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나는 용왕이다(4)
* * *
"용왕님!"
류아의 목소리가 꽤 다급했다.
그는 누군가를 내던졌다. 류아의 부적에 묶인 누군가는 두려움을 내비치고 있었다.
용왕이 누구냐고 묻기 전에 류아가 말했다.
"이놈 첩자예요!"
"첩자라니……?"
용왕의 눈이 커졌다.
무날이 이제 막 의심되는 이들의 명단을 만들고 물을 통해 감시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이놈이 우리 마을의 정보를 수족에게 팔려고 했단 말이에요!"
용왕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물을 뻗어 첩자를 자신의 앞에 데리고 왔다.
괴물.
용왕을 보는 첩자의 시선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득했다.
물이 멋대로 움직이지 않았는가.
감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아득한 존재를 보는 느낌에 당장이라도 철부지 아이처럼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용왕은 물로 입마개를 풀고, 물었다.
"어떤 정보를 팔았는가?"
서늘한 용왕의 눈빛에 첩자는 마냥 무거워야 할 입을 금방 열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첩자는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이러지 않으면 수족이, 그놈들이 제, 제 딸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사랑스러운 딸을 위해 무얼 못할까.
수족이 잔혹하고, 포악한 걸 알기에 그들의 협박에 '아니'라는 말은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어떤 정보를 팔았는지 왜 말을 하지 못하는 건가?"
용왕은 다시 물었다.
저 첩자가 협박을 당했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은 여길 지켜야 했고, 지키기 위해서는 놈이 팔아버린 정보를 들어야만 했다.
"…마을의 외관과 방어책, 대략적인 방어 수, 숫자, 주변 풍경을……."
"정체가 뭐지?"
용왕은 줄줄 나온 저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
일반인이 아니었다.
"네놈이 누구였는지 당장 말하거라."
용왕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어리자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강한 압박이 밀려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입이 멋대로 벌어졌다.
"…저는 어, 얼마 전에 수족에게 멸망한 나라, 태의 병사였습니다."
남자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겨우,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용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곳에도 나라가 있었다.
수족에게 대항하고자 일어난 이들이 모여 나라를 이뤘다는 걸 용왕 역시 알고 있었다.
"태라면……."
용왕은 지리를 떠올려보았다.
마을을 고를 때 가장 신경 쓴 건 위치였다. 수족에게 들키지 않도록.
이 마을 옆에 가장 큰 나라가 '태'가 있었다. 든든한 벽이 되어줘야 할 그 나라가 무너져내리다니.
'…태나라 때문에 이 땅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는데.'
설령 수족이 쳐들어온다고 한들, 태나라부터 들리고 올 걸 예상하지 않았던가.
'내 판단이 늦었다.'
용왕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자신의 힘에 두려워할 게 아니라 물을 시켜 관찰하도록 해야 했는데.
용왕은 근처의 물을 움직였다.
태나라로 물을 뻗으려다 말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을 울려!"
용왕이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족들이 벌써 코앞까지 들이밀고 있었다.
용왕은 자신의 판단을 원망했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했기에 물과의 연결을 잠깐 차단했던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던가.
―용왕니이이임!
물을 연결하자마자 다급하고 큰 소리가 들려왔다.
―수족이라고요! 수족이 코앞까지 왔어요!
―진짜 크게 외쳤는데!
"미안해. 지금은 시간이 없어. 마을을 보호해줘."
―얼마 만큼요?
물의 외침에 용왕은 걸음을 멈췄다.
'…힘을 얼마나 사용해야 하지?'
자신의 힘이 무서워졌다. 무서웠기에 물과의 연결을 잠깐 차단하지 않았던가.
저번에.
열쇠의 수호자로서 힘을 얻고 난 후에.
강해진 힘을 시험해볼 겸 물을 끌고 온 적이 있었다.
그저 평소와 같은 양이라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숲 일대가 지녀야 할 물을 모조리 끌어왔다.
식물이 가지고 있어야 할 물마저 쓸어버려 금세 메말라버렸다.
그토록 넓었던 숲이 죽어버렸다.
숲을 되살리려고 다시 물을 부었지만, 자연을 되살릴 수 없었다.
숲이 죽자, 그 숲에 살던 동물들이 죽어버렸다.
그 연쇄작용을 본 순간 머릿속이 얼마나 하얗게 변했던가.
―용왕님?
물의 재촉에도 용왕은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깨진 순환의 고리를 망가트리면, 자연의 힘을 가진 어떤 존재가 없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자연의 존재가 있다면…….'
사방에서 비명이 들리자 용왕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용왕님!"
류아가 달려와 용왕의 얼굴을 보았다. 안색이 벌써 창백해지고 말았다.
"진정하세요. 괜찮아요. 천천히 하면 됩니다."
류아는 용왕이 왜 이러는지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숲을, 자연을 망가트렸다며 서럽게 울지 않았던가.
자신도 그곳에 있었다.
숲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몰라도 용왕이 가진 힘 하나에 모든 게 사라져버린 광경에 얼이 빠지고 말았다.
어릴 때는 마냥 대단하게 보였던 용왕의 힘이 자라면서 얼마나 크며 또 아득한지 알아버렸다.
"나 또… 망치면 어떡하지? 또 이곳을 파괴하면 어떡하지?"
불안한 눈빛과 함께 용왕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용왕님이 하실 수 없다면 저희가 하면 됩니다."
정작 그 힘을 가진 존재는 본인이 얼마나 무섭겠는가.
류아는 용왕을 안으며 그를 토닥거렸다.
모두가 자랐지만, 아직 용왕 혼자만 어렸다. 혼자만 자라지 않았다.
혼자만 아직 아이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 힘을 쓸 때마다 어떤 대가가 필요한 것일까.
아직 아이인 용왕이 마을을 지킬 때마다 책임감이 하나씩 쌓였다.
"저희가 용왕님을 지켜드릴게요."
용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자신들을 위해 살아온 이 가엾은 아이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괜찮아요. 울지 마세요."
'아니야.'
용왕은 온기가 사라지자 속으로 대답했다.
'너희가 할 수 없어.'
수족의 힘은 계속 부딪쳐온 자신이 알고 있었다.
류아가 자신보다 앞서 달려갔다.
"용왕님.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무날이 굳건한 의지를 보내며 류아와 같은 방향을 향했다.
"아무래도 다음 소풍은 조금 늦어지겠어요."
태련이 용왕의 머리를 살포시 두드리며 씩 웃었다.
"지켜보고 있어요, 용왕님."
"…잠깐만."
용왕은 머리에서 느껴졌던 온기가 사라지자 그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온기, 그 온기가 사라질 때 느꼈던 불안함이 다가왔다.
"잠깐만 기다려봐."
셋의 뒷모습을 보자 모든 게 두려워졌다.
수족에게 뜯어먹히는 저들의 최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
용왕의 눈이 커졌다.
밀려오는 수족들을 보았다.
이곳을 전멸시키려 각오라도 한 듯 숫자는 아득했다.
왜 태나라가 망했는지 용왕은 알았다.
저 숫자였다.
감히 인간과 어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물량으로 조용히 바다를 타고 스며든 것이었다.
때앵! 땡!
뒤늦게 마을의 종이 울렸다.
울려 퍼지는 그 소리가 마음을 찔러왔다.
―용왕님! 이건 진짜 위험해요!
―빨리 막아야 해요!
―아니다, 일단 우리가 막을게요!
일부의 물이 수족을 향했고, 근처의 물이 용왕에게 손을 뻗었다.
툭.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물이 꼬물거리다 용왕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용왕님. 왜 이렇게 우리를 두려워해요.
"아니. 두려운 건 너희가 아니라 나야. 내가… 너희에게 못 할 짓을 했어. 내가 제대로 너희를 다뤘어야 했는데."
자연이 파괴됐을 때, 물이 울었다.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울었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 생각이 났다.
투툭.
땅을 적시는 빗방울이 더 굵어졌다.
―아니에요. 우리는 원래 위험해요. 밀려드는 파도로 얼마나 많은 목숨이 사라졌는지 아시나요?
―내리는 빗줄기에 휩쓸려 죽어간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우리는 계속 지켜봐야 했어요. 아무것도 막을 수가 없었어요.
용왕의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물이 토닥거렸다.
―용왕님이 탄생해서 우리는 의지가 생겼어요. 우리가… 누군가를 죽이는 걸 막아주셨어요.
―저번에는 우리 실수에요. 멋대로 날뛰었어요.
―맞아요. 우리 속에 있는 흉포함을 막지 못했어요.
물은 용왕을 꼬옥 안았다.
―괜찮아요. 우리는 원래 하나에요. 알잖아요?
"…알아."
자신과 물은 언제나 이어져 있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모두 물에게 닿아버리니 하나가 아니고 뭐겠는가.
―그리고 저희는 용왕님을 받듭니다. 저희의 모든 것인 용왕이시여.
물이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용왕이 있기에, 그가 존재하기에 자신들 역시 존재했다.
용왕이 있기에 자신들이 다시 태어나지 않았는가.
―용왕님은 지금 두 가지 힘 때문에 헷갈리는 거예요. 열쇠의 힘이랑 저희랑 같이 있잖아요. 저희가 더 잘할게요.
―용왕님한테 다 맡겨놓지 않을게요.
―우리의 흉포함이 나올 때마다 경고할게요. 물론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하나니 할 수 있어요.
물은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생긴 의지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언제나 흘러갔으니 지금도 흘러가리라 생각하며 그저 용왕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 결과 어땠던가.
짧지만, 자신들의 전부인 용왕은 모든 걸 두려워해 자신들과 연결을 끊어버렸다.
―용왕님이 연결을 끊어버렸을 때요. 그때 우리는 많은 걸 느꼈어요. 혹시 느껴지시나요?
물은 손을 잡듯 용왕의 손아귀에 머물렀다.
그들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보여."
물은 과거처럼 마냥 흘러가지 않았다.
용왕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어버렸기에 물 역시 저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너희의 마음이 느껴져."
물은 자신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을 도와주러 움직이고 있었다.
'이러니 내가.'
용왕은 주먹을 쥐었다.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수족들이 바닷속을 지배하고 있어요.
―감히!
―감히 용왕님이 있는데 저희의 몸을 더럽히고 있어요!
분노하는 물과 함께 용왕의 시야가 넓어졌다.
으득!
사람들이 수족에게 뜯기는 광경이 펼쳐졌다.
마을 주변에 있는 바다가 움직였지만, 용왕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수족의 발목을 붙잡는 것까지 할 수 있었다.
―보이시나요?
"보여."
―느껴지시나요?
"느껴져."
용왕은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물에 올라탔다.
지금 무언가를 두려워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상황에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쩌어어억.
무얼 했는지 몰라도 내내 자라지 않았던 껍데기가 자라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용왕의 모습에 도망치던 사람들도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 * *
피가 튀고.
신체가 뜯기고.
무언가를 잡아먹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수족은.
그 괴물은 생각한 것보다, 아니, 훈련한 것보다 더 아득한 존재라는 걸 사람들은 알아버렸다.
가까운 지인이 수족에게 죽고, 가족이 죽는 와중에 느꼈던 분노마저 휩쓸 정도로 거대한 힘에 사기가 약화하고, 두려움이 마음속을 지배했다.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물이 움직이며 자신들을 구해주는 그 모습에 이 마을의 대장인 용왕을 떠올렸다.
'…용왕님.'
모두가 한마음으로 정신적 지주에 가까운 용왕을 생각했다.
이 마을도, 목숨도 모두 용왕이 주지 않았는가.
'버티자!'
두려움 속에 용왕을 향한 고마움이 꿈틀거렸다.
'버텨!'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으아아아아!"
팔이 뜯겨나가도 함께 가꾼 마을이기에, 자신도 용왕에게 도움이 되고 싶기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뒤로 한 채 나아갔다.
콰앙!
그때, 거대한 소리와 함께 물이 수족들에게 달려들었다.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전쟁터가 조용해졌다.
그곳에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그 누구보다 고결한 모습을 한 용왕이 서 있었다.
그저 서 있었음에도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저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사람들의 사기가 단번에 올라갔다.
그리고 모두가 한 입으로 외쳤다.
"…용왕니이임!"
용왕이 나타났다.
용왕이!
'…용왕님?'
류아의 눈이 커졌다.
용왕이 갑자기 자라났다. 어린아이였던 껍데기를 버린 것처럼 어른이 되지 않았는가.
"누가."
용왕이 입을 열자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외침이 멈추고, 수족들의 행동마저 정지됐다.
"나의 마을을 짓밟는가."
용왕의 눈동자에 피어난 푸른빛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용왕은 물을 일으켰다.
내내 시달려왔던 두려움이 올라왔지만, 분노가 먼저 치밀어올랐다.
그 틈 사이로 슬픔이 차차 얼굴을 들이밀었다.
망설이는 사이에 몇이나 죽었는가.
자신이 두려워하던 사이에 이 땅에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졌는가.
'나는 두려움을 몰라야 한다.'
용왕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
미친 듯한 압박에 수족이 물러섰다.
'저들의 죽음은 나의 탓이다.'
그러니 용왕은 두려움을 저 밑에 가득 눌리고 자신의 땅을 짓밟은 것들을 향해 매서운 이빨을 내보였다.
바다가 움직였다.
수족들을 향해 휩쓸자마자 날카로운 창이 되어 그들을 찔렀다.
푸우우욱!
혼자서 낼 힘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마을에 올라온 수족 모두 한 번의 힘에 죽어버렸다.
"…으어어어."
그 힘은 바다에서 올라오던 수족들의 두려움을 아주 빨리 깨우며 그들이 도망치도록 밀어버렸다.
하지만 용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족들은 듣거라!"
용왕의 외침에 발이 묶인 것처럼 수족들은 꼼짝을 하지 못했다.
그저 인간과 개미의 그 틈을 보는 듯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너희를 나의 바다에서 추방하겠다!"
용왕의 명령과 함께 마을 주변에 있던 바다의 빛깔이 변해갔다.
"나의 바다에 들어오는 수족들 모두 바다에 먹히리라!"
콰아아앙!
저주에 가까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바다가 폭발하듯 세차게 움직였다.
이제껏 참았다는 듯 바다는 제 속에 있는 수족들을 향해 서늘한 이빨을 내보였다.
물이 날을 세워 수족들을 공격했다.
"으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고, 용왕은 등을 돌려 사람들을 보았다.
강한 결심이 보였기에 승리의 외침을 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았다.
"모두 듣거라!"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명령이었다.
그 작은 아이가 아니었다. 전혀 모르는, 강인한 존재가 서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용왕임을 알았다.
"이 시간 이후로 수족과 내통한 자는 즉시 처형이다!"
용왕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절대로 지워서는 안 되는, 끔찍한 상황을 오늘 목격하지 않았던가.
배신자가 어떤 결과를 몰고 오는 다들 보지 않았던가.
"나는 너희와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오늘처럼 행복하게. 하지만 근처 태나라가 멸망했다."
하여 용왕은 더 나아갔다.
세계는 넓었다.
세계는 너무도 컸고, 지켜야 할 존재가 얼마나 많은지 다시금 알아버렸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우리의 행복은 오늘처럼 계속 잃어버릴 게 분명하다. 저들에게 우리는 그저 먹잇감이며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하찮은 존재일 테니까."
수족이 어떤 존재인지 외면하기에는 이 세계도, 이곳에 있는 존재도 모두를 사랑하고 말았다.
"하여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선언하노라."
자신의 두려움이.
그 나약함이.
그 어설픔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오늘 보고 말았다.
"이 세계에서 수족을 지워버리겠다!"
용왕은 분노를 토했다.
동시에 용왕은 보고 말았다.
자신의 등장에 사람들이 환호하고.
희망을 품고.
승리를 향한 집착마저 드러냈다는 걸.
"내가."
그러니 용왕은 확신하며 외쳤다.
"너희의 왕이다!"
다시는.
그 누구도 잃지 않겠다 꺼내는 다짐이었다.
그 다짐에 그곳에 있는 모두가 희망을 가득 품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용왕이다."
빛줄기가 자신에게 꺼냈던 그건 이름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아니, 태어날 때부터 자신은 왕이어야만 했다.
알았지만, 알고 있지만, 외면했던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세상에 가득 찬 이 슬픔은 모두 수족이 벌인 일이며 그들에게 모든 걸 뺏긴 저들을 지키라 자신을 보냈다는 걸 더는 외면하지 않았다.
"기억하거라. 모든 물과 바다의 지배자, 그게 너희의 왕이다."
그러니 용왕은 왕이 되었다.
이 세계에 슬픔을 끝낼 왕이.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 외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