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414화 (414/415)

외전. 나는 용왕이다(3)

* * *

어딘가 좀 모자란 느낌을 받으면 어떻고, 모르는 게 많으면 어떻겠는가.

저토록 자신들을 도와주는데.

언제나 경계하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던 자신들에게 이런 호의는 낯설었다.

"…네."

무날은 울음을 꾹 참았다.

"고마워요."

다시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고마워요……."

환하게 웃어보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정함이.

저 순진함이.

아이로서 알아야 했던 것들을 깨우는 것만 같았다.

* * *

타닷.

용왕이 만든 물에 올라탄 아이들은 저 멀리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웅크려 바라보았다.

마을도, 시체도 모든 걸 삼키는 불꽃이었다.

이렇게 불꽃이 가득한 세상을 언제 보았던가.

너울을 그리는 파도가 잔잔한 소리로 그들을 위로했다.

모두가 조용하던 그때, 류아는 코를 훌쩍이며 용왕을 바라보았다.

하얀 괴물이고 뭐고 이제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저 궁금했다.

이렇게 도와주고, 챙겨주는 저 존재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너는 왜 혼자야?"

"혼자 아니야. 물이랑 함께 있었어."

―맞아! 용왕은 우리랑 함께야!

용왕의 말을 물이 긍정하며 류아를 향해 물을 튀겼다.

"음, 언제부터 그랬어?"

류아는 얼굴에 튄 물보다 '물이랑 함께 있었다'라는 말에 측은함을 드러내며 다시 물었다.

물은 애초에 존재하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눈을 떴을 때부터. 빛줄기가 나한테 내려와서 쓰다듬어줬어. 나보고 '용왕'이라고 그랬어."

―응응! 우리도 들었어! 우리도 그때부터 태어났어!

물이 힘껏 긍정했다.

류아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무날을 바라보았다.

무날 역시 조금은 곤란해 보였다.

머리를 다친 걸까, 아니면 모자란 걸까.

"빛줄기? 어떤 빛줄기를 말하는 거야?"

소매로 눈을 많이 비벼 태련의 눈가가 붉어졌지만, 밀려오는 호기심을 감추질 못했다.

"몰라. 나도 알고 싶어. 매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어."

용왕은 손가락을 펼쳤다.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숫자가 섣불리 나오지 않았다.

"숫자, 알려줘."

"갑자기?"

태련이 눈을 깜박거렸다.

"갑자기가 아니야. 다 너희가 알려줬어."

"우리가?"

"응. 나는 너희가 말하는 걸 들었어."

용왕은 배시시 웃었다.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저게 하늘이라는 걸 알았어."

손가락은 이어 바다를 가리켰다.

"나는 저게 바다라는 걸 알았어."

부드럽게 흘러가던 용왕의 손가락은 근처 작은 섬을 가리켰다.

"그리고 나는 저게 땅이라는 걸 알았어."

용왕의 눈이 휘었다.

"나는… 그런 적 없어. 널 만난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류아는 용왕의 말을 부정했다. 정말로 저 존재를 처음 보았다.

"맞아. 처음이야. 내가 있던 그 장소에 올 때마다,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계속 멀리서 봤어."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함이 섞인 저 말에 태련이 말을 꺼냈다.

이상하면 뭐가 어떻겠는가.

"이건 일이고, 하나라고 해. 이건 이라고 하고, 둘이라고 해."

태련이가 손가락을 펼치며 용왕에게 알려주었다.

숫자의 흐름을 알자 용왕의 눈동자는 이채로 반짝였다.

"7일 됐어."

"뭐가?"

류아가 뜬금없는 숫자에 물었다.

"내가 이 세계에서 태어난 날. 7일 됐어."

"…용왕님?"

―오오!

물이 무날의 부름에 갑자기 반겼다.

―용왕님! 용왕님! 우린 이게 더 좋아!

이제야 입에 착착 붙은 것처럼 물은 용왕의 주변에 모여 꼬리를 흔들며 헤엄쳤다.

"왜?"

"그……. 음."

용왕이 묻자 무날은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그게… 그게 정말입니까?"

"응."

"하지만 7일이라는 시간은 짧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혹시 머리를……."

"아니야. 난 원래 이랬는데? 난 사람이 아니야."

용왕은 자신을 가리켰다.

"난 용왕이야."

처음과 다르지 않은 말이었으나, 아이들 전부 용왕을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마음을 휘어잡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으니.

"내가 너희를 지켜줄게."

용왕의 입꼬리가 올라가자 태련이 초롱초롱한 눈을 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하는 거야?"

가장 어린 태련 역시 용왕의 호의가 이상하게 보였다.

곧 태련은 울먹거렸다.

"너도… 먼저 가려고 그러는 거야?"

"먼저 가다니?"

용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른들은."

태련의 눈동자에 눈물이 또 맺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어른들은… 다 죽었어."

아랫입술이 점점 위로 올라오더니 태련은 얼굴을 가득 구겼다.

"우리를 보호해주던 어른들은 맨날, 맨날 죽었는데 용왕 너도… 죽을 거야?"

"아니."

용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안 죽어."

확신에 찬 말과 눈빛에 아이들 모두가 지배된 것처럼 용왕만 바라보았다.

"나는 모든 물과 바다의 지배자니까."

부드러이 꺼냈지만, 목소리에는 강함이 묻어났다.

모든 물과 바다의 지배자.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도 아이들은 그 말이 용왕하고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달빛에 반짝거리는 용왕의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다.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이거는 확실히 알아."

용왕은 불타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수족은 사라져야 하고, 너희는 보호받아야 해. 그게… 지금은 나여야만 하고."

뒷말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용왕은 저 아이들보다 자신이 강하다는 걸 알았다.

빛줄기가 자신에게 내려준 이 힘은 가벼운 힘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알아버렸으니.

* * *

용왕은 아이들이 지낼, 수족에 닿지 않은 좋은 땅을 물을 통해 알아보았다.

모두가 좋아했고, 그곳에서 터를 잡았다.

"으음."

용왕은 고민했다.

저 아이들이 살던 마을에서 가져온 건 많으나, 이걸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자신은 아는 게 없지 않은가.

"지식은 보통 책을 통해서 얻어. 혹시 글자를 알아? 모르면 내가 알려줄게. 여기서 가장 많이 알고 있어."

류아가 자신만만하게 꺼낸 말을 토대로 가르침이 시작됐다.

"…아버지."

용왕은 글자를 적어나갔다.

"어머니."

삐뚤빼뚤하지만 모래 위를 그저 손가락으로 그린 동그라미가 아니라 글자가 만들어지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가족."

용왕은 그 단어를 쓰다가 멈칫거렸다.

집을 짓겠다며 물들이 나무를 베고, 나무를 옮기는 와중에 웅성거리며 피어난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멍하니 해가 지는 걸 보고 다시 해가 뜨는 걸 보는 게 전부였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족?"

류아가 뒤에서 목소리를 냈다.

용왕이 흠칫 놀랐다.

"네가 알려준 거잖아."

"좋은 말이지?"

류아가 배시시 웃었다.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류아의 시선이 아이들을 향해 돌렸다.

"이제 내 가족이야."

가족이라는 말에 용왕의 시선이 흔들렸다.

나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꺼내질 못했다.

저들과 자신의 시간은 달랐다. 시간이 다른데 어떻게 이를 나란히 놓을까.

"야, 류아! 너 뺀질거릴래? 안 와?"

류아를 재촉하는 저들의 말에 그는 용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넌 진짜 천재야!"

류아가 활짝 웃으며 다시 왔던 곳으로 뛰었다.

용왕은 빛줄기가 그랬듯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에 수줍게 웃었다.

좋았다.

누군가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게 너무 좋았다.

가족.

용왕은 몸을 웅크린 채로 그 글자를 빤히 보았다.

언젠가 자신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배웠던 단어 중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흘러갔다.

또 하루가 흘러갔다.

용왕은 알려준 글자를 통해 점점 배워나가다 한계에 부딪혔다.

"…음. 역시 책이 있어야겠어. 그래야 단어를 너한테 알려줄 수 있을 텐데."

류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단어를 알고 있지만, 이걸 어떻게 하나씩 다 머릿속에 끄집어낼 수 있을까.

"그럼 책을 가져오면 되겠지?"

용왕의 물음에 류아는 놀란 눈을 했다.

"그게 돼?"

"응. 가능해."

"어떻게 가능한데?"

"물이 해줄 거야. 내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잖아?"

"…알지."

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몇 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그 힘 때문에 용왕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계속 느끼게 됐다.

"난 대단해."

씩 웃는 용왕의 얼굴에 자신만만함이 가득했다.

"물아, 책을 가져와 줘."

―책?

"글자가 적혀 있을 거야."

―아! 우리가 많이 봤어! 구해올게! 응!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우리도 대단하니까.

물 역시 자신만만하며 흩어졌다.

아침 해가 밤이 될 때쯤 물이 찾아왔다.

―이거 맞아, 용왕님?

대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무든, 대나무든 평평하게 글자가 쓰인 것들이나 가죽에 글자가 쓰인 것들을 가지고 왔다.

"맞아! 잘했어."

용왕은 류아가 그랬듯, 무날이 그랬듯 물을 쓰다듬어주었다.

물이 꼬리를 흔들며 용왕 주변에 빙글빙글 돌았다.

―히히힛! 이거 너무 좋아!

―맞아! 맨날 이러면 좋겠는데.

물이 가져온 책 중에 일부분이 다 축축해 있어 말려서 써야만 했고, 책이 아닌 그저 글자가 적힌 것뿐이었음에도 용왕은 물이 가져온 것들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이 책을 통해 배운 용왕의 지시를 거치자 제대로 된 집이 만들어졌다.

용왕은 또 책을 읽었다.

마을을 보호하는 방어책과 밭, 논이 만들어지며 체계가 잡혀갔다.

"용왕아. 이리 와봐."

평소처럼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있던 날, 류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었다.

"맞아요. 이리 오세요."

"보여줄 게 있어! 얼른, 얼른!"

무날과 태련 역시 재촉했다.

용왕은 셋의 손길에 이끌려 그들을 따라갔다.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짠!"

태련이 손을 마을로 뻗었다.

어둠에 먹힌 세상에서 빛이 일렁거렸다.

그 빛 속에 누군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용왕은 자신들이 함께 일군 마을의 모습을 비로소 보았다.

"우리의 마을이야."

태련이 광대가 올라올 만큼 활짝 웃자 용왕 역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우리.

그 울림이 너무도 좋았다.

"이제 마을이 더, 더 커질 거야."

어쩌면 희망에 찬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류아의 목소리가 간지럽게 들려오자 용왕은 코앞만 바라보았던 미래를 조금 더 넓게 생각했다.

'…나는 외로웠구나.'

용왕은 알았다.

'내가 외로워서 울었구나.'

태어나자마자 처음 알게 된 그 손길이 너무도 그리워서 울고, 또 울었다는 사실을.

빛이 사라지는 게,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 존재를 보는 것 같아 너무도 슬퍼 울었다는 걸.

용왕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왼쪽을 바라보았다.

'있다.'

눈동자를 돌리며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내 옆에 누군가 있다.'

이미 활짝 웃고 있던 용왕의 눈마저 살포시 감겼다.

'지키고 싶다.'

저들 모두.

모두 저렇게 사랑스러웠으니.

* * *

용왕은 모든 지식을 빨아들이듯 읽고 또 읽으며 계절이 흘러갔다.

봄이 되었고.

여름이 되었고.

가을이 되었고.

겨울이 되었다.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 속에 아이들은 자라나고, 마을에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순찰을 나갔다가 구해오고, 표류하다 이 마을을 발견해 제발 지내게 해달라며 찾아오고.

어디에서 소문이 퍼진 건지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서류를 보던 용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용왕님?"

태련이 용왕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그를 불렀다. 그는 여전히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왜?"

"이제 슬슬 발표해야 하지 않을까요?"

"발표라니?"

"마을에 사람들이 자꾸 오잖아요. 그리고 계속 받고 있잖아요? 이럴 바에야 선언하는 거죠?"

"여기가 존재한다고 알린다고?"

서류를 손에서 떼며 용왕은 태련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조금 날카로웠다. 그 눈빛에 태련은 괜히 우물쭈물거렸다.

"하지만 이미 다 퍼졌는걸. 떠나기에도 늦었어요. 여기에 터를 잡은 지 이미 몇 년이 지났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수족이 쳐들어오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수색하러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봐도 왕국 빼고는 여기보다 더 크고, 발전된 곳은 없었어요. 소문이 퍼진 걸 붙잡을 수 없고, 수족들을 피해 사람들이 다 여기로 다 쏠릴지도 모르잖아요?"

태련은 용왕의 머리카락을 곱게 땋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음, 여기 땅이 애초에 엄청 넓잖아요?"

"태련아."

"아니, 그렇다는 거죠. 그냥, 저기 마을 밖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 볼 때마다 마음이 좀 아파요. 저 어릴 때, 이제 기억도 안 나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서 그렇게 서 있었거든요."

태련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저나 무날, 류아처럼 어인족들도 많이 있더라고요. 바다가 더 위험하니까요. 거기에 수족들이 더 많으니 바닷속에서 지내지도 못하고… 뭐어, 그렇다는 거죠."

"태련아."

용왕이 태련을 부드러이 불렀다.

태련이 숨을 깊게 내쉬며 땋았던 머리카락을 대충 마무리한 뒤 그의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네 마음을 알아.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거잖아?"

"…알아요. 제가 투정 부린 거라는 걸요. 지금까지 수족들의 피해가 없던 건 다 용왕님이 막아준 거잖아요?"

태련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곧 미간을 찌푸렸다.

"수족이 미워요. 그냥 우리끼리 언제나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데, 자꾸 방해하잖아요. 세상은 넓고, 사람들이 죽어가요."

세상을 나갈 때마다 마주한 현실에 태련은 서글퍼졌다.

"좀 쉴래? 요즘, 수족들의 행동이 수상해서 내가 무리하게 순찰을 시켰지?"

용왕이 웃었다.

보려고 하면 자신이 얼마든지 볼 수 있었는데, 최근 열쇠의 힘이라는 걸 알아버린 뒤로 힘이 더 커져 이게 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만 더 넓게 퍼트린다면 여러 소리가 귀를 찔러와 머리가 너무 아팠다.

물이 꺼내는 말마저 넓어져 처음으로 코피를 흘러 보았다.

세상을 잡아먹은 슬픔이 물을 통해 느껴지고, 수족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이 지금 무얼 먹고 있는지, 이 모든 걸 알게 되어 헛구역질마저 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이제 자신의 힘이 무서워졌다.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태련이 놀라며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용왕을 잠깐 바라보던 태련이 목소리를 높였다.

"순찰은 당연히 나가야죠! 사실상 이 마을을 용왕님 혼자서 다 지키고 있는데, 이것마저 떠맡길 수 없어요!"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태련이 깜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자 무날이 보였다.

탁.

"태련아."

무날이 문을 닫으며 태련을 불렀다.

"나 아무것도 안 했어."

태련이 얼굴을 구기자 무날은 용왕의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저건?"

"예쁘잖아. 저기에 꽃도 꽂으려고 이것저것 가져왔단 말이야. 이것밖에 안 했어."

"저번에 소풍 가고 싶다고 용왕님을 데리고 나갔다가 마을에서 난리가 난 거 잊었어?"

"…그렇지만, 이렇게 꽃이 예쁜데 용왕님은 하나도 보지 못하는 게 말이 돼? 그건 말도 안 돼! 그래서 소풍을 간 거라고."

억울해하며 꺼낸 태련의 말에 용왕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곧 부드럽게 눈웃음이 지어졌다.

"나 진짜 재밌었어. 너무 좋았는데?"

"용왕님. 태련이의 응석을 너무 받아주지 마십시오."

무날이 가볍게 웃었다.

용왕이 태련을 예뻐한다는 걸 왜 모를까.

"응석을 받아주는 게 아니야. 정말 즐거웠어. 다음에 또 가고 싶었는데?"

"그럼 또 가요."

얼른 용왕의 말을 낚아챈 태련이 실실 웃었다.

"좋아!"

"…어휴."

무날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실거리는 모습이 태련이나 용왕이나 똑같지 않은가.

쌓인 서류는 자신하고 류아가 사이좋게 처리하고.

그래도 좋은 건 사실 무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용왕이 행복하다는데 뭐라고 말할까.

"용왕님. 기쁜 와중에 죄송하지만, 이걸 보셔야겠습니다."

무날이 가지고 온 종이를 내밀었다.

"이번에 마을로 들어오고자 희망한 자들의 명단입니다. 일부는 몹시 수상합니다."

"수상하다니?"

태련이 물었다.

"아무래도 우리 마을이 수족의 표적이 된 모양입니다."

무날의 대답에 용왕은 손을 내밀었다.

"줘봐."

서류를 넘겨받은 용왕은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상한 자의 이름과 그림으로 그려진 외형을 보며 물의 시선을 퍼트렸다.

"물아. 얘들을 기억해."

―응응. 기억할게요.

―지켜보면 되는 거예요?

"맞아. 일단은 지켜봐. 혹시 모르니까."

탁!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용왕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모습마저 태연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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