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169)

“지금까지 아시아의 국가라면 기껏해야 인도나 중국이 전부인걸로 생각했는데, 조선이라는 엄청난 상대를 발견하다니! 동방으로 건너간 둘째 도련님이 큰일을 해내셨군.”

보킨스가 감탄했다.

마차에서 내려진 물건들은 저택에있는 대형창고에 쌓이고 있었다.

보통의 물건들이라면 시필드 가문이 보유한 회사내의 창고에 보관하면 되지만 조선에서 가져온 것들은 모두가 상당한 가치를지닌 것들이다.

때문에 허술하게 보관할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도자기들은 놀랍군요.”

“조선의 백자와 청자들 입니다.”

정대상이 보킨스를향해 설명했다.

이번에 마리너호에 싣고온 조선의 상품들 중에는 핵심이 홍삼이지만 그외에도 조선에서 산출되는 다양한 물품들이 있었다.

조선에서 생산되는 비단은 품질이 좋기로 소문난 상태다.

때문에 중국과 왜국, 그리고 심지어는 동남아쪽의 상인들도 조선에서 생산된 비단을 구입해갈 정도였다.

그리고 조선에서 생산된 백자와 청자같은 자기들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비록 고려시대에 명성을 날렸던 상감청자의 기술이 일부 쇠퇴하기는 했지만, 조선의 도공들은 중국과는 다른 독창적인 백자와 청자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때문에 중국의 도자기들에 익숙했던 보킨스는 조선의 백자와 청자를보자 뛰어난 상품성을 알아보았다.

* * *

“이것이 제이든이 말한 홍삼이란 것인가?”

“그렇습니다. 사장님. 주홍빛이 감도는 것이 신비한 느낌마저 스며나올 정도입니다.”

게리슨이 시필드 메칸티에게 대답했다.

그는 시필드 가문이 런던에 설립한 회사에서 중요한 임원중에 한명이다.

메칸티는 제이든이 보낸 편지를통해 홍삼에대한 사전정보를 입수했지만 실물을 본것은 처음이였다.

시필드 가문으로 들어온 조선의 홍삼은 상당한 양이였다.

5000상자의 수준이였고 무게만도 몇톤에 이를정도다.

메칸티 옆에는 선죽상회를 대표해 동행한 김도진도 있었다.

김도진은 큰형인 김도영을통해 홍삼에대한 많은지식과 경험을 배웠다.

때문에 김도진은 홍삼을 적재한 마리너호가 영국에 도착할 때까지 매일마다 홍삼과 화물들을 점검하는 일을 담당했다.

이처럼 조선의 홍삼이 영국까지 도착하는데는 김도진의 역활도 중요했던 것이다.

한편 김도영은 시필드 가문이 조선의 홍삼을 제대로 취급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도 선죽상회에서 전문가가 동행하는게 필요하다는걸 알았다.

“메칸티씨! 저는 김도진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동생의 편지에도 자네에대한 소식이 있었네. 그리고 영국까지 와준것에 너무도 감사하네.”

시필드 메칸티가 미소를 지었다.

동생인 제이든이 인정한 청년이다.

자신보다 어리다해도 메칸티는 예의를 다하였던 것이다.

“제이든씨는 홍삼들을 영국에서 판매하는 부분에대해 많이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확실히 그렇겠군. 영국인들은 물론이고 유럽인들에게도 낯선 동방의 산물이니까 말일세.”

메칸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삼은 영국인들은 물론이고 유럽인들도 접해본적이 없는 새로운 상품이였다.

신상품의 운명은 두가지중에 하나다.

시장에서 외면받아 사장되거나 또는 엄청난 대히트를 기록하거나... 어느쪽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메칸티나 게리슨이 홍삼을 봤을때 대박의 예감이나 느낌이 스쳐간건 사실이다.

중요한것은 어떻게 판매하는가의 부분이다.

이부분에 대해 제이든도 엄청난 고민을 하였는데 조선왕인 철종이 제이든에게 묘수를 알려준 것이다.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이 홍삼들을 무상으로 런던의 사교계에 제공하라는 뜻인가?”

“제이든씨가 말한대로 홍삼차의 형태로 입니다.”

김도진이 대답하며 손짓했다.

시필드 가문의 하녀가 쟁반에 찻잔을 준비해 가져왔다.

찻잔에는 김이 올라왔고 홍삼의 진한향기가 주변을 감쌌다.

“이것이 홍삼을 이용해서 만든 티(Tea) 입니다. 소량으로도 많은 차를 만들수있고 향기도 진한 편입니다. 제이든씨도 영국의 돈많은 상류층을 만족시키는데는 홍삼차를 이용하는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번 드셔보십시요.”

“알겠네.”

메칸티와 게리슨이 홍삼차를 마셔보았다.

두사람의 표정이 감탄으로 흥분되었고 탄성이 절로나왔다.

“정말로 대단하군.”

“제이든씨가 가르쳐준 레시피대로 시필드 가문의 하녀를 시켜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이든씨는 이 홍삼차를 런던의 사교계에 무료로 선보이며 상류층들의 이목을 끌라고 하셨습니다.”

“제이든 녀석! 기발한 생각을 해내었군.”

메칸티가 주먹을 쥐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이 마케팅 전략은 원래 철종이 생각해낸 것이다.

21세기의 현대는 마케팅의 시대다.

수많은 마케팅 기법이 개발되었고 철종은 과거로 오기전에 경영학과를 전공했던 직장인 이였다.

처음에는 사학과를 선택했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경영학을 선택한뒤에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했지만 말이다.

때문에 판매전략에 대해서라면 과거시대의 상인들보다 몇단계 앞서있었고 그중에 일부를 활용한 것이다.

“알겠네. 제이든과 자네의 말대로 진행하지.”

“감사합니다. 메칸티씨.”

“내쪽에서 고마울 따름이네.”

메칸티가 김도진을향해 미소를 지었다.

* * *

연경(북경)의 골목에있는 술집-

몇명의 사내들이 안주와 술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상생활에 관련된 잡다한 주제를 가지고 떠들다가 문득 한명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동료를향해 목소리를 낮추었다.

“자네들 그거 들었어?”

“뭔데 그래?”

“요즘 연경(북경)내에 떠도는 소문말이야.”

“어떤건데 뜸들이지 말고 털어놔봐.”

재촉을받자 사내가 선심쓰듯 느긋하게 말했다.

“만주 귀족들중에 한명인 지르칼손이 요동에서 부하들과함께 전멸 당했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지르칼손. 그녀석은 몇년전 연경(북경)에서 온갖 망나니짓을해서 요동으로 좌천된 놈이잖아.”

“그렇지. 하지만 그놈이 속해있는 보란세칸 가문은 북경에서도 알아주는 유력가문중에 하나잖아. 이거 앞으로 큰일이 생기겠는걸.”

나머지가 대답하며 표정이 굳어졌다.

일부는 북경에서 개망나니로 소문났던 지르칼손이 요동에서 죽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들이 말한대로 암암리에 퍼지던 지르칼손의 소문때문에 북경에있는 만주 귀족들 사이에는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지르칼손이 만주귀족들의 사이에서 평이 안좋은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속해있는 보란세칸 가문의 위상은 상당했다.

때문에 같은 만주 귀족들도 대놓고 지르칼손을 욕하지는 못하였다.

그런 지르칼손이 좌천되어 요동으로 쫓겨간 것에 좋아하던 만주귀족들도 제법되었다.

얼마후 만주인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은 지르칼손이 속해있는 보란세칸 가문의 귀에도 들어갔다.

쾅! 중년사내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친다.

두눈이 분노로 떨렸고 정면을 노려보았다.

보란세칸 가문의 가주인 다쿤타이핀은 부하가 가져온 보고내용을 들었다.

가문의 일원중에 한명인 지르칼손.

그가 요동에서 누군가에게 당했고 부대도 전멸 되었다는것.

지르칼손은 보란세칸 가문에서도 문제아로 찍혀있던 놈이다.

하지만 북경에서 소문이 돌고있는 상태에서 그냥 둘수없었다.

“즉시 천기대신을 만나야겠다. 준비를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나리!”

다쿤타이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북경에서도 명성높은 보란세칸 가문이다.

조정에있는 만주족 대신들과도 연줄이 깊었다.

준비를마친 가주 다쿤타이핀이 부하들과함께 저택을 나섰다.

그리고 이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걸려들었군.’

가문의 저택을 감시하던 비호국 요원들.

수행원들과 나온 가주 다쿤타이핀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자금성 쪽이다.

붉게상기된 얼굴과 분노로 소리치는 모습.

뭣 때문인지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 * *

“그런 소문이 돌고 있었다니!”

“이번일에 대해 천기대신께서 나서주셔야 겠습니다.”

다쿤타이핀이 주광비를향해 요청했다.

혁저(함풍제)가 새황제가 된뒤에 자금성과 북경에서 실권을 쥐고있는건 천기대신 주광비였다.

북경에있는 만주귀족들이 그와 협력했고 주광비의 권력기반을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중에서 보란세칸 가문의 수장인 다쿤타이핀은 주광비의 핵심세력들중에 한명이다.

주광비도 만주귀족이면서 북경에 있을때 보란세칸 가문과 친분이 두터웠다.

주광비가 혁저를 지원하기위해 준가르에서 북경으로 왔을때도 먼저 환영해주고 지지해준건 보란세칸 가문이다.

이때문에 지르칼손이 보란세칸 가문의 문제아였고 요동으로 좌천된 놈이였다해도 넘어갈수는 없었다.

주광비가 다쿤타이핀에게 찻잔을 건네면서 대답했다.

“걱정마시요. 보란세칸 가문의 부탁인데 어떻게 거절할수가 있겠습니까? 반드시 이번사건과 소문의 진상을 확인해서 가문의 근심을 덜어주겠소.”

“고맙습니다. 천기대신을 찾아오길 잘했군요.”

다쿤타이핀의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후 다쿤타이핀은 주광비를향해 감사를 표시하더니 수행원들과함께 돌아갔다.

잠시후 주광비의 집무실로 측근부하가 들어왔다.

“연경(북경)내부에서 수상한 소문이 돌고있다는 첩보를 받았는데, 그것이 보란세칸 가문의 지르칼손에 대한 것이군요.”

“지르칼손 그놈은 어차피 구제불능인 놈인지라 어떻게되든 상관없지. 하지만 괴소문이 돌면서 우리와 협력관계인 보란세칸 가문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건 막아야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르칼손 그놈이 속해있던 요동파견군의 지휘관이 누구인가?”

“소인이 알기로는 엄세번이라는 한족입니다.”

“허어! 미천한 한족주제에 요동파견군 사령관까지 승진했다니 놀랍군.”

“그것이 선대폐하(도광제)에게 전공을 인정받아 한족임에도 특별히 요동사령관의 직위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엄세번 그놈이 연경(북경)에도 출세를위해 뇌물을 쓴것도 있습니다.”

“한족주제에 출세를위해 이것저것 해댄것이군. 지금까지는 연경(북경)과 직례군을 장악하는데 집중했는데, 앞으로는 요동에 배치한 군부쪽에도 신경을 좀 써야겠군. 어쨌든 보란세칸 가문의 부탁도 있고하니, 전령을보내 지르칼손에대한 부분을 알아보도록 하게.”

“그것도 한가지 방법이긴 하지만, 소인에게 다른 계책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이번에 연경(북경)에서 괴소문이 퍼진것을보면 엄세번 그놈이 비천한 한족주제에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것이 분명합니다.”

“자네의 말을 듣고보니...”

측근의 생각에 주광비도 동의했다.

“단순히 전령이나 병부의 관료를 보내는것보다 엄세번 그놈을 여기로 데려와서 심문하는것이 좋을거 같습니다. 그래야 놈이 증거인멸을 시도하거나 도주할 기회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입니다.”

“하긴, 한족놈한테 이것저것 사정을봐줄 필요는 없지. 좋아, 자네의 계책대로 진행하게.”

“맡겨 주십시요.”

측근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요동사령관 엄세번

“허억!”

거친 숨소리를내며 엄세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자고있던 젊은여자가 몸을 비꼬면서 말했다.

“나리!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엄세번이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어젯밤에는 기분좋게 계집을 품으면서 잠에들었다.

요동군 사령관으로서 엄세번은 한족들은 꿈에서나 그릴법한 권세와 부귀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막대한 거금이 손에 들어왔다.

마음만 먹으면 미모의 어린 여자들을 얼마든지 품을수 있었다.

만주족들에게 충성을 바치고 지시대로 살아가면 얼마든지 편한 생활이 보장되니까 말이다.

그가 한족임에도 요동군 사령관 자리는 웬만한 만주족 관료들을 능가할만큼 고위직이다.

지금은 요동과 만주지역을 관장하는 주둔군 사령관의 역활이다.

나중에는 북경에있는 고위직의 연줄과 인맥과 돈을이용해 중앙으로 진출하는것도 가능했다.

그렇게되면 수많은 만주족들이 자신의 발아래 놓이게되는 것이다.

청제국에서 노예처럼 천대받는 한족들중에 자신만큼 출세가도를 달리는 경우도 별로없었다.

‘멍청한 놈들. 한족들 중에는 지금도 청제국을향해 반기를드는 놈들이 있다고 하던데 몰살당하고 싶어 작정한 놈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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