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169)

“그렇다면 한양에서 떠도는 새 임금님에대한 소문은 죄다 헛소문이 되는 것이군요.”

“당연하지. 당신들도 앞으로 주상전하를 모독하는 헛소문을 입에담지 않는게 좋을것이요.”

“알겠소.”

새임금을 직접본 사내들의 설명에 조금전까지 철종 이원범을 비방했던 두명도 잘못을 인정했다.

주막내에는 새 임금을 칭송하는 분위기로 가득해졌다.

그럴것이 새임금이 한양에 입성하면서 수많인 민초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였고 그 내용은 상당히 파격적이였기 때문이다.

재능과 실력을가진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것.

이제는 수많은 평민들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년에는 과거시험이 있지 않습니까?”

“과거시험이라고 하셨소?”

“얼마전 주상전하께서 내년에 특별시를 개최한다고 발표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아직은 자세한 내용들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내년 과거시험은 다를거 같다는 느낌이 들지않소?”

“하지만 지금 조정은 안동김씨의 수장이라는 이조판서가 장악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어떻게될지 모르는 일이지요.”

그들도 안동김씨의 수장인 김좌근에 대해서는 함부로 입에 담을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한양내의 수많은 민초들에게 안동김씨와 그 수장인 김좌근은 비판의 대상이였다.

“어쩌면 임금님에대한 저질스런 소문이 나도는것도 설마...”

“쉬잇. 더이상 말했다가는 무슨꼴을 당할지 모르네.”

누가 끼어들며 손가락을 입에대자 나머지 사람들이 침묵했다.

낮말은 새가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않는가.

한양내의 민초들에게 새임금보다 더 무섭고 공포스런 존재가 안동김씨와 김좌근이다.

민초들도 임금위에 군림하는 세도가들과 사대부들의 행태에 분노했지만 그들이 할수있는건 별로없었다.

그저 지금의 세태에 한탄하고 분노하는것이 전부였다.

주막내의 민초들이 적당히 눈치를 살피면서 새임금과 안동김씨들에대해 속삭이고 있을즈음 한켠에는 도포를 걸친 몇명의 유생들이 있었다.

허름하게 차려입은 도포자락을 볼때에 겨우 양반행세를 유지하는 잔반(몰락한 양반)쯤으로 보인다.

그때문에 주변에있던 평민들도 그들에대해 신경조차 쓰지않았다.

사농공상의 신분제에서 여전히 양반과 사대부가 최고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평민들이 모이는 허름한 주막에서 저렴한 막걸리나 마시는 선비는 몰락한 양반이거나 입신양명에 실패한 유생쯤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도성내에서 새로운 임금에대한 이야기가 많군요.”

“저도 소문을 들었는데 민초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이 상당부분 헛소문인게 사실인거 같습니다.”

“역시나 안동김씨와 김좌근 일파들이 저지른 짓이군요.”

정대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중심으로 3명의 선비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이 허름하고 볼품없지만 몰락한 양반인 잔반과는 달랐다.

정대상의 경우에는 공부와 배움이 상당했다.

또한 그의 조상인 정약용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학자였다.

어릴때부터 할아버지인 정약용에게 많은것을 배우고 익혔던 정대상이다.

하지만 정대상은 할아버지에 관련된 불운한 사건들도 알고있었다.

선대임금인 정조의 총애를받고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내었던 정약용 이였지만 이후에는 안동김씨를 포함한 세도가들의 질투에의해 비참한 여생을 보내야했다.

그럼에도 정대상은 할아버지를 존경했고 자신도 뜻을 펼치고픈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선비가 뜻을 펼칠수있는 관직의 길은 안동김씨와 세도가들 때문에 막혀버렸고 쉽지가 않았다.

재야에뭍혀 다양한 학문을 배우던 정대상의 주위로 비슷한 생각과 사상을가진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가운데 선대왕인 헌종의 갑작스런 죽음.

그후에 진행된 새임금의 등극.

그들은 새임금으로 등극할 사람들이 재야의 유생들에게 신임을받는 흥선군 이하응이 될것으로 예측했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듣도보고 못한 농사꾼이 새임금이 된것이다.

그로인한 좌절감은 엄청났다.

그런데 조금전 주막에있는 민초들의 대화나 사건을보며 그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조금전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대단한 사건이지 않습니까?”

“그렇소. 조선에 새로운 국운이 찾아왔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안동김씨와 김좌근이 어떤 인간들인지 잘알지 않소이까? 새로운 주상전하께서 제대로 뜻을 펼칠수나 있을것인지 걱정됩니다.”

동료의 말에 나머지 선비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임금과 조선에대해 가지는 충절은 크고 높았지만 할수있는건 너무나도 미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새임금이 단순한 허수아비가 아니란것은 확인했다.

당장은 아니라도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올것이란 느낌은 분명했던 것이다.

* * *

“전하. 예조판서 장우영. 명을받고 왔사옵니다.”

“이리로 오게나.”

희정당 집무실에서 장우영을 맞이하였다.

조선 임금들중에는 신하들을 개인적으로 만날때 주로 희정당을 이용했다.

선정전이 인정전에비해 작은 규모이기는 했지만, 그곳은 조회를 하는 장소이다.

동시에 주위에서 지켜보는 눈도 많았다.

이번에 예조판서 장우영을 여기로 부른것도 내편으로 끌어들인 좌부승지 박주선을 통해서다.

나에게 감명을받은 박주선은 같은 뜻을지닌 우부승지, 동부승지에게도 나의말을 전하였고 그들을 포섭했다.

그렇다고 승정원을 완전히 손에넣은건 아니다.

여전히 승정원의 핵심인 도승지를 포함해 우승지, 좌승지들은 안동김씨의 사주를받아 뒤통수를 칠 놈들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승정원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건 이들 3명이니 상관은 없었다.

이후에 기회가 닿으면 승정원에대해 전반적인 물갈이를해서 나의 세력으로 채워넣으면 되는 것이다.

이윽고 예조판서를 데려온 좌부승지 박주선도 참석했다.

“듣자하니 예조의 문서고에는 전세계 5대양 6대주와 다수의 국가들을 나타낸 지구전후도가 있다고 하던데 그것을 가져와 줄수 있겠나? 원본이아닌 복사본이라도 상관은 없겠네. 앞으로 필요할거 같으니 여러장을 준비했으면 좋겠군.”

“전하께서 지구전후도를 어찌 알고 계시는지요?”

“중화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네. 경전과 경서를 탐독하는건 그대들에게 미치지 못하나 잡학은 여러가지를 공부했다네.”

“.....”

나의대답에 장우영이 놀란 눈치다.

지구전후도는 1834년(순조 3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조정의 관료들.

그중에서도 해당자만 겨우 알고있는 상황이다.

지구전후도에는 조선의 상국인 청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란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관료들은 그걸 무시하거나 신경쓰지도 않았다.

소중화 사상이 사대부들 사이에 뿌리깊게 내렸다.

눈앞에 증거가 있는데도 여전히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야..! 라고하며 정신승리 중이다.

눈높이 교육과 일타강사

“예조에서 보관하고 있을것으로 생각되는데. 맞는가?”

“그러하옵니다.”

예조의 업무중에는 외교분야에대한 것도 있다.

조선밖의 국가와 세계에대한 지도도 예조에서 보관했다.

조선은 1834년에 나온 지구전후도를 통해서 조선 외부에 얼마나 큰 세계가 있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완전히 우물안 개구리 신세는 아니였고 우물밖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걸 알면서도 나갈생각을 안했고 알아볼 생각을 안했다. 기회가 없는건 아니였지만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예판이 수고를 해주게나.”

“알겠사옵니다. 기다려 주시옵소서. 전하!”

장우영이 서둘러 나갔다.

그의걸음이 빨라졌고 같이온 예조관원을향해 지시를 내렸다.

순조 34년에 나온 지구전후도였지만 조선의 사대부와 신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때문에 예조의 문서고에서도 구석에 쳐박혀 있었고 그것을 찾는것만도 시간이 걸렸다.

지구전후도는 조선인이 전세계를 탐험하며 만든건 아니다.

조선에서 그럴 능력이되는 사람은 전무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조선의 여러곳을 탐방하고 각 지역의 지리서들을 분석해서 대동여지도를 만들어낸 김정호 정도만이 탐사를통한 지도제작의 유일한 인물이다.

따라서 조선에있는 지구전후도는 실제로 청나라 관료인 장정부가 만든 지구전후도를 복제한 것이다.

장정부의 경우에는 1800년 청에 들어온 서양인을통해 세계전도를 받았다.

청나라의 장정부가 원본을 만들었지만 조선에서 보유한 지구전후도가 내가 알고있는 세계전도와 유사할수는 없었다. 다만 앞으로 진행될 세계전략을 짜고 여러가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전세계를 나타낸 지도가 필요했다.

“요청하신 지구전후도를 가져왔습니다.”

예조판서 장우영이 들어왔다.

양손에는 예조관원에게 받은 지도가 두루마리처럼 있었다.

“몇장을 가져왔는가?”

“서고를 뒤진결과 3장을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문서고에는 지구전후도의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는 상태라 전하의 지시대로 충분한 여유가 생기도록 관원들에게 지시해 목판본을 바탕으로 지도를 복제해내고 있습니다.”

“수고했소.”

장우영이 탁자위에 지도를 놓았다.

같이온 좌부승지도 지켜보는 가운데 지도를 펼쳤다.

내가 알고있는 세계전도와는 정밀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다.

형태는 그럭저럭 비슷하다.

지금 전세계에서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고 소유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전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수많은 해외 식민지와 미개척지를 탐험하며 세밀한 지도를 만드는 중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해군과 재해권 그리고 해상전투가 벌어질 상황을 가정해 지중해와 대서양의 주요한 해협, 연안지역에 대해서는 조사선을 파견해 해저의 수심과 여러가지를 측정하는 일까지 벌였다.

따라서 내앞에있는 지구전후도는 영국이나 프랑스, 심지어는 네델란드와 스페인등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지도에 비해서도 몇단계 아래의 수준이다.

이렇게 부정확한 지도이긴 하지만 지리에 관심이 있었고 현대에서 살아온 나였기에 충분히 보정하면서 볼수가 있었다.

“중화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들었는데 세상에는 중국외에도 정말로 큰 대륙이 많군요.”

좌부승지가 고개를 내저었다.

예조판서인 장우영에비해 좌부승지인 박주선은 지구전후도를 본것이 처음인거 같다.

이 지구전후도는 담당부서인 예조에서도 구석에 쳐박아두던 것이였으니.

“아국인 조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박주선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는 지구전후도에 표시된 5대양 6대주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때문에 당장에는 지도에서 아시아와 중국, 조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박주선을향해 말했다.

“좌부승지. 여기가 조선이네.”

그를위해 조선이 표시된 부분을 손으로 집어주었다.

실제 조선의 영토보다 몇배나 크게 되어있다.

중국을 포함한 청의 영토도 실제보다 큰 형태로 그려져있다.

지구전후도의 원본을만든 인물이 청의 관료였으니 그럴만 하겠다.

중화뽕과 양념을 팍팍넣어 중국이 이만큼 큰 영토를 갖고있다고 자랑하고 싶었겠지.

“그렇다면 청국을 흔들었던 영길리국(영국)은 어디에 있사옵니까?”

“여기네. 청국에서도 상당히 먼 구라파(유럽)라는 대륙에 있지.”

“저렇게 작은 소국이 청국을 상대로 이겼다는 것입니까? 조선의 반도 안되는 영토를지닌 소국으로 보입니다.”

“지도가 오래되고 정확하지 않아서 그렇지만 실제로 영길리국은 조선과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가지고 있다네.”

“그렇군요.”

두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중학교 1학년짜리를 데리고 지리강의를 하는 수준이네.

예상했지만 조선에서 깨어있다는 두명도 조선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르는게 많았다.

그나마 행운인건.

저 두명은 무지에대해 스스로 반성하고 배우겠다는 자세라는 부분이다.

대부분 유교탈레반 꼰대들은 모르는 부분에대해 열폭하며 배울려는 자세조차 없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강력한 패권국가는 저기에있는 섬나라 영길리국이지. 그들은 청국과의 전쟁을위해 자신들이 있는 영길리에서 배를타고 수개월이나 항해를 하였네. 그뒤에는 청의 광주에 도착했고 청국을 상대로 이겼단 말이지.”

“그런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까?”

“소신들은 믿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들이 볼때에 청은 영토가 큰 대국.

영국은 기껏해야 조선과 비슷한 크기의 소국이다.

그런 영국이 청을 굴복시켰다니?

이해할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전쟁은 영토의 크기로 결정되는게 아니다.

그리고 영국이 정말로 영토가 작은 소국일까?

전혀 반대다.

청나라와 비슷한 크기를지닌 인도가 영국의 손아귀에 떨어진 상태다.

영국이 개척하고 지배하는 식민지는 전세계의 곳곳에 존재한다.

영국은 전세계 영토의 1/4을 손아귀에쥔 대제국이다.

과거 칭기스칸의 몽골제국보다 더 크다고 볼수있다.

“세상에는 믿기힘든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수 있지. 경들도 알다시피 과거에 청국이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지닌 명을 무너뜨린것도 단지 20만도 안되는 팔기군이 있었기 때문이네. 하지만 청국의 팔기군도 양이중에 하나인 영길리국의 잘 훈련된 강군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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