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412화 (외전) (412/415)

외전. 나는 용왕이다

* * *

아이는 눈을 떴다.

그리고 깜박거렸다.

다시 눈을 감았고, 또 떴다.

바다.

하늘.

땅.

머릿속에 밀려오는 뭔가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단어가 밀려왔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이는 껴맞추질 못했다.

검게 물든 하늘을 보며 하늘이라 떠오르지 못했고, 하늘을 수놓은 별을 보며 별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는 그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바다가 기뻐하며 아이의 옆에서 춤을 췄다. 물살이 일렁거렸고, 계속 나비처럼 날아다니다 바람처럼 부드럽게 휩쓸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물이 멋대로 움직이는, 너무도 이상한 광경이었으나 아이는 눈을 깜박거렸다.

쏴아아아.

비가 내렸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단 한 방울의 비가 튀지 않았다.

아이에게 빛줄기가 내려왔다.

다정함과 따스함이 담긴 빛은 손처럼 아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이의 눈이 커졌다. 가만히 빛을 바라보았다.

너는 바다와 물의 지배자인 용왕이자 그것들의 심장이다.

'…용왕?'

이해하지 못할 소리에 아이는 그저 빛줄기를 바라보았다.

네 존재는 세계를 위한 것이며 세계를 위한 열쇠가 되거라.

'열쇠?'

또 이상한 말이 밀려들었다.

용왕. 열쇠.

용왕. 열쇠. 아이는 생각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

빛이 사라지자 아이는 비로소 숨을 토했다.

하늘로 간절히 손을 뻗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그저 가슴이 따끔거렸다.

이게 무슨 감각인지 몰랐다.

괜히 손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이곳이 따뜻했다.

―용왕!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왕!

키득키득.

누군가 웃었다.

하지만 용왕은 웅크렸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게 눈물인지 모르고, 왜 흐르는지 모르지만, 비가 더 거세졌다.

―용왕?

누군가 덩달아 용왕과 같은 슬픔을 드러냈지만, 아이는 그저 울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계속, 계속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 * *

용왕은 울었다. 계속 울었다.

바다가 아이를 달래려 몇 날 며칠을 아이를 데려다가 이쪽에 놓아보고, 저쪽에 놓아보고 엄청 애를 쓰지만, 아이의 울음은 멈추질 않았다.

―용왕……?

바다가 용왕에게 말을 걸다가 곧 몸을 바짝 세웠다.

무슨 소리가 났다.

"…아, 진짜 비가 계속 쏟아지네."

소년은 됐을까, 앳된 소리에 용왕은 웅크렸던 몸을 풀었다.

'…비?'

용왕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 소리가 어디에서 들렸는지 알고 싶다고 생각하자 바다가, 물이 움직였다.

시야 안에, 아니 저 멀리 누군가 보였다.

아이와 소년 그 어정쩡한 사이에 있던 소년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비……?'

용왕의 눈이 커졌다.

비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저 존재가 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비."

용왕은 눈물을 멈췄다.

"비가 와."

머릿속에 쌓인 수많은 단어 중 일부가 움직였다.

―용왕! 비가 와!

물이 말하는 단어도 덩달아 늘어났다.

용왕은 처음 느낀 기쁨에 배시시 웃자 멈추지 않았던 비가 멈췄다.

"오! 드디어 비가 멈췄다!"

소년이 말하고, 용왕이 따라 했다.

"…비가 멈췄어."

―용왕! 비가 멈췄어!

그리고 물이 말했다.

단어가 하나씩 사물과 존재에 섞여 들어갔다.

용왕은 물을 통해 저 소년을 보았다.

계속 보았다.

소년이 저건 하늘이라 말해 하늘이라는 걸 알았다.

저건 바다였고.

저건 해였고.

저건 달이며 저 소년이 밟고 있는 게 땅이었다.

하지만 용왕은 해와 달이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빛이 사라지면 울었다.

그 감정이 뭔지 몰라도 눈에서 비가 떨어졌다. 그 후에 진짜 비가 내렸다.

쏴아아아.

해가 뜨면 비가 그치고, 밤이 나타나면 비가 내렸다.

용왕이 계속 지켜보던 소년은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 누군가 있었다.

소년이랑 비슷한 또 다른 소년은 무날이라고 하며 그보다 어려 보이는 소녀는 태련이라고 했다.

용왕이 내내 지켜보던 그 소년의 이름은 류아였다.

"…용왕."

용왕은 물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았다.

물속에 비친 자신이 눈을 깜박거렸다.

"나보고 용왕이랬어."

용왕은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느꼈던 포근함과 따뜻함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손길을 생각하며 용왕은 배시시 웃었다.

* * *

퐁당.

용왕은 돌을 던진 뒤, 웅크린 채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물살이 일어나자 자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단어를 하나씩 배웠다.

저들이 알려주었다.

배워가면서 늘어나는 감정이 막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간질거려 너무 좋았다.

용왕은 해변에 앉아 모든 걸 바라보았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모든 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조금만 눈을 돌린다면 뭔가 보였다.

붉은 바다가 넘실거렸다.

용왕은 그 이상 보지 않았다. 뭔가 무서웠다.

―용왕. 누가 와.

용왕은 이제 내내 자신에게 말을 건 저 존재가 물이며 바다라는 걸 알고 있었다.

쏴아아.

물이 꺼낸 말에도 파도가 물러가고 다시 다가와 발가락을 간질이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 용왕은 물이 꺼내는 경고에도 그곳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자신한테 오면 어떡할 건가.

그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전에 왔던 그 빛줄기가 또 오는 게 아닐까 기대하며.

그때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물이 말해주고, 여기저기 주워들은 게 많았다.

'이건 모래야.'

용왕은 노란빛으로 빛나는 땅을 만지작거리며 단어를 되뇌었다.

용왕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웠다.

'그러니까 만나면, 이름을 물어보고, 정말 좋아한다고 말해줘야지.'

"…야."

툭 하고 누군가 내뱉는 소리에 용왕은 고개를 천천히 올렸다.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누군가 물살을 가로지르며 다가왔다.

"네가 그렇게 주먹을 잘 쓴다며?"

바다에서 갓 나와 물을 뚝뚝 흘리며 다가오던, 세상의 온갖 추악한 것들을 맞본 얼굴을 한 악동들이 걸어왔다.

"잘 쓴다며?"

소년 옆에 소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용왕은 얼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의 등장에 그림자가 지자 꼭 밤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비키거라."

불쾌함을 담은 말이 용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렇게 자신의 햇살을 가리던 이들이 부쩍 늘어나 화가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여기 앉아만 있었는데 자신에게 막 불쾌한 말을 던졌다.

'…나는 괴물이 아니야.'

용왕은 자신에게 쏟아졌던 말들이 생각나 울컥했다.

그때마다 저 바다를 움직였고, 높아 보이는 이들이 사용할 법할 말투를 따라 해 경고했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놀란 눈을 하며 두 번 다시 찾아오는 이가 없기에 용왕은 바다를 움직여 소년과 소녀는 물론 그 뒤에 있는 이들까지 덮쳤다.

"햇빛을 가리니."

어차피 이 정도로는 다치는 일은 없었다. 용왕의 표정에 미소는 사라진 상태였다.

"어푸푸푸. 야, 잠깐만."

소년이 소리치고.

"으아앗. 말 좀 하자고!"

소녀가 뒤를 돌아서는 물살을 고스란히 맞으며 소리쳤다.

"이 하얀 괴물아!"

소녀의 악에 받친 소리에 그때, 누군가 달려와 소년과 소녀 앞에 섰다.

어른과 소년 그사이에 보이는, 어쩌면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그가 양팔을 벌렸다.

쏟아지는 물살을 그들 대신 다 맞은 후에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살려주십시오!"

"뭐 하는 거야, 무날!"

소년이 연장자, 무날을 말리며 팔을 흔들었다.

"지금 저 괴물을 쫓아내야 하는 거 몰라? 이미 수족만으로 벅차다고! 괴물까지 우리를 괴롭히면 마을 어른들이 너무 힘들어!"

"맞아! 바보야! 이러면 마을 어른들이 다 죽는다고 그랬어!"

소녀가 덩달아 소년의 말을 호응하며 불만을 담았다.

"이런 거 하나도 아프지……."

소녀는 말을 멈췄다.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몰랐는데 작고, 아름다웠고, 전혀 다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다."

소녀는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자연스럽게 말을 토하며 눈을 깜박거렸다.

예쁘다는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존재 자체가 달랐다.

왜 저 존재에게 하얀 괴물이라는 말이 붙었는지를 이해했다.

"태련?"

용왕이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어?"

태련이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환하게 지어진 저 하얀 괴물의 미소에 태련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류아!"

용왕은 이어 류아를 불렀다.

반가웠다. 너무도 반가웠다.

덩달아 이름을 불린 류아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그 이름을 알았는지 몰라도 소름이 끼치질 않는가.

"…그럼 무날이네?"

무날은 용왕의 환한 웃음에도 류아와 태련을 감싸며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철부지 아이일 뿐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철부지……?"

용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어를 하나씩 맞춰보고 있었다.

철부지.

아직 아무것도 몰라 구분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아. 아이구나."

용왕은 활짝 웃었다. 무날 뒤에 있는 저 존재들을 아이라 부른다는 걸 알았다.

저들에게 자신은 또 배웠다.

"나는."

용왕의 손가락이 자신을 향했다.

"용왕."

빛줄기가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그럼 자신도 그렇게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용왕이시여."

무날은 당장 무릎을 꿇었다.

저 존재가 웃고 있지만, 어쩐지 무섭다고 생각했다.

'거대하다. 너무 거대해.'

하얀 괴물, 최근에 가장 유명한 소문이 아닌가.

사람답지 않은 존재를 봤다는 소식에 혹시나 하는, 신께서 내린 기적이 아닌가 하고 마을 사람들이 찾아갔었다.

그러다가 몇 번이나 쫓겨난 뒤로 기적이라는 희망은 사라지고, 이미 수족이라는 괴물로 벅찬 마당에 오히려 위협이 될까, 마을에서 저 존재를 쫓아내려 사람들을 보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마저도 여러 번 실패했기에 마을에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에 류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였다는 걸 듣고 이렇게 달려왔는데.

이미 늦었을 줄이야.

"부디 살려주십시오."

무날은 계속 고개를 조아렸다. 그래도 수족과 달리 말이 통하지 않는가.

"저들은 고작 어린아이입니다. 그저 마을을 지키고자 하얀 괴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이끌려서……."

쿠웅!

땅이 갑자기 울렸다. 무날은 말을 멈추고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용왕은 그 울림에서 일어난 불쾌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 아이들과 다른 존재가 바다를 헤엄치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보이던 놈들이 아닌가.

바다를 계속 붉게 물들이는 이들.

'저 존재를 뭐라고 부르더라?'

용왕은 생각했다.

류아와 태련 뒤에 서 있던 아이들이 해변으로 올라오는 괴물의 모습에 기겁했다.

덩치는 성인 남성의 두 배 이상이며 들짐승의 머리를 달고, 몸에 진득한 액체가 가득한 비늘로 감싸진 저 존재는 수족이었다.

쿠웅!

땅을 걷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울렸다.

"…수, 수, 수족이다아!"

뒤늦게 아이들이 외쳤다.

대체 왜 여기에?

왜?

무날은 입을 열었다.

"다들 도망쳐어!"

저 수족의 입가에 피가 가득했다.

대체 누굴 먹고 왔는지 몰라도 불안했다.

"…아니."

용왕이 이를 말렸다.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확신이 있었다.

수족이라 불리는 저 존재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다는 걸.

"이리 와."

용왕은 아이들을 향해 손짓했다.

무날의 시선이 앞과 뒤를 향했다. 어느 쪽이든 최악이었다.

하지만 무날은 용왕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차라리 저 아름다운 괴물 손에 죽는 게 낫지 않은가.

"너 왜 그래? 쟤는 하얀 괴물이라고!"

류아가 기겁했다.

"조용히 해. 말하지 마."

무날이 류아를 제지하며 태련을 업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수족의 시선을 끈다는 걸 왜 모를까.

수족이 어린아이를 먹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마을 어른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야들야들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수족이 아이들을 보며 낄낄 웃었다. 배가 유난히 튀어나와 있었다.

"아, 요리사한테 부탁해야겠네. 내가 솜씨 좋은 놈으로 데리고 왔거든."

짜악!

옆에 있던 허벅지만 한 몽둥이를 든 수족이 배가 튀어나온 수족의 뺨을 때렸다.

"그거 내 요리사잖아! 네놈이 내가 먹으려고 찜해둔 놈의 다리 한 짝 뜯어간 거 모를 것 같아?"

"어쩌라고? 아, 네놈이 나한테 먹힌다고? 배고픈데 잘됐네."

배가 유난히 튀어나온 수족은 입을 쩍 벌리더니 자신에게 언성을 높인 수족의 어깨를 씹어 뜯었다.

우드드득.

선명하게 퍼지는 그 소리에 용왕은 인상을 썼고, 말도 안 되는 행동에도 수족들은 낄낄 웃을 뿐이었다.

우적우적.

배가 튀어나온 수족은 생살을 씹어 먹고는 만족스러워하며 씩 웃다가 갑자기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머리가 으깨졌다.

"망할 새끼!"

몽둥이를 쥔 수족은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고, 조금 전에 물린 어깨는 벌써 나아가 피만 묻어 있었다.

엄청난 회복력이지 않은가.

"먹어라!"

몽둥이를 쥔 수족은 뜯은 머리를 씹으며 다른 수족들에게 말했다.

"…괴물 새끼."

누구 할 것 없이 시체를 뜯어 먹는 모습에 류아가 중얼거리자 수족들은 웃음을 토했다.

뭐 어쩌란 거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죽었어?"

용왕이 물었다.

삶과 죽음은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이었으니.

어제 보았던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큰 물고기한테 먹혔을 때 죽음이 뭔지 알았으니까.

"왜 먹어?"

용왕은 다시 물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가진 지식 속에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다는 개념은 없었다.

"맛있어?"

순진한 눈을 하며 용왕이 수족들에게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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