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97화 (397/415)

397화. 회의(2)

* * *

* * *

바안은 주변을 살폈다.

왼쪽에 헤스트리아 왕국과 코스모피안 왕국의 왕들이 앉아 있었고, 오른쪽에는 레놀드 왕국과 신성 국가 시엘느의 교황이 앉아 있었다.

코스모피안 왕국의 왕인 드란트가 레놀드 왕국의 왕인 샤르비에를 째려보고 있었으며, 헤스트리아 왕국의 왕인 세르노스는 뭔가 불안함에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고, 신성 국가 시엘느의 왕인 교황, 에티르는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목이 막히네.'

바안은 잠깐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상석에 앉아도 될지, 여러 가지로 참 부담스러운 자리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바안은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이렇게 모여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리겠습니다."

바안이 먼저 말문을 열자 드란트는 미안함을 담아 그를 바라보았다.

때론 냉정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제 아들이 바안의 부친을 건든 일은 너무도 선을 넘었다.

이건 그냥 전쟁이 벌어질 뻔한 아찔한 일이 아닌가.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벌어져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이니까.

"오늘 중대한 말씀과 부탁을 드리고자 이 자리를 빌렸습니다."

"중대한 말이라면… 물의 오염으로 이렇게 모인 게 아닌가 봅니다."

드란트는 힐끔 고개를 돌리며 바안과 마주하는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일단 또 한 분을 모시겠습니다. 대답은 그 후에 하죠. 들어오십시오."

바안은 문을 보며 말을 꺼냈다.

여기서 또 다른 나라의 왕이 온다니.

모두의 시선이 문을 향하던 때에 여하가 들어왔다.

여하를 알아본 샤르비에와 드란트가 눈을 크게 떴다.

하벨 티에라의 호위 기사가 아닌가.

"반갑소. 나는 바닷속에 사는 인어족의 왕, 여하요."

여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 무덤덤함에 샤르비에와 드란트가 자신이 착각했나 생각할 정도였다.

"인… 어족이라니."

세르노스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애초에 인어족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알고 있는 분은 알고 있을 테고, 모르고 있는 분은 모르셨을 겁니다."

바안의 목소리에 샤르비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어족이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예. 몰랐을 겁니다. 나 역시 몰랐으니 말이죠. 오늘 안건은 인어족과 관련된 사실이기도 합니다."

바안은 왕들의 관심을 끈 뒤에 차분히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오늘 이 회의는 이 세계를 멋대로 주무르고, 엉망진창으로 만든 쓰레기 같은 놈을 처단하기 위해 모인 자리입니다."

"…이건 이 회의를 만든 취지와 다르지 않습니까?"

드란트가 놀라며 물었다.

"그놈이 오염된 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고로 회의를 만든 이유와 이어져 있지 않습니까?"

바안이 짓는 미소에 드란트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놈의 이름은 에른스트요."

샤르비에가 그 이름을 무덤덤하게 던졌다.

하지만 시선은 달랐다. 증오가 가득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레놀드 왕국 전체를 세뇌한 놈이기도 합니다."

샤르비에의 시선이 드란트를 향했다. 그 시선에 드란트는 불쾌함을 내비쳤다.

샤르비에는 숨을 짧게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그 행동 모두 에른스트가 이 세상에 아주 큰 갈등을 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내 의지가 아니란 걸 분명히 알리겠습니다."

"웃기지 마십시오.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습니까?"

드란트는 금세 으르렁거렸다.

지금까지 레놀드 왕국이 자신의 왕국에 무슨 짓을 했는데.

모든 일의 범인으로 만들어 놓고 지금 와서 세뇌를 당했다고 주장하면 다인 건지. 너무도 우스웠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입니다. 신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교황, 에티르의 발언에 드란트는 내민 이빨을 넣어야만 했다.

교황이, 그것도 신을 믿는 자가 신을 걸었는데 여기서 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세르노스의 얼굴이 천천히 구겨졌다.

세계를 주무르는 놈이 있든 말든 자신이 허수아비가 된 건 다 저 시엘느 때문이 아닌가.

'망할 새끼.'

[야. 얼굴 표정이 별로네? 여기서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러볼래?]

정령이 세르노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게. 나도 좀 불쾌하네?]

이어 꺼내는 말에 세르노스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여기서 구를 순 없었다. 절대로.

"일단 들어주십시오."

바안은 저들의 언쟁을 말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인 자리인 만큼 일단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이었다.

"우선 에른스트는 제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드란트는 그 말에 속으로 살짝 놀랐다.

제 아들 레바놈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는 많은 것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왕국과 레놀드 왕국에 벌어진 폭파 사건도."

이번에는 에티르가 숙연함을 드러냈다.

저 폭파 사건은 신관들이 벌인 일임에도 신의 아들인 하벨이 입을 다물도록 요구했다.

―진실을 밝히는 건 중요해. 하지만 지금은 이 진실이 오히려 혼란만 일으킬 테니 뒤로 미루는 것뿐이야. 그리고 사실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잖아? 이 모든 사건 뒤에 에른스트가 있으니까.

세계를 죽이는 독이 퍼지니 작은 독을 잡을 때가 아니라 큰 독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이기에 에티르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레놀드 왕국 전체를 세뇌한 일도. 신과 신관의 연결을 막아 모든 신관의 힘을 앗아간 일도. 코스모피안 왕국과 우리 에르티안 왕국을 이간질한 건 물론, 코스모피안 왕국까지 고립시키려 했습니다."

바안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여하에게 향했다.

"그리고 놈은 바다를 더럽히고, 인어족이 바다에서 일어난 사실을 꺼내지도 못하게 막으며 밖으로 나온 인어족 모두를 도륙했습니다."

담담하게 꺼냈지만, 바안의 눈빛은 더 깊어졌다.

이 모든 건 하벨한테 들은 이야기이며 자신 역시 분노를 느낀 부분이었다.

"마법사 협회를 협박하고, 세뇌해 오미너스라는 오염된 물로 만들어진 끔찍한 존재를 탄생시켜 세상을 지옥으로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 정도만 봐도 없애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바안은 더 말하고 싶었다.

에른스트가 에르티안 왕국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에른스트가 하벨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이걸 막으려고 하벨이 얼마나 아팠는지, 절박했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나 저들은 하벨이 전부 해결하고 발견한 일에 의견을 나눌 자격조차 없었다.

이 회의를 주도해야 하는 것 역시 자신이 아니라 하벨이 되는 게 맞았다.

"하여 우리는 이 존재를 없애기 위해 대표를 뽑아야 합니다. 여기 있는 인어족의 왕은 인어족이기에 자동으로 대표가 되지만, 우린 다릅니다."

바안 입에서 대표라는 말이 나올 때 여하와 에티르를 제외한 나머지 왕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체 대표가 무얼 하는지 몰라도 참 탐스럽게 들리지 않는가.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바안이 말했다.

회의가 에르티안 왕국에 열렸기에 의회장은 일단 자신이었다. 누굴 회의장에 들일 권리 정도는 있었다.

문이 열리고 회의장 안에 룬델과 가면을 쓴 두 남자가 들어왔다.

세르노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달님이 그 뻔뻔한 낯짝을 들이밀며 왔다.

"안녕하세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겁니다."

하벨이 저들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눈빛에 다양한 감정이 보였기에 왠지 설렜다.

경계한다 한들, 날을 세운다 한들, 어쩔 셈인가. 자신은 무조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셈이었다.

하벨은 우선 자신을 가리켰다.

"저는 가면단의 주인, 달님입니다. 모든 태양을 뵙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제일 처음 에른스트를 알았고,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기꺼이 회의장을 내어주신 바안 전하께 감사의 말씀부터 올리겠습니다."

하벨은 바안을 띄워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벌써 드란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대체 누구인가?"

"드란트 전하, 우린 초면이지요?"

하벨은 드란트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이들이야 어떻게든 접점이 있었다고 하나, 드란트와는 아니었다.

"저는 모든 태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이 회의가 열린 이유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자이기도 합니다. 하여 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진실을 말하는 건가?"

드란트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중에서 자신의 존재에 가장 의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 하벨은 강하게 나왔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레바놈 저하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제가 이 자리에서 하나씩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어진 하벨의 말에 드란트는 곁눈질로 바안을 쳐다보았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하벨 티에라와 바안뿐일 텐데.

하지만 바안은 차분했다. 속을 읽을 수가 없었다.

비웃음이 하벨에게서 새어 나왔다.

"그러니 저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모르던 사실까지 파고든 건 접니다. 제가 만만한 존재라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시죠, 세르노스 전하?"

이름이 불리자 세르노스는 벌벌 떨었다.

"결코, 아닙… 니다."

"누가 아주 오랫동안 잠긴 헤스트리아 왕국의 문을 열었을 거라 생각합니까?"

하벨은 싱긋 웃었다.

그는 걸어서 여하 뒤에 섰다.

"누가 인어족을 설득해 이곳에 앉혔다고 생각합니까?"

하벨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샤르비에 뒤에 섰다.

"누가 레놀드 왕국에 깔린 세뇌를 풀었다고 생각합니까?"

오만함이 말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접니다."

하벨은 자신을 가리켰고, 드란트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저 일을 다 해냈다면 자신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것 당연할 테지.

"사실입니다."

샤르비에의 대답에 흔들린 건 세르노스와 드란트뿐이었다.

바안은 이미 모든 걸 들었으며 에티르는 달님이 하벨 티에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벨은 계속 움직여 말을 이어나갔다.

"에른스트는 말입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존재 아닙니다."

"저 진실을 듣기 위해 내가 달님 씨를 불렀습니다. 이제 말씀하시죠, 대체 에른스트가 누구입니까?"

자연스럽게 대답을 유도한 바안은 자신 역시 처음 듣는 것처럼 하벨에게 물었다.

하벨에게 자리를 건네지 않는 이유 역시 그를 외부인이라고 여기며 선을 긋기 위해서였다.

"에른스트는."

하벨은 비로소 걸음을 멈췄다.

가면 속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왠지 웃고 있다고 느낄 무렵 하벨은 말을 내뱉었다.

"신이었던 자입니다."

하벨이 꺼낸 말은 아주 큰 파장을 맞았다.

바안은 온 힘을 다해 놀란 척 연기해야만 했다.

사실 그 말을 하벨한테서 들었을 때 5분간 멍하니 있어야 했다.

신이라니.

아무리 신성 국가 시엘느가 존재하더라도 신이라는 존재가 타당한 소리인가.

"아, 이곳에 나눈 말은 절대로 외부로 새어나가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해주십시오."

하벨이 가볍게 꺼낸 말에 드란트가 뒤늦게 말문을 열었다.

"…협박인가?"

"아뇨. 아마 입을 저절로 다물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곧 말도 안 되는 일이 시작될 테니까요."

하벨은 장담했다.

에른스트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저 사실이 결코 백성들의 귀에 닿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아채겠지.

어떤 전쟁에서도 사기가 꺾이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는 걸 알 테니까.

"에른스트는 신이기에 죽지 않습니다."

하벨이 이어 꺼내는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죽지 않는 자라니.

"하여 다른 방법을 써서 이 땅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저는 이 세계를 위해 시간을 벌 셈입니다. 지원해주시죠."

"대체, 어떻게… 아니, 누굴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건가?"

샤르비에가 말문을 열자 하벨은 칼리우스를 손으로 가리켰다.

"용을 위하여."

"알겠네. 레놀드 왕국은 이에 동의하며 에른스트가 이 세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모든 걸 동원 하리라 약속하겠네."

"감사합니다, 샤르비에 전하."

여기 있는 나라 중에 가장 에른스트에게 호되게 당한 나라인 만큼 대답 역시 빨랐다.

아주 시원시원하지 않은가.

샤르비에의 눈동자에 벌써 복수심이 가득 차올랐는데.

"용이라니?"

세르노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은 대체 어떤 존재와 대적하려고 했는지 눈앞이 다 캄캄하지 않은가.

"용입니다. 용을 무어라 말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세르노스 전하?"

빈정거리는 듯한 하벨의 말에도 세르노스는 말문을 닫았다.

"…허."

바안은 헛웃음을 삼키는 척했고, 하벨은 에티르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신은 오직 한 분입니다. 신을 모시는 자로서 이 사실은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용서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계속 온화함을 드러내던 에티르의 눈빛에 서늘함이 드러났다.

감히.

감히 자신들의 신을 죽이고 신이 되려고 하다니.

그토록 불경한 짓거리는 신의 종으로서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참았던 분노를 터트리는 모습에 하벨은 이 역시 흡족해하며 세르노스를 바라보았다.

자. 말해야지, 멍멍아.

그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지만, 세르노스는 뒤에서 자신을 재촉하는 정령의 말에 주먹을 꽉 쥐며 목소리를 냈다.

"…헤스트리아는 정령님들의 왕국으로서 세계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정령님들의 말씀을 따라 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에른스트를 용서할 생각이 없네."

"좋은 말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티에라 가문을 부른 일이 호재가 될 줄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룬델 공?"

바안은 틈을 노려 룬델을 소개했다.

넬시아가 회의 틀을 만들었다면 왕을 모두 모은 건 룬델의 역할이 무척 컸다.

"저는 정령사 가문인, 티에라의 가주 룬델 티에라라고 합니다. 모든 태양을 뵙습니다."

고개를 숙인 룬델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차디찬 눈빛을 지었다.

기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제가 이곳에 참석하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바안이 이를 허락했고, 하벨은 가면 속에 실실 웃었다.

"에른스트는 정령을 볼 수 있습니다."

샤르비에의 눈썹이 올라갔다.

"하지만 정령의 힘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참석했는지 아시겠지요?"

이어지는 룬델의 말에 아무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여기에 모인 헤스트리아 왕국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정령과 함께 하는 곳이 바로 티에라 가문일 테니.

게다가 힘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몹시 컸다.

"정령왕께서 저와 함께하기로 하셨습니다."

룬델의 말에 세르노스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 말도 안……."

[맞아. 정령왕께서 여기 계시니 앉아.]

'이안은 지금 정령들하고 말 나눈다고 바빠. 너 따위한테 시간을 뺏길 수 없지.'

하벨은 정령들의 뻔뻔함에 웃음을 또 참았다.

[조용히 입이나 다물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 넌 그래야만 해.]

정령들의 지시에 세르노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알지?]

"…진짜 정령왕께서 계시다니."

세르노스는 최대한 놀란 척하며 룬델이 바라보는 곳을 덩달아 향했다.

'푸핫!'

하벨은 그 멍청한 행동을 당장 카샬한테 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로 정령왕이 계십니까?"

드란트가 묻자 세르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왕께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용왕님이 기다리잖아. 너도 말할 차례야.

―맞아. 너 진짜 계속 입 다물고 있을래? 용왕님이 다 알려줬잖아.

물의 압박에 여하가 마지못해 말문을 열었다.

"그 사실이 진실이라는 걸 인어족으로서 말하겠소."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데 말까지 해야 한다니 진짜 끔찍한 자리다 싶었다.

'욱하는 심정으로 왕이 되는 게 아니었는데.'

여하는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이 속았음을 확신했다.

"인어족은 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소. 물이 저분은 용이고, 이곳에 정령왕이 있다고 말했소. 고로 나 역시 이 사실이 몹시 놀랍지만, 적어도 부정할 생각은 없소."

―이거지! 잘했어, 여하야! 너 너무 예뻐!

―맞아, 정령왕은 저기 다른 곳에 있지만, 뭐 어때? 일단 있는 거잖아?

―사람이 말이야, 유동성을 가지고 있어야지. 암암.

"나는……."

바안이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연이어 말이 나오는 와중에 에르티안 왕국도 빠지면 쓰겠는가.

"이 자리가 이토록 막중함을 솔직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령왕과 용께서 오신 이 자리를 어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을 극적으로 보이려면 뭘 해야겠는가.

하벨한테 배웠던 걸 써먹을 때였다.

"세상의 수호자이신 용이시여."

바안은 칼리우스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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