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169)

“그런데 십부장님! 우리들이 조선인들을 납치하고 마을들을 약탈하다가 조선에서 군대를 파견하면 어떻게 합니까?”

“멍청한 놈! 조선이 그럴만한 능력이라도 있는줄 아느냐?”

“하지만 조선정벌 전쟁에서 조선군의 수군은 엄청강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이순신이라는 악마같은 조선인도 있었고.”

“그것은 옛날의 것일 뿐이다. 지금 조선의 수군은 너무나도 허약해 오합지졸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당연하지. 우리들이 조선의 남해안에서 몇년동안이나 지내면서 조선수군이 제대로 반격이라도 해온적이 있었느냐?”

“하긴 그렇군요. 헤헤!”

무장의 말에 병졸이 대답했다.

전대국왕인 헌종이 허약하고 안동김씨를 포함한 세도가들이 권력을 쥐면서 조선은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과거에 명성을 떨쳤던 조선수군의 군사력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이제는 왜구들에게 비웃음이나 당하는 신세로 전략한 것이다.

다만 일본군이나 왜구들이 임진왜란처럼 대규모의 병력으로 쳐들어오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남해안 해적기지인 삼흑도(三黑島)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왜구들의 숫자는 수백명 수준이다.

하지만 왜구들이 벌이는 악행은 상상을 초월했다.

남해안에있는 섬들을 불시에 습격해 약탈했고 마을 주민들을 납치했다.

더 황당한건 남해안의 방어를 책임지는 조선수군의 지휘관들과 행정관들이 무능하다는 것이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실력으로 지휘관이나 행정관이 된것이 아니다.

세도가인 안동김씨와 김좌근에게 뇌물을바쳐 지금의 자리를 얻은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능한 자들에게 조선민초들이 왜구들때문에 격는 비참한 상황따위는 관심밖의 일이였다.

“이번에도 수확이 좋군.”

“대장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감옥안에 넣어지는 조선인들의 모습을보며 갑옷을입은 무장이 히죽거렸다.

조선인들을 사냥할때마다 그들은 희열을 느꼈고 어느때보다 잔인해졌다.

어차피 조선인들은 열등한 민족일 뿐이다.

과거의 선조들이 조선정벌을 실패한것에 분노했다.

이렇게 허약한 조선인들을 상대로 패배했다니?

도저히 믿을수 없었던 것이다.

* * *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이토 대장님”

중년사내가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통역을 담당하던 20대의 청년은 미간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어쩔수 없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고 거부하면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 기껏해야 중인신분에 불과한 자신이 할수있는건 별로없었다.

그럼에도 일본어를 통역해주던 역관 박창원은 분노가 치미는걸 간신히 억눌렀다.

역관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맡은일이 치욕스런 것이라니. 그에반해 박창원과 함께온 조선관리와 눈앞의 왜구대장은 잘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역관으로온 자네는 신참인가?”

“그렇소.”

박창원이 대답했다.

그러자 왜구대장인 사이토의 표정이 몇차례 변하였다.

어린 조선놈이 겁없이 까분다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있는 조선관리가 얼마나 조심성없고 멍청한지도 깨달았다.

지금 이 장면과 사건이 한양에라도 보고되는 날에는 여기온 두놈은 역적으로 목이 달아나도 모자랄 정도다.

일본에서라면 당연히 그랬다.

자신이 속해있는 쵸슈번 가문에서는 다른 지역에있는 세력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다면 참살이다.

그처럼 눈앞에있는 조선관리가 하는짓은 역적의 죄를 물어도 충분했다.

하지만 사이토는 그런것을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조선놈들은 이용하고 버리는 존재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쓸만한 인재들이 있나?

“그러니까 이번에도 한양으로 보내는 공물. 즉 조운선에 대해서는 손대지 말라는 뜻이지?”

“그렇습니다. 대장님.”

눈이 양쪽으로 찢어진 관리, 최상명이 히죽거렸다.

그가 역관을 대동하고 여기에온 이유는 하나였다.

해적소굴에 납치된 조선인들을 구출하기 위함도 아니였다. 왜구의 두목을만나 담판을 짓는것도 아니다.

한다는것이 이번달에 한양으로 출발하는 공물선.

즉 조운선에대한 공격을 중지해 달라는 것이다.

“조선의 조운선에는 진귀한 것들이 실려있는데, 놔두라는 뜻인가?”

“당연히 대장님을위해 성의를 보여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상명이 가져온 보자기를 풀었다.

여러개의 상자들이 있었고 부하들이 그것을 열었다.

내부에있는 것들을 확인하자 두목인 사이토를 포함해 측근들이 침을삼켰다.

그들의 눈에는 상자가득찬 은괴들이 보였다.

저것만으로도 엄청난 금액이다.

그러나 왜구들의 군침을 삼키게 만든건 따로있었다.

“대장님. 금화보다 귀하다는 조선의 홍삼들입니다. 그것도 상자가득히 들어있다니.”

“대장님을위해 특산품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크하핫! 이정도 성의라면 조선의 남해안을 항해하는 공물선에 대해서는 가만히 두겠소.”

“정말로 감사합니다.”

왜구대장의 대답을듣자 최상명이 몇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조선의 공물선이, 그것도 조선 영해에서 항해를 하는것인데... 왜구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왜구대장인 사이토에게 뇌물을 바치는 최상명은 어떤 죄책감이나 비굴함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왜구들에게 바치는 이 뇌물도 최상명의 상관이 사재를 털어서 마련한것도 아니다.

한양으로 보내는 세금과 공물의 양을 중간에서 속이고 가로채서 준비한것에 불과했다.

그것이 몇배나 싸고 안전하게 먹혔다.

만약에 한양으로 가던 공물선이 중간에 왜구들에게 털리고, 침몰을 당하면 최상명의 상관이 엄청난 뇌물을들여 얻은 관직이 박탈당한다.

공물선이 털리는건 뇌물을받고 지금의 관직을 마련해준 김좌근도 비호해주기 힘들다.

김좌근이나 안동김씨들이 먼저 분노할 일이니까 말이다.

그때문에 최상명의 상관, 송재인은 자신의 안위와 자리를 지키기위해 왜구들과 내통하고 뇌물을 바치는 역적질을 거리낌없이하고 있었다.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중에 핵심들은 남해안에서 이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을 지키고 한양으로 들어오는 공물과 막대한 세금을 지키기위해 묵과했다.

이처럼 조선의 부패와 세도가들의 이익이 왜구들과 연합되면서 조선은 엄청난 치욕을 당하는 신세였다.

얼마후 왜구두목에게 만족할만한 대답을듣자 최상명이 몇번이나 고개를 숙이더니 일어났다.

그리고 호위병들을 따라서 어두운 통로를 걸었다.

그들이 지나가던 주위로 몇개의 지하감옥들이 보인다.

수행하던 역관 박창원의 두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감옥에는 신음을 삼키는 조선인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어린 소녀들도 있었고 노인들과 아이들까지 발견되었다.

박창원이 말했다.

“감옥을 보십시요. 저기에 조선인들이...”

“씨끄럽다. 이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떠들어? 목이 베이고 싶으냐?”

“......”

상관의 외침에 박창원이 움찔했다.

주변에서 안내하던 왜구들이 눈에서 살기를 띠었다.

“조센징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거야?”

“감옥에 조선인들이 있는데 어떻게 된것이요?”

“몰라서 묻는것이냐? 크흐흐흐!”

왜구가 히죽거렸다.

박창원은 할말을 잃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그대로다.

하지만 박창원이 할수있는건 없었다.

여기서 저 감옥의 조선인들을 구출할려고 시도하면 바로 목이 잘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박창원의 내심을 알았는지 주변의 왜구들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시도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물론이요.”

박창원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그리고 조선의 무력한 모습에 한탄했다.

* * *

“아무리 19세기의 조선이고, 전근대 국가라해도 역시 행정조직의 규모는 상당할 정도구나.”

탁자위에 올려진 수많은 서책들과 자료들을보며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조선의 왕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것들이다.

유교경전이나 성리학에 관련된 책이라면 오래전에 던져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다.

머리가 뽀개지는 경우가 생긴다해도 모두 살펴보고 머리속에 담아야하는 것이다.

종걸이(송내관)를 시켜서 자료들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것들은 주로 승정원에있는 것들이다.

승정원은 조선시대 왕의 집무를 보좌하는 관청인데 21세기의 한국으로 대입하면 대통령 비서실정도의 위치이다.

그리고 승정원에는 왕의집무에 필요한 여러가지 자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창덕궁내에있는 수많은 관청들과 각부서, 그리고 지방조직에 대한것부터 군사조직에 대한것들까지 다양했다.

조선에서 최상위에 존재하는것이 임금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행정조직으로 의정부와 6조가 있다.

의정부에는 3정승이 존재하고, 각각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이다.

또한 의정부에는 단지 3정승들만이 있는게 아니고 각각의 3정승들을 보좌하는 기관들이 있었다.

의정부의 밑에는 6조가 있다.

인사분야를 담당하는 이조부터 시작해서 호조, 병조, 형조, 예조, 공조까지 존재한다.

6조의 내부에는 또 여러개의 작은 부서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창덕궁에는 승정원처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기관들이 있는데 속칭 삼사라고 알려진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등이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들도 열심히 암기했던 삼사, 의정부, 6조등이 조선내 행정조직의 큰 줄기라고 볼수있다.

그래도 반푼이 사학도로서 이정도까지는 그런대로 쉬웠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서들과 관직, 그리고 각각의 업무에대한 부분까지 들어가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조선이 19세기 중반의 전근대 국가라 하여도 중앙조직에는 수많은 부서들이 존재했다.

임금인 나로서는 그것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개혁을하든 개편을하든 할테니까 말이다.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느낀것은 있었다.

현재 조선의 중앙조직과 행정조직은 이후에 발전할 조선의 상황과는 맞지않는 것들도 많았다.

따라서 시대에맞게 바꾸고 개혁해야할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였고 지금은 내가 관리하고 지도해야할 행정조직에대한 파악과 정보를 얻는것이 먼저다.

“이정도면 대충 머리속에 넣은거 같은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푼이 사학도로서 조선시대 역사에대한 지식이 있었기에 빨리 끝낼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기있는 자료들을 모두 살펴보고 하는데 며칠이 걸릴 정도였다.

단순하게 정보만 획득하는것이 아니라 이후에 개선하고 개혁해야될 부분까지 체크를 하면서 검토했기에 시간이 좀 걸리는건 어쩔수 없었다.

이제 나의 머리속에는 조선의 행정조직에대해 도식표가 그려지듯이 다양한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조선이 아무리 성리학 이념과 예법의 국가라해도 쓸데없는 관청과 부서들도 꽤 있군. 그중에 하나가...”

먼저 떠오르는게 홍문관이다.

홍문관은 의정부와 6조의 행정부서와는 독립된 삼사에 속하는 곳이다.

주된목적은 임금에대한 강의와 교육인데.

주로 임금에게 유교경전과 성리학적 사상을 주입하는걸 목적으로 한다.

조선역사에서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에는 항상 홍문관의 유학자들이 참가한다.

그리고 조선에서 왕을 무능력하게 만드는 신권정치에서 선두를 담당한다.

실제로 홍문관은 왕에대한 교육만이 아니라 이후에 임금이될 왕세자에대한 교육까지도 도맡아했다.

때문에 왕세자의 스승은 홍문관에서 파견된 유학자가 담당했다.

‘그러고보니 김좌근과 안동김씨 놈들이 새로 임금이된 나를 교육시킨답시고 수작을 부릴거 같은데.’

대충 예상은된다.

홍문관에있는 유학자들을 이용해 경연이니 뭐니 하면서 달달 볶아댈려고 시도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일단 생각해둔 부분이 있었다.

경연이라...

까짓거 원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경연은 이전과는 다른것이다.

경연을하면 할수록 나가떨어지는건 저쪽이 될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중앙조직과 행정조직들을 검토하면서 홍문관에 대해서는 손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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