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세번째(3)
* * *
'천천히 오거라.'
하벨은 영혼을 달랬다.
이 반가움은 자신 역시 기뻤으니.
휘이이잉.
사방이 막혀있어 바람이 불 리가 없건만, 영혼이 하벨에게 닿자마자 그의 주위로 바람이 불어왔다.
[우오옵…….]
아라가 입을 막았다.
하벨이 영혼을 흡수하는 장면은 처음 보았기에 입이 저절로 막 벌어졌다.
예뻤다.
하벨 주위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꼭 은하수를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벨이 너무도 슬퍼 보였기에 아라는 하벨을 토닥거려주고 싶었다.
건드려도 될지 말지를 고민하던 차에 하벨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
하벨은 겨우 울음을 참아냈다.
가면도 그렇고, 자신의 몸통을 보관하고자 만든 유리 벽까지 참 고마웠다.
유리이기에 안이 다 비치고, 벽이 얇디얇음에도 직접 만질 수 없기에 저번과 달리 심적인 거리감이 존재했다.
가슴은 여전히 수많은 가시가 세게 박히는 것처럼 아팠고, 눈시울마저 뜨거워 목구멍에 무언가 콱 막힌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참을 힘이 났다.
점점 부족했던 영혼이 채워져 충만함으로 가득 차면 찰수록 하벨 티에라가 용왕이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안타깝고, 안쓰러웠기에 하벨은 기어코 입술을 깨물었다.
'참자.'
결과적으로 이 과정이 다음 용왕에게 갔어야 할 당연한 계승식이 아니겠는가.
'하벨 티에라. 이 느낌이다. 이게 원래 네가 느꼈어야 하는 당연한 힘이다.'
하벨은 부디 하벨 티에라가 자신과 같은 이 충만함을 알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미쳤다.'
카샬은 중간부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하벨 주변으로 번져가는 반짝거림을 떠나 살면서 이렇게 신성하다는 기분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난생처음 물속에서 물장구를 치던 그리웠던 감각을 떠올리게 하며 형용할 수 없는 고마움이 밀어닥쳤다.
이게 대체 무슨 고마움인지 몰랐다.
그저 이 간단한 의식이 눈물이 질끈 흘러나올 만큼 벅찼다.
'이게… 용왕인가.'
모든 물과 바다의 지배자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가슴에 와닿았다.
하벨이 달라졌다.
머리카락 색이 한층 옅어졌고,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바뀌어 지금 머리를 조아리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몰려올 정도였다.
사아아아.
이전 육체에서 하벨의 몸으로 영혼이 모조리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감싸던 물들이 줄어 들어갔다.
하벨은 허공에 떠도는 물을 통해 주변에서 불안해하는 분위기를 읽었다.
천천히 눈을 뜨면서 용왕의 힘을 끌어왔다.
줄어들었던 물이 다시금 주변으로 퍼지며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느꼈다.
칼리우스가 소리를 막아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하벨은 주변에서 흐르는 분위기가 어쨌건 간에 류아를 기다렸다.
―…용왕님.
물이 말을 걸었다.
"그래."
하벨이 목소리를 내자 아라가 앞발을 꼼지락거렸다.
물을 머금은 소리처럼 들리지 않던가.
―울지 마세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뭐든 말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다 봤구나.'
하벨 티에라가 용왕이라는 사실을.
하벨은 손을 뻗자 물이 그의 손을 꽉 잡듯 휘감겼다.
뚝뚝.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졌다.
"괜찮으니까, 울지 마."
하벨은 가면을 벗었다. 푸른 눈동자가 보이자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더욱 많아졌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울지 않을 거고, 너희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하벨은 손을 뻗어 물을 쓰다듬으며 활짝 웃었다.
―말을… 전하지 못했어요. 용왕님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고 아픈지 지금 느껴져요.
―울지 마세요.
"너희는 이 육체를 지키려 이곳에 머물렀을 테니 나한테 말할 수 없는 당연해. 이제 겨우 반 정도 이어졌잖아? 오히려 고마운걸? 지금까지 날 지켜줬으니까."
자신의 영혼이 나누어지면서 물하고 연결이 손톱만큼만 남고 거의 끊어진 상태였다.
자신이 물과 물의 소통을 이어주는 연결체였으니 서로를 향한 연결 역시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를 지켜준 건 용왕님이에요. 그건 정말이에요.
쩌어억.
하벨이 말을 꺼내기 전에 틈의 세계가 열렸다.
틈의 세계를 보는 카샬은 숨을 들이켰다.
그 속에서 멀쩡하게 사람이 걸어 나왔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하벨을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알아. 너희 역시 나를 지켜줬으니까."
하벨은 물에게 대답하며 마지막으로 류아를 보고는 활짝 웃었다.
"시엘느는 아닙니다! 거기에는 제가 육신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저번에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에른스트로 옮겼다는 걸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벨은 다짜고짜 내지르는 류아의 말에 잠깐 당황했다.
"진정해, 류아야."
"어떻게 진정합니까? 이건 그냥 일이 아닌데요. 제가…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이걸 잊어버리다니. 만약에 용왕님께서 허탕이라도 하셨으면 저는 정말로 숨이 막혔을지도 모릅니다."
류아가 얼굴을 가득 구겼다. 자책이 어려 있었다.
"내 영혼이 거기에 없다고 해도 시엘느에는 어차피 들려야 했으니까 상관없어. 그것보다 네가 올 줄 알고 준비했어. 이번에는 대화 좀 하자, 류아야."
"…또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무리는 네가 하고 있잖아? 자, 시간이 없으니 빨리 말할게. 여긴 정령왕인 아라."
하벨은 류아가 정령을 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아라를 소개했다.
류아가 안심할 수 있게.
[안녕! 이 몸은 아라야.]
아라는 하벨에게 자신의 물을 넣으며 고개를 휘저어 인사했다.
류아는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정령왕이시여. 정령님을 제대로 보지 못해도 이해해주세요."
"여기는 내 집사, 카샬 메르흔."
"고생이 많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을 겁니다."
류아는 바로 카샬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진심이 그냥 바로 흘러넘쳤기에 카샬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동질감이 느껴졌다.
"용왕님께서 원래 저렇게 제멋대로 굽니다. 결코, 당신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말 안 듣는 귀여운 막내라고 봐주십시오. 그러면 열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한 대로 줄어듭니다."
"아, 그건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샬은 가면을 벗으며 류아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역시 동류일 줄 알았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고생한 자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짠했다.
"…잠깐만."
하벨은 예상치도 못한 두 사람의 행동에 당황했다. 왜 당사자를 사이에 두고 말을 꺼내는지.
하지만 이미 류아와 카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카샬은 공감한다는 표정을 하며 손에 힘을 더 꽉 쥐었다.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이전에는 도련님께서 얼마나 더 많이 날뛰었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건강하셨을 테니까요. 아찔함이 하늘을 찔렀겠습니다."
"아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죠. 상처 입은 몸으로 전쟁터에 나가 새로운 상처들을 달고 온 적도 많은데요. 신이 난 채로 영광의 상처라며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빠드득.
류아는 말하다 말고 밀려오는 기억에 이가 저절로 갈려왔다. 그 마음이 공감돼 카샬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배에 상처가 아직……."
"진짜, 왜 그러십니까, 용왕님?"
류아는 바로 하벨에게 언성을 올렸다. 하벨은 눈을 깜박거렸다.
"아니. 용왕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몸은……."
갑자기 류아는 말을 삼켰다.
아차 하는 표정을 읽으며 하벨은 태연하게 마지막 소개를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쪽이 우리가 대화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마지막 남은 용인 칼리우스야."
류아가 그렇게 만나라고 했던 그 용이 바로 자신 옆에 있다고 하벨은 그렇게 알려주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칼리우스가 어디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세계의 운명이 바뀔 정도가 되었으니.
"안녕, 류아. 내가 최대한 버티고 있으니까, 저번처럼 빨리 헤어지지 않아도 돼."
"감사합니다, 위대한 용이시여."
류아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존재가 바로 용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걸 왜 모를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저 용이 일그러진 무언가를 바로 잡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칼리우스를 보는 류아의 눈동자에 기쁨이 가득 어렸다.
"류아야. 얼마 전에 해연을 만났어."
하벨은 짧게 말을 꺼냈다.
칼리우스가 해연과 어인족의 몸을 괴상하게 만든 마나를 바로잡아줬다는 말은 생략했다.
지금 이 와중에 필요 없는 말이 아닌가.
"저를… 원망하십시오."
류아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어떤 변명도 할 생각이 없었는지 체념하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저를 용서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방법이 그것뿐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제일 알고 싶은 건 그거야. 대체 언제 하벨 티에라가 용왕인 걸 알았지?"
"첫 번째 세계가… 합쳐진 후, 에른스트가 멸망으로 세상을 이끌어 멸망하기 전에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는데?"
"용왕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진정이라는 말에 하벨은 당장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뭐가 또 있다는 건데? 여기서 뭔가가 더 있을 수 있단 말이야?"
"유렌입니다."
"뭐……?"
하벨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에 휩싸였다.
지금 류아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귀에 닿질 않았다.
유렌이라는 이름이 왜 지금 나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유렌이 제게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류아의 말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류아야. 지금 나는… 농담할, 그런 기분도 아니고, 시간도 없어."
하벨은 이마를 쓸어넘기며 괜히 주변으로 시선을 뒀다.
'끄응'거리는 아라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칼리우스가 눈에 보였다.
자신의 힘이 갑자기 더 커진 만큼 아라와 칼리우스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이 말이 도중에 끊어진다면 용왕님께서 무엇을 생각하고 얼마나 괴로워할지 알기에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유렌은. 나를."
하벨은 갑자기 숨이 차 말을 잇지 못했다.
욱신.
죽기 전에 찔렸던 부분들이 모두 아팠다. 가슴도 아팠다. 그냥 모든 게 잡아 먹히는 그런 기분이 맴돌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압니다. 유렌은 용왕님을 죽인 자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니, 지금 뭐? 너한테 알려줬다고? 너한테… 그러니까, 하벨 티에라가."
하.
하벨은 잠깐 숨을 깊게 내쉬었다. 혼란이 머리 가득 차 어지럽기까지 했다.
"하벨 티에라가… 용왕인 걸 알려준 게 유렌… 이라고?"
"저도 유렌이 어떤 마음으로 제게 그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렌이 알려주었습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널 이용하려는 걸지도 몰라!"
하벨은 곧바로 언성을 높였다.
말도 안 돼.
그건 불가능했다.
"유렌, 그 새끼가 너마저 죽이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아뇨. 그건 불가능합니다, 용왕님."
류아는 몹시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틈의 세계에 주인은 유렌이며 저 역시 유렌이 원한다면 죽을 수 있습니다."
"왜?"
"지금 틈의 세계에 있는, 영혼을 잃어버린 자들이 유렌이 가진 영혼 하나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렌이 죽는다면……."
하벨의 시선이 불안하게 움직였다.
분명 이전에도 들었던 말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냥 흘릴 수가 없었다.
"예. 저도, 모두도 죽습니다."
"류아야. …류아야. 나는, 나는 그런 게 싫어."
하벨의 인상이 와락 구겨지자 류아는 그를 달랬다.
"용왕님."
"류아야. 나는, 네가, 내 가족들이 죽었다 생각한 이후로 모든 게 망가졌어. …너희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상황이 이렇게나 나빠지지 않았을 텐데.
애달픈 하벨의 시선에도 류아는 말을 이어나갔다.
"폭발에 휘말린 후에 저는 용왕님께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원망하지 않아.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
"폭발 사건 이후로 제게… 아니, 저희에게 에른스트가 접근했습니다."
"에른스트가 왜……?"
"제가 수족들 뒤에 에른스트가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설령 그게 진짜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자는 이미 그때부터 용왕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용왕님이 가지신 무언가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라고?"
하벨은 시간이 가늠되질 않았다.
류아네가 죽고, 그 뒤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가.
자신이 도중에 에른스트를 죽음까지 몰고 갔다고 했지만, 그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힘을 봤습니다. 용왕님을… 죽였던, 아니 죽이기 전에 그 힘을 봤습니다."
류아는 검고, 진득했던 에른스트의 힘을 떠올렸다.
"정말 죄송하지만, 그 힘을 본 순간, 제 눈에는 용왕님의 승리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검은 힘이 용왕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향한다면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용왕이라면, 그가 어떻게 할지 뻔했다.
"그래서 용왕님께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수족 말고 또 다른 위협이 있다는 사실을, 이를 파헤칠 방법을 찾아 반드시 용왕님께 알려드렸어야 했으니까요."
"죄송하지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럼, 도련님께 더 빨리 알려드렸으면 되지 않습니까?"
카샬이 말문을 열자 당연히 예상한 것처럼 류아가 피식 웃었다.
"……실패했습니다."
곧 류아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유렌이… 배신자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 꼴이 된 겁니다. 유렌한테 묶인 꼴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틈의 세계라는 게 없었을 텐데?"
밀려오는 사실에 하벨은 혼란스러웠다. 아직 세계가 합쳐지기 전이지 않은가.
"에른스트는 그걸 가능하게 했습니다. 억지로 제 영혼과 유렌의 영혼을 종속시켜버렸습니다."
"왜 자기 자신한테 하는 게 아니라 유렌한테 한 거지? 그게 네 목을 쥐기가 더 쉽잖아? 왜 굳이 빙글빙글 돌아간 거야?"
하벨은 의문을 느꼈다.
마치 그러면 안 되는 제약이라도 걸려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제가 설명해 드릴 수 있는 건 유렌은 용왕님을 배신하고 심지어 죽였지만, 우습게도 하벨 티에라, 제2대 용왕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게 이해가 되질 않아. 왜 유렌이 그러는 거냐고. 그놈은 날 죽였어. 날 죽였다고!"
"회귀, 빙의."
류아는 두 가지 단어를 언급하자 하벨은 입을 다물었다.
"이 모든 게 유렌이 도왔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진실입니다."
"그러면 너도… 하벨 티에라처럼 회귀한 거였어?"
"아닙니다, 용왕님. 저는 회귀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회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과거를 다 알고 있는… 으, 으윽."
하벨이 신음을 내뱉었다.
시간이 다 되었음을 류아는 알았다.
저 저주는 하벨의 힘을 따라 커지기에 이전보다 더 큰 압박이 몰려올 게 뻔했다.
당장 품을 뒤지더니 종이들을 꺼내 카샬에게 내밀었다.
류아의 표정에 어떤 결단이 보이자 카샬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들을 쥐었다.
"저주를 풀 방법을 최대한 찾아낸 겁니다. 이번에 이걸 전해주는 게 제 목표였습니다. 이 저주는 평행 세계에 있던 마법에다가 저와 용왕님이 있던 세계의 주술을 섞어서 푸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희망이 보입니다."
류아의 시선은 칼리우스를 향했다. 너무도 기쁨이 가득했다.
"용이시여. 이번에는 당신이 용왕님 곁에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주술 부분은 제가 풀어냈습니다. 나머지를 부탁하겠습니다."
'이번이라니?'
칼리우스는 저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아라가 잠깐 무너지면서 하벨의 주변에서 나오는 실이 훨씬 더 많이 늘어나고 있었으니.
"용왕님. 레놀드 왕국에서는 무날과 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무날과 태련이?'
하벨은 '기다린다'라는 말에 왜라고 묻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또 뜨거워졌다.
"유렌 이야기로 혼란스러우시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유렌이 아니라 절 믿어주십시오."
류아는 하벨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허리춤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부적을 유리 벽에 붙였다.
류아의 손이 그대로 통과가 되어서는 하벨의 몸통을 소중히 손에 쥐었다.
"에른스트가 아직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작은 일이라 생각하는 중이죠. 이제 세 번째이기에 놈도 눈치챌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최대한 시선을 끌어보겠습니다."
"…류아야."
하벨이 입을 열자 코피부터 흘러내렸다.
"에른스트가… 세상을 멸망시켰을 때."
퉷.
하벨은 입가에 고인 피를 내뱉었다.
"그때, 어떤 모습이었지?"
유렌 이야기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억울한 마음이 자꾸만 목을 찔렀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알아야 했다.
에른스트의 목적.
대체 왜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지 알아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