가 호쾌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당연히 좋은일이 있지. 지금까지 뒈놈들 눈치나보며 살아왔던 조선이 바뀔려고 하니까 그렇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이런. 주모는 소식이 늦구만. 요즘 한양에서 청나라 사신들이 임금에게 크게당하고, 거기다 영은문까지 박살난것 때문에 온통 난리인거 몰라?”

“그런일이 있었어요?”

“내가 거짓말하는거 같아?”

“정말로 대단하신 임금이야. 이제 갓 20살정도 되셨다고 들었는데 그같은 일을 해대시다니!”

맞은편의 동료들도 맞장구를 쳤다.

최근 한양내의 주막집, 그리고 경기도 일대에서도 백성들이 모였다하면 철종이 청나라 사신들을 박살낸 사건에대해 떠들썩했다.

영은문을 철거할때에 주변으로 천명이넘는 사람들이 구경을 했으니 소문이 퍼지는건 금방이였다.

“전하께서는 영은문을 박살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다는 포고문을 내리셨다고 하더군.”

“독립문이라. 크으! 좋구나!”

탁주병을 들던 사내가 무릅을치며 탄성을 뱉었다.

“이제까지 중국에서 뒈놈들 사신이 올때마다 조선의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을했나?”

“두말하면 잔소리지. 황해도에서 살때에는 뒈놈 사신들이 올때마다 부역에 끌려나가 하루종일 돌나르고 삽질하고, 생각만해도 울화가 치밀었네.”

“황해도만 그랬던건 아닐세. 자네가 지내던 곳만큼은 아니지만 한양에있던 도성민들도 청나라 사신들 환영과 접대를 준비한다고 개고생을 했지.”

한번 시작된 불만은 쉴새없이 터져나왔다.

성리학 탈레반이된 양반과 유생들은 중국을 상국으로 생각하며, 청의 사신들에대해 극진히 대접하는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에 동원되는 노역은 모두 조선의 백성들이 감당해야할 부담이였다.

그것도 강제로 동원되고 어떤 댓가도 없었다.

이러니 백성들에게 중국은 조선을 뜯어먹고 착취하는 더러운 놈들일뿐, 상국이니 뭐니 하는것도 아니였다.

“자네도 보았지.”

“뭘 말인가?”

“그러니까 관원들이 영은문을 박살내려고 하니까, 한양에있는 양반과 유생들 수십명이 달려와 방해할려고 했던거 말일세.”

“정말로 황당하더군. 영은문을 철거하는건 주상전하의 어명으로 진행되는 것인데 그걸 막으려 들다니 말이야.”

“도대체 이나라의 양반과 유생놈들은 뒈놈들에게 아부하고 똥구녕을 핥지못해서 난리인거 같아. 글공부와 학문을 익혔다는 놈들이 뭣이 중헌디를 몰라.”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난 그자리에 못가서 그후의 일이 궁금해 죽겠네.”

“어떻게되긴, 주상전하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예조판서도 대쪽같은 분이지. 수십명의 양반과 유생들이 막아선다고 눈이나 깜짝하겠는가? 곧바로 대기중이던 호위청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지. 그리고 영은문 철거를 막아서던 양반과 유생들을 개처럼 두들겨 패면서 끌어내었지. 그때에 바닥에 넘어지고 뒹굴던 양반과 유생들의 모습이란... 내 생전에 그런 광경은 처음이였네. 얼마나 통쾌하던지. 그뿐이 아닐세. 항의하러 나왔던 뒈놈들 사신들도 호위청 병사들이 철포를 겨누며 나서자 바로 꼬리를 내리더군. 거기에는 청나라 팔기놈들도 있었는데 고양이 쥐처럼 꼼짝을 못하더라구.”

“그정도 였다니! 젠장. 재밌는 구경을 못본것이 원통할 지경이구만.”

아쉬워하는 동료를향해 나머지 두명이 큰소리로 웃었다.

한켠에서 떠들썩하게 벌어지는 대화소리를 엿듣던 배동석과 두명의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3명은 비호국 소속이였다.

그중에서도 한양과 경기도 지역을 담당하는 중경대의 인원들이다.

비호국은 임금이내린 특수작전들을 수행하는것도 있지만, 평소에는 조선의 백성들 사이로 스며들어 민심과 여론, 그리고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일도하였다.

“이번에 전하께서 해내신 일에 다수의 도성민들과 백성들은 기뻐하고 있군요.”

“그에반해 전하를향해 불만을 가지고 적대감까지 드러내는 놈들도 있네. 이제부터 우리들은 그들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할걸세.”

“책임이 막중함을 느낍니다.”

비호국 요원들이 배동석을향해 대답했다.

* * *

갓을쓰고 도포자락을 날리며 십여명의 유생들이 걸어갔다.

표정에서는 초조함이 가득했고 선두에가던 사내가 재촉했다.

“서둘러야 합니다. 지금쯤은 다른 분들도 도착했을 것입니다.”

재촉을받자 그들은 걸음을 빨리했다.

얼마후 도착한 그곳에는 주학서원(朱學書院)이란 현판이 보인다.

서원은 조선이 성리학 탈레반의 국가로 변한것에 결정적인 역활을했던 곳이다.

처음에는 좋은취지로 전국내 몇개씩의 장소들이 생겼지만, 나중에는 10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조선의 양반세력들은 서원들을 중심으로 기득권을 지키고, 조선을 무능한 국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한양에있는 주학서원-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朱子)를 섬긴다는 목적에따라 대형으로 지어졌다.

서원의 규모에서도 한양에서 손꼽힐 정도였고, 전국에서도 유명한 곳이였다.

주학서원의 내부로 한양내 양반과 유생들이 소집되고 있었다.

특히 소집령을 발령한것이 주학서원의 수장이자 훈장(訓長)인 송노진이였고, 이유는 한가지 때문이다.

‘감히 비천한 병졸들이 양반과 유생들을 욕보이고, 개처럼 끌어내다니! 이것은 사대부에대한 모욕이다.’

송노진은 영은문 철거현장에서 반대하며 항명하다가 개박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송노진만이 아니라 같이갔던 양반과 유생들이 모두 당했고 그들중에는 주학서원의 출신들도 꽤 있었던 것이다.

얼마후 200명이상의 양반과 유생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주학서원 훈장인 송노진이 나섰다.

“여러분들도 한양에서 철부지 국왕이벌인 사건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있을 것입니다.”

“대체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상국인 청에서 온 사신들을 극진히 대접해도 모자랄판에 조선왕이 사신단을 모욕하고, 거기다 천명을 간직한 영은문을 부셔버리기까지 하다니!”

“이건 명백히 광해(光海)와같은 미친군주가 조선에서 또다시 나온 것입니다.”

한명이 나서며 광해군을 언급하였다.

순간 모여든 양반과 유생들이 수근거렸다.

21세기 역사에는 광해군에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했지만, 1850년대의 조선에서 광해군에대한 인식은 처참할 정도였다.

“글쎄올씨다. 주상께서 아직 젊어서 그렇지, 과거에 잔혹하고 미쳤던 광해군까지는 아니지 않소이까?”

“무슨 소리를 하시요?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상국인 청제국, 그리고 황제를향해 그따위 망발을 할수가 있다는 것이요?”

“당신은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촌놈을 두둔하는 것이요?”

삽시간에 터져나오는 비난-

그러자 의견을 내놓았던 유생 박종식은 더이상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는 주변에서 떠드는 동료들의 모습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종식은 주학서원에서 소집령을내려 동료들과함께 왔는데 모이라고 한 이유가 저따위라니?

거기다 충(忠)을 강조하는 조선에서 임금을향해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촌놈이라는 망발까지 해대는 동료들의 모습에 경멸마저 느껴졌다.

‘전하께서는 선대이자 북벌을 시도했던 효종의 대업을 이루기위해 나가고 계신데,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박종식은 동료들과 다르게 한양의 백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나 여러가지 정보들도 들었다.

임금의 지시를받은 군기시에서 새롭고 강력한 무기들도 개발했고 위력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외에도 하나둘씩 들리는 소문들을 볼때 박종식은 임금이 과거에 효종이 실패했던 북벌을해낼 군주란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박종식의 생각과 다르게 주학서원에 모인 200명의 양반과 유생들은 철종을향해 온갖 저주를 퍼붓는 중이였다.

“송노진 훈장께서는 이대로 물러나실 생각이시요?”

“그럴수 없지요. 저를 포함해 영은문을 사수할려던 양반과 유생들이 천것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것은 물론이고, 미친 국왕이 상국인 청제국과 황제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들도 알다시피 지금의 국왕이 자신의 힘으로 된것이 아니잖소. 동시에 이나라 조선의 최고 실권을 쥐고있고, 우리 주학서원을 후원해주는 이판대감과 안동김씨, 그리고 다른 세도가문들이 힘을합치면 지금의 난관을 해결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과연 이판대감이라면 해결책이 있을거 같군요.”

“무엇보다 주학서원이 성대하게 발전한것도 이판대감의 덕분이기도 하니까.”

송노진이 말하자 찬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모인 양반과 유생들은 지금의 국왕을 만든것이 이좌판서 김좌근이란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이제부터 그대들은 연판장에 이름을 올려주시요. 그리고 이것들을 모아 이판대감에게 전달을 하겠소.”

“탁월한 결정입니다.”

소집된 양반과 유생들이 붓과 먹으로 연판장을 쓰기 시작했다.

북적거리는 가운데 박종식은 뒷간이 급하다는 핑계를대며 그자리를 빠져나갔다.

동문수학을 하기는 했지만 동료들의 저런 멍청한 행동에는 동참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였던 것이다.

얼마후 연판장이 모아지자 송노진이 기세좋게 말했다.

“이것으로 우리의 뜻을모아 이판대감에게 전달하고 실추된 주학서원과 사대부의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소.”

“당연합니다. 더이상 광해같은 미친놈이 나와서는 안됩니다.”

“옳소이다.”

동조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 * *

“요즘은 높으신 나리들의 표정이 영 별로인데.”

“당연한거 아냐? 지금 궁궐내부는 물론이고, 한양에서도 발칵 뒤집힌 상황인데. 그리고 넌 말 조심해. 잘못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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