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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21화 (321/415)

321화. 이럴 수 없어!

* * *

"그게 무슨 소리야?"

하벨은 칼리우스의 대답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칼리우스의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거렸다.

"도련님도 알고 있다시피 세계의 근원은 물이야."

[응응. 이 몸도 아는걸?]

아라가 하벨의 옷자락을 잡던 손을 놓으며 으쓱거렸다.

하벨은 칼리우스가 왜 그 말을 꺼냈는지 묻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르밀이 분하지만, 도련님의 힘을 인정하겠… 아앗.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칼리우스가 말하다 말고 당황했다.

"그."

칼리우스의 눈동자가 잠깐 빙그르르 움직였다.

"물이 세상의 근원이라면 마나는 근원을 유지해주는 힘이야. 그러니까, 마나는 물이 있기에 존재하는 거야. 나는 어렵지만, 도련님은 이 말을 이해했어?"

"이해했어. 지금 모종의 이유로 마나가 움직일 수 없는데 이를 움직이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는 거잖아?"

"맞아! 그 모종의 이유가 오염일지도 모른다며 카르밀이 말했어."

칼리우스가 혀를 핥았다.

"그렇다는 건 이 주변을 전부 물로 감싸면 된다는 거지?"

하벨이 묻자 칼리우스는 입을 한껏 벌렸다.

"오오, 카르밀이 맞대!"

"가자, 아라야, 용용아."

하벨은 망설이지 않았다.

[에헴! 이 몸이 다 막아줄게!]

"걱정하지 마. 나 이제 마나가 많아!"

아라와 칼리우스가 힘차게 대답하자 하벨이 미소를 지었다.

과연 자신하고 아라와 칼리우스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벨은 용왕의 힘을 가득 끌어왔다.

하벨의 눈이 푸르게 변하자 괴물을 닮은 자들 모두 그대로 하벨을 일렁거리는 눈빛으로 보았다.

그 속에 여러 감정이 있었지만, 그리움이 가장 짙었다.

왜 저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지 몰라도 하벨은 흔들리지 않고 그 일대에 물을 불러왔다.

돔 속에 있는 것처럼 물이 모두를 감쌌다.

틈의 세계에 나온 그들을 제외한 모두가 각오했지만, 물이 덮치자 밀려오는 공포를 이겨내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하지만 물결이 달랐다. 피부에 닿은 감각이 물이라는 느낌만 있을 뿐 그냥 땅에 서 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어? 숨이 쉬어지는데?"

레디나가 신기한 상황에 입을 살짝 벌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입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았고, 눈이 아프거나 그런 느낌도 없었다.

"정말이네?"

헤레스가 깜짝 놀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땅에 있을 때와 똑같았다.

"이게… 물속이라고? 꼭 침대, 아니, 침대 이상으로 포근한데?"

물속에 있으니 모든 피로가 싹 닦이는 기분에 헤레스는 괜히 손으로 물살을 내보였다.

잔잔하게 물살이 일었다.

보글보글.

여하는 저들과 달리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

무언가 떠올릴 듯 말 듯 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자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충분하지?"

하벨이 칼리우스에게 물었다.

"응. 충분해."

칼리우스의 눈빛에 붉은빛이 어렸다.

"이쪽으로 와."

칼리우스의 손길을 따라 저 작은 괴물을 닮은 자의 몸속에 있던 마나가 물을 따라 다급히 빠져나왔다.

"…어라?"

칼리우스는 깜짝 놀랐다.

빠져나온 마나는 하나가 아니었다.

물에 감싸진, 틈의 세계에서 나온 이들 모두에게서 마나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부풀었던 몸이 꺼져가며 저들 모두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치 겉껍질이 벗겨지듯 천천히 떨어지는 살점 덩어리가 물에 닿아 녹아내렸다.

치이이익.

"…세상에."

헤레스가 입을 벌리며 멍하니 이 과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가히 기적이라고밖에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붉게 변한 저들의 살결을 어루만지듯이 물살이 부드러이 움직였다.

천천히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에 하벨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떨어진 살덩이 사이로 드러난 건 분명 비늘이었다.

'…이러지 마라, 제발.'

하벨은 자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런 계산이 저 비늘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싹 날아갔다.

저들의 피부 어디든 보이는 비늘의 모습에 하벨은 당연한 사실 하나를 알아버렸다.

저들은 정말로 어인족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하 역시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인어족이 아닌가.

보글보글.

"…아."

어느새 성별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의 모습이 된 그녀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흐리멍덩하던 눈빛마저 살아나면서 떠오른 눈물이 물거품처럼 일어났다.

"소리가. …멈췄어."

그녀는 정확한 발음을 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형체를 갖춰가지 않았던가.

"…고마워요."

이 모든 걸 놀라워하던 그녀는 칼리우스를 바라보며 고마움을 담았다.

"아까 소리가 멈췄다고 하던데, 어떤 소리가 들린 거야?"

칼리우스가 묻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주 오랜만에 주먹을 쥐어보았다.

"누군가를 죽이라는 소리가 내면에서 계속 들려왔어요. 우리는, 모두는 그 소리를 버텨야만 했고요. 사람을 죽일 수 없었으니까요."

'사람을 죽인 일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하벨은 그녀가 꺼낸 말에 거부감이 들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든 어쨌든 사람을 죽인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 한계가 찾아왔는데, 이렇게 소리가 사라질지는 몰랐어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여전히 지금 벌어진 사실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녀는 칼리우스에게 고마움을 재차 표했다.

그녀는 칼리우스의 손을 조심스레 놓고 하벨에게 다가갔다.

"아가."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던, 그렇게 만나보고 싶었던 아가가 저기에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하벨을 어루만졌다.

여전히 커다란 손은 하벨의 머리를 붙잡을 만큼 컸지만, 손길만은 부드러웠다.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 아가?"

하벨은 낯선 손길에 마음이 흔들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우리 곁을 떠나서 사람 손에 이끌려가는 걸 보았어요."

아무래도 하벨 티에라가 틈의 세계에서 나와 룬델의 품에 안긴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많이 무서웠어요?"

그녀의 사과가 들려오자 하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벨은 입가를 핥았다.

일단 벌어진 일부터 알아내는 게 먼저였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를 쫓는 무리가 있었어요."

"틈의 세계 안에서 말입니까?"

"맞아요. 우리는 틈의 세계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녀는 말하다 말고 깜짝 놀랐다.

"가, 가야 해요."

"잠시만요. 지금은 괜찮아요. 용용이가 막고 있으니까요."

하벨은 칼리우스를 가리켰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버티고 있어."

그럼에도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땅은 우리한테 위험해요. 우리는 이 땅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요."

저 비슷한 말을 류아에게도 들은 적이 있었기에 하벨은 물었다.

"그 이유가 뭐죠?"

"우리는… 빼앗겼어요."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하벨은 재촉했다.

"무엇을 뺏겼다는 말입니까?"

"영혼을요. 우리한테는 생명으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영혼이 없어요."

그녀의 대답에 하벨은 한 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평행한 세계가 합쳐진 부작용이다.'

세계가 합쳐졌기에 같은 영혼이 존재할 수 없어 한쪽이 사라져버리고 말았겠지.

그럼 사라져버린 영혼은 어디로 간 걸까.

그저 사라지기만 했을까.

의문이 또 맴돌았다.

"하지만 영혼이 없으면 그 어떤 존재도 살 수가……."

칼리우스가 다급히 말을 꺼내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섣부른 결론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지 않았는가.

곧 칼리우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에 영혼이 없어도 계속 생존할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

[…끄응.]

아라가 앓는 소리가 들려오자 하벨은 그녀를 재촉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했다.

"용용이 말대로 영혼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겁니까?"

"영혼이 없으면 살 수가 없죠. 하지만 우리는 틈의 세계와 이어져 있어요."

"정확히 말씀해주세요. 틈의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게 뭔지 말입니다."

하벨은 아라를 쓰다듬으며 정신을 더 바짝 차렸다.

"틈의 세계에 지배자가 있어요."

하벨도 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류아가 알려주지 않았던가.

유렌.

아니, 나아가 에른스트가 틈의 세계에 지배자라는 걸.

"우리의 생명은, 아니, 틈의 세계에 얽힌 모두가 그 자 손에 달려 있어요. 지배자가 우리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없음에도 이렇게 살아 있는 거예요."

'…그럼, 류아도 그런 상태라는 건가?'

하벨은 주먹을 꽉 쥐었다.

류아가 자꾸 누군가로부터 도망가는 이유가 이거였을까.

유렌이 류아를 죽이려 쫓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도망치는 것일까.

"…그래. 그래서 죽지 않는다고 쳐? 그럼 대체 왜 사람들을 죽인 거지?"

카샬은 성큼성큼 다가와 물었다.

지배자가 있다고 한들, 이게 사람을 죽이는 행동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오만해 보이지 않은가. 자신들이 죽지 않기에 사람들을 당연히 죽여도 된다는 생각을 품은 것만 같았다.

그녀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영혼이… 없기 때문이에요. 영혼이 없기에 영혼을 향한 본능적인 갈증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건, 이건 정말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 갈증을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하지만, 이게 너무 괴롭습니다."

"그게 방금 당신이 말한 어떤 '소리'라는 겁니까?"

하벨이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서 영혼을 되찾으라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갈증을 참지 못한 자들이 틈의 세계 밖으로 나가 영혼이 있는 자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게 됩니다. 그게… 당신들이 말하는 '괴물'이라는 자의 정체에요."

그녀의 대답에 하벨은 더 무서운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또 다른 자신을 본다면, 그자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틈의 세계에 있는 다른 자들은 이 갈증을 참을 수 있을까.

저들의 갈증을 지금 누군가 누르고 있다면, 이걸 풀어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지 몰랐다.

하벨은 아찔한 상상을 잠깐 옆으로 치우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구겨지는 얼굴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갈증을 채울 방법 중 하나가 마나였습니까?"

"마나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갈증을 해결하려면 틈의 세계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마나를 흡수한 게 맞아. 너희의 그 갈증을 채워준 게 마나였어."

칼리우스가 사실을 언급했다.

아직도 저들 속에 갇혀 있었던 마나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모습이 뒤틀려버렸어. 물론, 마나만으로 그 갈증을 채우지 못했을 거야."

"맞습니다. 이 갈증은… 당신을 떠내 보내면서 더 심해졌죠."

그녀는 다시 하벨을 바라보았다.

"밖은… 무섭지 않으셨어요?"

"좋은 가족을 만났습니다."

하벨은 하벨 티에라를 대신해 입을 열었고, 랜턴이 이를 긍정하듯 흔들렸다.

"정말요?"

그녀가 활짝 웃었다.

"정말로 좋은 가족을 만났어요?"

다시 확인받으려는 그 모습 속에 기쁨밖에 없었다.

"네. 정말, 정말 좋은 가족이에요."

하벨 티에라를 대신해 말을 꺼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하벨은 사심이 담겼다.

저절로 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다행이에요."

그녀는 기껏 멈췄던 눈물을 다시 뚝뚝 흘렸다.

"정말… 정말로 다행이에요."

[아앗. 울지 마. 너무 기뻐서 그래?]

아라가 그녀에게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낯선 손길에도 그녀는 펑펑 울었다.

울음이 번져가기라도 하듯 저들 모두 울기 시작하자 아라가 당황했다.

[우, 울지 마. 울면 힘든데.]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아주 많이요. 그렇게 떠나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손에서 놓아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눈에 훤했다.

그 작았던 아이가 홀로 틈의 세계를 벗어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데 이렇게 훌륭하게 자랄 줄이야.

"그래서 찾아다녔어요. 그날 이후 당신을 매일 찾았어요. 모두가, 당신을 찾아야만 했어요."

왜.

그 질문이 목구멍 너머로 바로 올라오지 않았다.

하벨은 저들이 말하는 진실을 알기가 너무 무서웠다.

"류아… 라는 사람이 날 도왔습니다."

하여 하벨은 다른 말부터 꺼냈다.

"류아를 알아요? 어떻게 아는 거죠?"

그녀가 오히려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눈물이 뚝 하고 멈출 정도였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아는 거죠?"

"어릴 때부터 봤으니까요. 지금도 계속 우리를 도와주고 있고요."

"왜… 죠?"

하벨은 겨우 질문했다.

"우린 어인족이에요. 류아도 우리랑 같죠."

그녀에게 의심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류아가 당신을 계속 찾아다녔다고 했어요."

"나를, 찾았다고요?"

하벨 티에라를?

"네. 류아가 계속 찾아다녔다고 했어요."

그녀의 시선에 힘이 들어갔다.

마치 자신을 가리키는 것만 같아 하벨은 손을 들어 옷자락을 살짝 쥐었다.

"정확히는 당신을 지키는 우리를 찾기 위해서였죠. 우리는 당신을 지켜야만 했어요."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피할 수 없었던 질문이 기다리고 있자 하벨은 각오를 다졌다.

"왜. 나를… 지켜야 했습니까?"

하벨은 옷자락을 꽉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자 아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끄응, 그래, 대장?]

아라는 하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꼭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이라 금방이라도 입술이 부르르 떨릴 것만 같았다.

"이걸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되네요."

그녀는 멈췄던 눈물을 다시금 흘렸다.

보글보글.

물거품이 일어났다.

"당신이야말로 우리의 전부이신, 모든 물과 바다의 지배자."

'제발… 이러지 말자.'

하벨은 미칠 것만 같았다.

아니기를.

제발 아니기를 속으로 빌어보았다.

"용왕님이시니까요."

"…빌어먹을!"

하벨은 소리쳤다.

그냥 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육성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그게!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격렬한 하벨의 감정에 맞추듯 물이 점점 흔들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대, 대장!]

아라가 한계에 부딪혔고, 갑자기 더 많이 뻗어 나오는 얇은 실에 칼리우스가 당황했다.

"이 세상에 용왕은 단 하나니까! 결코, 둘이 될 수 없단 말이다!"

하벨이 뜨겁게 말을 토해냈다.

용왕은 단 하나였다.

그건 절대적으로 변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하벨 티에라가 용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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