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01화 (301/415)

301화. 저는 참는 거 모르는데요?(3)

* * *

"……하."

레바놈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 시종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주인을 닮아 머리가 아주 나쁜 모양일세."

하지만 레바놈은 기꺼이 자비를 베풀어 하벨 티에라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아주 우아하게.

"지금 내게 무어라 말했는가?"

"기억력이 감퇴했냐고 물었습니다. 이걸 알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니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말로 바꾸면 되겠습니까?"

당연히 싹싹 빌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하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입을 놀렸다.

레바놈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하벨 티에라.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무슨 짓이긴요. 저하께서 한 행동만큼 대우해드리는 겁니다. 저하는 전하와 왜 이리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대놓고 하벨이 모욕을 퍼붓자 레바놈은 바로 언성을 높였다.

"네놈이!"

"네놈?"

하벨은 코웃음을 내뱉었다.

"무얼 믿고 설치는지 몰라도 저하께서는 이리 오만하게 굴 수는 없을 텐데요."

찬찬히 하벨의 언성이 낮아지고, 레바놈은 원인 모를 압박감을 느꼈다.

그게 너무 불쾌해 레바놈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당장 제 집사에게 사과하십시오. 맞을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사과라? 지금 내게 명령하는 것인가?"

레바놈은 하벨 뒤에 서 있는 두 놈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눈빛이 불손했다.

특히 눈동자가 붉은 저 시종은 눈이 뭔가 기괴해 더 불쾌했다.

"명령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말했을 뿐입니다. 사과가 그리 어렵습니까?"

"내가 왜 시종에게 사과해야 하는 건가? 이 나라의 왕자인 내가 저 천박한 자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건가?"

"…아. 지금 신분을 따지시는 겁니까?"

하벨은 카샬의 뺨을 때리는 '짜악' 소리가 났을 때부터 바안이 자신에게 준 반지를 꺼내둔 뒤였다.

이걸 또 꺼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쪽팔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일까.

<☆대리인 하벨 티에라★>

반지에 빛이 떠올랐다.

덩달아 떠오른 글자를 보자, 레바놈의 얼굴이 구겨졌다.

"진작 말씀하시죠. 저는 저하가 귀와 눈이 멀었나 싶었습니다."

하벨은 비아냥거리고, 비꼬았다.

"왕자와 왕의 대리인은 엄연히 다르니 이제 내 말을 알아듣겠습니까, 저하?"

하벨은 카샬을 가리켰다.

"좋게 말할 때, 사과하십시오. 내 말은 곧 바안 전하와 같습니다."

"왕의 대리인이라는 인장이 있으면 네가 왕이라도 되는 것 같더냐?"

하벨은 대꾸조차 하기 싫기에 그냥 반지에 떠오르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리도 오만하다니 내가 너를 잘못 본 모양이네."

"아, 바안 전하께서 오만하다 이겁니까? 일국의 왕이 코스모피안 왕국의 왕자에게 고개를 숙여야 속이라도 풀릴 모양이죠. 그럼 숙일까요? 뒷감당은 가능하시죠?"

"너를 찾아온 내가 멍청이였지. 이리도 사람 보는 눈이 없고, 오만방자하니 내 어찌 말이 곱게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럼 내 말은 곱게 나올 거라 생각했습니까?"

하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렇게 가벼운 일에 자존심을 세워 큰일을 만드는 재주가 있으니 코스모피안 왕국의 장래가 밝습니다."

"지금 네놈이 그 반지를 믿고 설치는 것인가?"

"예. 설치는 겁니다."

당당한 저 말에 레바놈은 부들거렸다.

반지 때문에 꾹 참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벌써 그의 손이 어깨까지 올라갔다.

"저하. 저 잘못 보셨습니다."

하벨은 씩 웃자 카샬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가 아닌가.

"도련님……."

카샬은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히 저딴 놈한테 맞아 기분이 더러웠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벨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무서워 하벨을 말렸다.

"안 됩니다, 도련님."

하벨은 카샬을 말리며 활짝 웃었다.

'해결이 아니잖습니까. 이건 결코, 해결이 아니잖아!'

카샬은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아, 재밌어라.'

하벨은 키득거리고 싶었다.

어차피 레바놈과 뒤틀린 관계, 어차피 에르티안 왕국에 끌고 갈 놈인데.

적어도 살살 꼬드긴 뒤에 뒤통수치듯이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그냥 막 나가보고 싶어졌다.

이게 어떤 기분인지 너무 궁금했다.

'바안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벨은 싱글벙글 웃었다.

"저하께서 벌벌 떠는 겁쟁이만 본 모양인데요, 저는 참는 거 모르는데요?"

"하벨 티에라. 내가 봐줄 때 적당히 까불게."

"적당히 까불어야 하는 건 저하인데요? 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야."

하벨은 여전히 싱글벙글했다.

레바놈의 눈동자가 천천히 커졌다. 뒤에 있는 왕실 기사들까지 웅성거렸다.

'쓰레기'라니.

카샬은 하벨이 꺼낸 그 말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친.'

사고 쳤다.

'망했다.'

진짜 큰 사고가 아닌가.

차라리 뺨을 한 대 더 내어주는 게 나았을 텐데.

자존심이 무슨 소용인가.

'아니, 도련님! 전쟁을 말리러 온 거 아닙니까?'

카샬은 혀가 쓰라릴 정도로 진한 커피를 향한 갈증이 짙게 느껴졌다.

"왕자?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요. 그래서 저하께서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전하의 힘이 저하의 힘이라 생각하는 겁니까?"

하벨은 레바놈이 충격을 받든 지 말든지 계속 지껄였다.

"저하께서 감히 날 건드릴 수 있습니까?"

감히.

그 말에 레바놈은 이성을 잠깐 놓쳐버렸다.

저 지껄이는 입을 막고자 하벨의 멱살을 잡았다.

"오. 잡으면 어쩔 겁니까? 진짜 날 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겁쟁이는 이런 거 못 하는데요?"

"그 입 닥치거라! 내가 네놈을 못 칠 거라 생각하는가?"

"예. 날 건드리면 저하께서는 무사하실 수 없으니까요."

"네놈이 정녕 매를 버는구나……!"

레바놈이 손을 올려도 하벨은 입을 계속 나불거렸다.

어차피 저 손은 자신을 칠 수가 없었다.

"무너져가는 코스모피안 왕국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고, 물 마법사인 날 건드리고도 어떻게 빠져나가실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한데요? 해보세요."

하벨은 비웃음을 그렸다.

이.

병.

신.

아.

또박또박 입 모양을 그리자 레바놈의 손이 휘둘러졌다.

팍!

순간, 모든 문이 열렸다.

칼리우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레바놈이 주춤거릴 사이, 카샬이 레바놈의 손을 붙잡았다.

하벨 주변에 바람이 불고 꽃이 피어나고, 심지어 불까지 붙었다.

화르륵.

레바놈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깜짝 놀라며 기사 뒤에 숨었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막 잠에서 깨어나 아직 반쯤 눈이 감긴 아라가 소리쳤다.

[누가 대장을 때리는 거야? 이 몸은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어!]

정령들이 아라의 외침에 몰려들었다.

"아, 참고로 이걸 모르실까 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긴 드란트 전하의 나라지, 저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것도 몰라요?"

레바놈은 끝까지 자신을 뒤흔들고, 흔들려는 하벨 티에라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당장 붙잡아! 당장!"

왕실 기사들이 움직인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파지지직.

하벨에게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허공에서 번개가 나타났고, 공기가 따가워지다 못해, 점점 차가워지고 있질 않은가.

쿠웅!

순간 강한 압력까지 몰려와 왕실 기사들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질 못했다.

대체 누가 공기를 짓누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저런, 정령님들께서 화가 난 모양입니다. 이건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제가 티에라 가문의 막내아들이잖습니까."

하벨은 낄낄 웃었다.

아라와 칼리우스가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정령님들에게 화를 입고 싶진 않겠죠, 기사님들?"

하벨은 아주 얄밉게 웃고 있었고, 기사들은 그의 말대로 주춤거렸다.

정령사에게 미움을 받으면 자연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소리가 있지 않은가.

"지금 뭣들 하는가? 당장 잡으라 하지 않았는가!"

레바놈이 소리쳐도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덮칠 것 같은 거대한 자연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이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레바놈이 아무리 소리쳐도 하벨 티에라는 에르티안 왕의 대리인이었다. 레바놈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기에 자신들이 움직일 권한을 넘어섰다.

"가시는 문은 저쪽입니다, 저하. 더는 쪽팔리지 말고 가시죠."

하벨은 으쓱거리며 열린 문을 가리켰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레바놈은 더는 하벨에게 무어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정치적 관계상 여러 가지가 거슬리는 건 사실이었으니.

"…두고 보자, 하벨 티에라."

"저런. 두고 보자는 말을 꺼내는 놈치고 엉망이 되지 않은 사람은 없던데요? 나중에 뵙겠습니다, 저하. 어떻게 만날지 기대가 되네요. 진심으로요."

하벨은 레바놈을 보며 비웃고, 또 비웃었다.

그대로 물러가려던 레바놈이 울컥해 다시 하벨에게 다가가 손을 뻗자 하벨은 기어코 잡혀주었다.

"…지금 무슨 짓입니까, 저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하벨은 세상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넬시아를 바라보았다.

"누님……."

"그대는 동생 교육을……."

"동생은 지금 아프니 만남을 거절한다고 분명히 알렸습니다. 무례하신 건 내 동생이 아니라 저하가 아닙니까?"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넬시아의 음성에 레바놈은 미간을 꿈틀거렸다.

"티에라 네놈들은 하나같이."

착.

넬시아 뒤에 기사들이 따라오자 레바놈은 입을 다물었다.

왕실 기사 중에서도 왕의 호위 기사들이었다.

하벨은 이를 놓치지 않고 질문했다.

"기사까지 동원하다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누님?"

"전하께서 널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아, 이런."

하벨은 정말로 안쓰럽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살았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이러다가 저하께 뺨이라도 맞는 줄 알았다니까요."

"네놈이 지금 뻔뻔하게 뭐라고 지껄이는 것인가?"

"말조심하십시오, 저하."

넬시아가 딱 잘라 말했다.

"저희는 전하의 손님입니다. 저하께서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여, 먼저 나가시죠."

문이 열려 있었다.

방금 레바놈이 하벨을 치려고 했던 장면을 목격했기에 넬시아는 레바놈을 마냥 곱게 볼 수 없었다.

"네놈은 스스로 화근을 불러왔다 생각하거라. 바보 같은 놈."

레바놈은 하벨에게 코웃음을 치며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뒤에 넬시아가 기사들에게 부탁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아무래도 동생이 많이 놀란 것 같아서 달래야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기사는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했다.

오히려 하벨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레바놈이 원래 패악을 잘 부린다.' 같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기사가 물러가면서 넬시아는 하벨의 상태를 바로 살폈다.

옷자락이 엉망인 것 빼고는 상처는 안 보였다.

"괜찮아? 배는 많이 아파?"

"아뇨. 멱살을 또 잡혀서 그런지 온몸이 덜덜 떨리네요."

레바놈이 기사들을 보고 머뭇거렸던 사실을 기억했기에 하벨은 기사들이 가기 전에 일부러 '멱살을 또 잡혔다'라는 말을 언급했다.

[뭐어……?]

아라가 깜짝 놀랐다.

"멱살을… 잡혀? 그런데 또 잡혔다고?"

넬시아는 살기를 드러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눈동자에 어떻게 아픈 애의 멱살을 어떻게 잡을 수 있냐며 수많은 욕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 몸은 지금 엄청 화가 나. 레바놈은 나빠! 어떻게 대장의 멱살을 잡을 수가 있어!]

아라가 아랫입술을 올리며 화를 내면서도 하벨을 토닥거렸다.

"나는 괜찮은데요, 카샬이 맞았어요."

하벨은 카샬의 뺨을 바라보았다.

맞은 소리는 꽤 컸으나, 살짝 스친 정도처럼 옅게 붉어진 게 전부였다.

딱 봐도 피한 게 티가 났어도 하벨은 물었다.

이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이미 문제였다.

"뺨은 괜찮아?"

하벨의 물음에 카샬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탁.

그제야 기사들이 나가면서 문이 닫혔다.

카샬은 그 모습에 더 주춤했다.

하벨이 꼭 나서야 했던 일인지. 일부러 나선 것인지. 진짜 자신을 위한 건지.

상황만 봤을 때, 하벨은 자신을 위한 게 맞았다고 해도 마음이 불편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됐습니다, 도련님. 그깟 뺨, 어차피 수없이 맞았습니다."

카샬은 혹여나 자신 때문에 하벨이 생각했던 계획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평소처럼 결코 가볍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넌 내 집사야. 네가 내 집사인 동안 네 뺨은 그깟 뺨이 될 수 없어. 절대로."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너그럽게 넘어가 주십시오."

"카샬."

"예, 도련님."

"과거에 맞았다고 해서 오늘도 맞아야 하는 건 아니야."

하벨은 카샬이 과거에 무엇이었는지, 무얼 했는지, 어떤 삶은 살았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오늘 카샬한테 일어난 일이 당연시되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 때문에 계획이 일그러지지 않았습니까?"

"새삼스레 왜 그래? 나 원래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잖아? 잠깐 이런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그놈은 나한테 팔린 상태고."

"팔… 렸다뇨?"

"아직 말을 못 했네. 왕하고 계약서를 체결했거든."

하벨은 넬시아가 드란트와 체결한 계약서를 카샬에게 내밀었다.

―…레바놈 코스모피안을 에르티안 왕국의 왕인 바안 에르티안에게 '양도'하며 추후 레바놈 코스모피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이와 관련해 모든 책임이 에르티안 왕인 바안 에르티안과 나아가 에르티안 왕국에 '없음'을 인정한다.

계약서를 읽어나가던 카샬이 놀란 눈을 하며 하벨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

"그리고 카샬, 넌 내가 맞으면 가만히 있을래?"

"아뇨.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당장 머리를 쪼개버려야죠."

"그래. 나도 너랑 똑같은 마음이야. 네가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 편이라는 건 이해하는데, 나는 너를 진심으로 걱정했어."

하벨은 이 말이 카샬에게 어떻게 닿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룬델과 넬시아, 라르웬을 제외한 가장 복잡한 관계가 바로 카샬이었다.

헤스트리아 왕국에서 어떤 이유로 쫓겨난 그가 도멘과 함께 떠돌아다니다 의뢰를 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하벨 티에라였다.

자신을 보면서 하벨 티에라가 떠오를 테니, 복잡한 건 이해할 수 있었다.

"……."

카샬은 입을 다물었다.

저 모습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카샬은 흔들렸다.

"이전에도 말했잖아, 카샬? 나는 널 도와줄 거라고.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하벨은 카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잠깐 떨어트린 지팡이를 짚으려다 칼리우스가 자신에게 넘겨주었다.

"고마워, 용용아."

"나 괜히 마법을 쓴 거 아니지?"

"딱 좋았는데?"

"정말?"

"눈치가 아주 좋아졌어."

하벨은 칼리우스의 어깨도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넬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갈까요, 누님?"

"그래."

넬시아가 앞장 서 문을 열었다.

탁.

지팡이 소리가 들렸다.

"혹시 할 말이라도 있어?"

하벨은 묵묵히 과정을 보고 있는 여하에게 물으며 속도를 늦췄다.

"지금은 없소. 조금 더 보겠소."

"그래."

하벨은 다시 나아갔고,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날 건드린 것부터 치워야지.'

레바놈이 지금 저지른 일까지 포함해 드란트한테 한탕 뜯을 생각이었다.

받은 게 있으면 갚아줘야지.

새로운 삶에서는 그러기로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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