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17화 (317/415)

317화. 한 놈, 두 놈, 세 놈, 네 놈

* * *

하벨의 소개와 함께 클로저들이 동요했다.

"진짜… 달님이 맞습니까?"

대놓고 의심하는 자도 있었고.

"겨우 5명?"

숫자를 세보며 강함과 약함을 가늠하는 자들도 있으며 그저 가만히 쳐다보는 자들도 있었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나뉘었지만, 하벨은 전혀 초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통일되지 않은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그건 아닌데…….]

아라는 입을 막으며 뒷말을 삼켰다.

5명이 아니었다.

하벨은 클로저들을 바라보다 계속 이어지는 의심에 자신이 먼저 그들에게 날을 세웠다.

"아니. 나를 환영해주는 게 먼저가 아니라 의심부터 하다뇨? 이런 분위기는 좀 불쾌한데요?"

이는 계획과 달리 기분이 나빴다.

이미 클로저들을 도와준 공이 있는 자신을 크게 무시하는 행동이 아닌가.

"아니면 내가 의심스러워서 이 자리에 온 겁니까? 사실은 내가 검은 달의 일원이고, 일부러 당신들을 속이는 척하는 거라고요."

하벨이 꺼내는 말에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거나 유달리 크게 반응하는 게 보였다.

저놈들이 간부인지 몰라도 하벨은 재미있었다.

[뭐어,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이 있긴 하지.]

루룸은 아닌 척, 하벨에게 정보를 슬쩍 흘렸다.

막내야. 처음부터 달리지 마.

라르웬이 눈으로 그렇게 말하며 하벨에게 다가왔다.

'아뇨. 그건 안 되겠는데요?'

입이 간지러워서 참고 싶지 않았다.

"누가 그런 머저리 같은 짓거리를 합니까? 클로저들은 대단하죠. 하지만 대단한 것과 별개로 이미 뚫렸잖습니까. 그런 곳에 왜 검은 달이 구태여 일부러 희생까지 할 정도로 멍청한 짓을 해야 하는 겁니까? 당신들이라면 그러겠습니까?"

하벨은 노골적으로 클로저들을 향해 말을 퍼부었다.

그리고 의심을 한 줌 쥐어 같이 뿌려버렸다.

"애초에 그런 의심을 하는 자야말로 검은 달이 아닙니까?"

"달님. 일단, 진정하시죠."

라르웬이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하벨에게 다가갔다.

"분위기가 이렇게 날이 선 점에 대해선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달님 역시 조금 흥분하신 듯합니다."

막내야. 너, 클로저랑 척을 질 셈이야?

라르웬이 그렇게 말하는 듯해 하벨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어차피 이 정도는 부딪쳐야 했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방금 내 무례는 사과드리죠. 하지만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라 조금 마음이 삐딱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게 왜 의심부터 합니까?"

"다들 인사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브란스가 다가와 하벨을 달래며 그를 반겼다.

"그런데 저번보다 숫자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브란스의 시선이 하벨의 뒤를 향했다.

가면을 쓴 자들이 더 많아지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그냥 올 수는 없잖습니까. 내부에 검은 달과 내통하는 놈이 숨어 있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요."

하벨은 클로저들을 한 번 더 긁고는 음성을 살짝 낮췄다.

"그런데 브란스 씨."

"말씀하세요."

"이건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는 거니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일단, 서로의 얼굴은 다 알고 있는 거 맞습니까?"

하벨은 일부러 속삭이는 척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웠다.

브란스의 눈썹이 잠깐 움찔거렸고, 라르웬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뇨."

"아니라고요?"

하벨은 깜짝 놀란 척 연기하자 아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어제 대장이랑 라르웬이랑 다 말로 나눈 거였는데.'

아라는 앞발로 입을 가렸다.

―…네가 듣기에 웃기게 들리겠지만, 사실 클로저들이라고 얼굴을 다 아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막내 네가 생각하는, 간부들이 그 자리에 모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는 거지.

하벨은 어제 라르웬이 알려준 사실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클로저들을 향해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그렇다는 건… 여기에 검은 달과 내통하는 자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자신의 말이 저들에게 어떤 식으로 스며들든 말든 하벨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간부들은 저들 속에 숨어 자신을 지켜보며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고 있을 테니, 차라리 클로저들을 흔들어 빨리 틈을 보이는 게 나았다.

브란스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하벨에게 다가왔다.

어쩐지 어수선해진 분위기가 한순간에 잡힌 듯했다.

"…인사가 늦어서 미안하네. 나는 이곳 코스모피안 왕국을 관리하는 지부장, 넬로스라고 하네."

넬로스는 하벨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달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분위기가 어수선한 건 이해해주게. 지금 각 나라를 담당하는 클로저들이 급히 모인 셈이니. 어색하고, 낯설지 않겠는가."

"그런 것치고는 다들 날이 섰는데요?"

"다른 이유가 있네."

"그럼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니 편안하게 들어주세요. 혹시 여기에 모인 클로저들은 검은 달과 내통했다고 의심을 산 사람들입니까?"

허를 찌른 듯 하벨의 말에 넬로스가 키득거렸고, 브란스는 뒷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뭐어, 영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랑 라르웬, 그리고 이전에 봤던 클로저들 모두 당신을 위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럼요. 우리 구면이잖아요. 친해지기에 충분한 사건도 같이 겪었고요."

하벨이 실실 웃자 라르웬이 딱 잘라 말했다.

"일단, 이유야 어쨌건 검은 달 문제로 오지 않았습니까?"

"그럼요. 이렇게 내가 클로저들을 위한 희생양이 될 줄은 몰랐지만요. 힘 빠지게 말입니다."

하벨이 툭 하고 던진 말에 라르웬은 미간을 잠깐 찌푸렸다.

이미 하벨한테 말했던 부분이지만, 이렇게 직접 듣게 되니 속이 쓰라렸다.

집단이란 원래 그랬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 싶어하는 곳이었다.

이참에 의심스러운 이들을 모조리 몰아넣고, 솎아내겠다는 의지가 가득해 처음으로 클로저가 된 걸 후회하기까지 했다.

"정말 너무하네요. 클로저들이 이렇게 의리가 없는지 몰랐습니다."

진심을 담아 말하는 하벨의 말에 루룸은 참다 참다 못해 콧바람을 세게 내쉬었다.

[의리가 있다면 애초에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겠지. 결국, 이득만 챙기겠다는 의지잖아.]

아무리 라르웬에게 들었어도, 자신도 클로저들과 이런저런 일로 함께해 정도 들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럴 줄은 몰랐기에 참 재수 없다 싶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네. 조직이 커지면 겁이 많아지지. 조그마한 상처에도 타격이 몹시 크니까. 그러니 내가 지부장으로서 그대에게 사과하기 위해 왔다네."

넬로스는 고민도 없이 하벨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디, 이번 일을 클로저들 전부의 생각이라 믿지 말아 주게. 그대가 우리를 위해서 해준 일들은 정말로 값진 것들이었으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동인데요?"

하벨은 넬로스의 눈동자에 어린 진심을 보았다.

이런 자들이 많기에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지.

"나는 가면단의 '달님'이라고 합니다. 이 이상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하벨은 다시금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내 목적을 이루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벨이 갑자기 손가락 두 개를 펼치자 클로저들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나는 주제도 모르고 자신들이 정의라 울부짖은 암살자 집단인 검은 달의 멸망이며."

레디나의 시선이 주변을 향했다.

검은 달에 속한 자들은 검은 달을 향한 자부심이 강했다.

암살자 집단이나, 기존에 있던 암살자와 다르다는 웃기지도 않은 사실이 은연중에 퍼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간부들의 자부심을 오죽할까.

하벨은 지금 간부들의 자부심을 대놓고 건드린 셈이었다.

"또 하나는 틈의 세계가 사라지기 전까지 클로저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하벨은 클로저들이 사라진 미래의 멸망을 그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부에서 클로저들이 벌이는 끔찍한 악행들을 마주했고 달라지겠다고 하지만, 내부에 또 다른 적이 나타난 순간 흐지부지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즉, 나는 클로저의 생존을 원하기에 이렇게 돕는 겁니다. 그러니 나를 의심하지 마세요. 나를 적으로도 돌리지 마시고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클로저 중 누군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클로저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걸 당신들은 느끼지 못했습니까?"

"조금만 더 자세히 말해주게."

넬로스가 부탁했다.

그냥 흘릴 수 없는 문제였다.

"검은 달이 클로저에 침투할 수 있었던 게 정말 단순한 우연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간 클로저에게 위기란 틈의 세계뿐이었을 겁니다."

하벨은 넘겨짚었지만, 아무도 자신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왜 이제야 이렇게 공격을 당하는지 모르겠습니까? 누군가 의도적으로 일을 벌이는 겁니다. 클로저들을 죽이기 위해서 갈등을 심고, 그 갈등이 커지면 또 다른 사건을 들먹일 게 뻔합니다."

"…다른 사건이라뇨?"

라르웬은 하벨의 말을 끌어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물었다.

"클로저들이 일반인을 살해한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입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클로저들은 갑작스러운 비난에 발끈했다.

이는 조금 전 말과 다르지 않은가.

"워워. 진정하시죠. 사실 얼마 전에도 터지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 사건이라면 저번 일을 말하는 겁니까?"

브란스가 침통함을 숨기지 못한 채로 말을 꺼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차라리 자신이 말하는 편이 나았다.

"예. 맞습니다. 검은 달의 내통자이자 일반인을 살해한 '엘란' 이야기는 꽤 유명할 거라 생각하는데요?"

하벨이 엘란을 언급하자, 클로저들은 눈빛으로 불쾌함만 드러낼 뿐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엘란 사건 때문에 내부에서 조사가 시작되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잡혀갔으니까.

"물론 이게 소수가 벌인 일인 건 압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결국, 당신들을 끌어내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나는 이 모든 일을 막으려고 이렇게 당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클로저 내부에서 벌어진 저 사건은 클로저들이 한 게 아니라 검은 달에서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 둘러댈 수도 있었으니.

하벨은 시선을 주변으로 뒀다.

'슬슬 간부들이 움직일 때가 됐는데 말이야.'

자신이 클로저들을 흔들고, 다소 과격한 주제로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 순간이야말로 클로저들의 눈을 속이고 자신을 공격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말해주게."

넬로스의 물음에 하벨은 좋다꾸나 싶어 얼른 하고자 한 방향을 제시했다.

"코스모피안 왕국에 있는 검은 달의 지부를 알아냈습니다."

하벨은 이곳에 있는 간부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자. 보거라. 너희가 날 공격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너희의 지부를 공격하겠다.'

"지… 지금 뭐라고 했는가?"

넬로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응했고, 브란스가 깜짝 놀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미 에르티안 왕국에서도 검은 달의 지부를 알아내지 않았습니까? 이곳에 있는 지부까지 알아냈다니. 이게 정말 사실입니까?"

"에르티안 왕국에서 내가 벌인 그 일은 당신들을 향한 내 믿음을 보여드린 겁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믿음을 드리겠습니다."

하벨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여기에 지부의 위치가 적혀 있습니다. 자, 그럼 저는 여기서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직접 보여주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함정일 수도 있잖습니까."

클로저의 말에 하벨은 피식 웃었다.

소곤소곤.

물이 반응했으니.

'그렇지? 이건 못 참겠지?'

채에엥!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름무늬가 가득 들어간 가면이 하벨의 시선에 보였다.

'역시, 레디나. 빠르단 말이야.'

적과 레디나가 거의 비슷하게 땅으로 내려왔다.

그제야 클로저들이 반응했다.

소곤소곤.

물은 다시 하벨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하벨은 움직이지 않았다.

레디나와 비슷하게 튀어나온 여하가 하벨의 등을 노리는 다른 적을 붙잡아 땅에 그대로 찍어버렸다.

콰앙!

거친 소리와 함께 여하가 쓴 무지개 가면이 흔들리며 흙먼지가 일어났다.

[후!]

아라가 바람을 불러와 흙먼지를 날리자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대신, 두 번째로 습격했던 적이 다른 곳에서 멈춰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억지로 몸이 붙잡힌 것처럼 보였다.

'헤레스네.'

하벨은 바로 알았다.

아직도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 클로저들과 달리 바로 움직이는 자신들의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헤레스의 마법에 붙잡힌 적의 몸에 오러가 발현되려고 할 때쯤, 허공에서 날아온 검이 두 발을 찍어 내렸다.

콰직!

카샬의 어깨에 아코가 앉아 있었다.

딱.

하벨이 손가락을 튕기자 아라가 정령수를 밀어 넣었다.

새롭게 얻었던 정령의 힘.

하벨은 하늘을 향해 번개를 쏘아 올렸다.

파지지직.

가면단에게 결계를 치라는 신호였다.

"함정일 수 있냐고 물었어요?"

하벨이 가볍게 웃었지만, 클로저들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맞아요. 함정이에요."

하벨의 신호를 따라 하늘을 향해 결계를 위한 마법이 작동됐다.

"검은 달을 위한 함정 말입니다."

쥐덫이 발동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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