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은 협객의 사회-71화 (71/120)

< 71 : 70. 천마재림(The second coming of the chosen one)(4) >

"제가 천마입니다."

나는 일월마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일월마군은 굳은 표정이었다.

"지금, 뭐라고……?"

"……천마?"

"방금 교수님이……."

장내에 잠시 웅성거리는 소란이 있었지만 서서히 잦아들었다. 곧 오디토리엄 전체가 고요해졌다.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불현듯 적막을 깨는 고함이 들렸다.

"하!"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난 일월마군이 사자후(獅子吼, Lion's roar)를 내뱉었다.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월마군에게 집중되었다.

"우리…… 김 장로가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는구려."

화경을 넘어선 고수가 시전한 사자후는 분명 오디토리엄 전체를 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압도적인 내공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기세에 평교도들 중에선 기절하는 자도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설득력이 모자랐다.

"……방금?"

"교주님의 말씀……."

그건 그저 커다란 발성에 불과했다.

분명 장내 전체에 울리기는 했을 터이나 내가 전음의 수법을 응용해 속삭인 것처럼 고절한 맛이 없었다.

누구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고수라면 그 체감이 더할 테고.

교도들의 얼굴에 혼란이 싹텄다.

딱 내가 바라는 정도였다.

애초에 본인을 천마라고 일컫는 인물이 나온다고 해서 광신도들이 즉시 다른 천마를 믿을 리가 없었다.

혼란과 부정의 과정을 거쳐야 인정을 얻어낼 수 있었다.

광신도를 정신 차리게 하는 것만큼이나 광신도를 뺏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농담이라."

나는 팔짱을 끼고 일월마군을 오연하게 내려다보았다.

나는 천마였다. 실제로는 아니지만. 아무튼 이 자리에서는 천마여야 했다.

가짜 선지자를 존대할 필요가 없었다. 더없이 오만하고 무도한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

사실은 꽤 적성에 맞았다.

"이봐, 마군."

"……교주라고 불러라."

"교주? 내가 왜?"

"왜, 라고?"

일월마군의 표정을 일그러졌다. 뒤에 있는 교도들에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검룡패를 받고 장로가 된 것 아닌가! 교의 주인을 마땅히 받들어라!"

"그러니까."

나는 느릿하게 턱을 쓰다듬었다. 계속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소리가 장내에 뻗는 것을 신경 썼다.

"일월신교의 주인이라 함은 재림천마를 일컫는 말이 아닌가."

"……네놈."

"가엾은 마군아."

"그 입, 다물어라."

"나를 교주라고 부르거라. 네 앞에 다시 온 네 주인을 받들어라."

일월마군이 참지 못하고 기세를 일으켰다. 살기가 뻗어져 나왔다. 일월마군이 항상 본인이 천마인 증거라고 내세우던 파천신공과 함께였다.

"검룡!"

"천마다."

내가 의도한 바였다. 나는 맞서 파천신공을 일으켰다.

"새, 색이……."

"……이상하네. 어찌 검룡의 것이 더……."

일월마군은 분명 제대로 된 파천신공을 익혔다. 전반부만 익힌 나와 달리 천마신교의 간부로서 중반부까지도 익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공을 섬세하게 다루는 기술과 무공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일월마군도 화경이었으나 파천신공을 온전히 사용하기에는 재능과 적성이 모두 모자랐다.

차라리 적성에 맞는 다른 무공이었다면 달랐을지도 몰랐다. 그를 일월마군으로 만들어준 무공 말이다.

오랜 세월 천마를 자칭하며 살아오며 파천신공을 익혔을 텐데도, 일월마군이 드러내고 있는 강기의 색은 그가 살아온 궤적처럼 흐리고 탁했다.

파천신공의 강기공은 검은 구름 위로 하얀 뇌기를 피어 올리는 무공이었다.

그러나 일월마군의 구름은 짙은 회색에 불과했고 번개는 희끄무레했다.

비교할 대상이 없었을 때는 충분히 파천신공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파지직─.

눈앞에 비교 대상이 있으면 그 명도의 대비가 심히 모자람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파천신공의 호신강기를 둘렀다. 완벽한 흑색 구름 사이로 간간이 순백의 전깃불이 튀었다.

"네놈, 어떻게."

"어떻게, 라니. 본인이 본인의 무공을 못 쓸 리가 있나."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실은 꽤 노력한 결과였다.

일월신교의 장로들을 회유한 뒤 오늘까지 나는 일월신교의 교리를 분석하고 일월마군에게 대응할 방법을 준비했다.

일월마군이 본인을 천마의 환생이라고 내세우는 증거들. 그게 오히려 일월마군의 약점이었다.

천마신교의 천마는 위대해야 한다. 세계로부터 선택받은 자(The chosen one)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할 필요까지는 없다. 5억 교도를 대표하고 이끌지만 그저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초대 천마의 깨달음을 이어받는 자.

그러나 일월신교의 천마는 다르다. 흠 없고 대단하고 완벽한 현세에 강림한 신이었다. 초대 천마의 재림. 일체의 부족함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일월신교의 재림천마였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완벽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일월마군보다만 나은 경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일월마군의 무결성을 깨트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가장 공을 들인 것은 파천신공이었다.

파천신공은 뇌기(雷氣)와 음기(陰氣)로 구성된 일종의 강기공이었는데, 과연 신공이라는 이름이 붙을 자격이 있는 상승 무공이었다.

비급을 구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중후반부와 달리 전반부는 일반에도 공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반부만으로는 삼재종합공만큼의 효과도 얻을 수 없기에 교외인(敎外人)은 굳이 배우고 익히지 않을 뿐이었다.

전반부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꽤 잡아먹었다. 난해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뇌기와 음기라는 주류가 아닌 기운을 다스리는 무공이 더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삼재종합공의 1급 대가였고 파천신공과 동급의 신공인 자하신공을 오랫동안 익혀온 경력이 있었다.

무공을 분석하고 익히는 데는 도가 텄다는 이야기다. 비급을 반복해서 읽으며 원리를 분석했다.

그럼에도 전반부만으로 파천신공의 강기를 완성하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삼분의 일밖에 안 되는 설명서를 보고 신공을 온전하게 그려낼 수는 없었다.

내가 진짜 천마가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색을 확실히 만드는 데에만 치중했다. 가능하고 필요한 영역이었다.

파천신공 자체를 완성하는 것은 내 목적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구도(求道)를 위해 달리는 것은 화산의 무공만으로도 충분했다.

파천신공의 전반부에서 뽑아낸 것은 뇌기와 음기를 표출하는 방식뿐이었다. 그것을 적확하게 다루는 것은 논외였다.

의(意)를 배제하고 형(形)에 치중했다. 먹구름에서 번개가 뛰노는 외형만을 취했다.

그러니 사실 내가 익힌 것은 파천신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늘을 부수려는 의도도, 하늘에 닿으려는 의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눈앞에 있는 사이비 종교를 해체하기 위해 의도가 전부였다. 적명신공(敵明神功)이라고나 할까.

적명신공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 신공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것은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자하신공에도 작은 진전이 있었다.

재밌는 것은 파천신공이 추구하는 패도(覇道)가 내 적성에 꽤 맞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익히는 데 시간이 단축되기도 했다.

천살성의 영향인지, 그저 재능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만 스승님이 거둬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천마신교의 교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나는 온전한 색을 재현해냈다. 일월마군을 의심에 빠지게 할 정도로 완벽한 형이었다.

이 자리에서 파천신공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일월마군이었다. 내가 발하는 기운과 색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게…… 가능할 리가 없다."

"마군아. 눈으로 보고도 네 주인을 의심하는 것이냐."

"닥쳐라. 화산의 도사가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파천신공의 후반부라도 엿본 것이냐?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더는 말로 설명하지 않겠다."

천마가 굳이 대화를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천마가 걷는 길이 아니었다.

교도들의 마음속에 혼란과 의심을 심어줄 정도의 명분은 충분히 세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는 무인답게 주먹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교도들은 들어라."

내가 나지막하게 부르자 이미 내게 회유된 장로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존명!"

이미 장로 중 반수를 넘은 숫자였다.

"자, 장로님들도?"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회유하지 않은 장로들은 물론 평신도들도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평신도들은 사실 따로 회유할 필요도 없었다. 일월마군만 처리하면 자연히 넘어올 자들이었다.

"내 직접 가짜 선지자를 벌하겠다. 가짜를 따르는 교도들은 제압하라."

"……천마님의 뜻대로!"

"……존명!"

광명우사와 사천 주교가 가장 크게 소리쳤다. 아주 못 믿을 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듬직한 사냥개였다.

"이런 미친……!"

장로들이 내 명을 받는 것을 보고 일월신마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여튼 다른 사람들 등쳐먹는 놈들은 이게 문제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고 세상에 제 뜻대로 돌아가는 줄 안다.

나는 연단에서 뛰어내리며 적명신공의 뇌기와 음기를 주먹에 가득 두르고 삼재권법의 초식에 맞춰 휘둘렀다. 뇌기와 음기를 섬세하게 다스리는 기공은 익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 가장 강했다.

파지지지지직─.

뇌기가 공기를 태우는 소리를 남기며 주먹의 궤적을 따라왔다.

당황한 일월마군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격과 업은 높다 하되 무공으로 쌓은 것이 아니었다. 실전 경험도 오래된 퇴물일 뿐이었다.

초기에 타격을 입히면 어렵지도 않을 상대였다.

단숨에 제압─.

쾅!

티이이이잉!

─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파동의 강기가 내 주먹을 멈춰 세웠다.

끼어든 것은 선글라스를 끼고 몸에 목걸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흑인 사내였다.

"이게 무슨 짓이지, 악룡(樂龍)."

"헤이, 버디. 그 닉네임은 졸업한 지 벌써 7년도 넘었다고."

"아, 그래. 관심이 없어서 몰랐군."

"진심? 악절이라고 못 들어봤어? 섭섭한걸."

껄렁거리는 사내. 여유로운 태도였다. 업과 격이 드높았다. 수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 화경이었다.

내가 처음 검룡이 되었던 시절에 같은 칠룡에 꼽혔던 악룡 릴 드레이크였다. 지금은 후기지수는 졸업할 만큼 나이를 먹고 악절이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축하한다. 악절. 그래서, 날 막아선 이유가 뭐지?"

"아까 내 공연 못 봤어? 난 이 천마 듀드한테 받을 게 있다고. 그런 살벌한 주먹으로 이 친구 대가리를 날려버리려고 하면 곤란해."

"……머리가 없는 몸뚱이에게 받아가는 게 더 편하지 않나?"

"오, 쓋. 그런 방법이."

악절은 천재적인 해결책을 들었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일월마군으로 가는 길을 슬쩍 비켰다.

그 모습을 보며 일월마군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그 기타는 고무림에 맡겨놨다! 내가 죽으면 아무도 못 가져가! 악절! 나를 보호해라! 기타는 물론이고 돈은 얼마든 주겠다!"

"맨(Man), 너 지금 내게 지금 백지 수표를 제시하는 건가?"

"그래!"

"그렇다는데, 버디? 내가 돈이 많긴 한데 돈은 아무리 많아도 좋은 거거든."

악절은 씩 웃으며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골치 아프군."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삶은 원래 거지 같은 거라고."

"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뜻이다."

"아하. 알았어(Got it). 꼭 내 여자친구 같은 말을 하는군."

"……."

상정 외의 상황이었다. 마선을 포함해서 화경이 몇 있을 것까지 생각하긴 했는데 그게 악룡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음공의 대가는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더 뼈아픈 것은 일월마군에게 상황을 파악하고 정비할 시간을 줬다는 사실이었다. 업과 격이 보통의 화경보다 높은 일월마군이 마음 먹고 사리기 시작하면 제압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었다.

가장 빠르고 쉽게 처리하는 길은 이미 물 건너갔다. 일월마군만 초기에 제압했다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였을 텐데 말이다.

이제와서 태세를 정비한 일월마군과 악절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자하신검을 꺼내도 힘겨운 일이었다. 천마 코스프레를 하고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최소한 일월마군만큼은 적명신공을 사용해서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슬쩍 객석을 훑어보니 장로들 간의 싸움도 지지부진했다. 광명좌사가 무력적으로는 가장 앞서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보니 열심히 싸우는 것 같지도 않았다. 분위기를 보고 승자에게 기려는 모양이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일월마군을 제압하기 전에 공권력이라도 개입하면 공들인 것이 모두 허사였다.

어쩔 수 없이 플랜비를 써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손목시계 화면을 꾹 눌렀다. 작은 전자음과 함께 통신이 연결되었다.

"진입."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여유로운 미소를 짓던 악절의 표정은 살짝 굳었다.

"저, 버디. 혹시 누구 불렀어?"

"그래."

"친구들? 좀 많아?"

"제법."

"……누굴 불렀는데?"

나는 오디토리엄 입구를 향해 턱짓했다.

"저 친구."

화경의 고수가 경비를 돌파하고 오디토리엄에 도착하기까지는 몇 호흡이 걸리지도 않았다.

문을 열고 이미 소리 없이 진입해 있었다.

"이런. 낯익은 슈퍼스타가 와계셨군. 연락이라도 미리 주지 그러셨소. 호위를 잘 붙여 드렸을 텐데."

"저자가 왜……."

일월마군이 낮게 신음했다.

"저 친구가 누군데 그래?"

악절만이 어리둥절했다.

곧이어 뒤늦게 오디토리엄으로 진입하는 인파들이 있었다. 휘장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있었으나 맞춰 입은 유니폼과 일제히 뽑아든 제식 당가검이 그들의 정체를 증명했다.

"음. 혹시 당씨(Tang)?"

"반갑소. 사천당문의 무명소졸이오."

당천갈이 독강을 피워올리며 겸손하게 인사했다. 화경의 숫자를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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