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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94화 (294/415)

294화. 내가 줬으면 너도 줘야지(2)

* * *

하벨은 레바놈 코스모피안과 푸렐 텔르나, 이 두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탁.

지팡이 소리와 함께 하벨을 향한 귀족들의 시선이 덩달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여러 시선이 있었지만, 자신을 향한 놀람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고마워, 레디나. 네 덕에 일단 기세를 짓눌렀네.'

하벨은 레디나의 전략이 통했다는 사실을 계속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시각적인 부분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코스모피안 왕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넬시아가 대표로 인사하며 왕에게 허리를 숙였다.

티에라 가문의 사람을 처음으로 본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귀족들은 빈정거릴 시간을 놓쳤다.

하벨은 왕에게 허리를 숙이기 전에 번쩍 손을 든 아라의 앞발을 바라보았다.

정령사가 있어.

그런 의미였기에 하벨은 만족스러웠다.

'그렇지. 내가 정령사인지 아닌지 확인해야지.'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왕은 그다지 반기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 역시 의도한 듯 보였으나, 너무 자연스러워 살짝 의심이 들기도 했다.

왕의 시선이 하벨을 향했다.

"그대가 물 마법사인가?"

"그렇습니다."

"혹여 잠깐 물을 보여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하벨은 왕이 무얼 생각하고, 무얼 노리는지 모르기에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에른스트가 신경 쓰이지만, 가벼운 정도라면 놈도 알아차리지 못할 테지.'

용왕의 힘을 끌어오자 하벨은 '지이잉'하고 영혼이 울리는 느낌에 흠칫거렸다.

천천히 하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 아래다.'

하벨은 발바닥에 힘을 주었다.

'이 아래에서 내 영혼이 공명하고 있다.'

자신이 코스모피안 왕국에 온 가장 궁극적인 이유이자 목적이 아닌가.

'역시 왕실부터 오길 잘했다.'

저번에 에르티안 왕국에서 그랬듯이 자신의 머리는 커다란 보석 속에 숨겨져 있었다.

무엇보다 물이 오염을 정화하는 일을 넘어 그 일대까지 놀라운 작용을 하게 되니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고.

적어도 고위 귀족들이 손에 넣어도 소문을 잠재울까 말까 한 물건임이 틀림없으니 우선 왕실부터 뒤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밑이라면 지하인가?'

하지만 코스모피안 왕실에는 에르티안 왕국처럼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대장, 대장! 방금 이 몸한테 찌르르한 느낌이 왔다? 교감 때랑 완전 비슷해!]

아라가 자동으로 하벨에게 향하려는 고개를 앞발로 잡고는 말했다.

'대장이 돌아보면 안 된다고 말했어!'

아라는 앞발에 힘을 꽉 주며 마차에서 하벨이 꺼낸 말을 떠올렸다.

―아라야. 나를 대장이라고 불러도 돼. 설령 코스모피안 왕국 내부에 정령사가 있다고 해도 괜찮아. 다만, 나를 보지 않으면 돼. 형님을 꼭 안아주거나, 루룸이나 다른 정령들하고 대화하는 척하면 되는 거야. 내가 대장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어?

몽글몽글.

하지만 하벨의 손가락을 타고 물이 만들어지자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아라와 시선이 마주했고, 하벨은 싱긋 웃었다.

꿀꺽.

아라가 침을 살짝 흘렸다.

'정령왕의 힘을 조금만 받았을 뿐인데, 아라가 내 육체가 어디에 있는지 느낄 수 있다니.'

하벨 역시 아라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기특함을 속으로 삼켰다.

이참에 물을 보기 좋게 새 형태로 만들어 한 바퀴 움직였다.

물로 된 투명한 새가 나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오고 어린 시절 동심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초롱초롱한 시선이 이어지고 이어지다 하벨은 손끝으로 향했다.

물로 된 새가 하벨의 손에 앉아 있었다.

"이상입니다."

여기서 더 보여줘봤자 뭘 하겠는가. 이미 확인이 끝났을 텐데.

물로 된 새가 사라지자 귀족들은 아쉽다는 표정을 짓다 곧 헛기침했다. 흥이 깨진 탓을 자신에 쏟아붓듯 싸늘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보여줘도 난리라니. 웃기지도 않네.'

하벨은 코웃음을 치고 싶었다.

대체 얼마나 자신을 무시하고 싶은 건지.

"하하하!"

왕이 갑자기 웃었다.

"정말로 물 마법사라니. 이건 세상의 복이 아닌가?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처음 자신을 보던 아니꼬운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금세 행복함을 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걱정하는 전하의 진심을 하늘이 알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넙죽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푸렐 텔르나, 바로 그자였다.

"하벨 티에라여."

왕은 하벨을 불렀다. 어떤 존중도 없는 말에 귀족들의 코웃음이 들려왔다.

"그대는 저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은 방금 말을 꺼냈던 푸렐 텔르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외람되오나, 이 힘은 제가 손에 넣은 겁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저 혼자 얻은 거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벨은 발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덤으로 푸렐 텔르나의 말을 부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아부를 떨러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저는 제가 따르고, 모시는 바안 전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감히 전하께! 무례한 자가 아닌가!"

"물 마법사라는 이름이 너의 목숨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는가!"

하벨을 향한 귀족들의 질타가 단번에 이어졌다.

한때 최강자였던 오만함과 약소국을 향한 차가운 시선 속에 여러 가지 불만이 섞여 있었다.

왕이 손을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아버지."

레바놈이 입을 열었다.

"내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지 못했는가? 아니면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레바놈을 향한 왕의 시선이 제법 날카로웠다. 아들을 보는 시선이라기에 조금 애매해 보였다.

'조사 결과대로인가?'

어젯밤에 페트리오가 급히 자신을 찾았다.

―…도련님. 이렇게 늦은 밤 찾아오게 되어 무척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적어도 코스모피안 왕국의 왕인 드란트와 레바놈의 관계를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드란트를 설득해 레바놈을 치라는 말을 해야 했기에 드란트와 레바놈의 관계가 왜 흥미롭지 않을까.

―표면상은 물론, 실제로도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예상되는 원인을 꼽자면 레바놈이 가진 야욕이 너무도 크다는 점과 레바놈의 외척에서 마법사와 손을 잡아 세력을 다지려고 했다는 점이 컸습니다.

왕이 그 사건 이전에도 마법사 협회를 싫어했는지는 몰라도 지금 마법사 협회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고로, 레바놈이 마법사 협회와 연결되어 있다면 나는 더 좋은 거란 말이지.'

하벨은 얌전히 기다렸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넬시아와 라르웬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자신도 짜증이 나는데 그들은 오죽하겠는가.

드란트는 다시 자신을 바라보았다. 흥미로움이 가득했다.

"무얼 전하러 왔는가? 쉬이 할 수 없다면 내 자리를 물려주지."

"아닙니다, 전하."

하벨의 귓가에 마치 드란트가 '계획을 실행하라'라는 말처럼 들렸기에 거리낌 없이 가짜 사건을 전달했다.

"폭파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전까지 사절단을 내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하나, 그들의 안전은 보장하겠다 약조하겠습니다."

"그 말이 너희 왕의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자부할 수 있습니다."

"폭파 사건은 우리가 한 게 아니란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그 도장은 날조되었으며 사절단이 도착한 시각 역시 다르다는 걸 증명하는 내용이 있거늘."

"하지만 폭파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쥔 임명장에 찍힌 도장 역시 진짜라는 게 증명이 되었지요. 무엇보다 사절단이 출발한 시간과 도착한 시간이 삼일이나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하벨은 조곤조곤 드란트의 말을 반박했다.

보는 사람마저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하여 기어코 내 백성들을 내어줄 생각이 없는가?"

"그렇기에 제가 오지 않았습니까?"

자신은 폭파 사건에 휘말려 상처를 입은 피해자였다.

이것만으로 에르티안 왕국의 굳건한 의지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었다.

콰앙!

드란트는 화가 난 듯이 의자를 내리쳤다.

"아버지!"

그때 레바놈이 입을 열었다.

"당장 저 우매한 것들을 체포해야 합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리 망발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백성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바놈이 소리치자 귀족들이 옹호했다.

"맞습니다, 전하! 이 치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예의를 갖춰 맞아주었건만, 감히 뒤통수를 치다니."

"예의요?"

다른 건 몰라도 하벨은 그 말만큼은 그냥 흘리지 못하고 웃음을 살짝 터트렸다.

"지금 웃었소?"

귀족이 이를 갈며 물었다.

"예. 웃었습니다. 설마 여기까지 오는 동안 침을 질질 흘리며 따라오는 귀족들이나 시종들을 말리지 않는 기사들의 행동이 이곳 예의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드란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저희는 손님이자 사절단의 자격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정말 쓰고 싶지 않았지만, 하벨은 발언권을 더 강하게 하고자 어쩔 수 없이 바안이 넘긴 반지를 작동시켰다.

반지에 빛이 나자 귀족 뒤에 서 있던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와 하벨을 감싸며 검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하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반지에서 에르티안 왕국을 나타내는 문양과 그것이 나타났으니.

☆대리인 하벨 티에라★

기사의 복부라도 후릴 기세였던 라르웬이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푸흡.

넬시아가 필사의 의지를 다지며 라르웬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지금은 웃음을 참아야 했다.

"…카샬도 참고 있잖아, 라르웬."

넬시아가 라르웬을 자극하자 그는 웃음기를 단번에 지우는가 싶더니, 하벨의 반지 위에 떠오른 저 유치찬란한 빛에 입가가 간질거렸다.

'아, 미치겠다. 진짜 저걸 내보이다니. 다른 의미로 대단한데, 막내야?'

동시에 존경심이 라르웬의 얼굴에 어렸다.

방금까지 하벨을 얕보던 귀족들이 저 반지에 나온 문장과 글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유치찬란한 빛에, 글자에, 웃음으로 가득 차도 모자랄 판에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그 검, 치우시죠. 그게 아니면 제가 전쟁이라도 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야겠습니까?"

하벨의 도발적인 말에도 귀족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리인 하벨 티에라.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벨 티에라가 곧 에르티안 왕국의 왕인 바안 에르티안의 뜻이란 말이었다.

지금 하벨 티에라에게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단순히 개인의 문제 끝나는 게 아닌 외교를 넘어 정말로 전쟁까지 갈 수 있는 문제였다.

책임져야 할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웃음이 나올 수 있을까. 목에 칼날이 있는 느낌에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검을 치우거라."

드란트는 기사들을 물리고.

"오늘 온 손님을 제외한 모두 물러나거라."

왕자와 공주는 물론 귀족들까지 물렸다.

오늘 온 손님.

방금 왕의 발언으로 하벨은 정식으로 손님이 되었다.

하벨은 일제히 물러가는 귀족들을 보며 미소를 방긋 지었다.

'이거 효과가 너무 좋은데?'

외교적으로 봐도 자신을 물어뜯을 궁리만 해온 고위 귀족들이 여기에 있는 건 위험했다.

내뱉은 말은 결코 주워 담을 수 없을 테니 하나하나가 다 타격으로 올 게 분명했다.

폭파 사건으로 모든 나라에 눈총을 받는 코스모피안 왕국이라면 에르티안 왕국과 더더욱 이런 분쟁을 피하고 싶겠지.

드란트는 모두가 물러난 뒤에 무표정이던 얼굴에 미소가 드리우더니 크게 웃었다.

얼마나 웃었을까, 드란트는 이내 민망해하며 말했다.

"아, 미안하네. 내 귀족들의 꼬라지를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아 그만 웃었네."

드란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넬시아부터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넬시아 공. 라르웬 공, 하벨 공."

조금 전과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드란트는 호칭까지 꼭꼭 붙였다.

"이제 진짜 그대들의 왕이 전해준 말을 알려주게나."

하벨은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품에서 바안이 챙긴 편지를 드란트에게 넘기며 입을 열었다.

"두 나라의 동맹은 굳건할 것입니다."

편지를 열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자신이 내뱉은 말과 비슷한 내용이 쓰여 있겠지.

"게리온은 잘 지내던가? 그놈, 아, 게리온이 조금 깐깐해서 말이지."

드란트는 바로 편지를 열어보며 물었다.

"오기 전보다 살집이 붙으셨습니다."

드란트는 하벨의 말에 크게 웃었다.

"오늘 정말 인상 깊었네. 그리고 놀랐지. 설마하니 그대가 왕의 대리인일 줄이야."

다시 생각해도 놀라웠다.

하벨이 꺼낸 반지에서 튀어나온 에르티안 왕국의 빛줄기와 함께 등장한 이름을.

풉.

드란트는 잠깐 웃음을 막지 못했다.

젊었기에 할 수 있는 철부지 같은 장난이 아닌가.

저 터무니 없이 유치한 모습을 보고도 자신 이외에 감히 누가 웃을 수 있을까.

아무리 약소국이라도 왕이었고, 어리더라도 왕이었으니.

그걸 이 자리를 통해 보여주다니. 뭔가 한 방 맞은 기분에 드란트는 바안을 다시 보았다.

결코, 어리다고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하여 드란트는 하벨이 마음에 들어 원래는 하지 않았을 말까지 꺼냈다.

"거지 같은 고위 귀족들이 왕국 내부가 어떻게 되든 말든 제 안위와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으니 이걸 어떻게 파훼해야 하나 무척 고민이었다네."

"원래는 쓸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대화할 마음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편지를 다 읽은 드란트는 품에 편지를 쓱 넣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지금 폭파 사건 이후로 왕국이 휘청거리는 건 사실이라네. 거래도 끊어진 곳이 많고, 주변국의 시선 역시 여전히 매서우니."

"그런 상황에서 레놀드 왕국에서 폭파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허를 찌르는 하벨의 말에 드란트는 잠깐 미간을 꿈틀거렸다.

탐이 났다.

직접 보니 더 탐이 났다.

"하벨 공. 코스모피안 왕국으로 오지 않겠는가? 내 무엇이든 주겠다 약속하겠네."

"전하. 외람되오나, 회담과 관련 없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넬시아가 강력히 항의하자 드란트는 넌지시 제안했다.

"그대도 코스모피안 왕국으로 올 마음이 있는가?"

"외람되오나, 현재 티에라 가문의 가주는 제 아버지인 룬델 티에라입니다."

요컨대 가주가 허락하지 않아 대답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적의와 별개로 넬시아는 미꾸라지처럼 잘만 빠져나갔다.

"아깝도다. 참으로 아깝도다."

드란트는 진심으로 티에라 가문이 탐이 났기에 슬쩍 라르웬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전하. 저는 클로저라서 정치적인 일에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하면 왜 이곳에 있는 건가?"

"동생을 걱정하는 형으로서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하여 저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긴 그대의 눈빛이 제일 매서웠네. 멱살을 잡히는 줄 알았다네."

드란트는 가볍게 웃다가 표정을 달리했다.

잡담은 이걸로 충분하다 느꼈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 편지가 전부가 아니라 생각하네."

"예. 물론입니다."

"그럼 무슨 일로 이렇게 직접 찾아왔는가?"

하벨은 이 순간을, 이 물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 다리를 찾았습니다, 전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벨이 꺼낸 말에 드란트는 의구심으로 물들어갔다.

"에르티안 왕국의 선왕을 시해한 범인이자, 이번 레놀드 왕국에 폭파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똘마니 말입니다."

똘마니를 언급할 때 하벨은 피식 웃었다.

그게 설마하니 제 아들일 줄은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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