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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24화 (224/415)

224화. 엣헴(2)

* * *

* * *

하벨은 치솟는 짜증과 함께 눈을 떴다.

―알아내면 좋은 거 드릴게요. 아, 젤리나 스프를 좋아하시지만 그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차, 누가 사준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을 쫓아가시면 안 됩니다. 저번에 좋다고 따라가는 거 다 봤어요.

'뭐? 알아내면 좋은 걸 줘? 모르는 사람을 쫓아가면 안 된다고? 좋은 게 뭔지 모르겠지만, 젤리 100개보다 더 많아야 할 거다.'

하벨은 이를 갈다 말고 가슴 위에 얹어진 손길에 깜짝 놀라 눈동자를 굴렸다.

헤레스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금세 요동쳤지만, 애써 웃으며 말을 꺼냈다.

"…일어, 나셨어요? 몸은……."

"다들 몸은 괜찮아? 그 뒤에 다친 곳은 없어? 시렌은 붙잡았고? 좀도둑이랑 크라마는 어때?"

딱!

헤레스가 하벨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하벨은 이 낯선 행동에 어안이벙벙한 표정으로 헤레스를 바라보았다.

헤레스가 자신을 때릴 줄이야.

"헤레…스?"

"저랑. …저랑 모두는 걱정하지 마세요! 멀쩡해요! 아무렇지도 않다고요! 기껏해야 멍이나 들었겠죠!"

헤레스는 단번에 언성을 높였고, 하벨은 여전히 얼어붙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도련님은 마법사의 탑, 그것도 최상층에서 떨어졌어요! 자, 누가 더 심각하죠?"

"하지만……."

"예, 예. 도련님이 가시진 힘을 사용해서 바다에 빠지지 않으셨죠! 정말 다행이에요! 진짜 다행인데, 그렇다고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는… 진짜로."

헤레스는 갑자기 울먹였다.

그녀의 눈물에 하벨은 당황했다.

지금 시간이 언제인지 몰라도 옆에 색색거리는 아라의 숨소리에 새벽이라는 걸 어렴풋이 유추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우, 울지마, 헤레스. 내가 잘못했어."

"진짜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정말로 도련님께서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너무 무서웠단 말이에요."

헤레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냥 제발."

하늘을 향해 솟은 마법사의 탑은 마치 자신의 죄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헤일리스와 맞닥뜨렸을 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안심했다.

이번에는 달랐으니까.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였고, 자신의 죄를 기꺼이 용서해준 하벨이 그곳 중심에 서 있지 않았던가.

계획이 하나씩 짜 맞춰가면서 진짜 마법사 협회장인 시렌까지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마법사 협회에 해방됐다며 기뻐하고 있었는데.

모든 행복을 씹어 삼켜버리듯 하벨이 최상층에서 떨어져 버렸다.

"제발."

밑은 바다였다.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제발……."

마나가 결계로 잠깐 지워졌기에 힘도, 손도 닿을 수가 없었다.

"그냥 아프다고, 괜찮지 않다고, 무서웠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세요……!"

왜 아프지 않을까.

왜 무섭지 않을까.

이건 누구라도 겪는 감정이었다. 하벨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저는 이렇게 비참하지……."

물이 얼굴에 튀자 헤레스는 깜짝 놀랐다.

"정신 차려, 헤레스."

"저는 제정신이에요."

"아니. 지금 좀 흥분했어. 심호흡해봐. 어서."

"…하."

헤레스는 마지 못해 하벨의 지시대로 심호흡하며 천천히 요동치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헤레스."

"…예, 도련님."

헤레스는 그제야 멋쩍은 듯이 대답했다.

하벨이 깨어나지 않아 느꼈던 그 답답함이 한 번에 몰려온 탓이었다.

"미안해."

하벨의 사과에 헤레스는 손바닥으로 안경 밑을 파고들며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다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울지 마. 응?"

하벨은 자면서도 귀를 파닥파닥하는 아라를 토닥이며 헤레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직 끝이 아님에도 끝이라 생각했던 어리석음이 이렇게 한 명씩 괴로움의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왜 모를까.

남은 자의 기분이 어떤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무서웠어요, 도련님?"

헤레스는 여전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물었다.

"응. 무서웠어."

하벨은 순순히 대답했다.

"아팠어요?"

"아프더라."

헤레스는 그제야 손을 내리며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도련님."

무서운 걸 무섭다, 아픈 걸 아프다고 대답해주는 사실에 헤레스는 너무 고마웠다.

생각해보면 이전 도련님에서 지금 도련님이 된 후로 우는 것도, 아프다고 표현하는 것도, 비가 올 때마다 무섭다고 자신에게 알리던 그 모습도 모두 볼 수가 없었다.

그걸 왜 몰랐는지.

지금까지 하벨은 다 참아온 걸까.

아니면 하벨은 참고 참는 삶에 얼마나 익숙해져 버린 건지.

안쓰러웠다. 정말 안쓰러웠다.

"얼마나 지났어?"

"삼일 정도 지났어요."

헤레스는 하벨의 물음에 겨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이 멋대로 추측해봤자 하벨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그건 진실이 아니었으니까.

"여긴 마법사 협회고?"

"네. 도련님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하벨이 슬쩍 눈을 돌리자 링거가 세 개가 달려 있었다.

"하나는 진통제에요."

헤레스가 꺼낸 말에 하벨은 눈을 깜박거렸다.

"원래 저기에 하나 더 달려 있었는데요, 오늘로 넘어가는 정각에 뗐어요."

"뭐가 달렸는데?"

"피요."

"……."

하벨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수혈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가슴에 와닿았다.

'장난… 아니었겠다.'

하벨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천장을 바라보다 주제를 돌렸다.

"그 뒤에 어떻게 됐어?"

"그 뒤는 말이에요."

헤레스는 그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난리였어요. 정말 엉망진창이었죠."

―아. 아아아악!

"레디나가 비명을 질렀어요."

누가 들어도 절망에 찬 목소리였다.

"레디나가 그렇게 절망하는 건 처음 봤어요. 원래 감정 폭이 그렇게 크지 않잖아요?"

"그렇지."

"카샬 씨는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다짜고짜 신발부터 벗는 그 모습에 자신은 너무도 놀라 카샬을 붙잡았다.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카샬 씨는 더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안 된다고. 뛰어내리면 안 된다고 붙잡았어요."

헤레스가 실소에 가까운 웃음을 내보였다.

다시 생각해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으니.

"잘했어. 아무리 카샬이 물의 내성이 좋다고 해도 저긴 안 돼. 음, 그리고 용용이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말했고?"

하벨이 살짝 위축된 상태로 물었다. 예상보다 좀 심각하지 않았나 싶었다.

"네. 칼리우스 님이… 잠깐 이성을 잃어버렸어요."

"난리가 났어?"

"아뇨. 도련님께서 걱정하실 만큼 일은 아니었어요. 처음만 뺀다면요."

―감히. 감히! 감히……!

폭력을 싫어하던 칼리우스가 분노를 곱씹으며 시렌을 단번에 공격했다.

이성을 잃은 그 모습에 카샬이 기겁하며 칼리우스에게 뛰어갔다.

―…아니야. 아니야. 하벨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도련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카샬이 칼리우스를 덮치기 전에 그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내재된 분노와 싸웠다.

"…그리고 날개를 펼치셨어요."

―내가 갈게. 아니, 내가 갈 거야.

칼리우스가 내뿜는 그 기세는 이제껏 봐왔던 모습과 달랐다.

―울지마, 레디나. 모두 울지마. 내가 도련님을 구해올게.

"레디나를 토닥인 후에 떨어지셨죠."

헤레스는 그때의 풍경을 머릿속에서 꺼내보았다.

칼리우스가 꺼낸 검은 날개는 햇살을 받자마자 잔잔한 호수처럼 반짝거려 무척 아름다웠다.

"그 뒤에 아래층에서 제대로 된 소란이 일어났어요. 크라마랑 페트리오 씨가 공격을 개시했거든요."

"그 좋은 장면을 못 봐서 아쉽네."

"보지 않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헤레스는 옷자락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보지 않는 게 좋았다고? 혹시 헤일리스는 살아 있어? 시렌은?"

분명 마지막에 시렌이 오미너스를 제 속에서 토해내지 않았던가.

"시렌은 놀랍게도 살아 있어요. 물의 저주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요. 어쨌든, 시렌은 칼리우스 님이 맡고 있어요. 그때 결계 덕에, 아니, 결계 때문에 마나가 끊어져 시렌을 손쉽게 속박했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마법은 분명히 다 부서지지 않았어?"

"아뇨. 아직 마법사 협회에 새겨진 마법 중 일부는 시렌의 손아귀에 있어요."

"그럼 좀도둑이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거야?"

"네. 더 자세한 건 말하지 않았어요. 페트리오 씨가 도련님에게 따로 말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음. 시렌은 진짜 살아 있는 거 맞지? 좀도둑이 생각 외로 무섭거든. 한번 터져버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나요?"

헤레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벨이 대답하려다 말고 시선을 돌렸다.

헤레스의 시선 역시 뒤를 향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도련님."

카샬이 수건과 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왜 벌써 오세요? 좀 쉬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헤레스의 물음에 카샬은 그저 평상시처럼 대답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레디나도요?"

"레디나는 칼리우스한테 갔습니다. 지금 칼리우스의 신경이 엄청 날이 서 있어서 불안해 보인다고 말했거든요."

하벨이 입을 열려고 하자 카샬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진짜 이번에만큼은 안 되는 겁니다."

"용용이를 보러 가는 것도 안 되는 거야?"

하벨이 조심스럽게 묻자 카샬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오죽했으면 이 끔찍한 마법사 협회에 도련님을 두겠습니까?"

"아직 진압 중인 거였어?"

"아뇨. 상황은 끝났습니다. 도망간 마법사들을 쫓는 자질구레한 게 남아 있을 뿐이죠."

카샬은 말을 잠깐 끝낸 뒤에 숨을 깊게 내쉬었다.

또 정신을 차리자마자 움직일 생각부터 하다니.

"…하. 그래서 좀도둑이 뭘 했냐고 물었습니까? 그놈 성질에 뭘 했을 것 같습니까?"

카샬이 눈썹을 안쪽으로 올리며 그답지 않게 감정을 세게 섞었다.

하벨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미친놈이 갑자기 모습을 감추더니 저항하던 마법사들의 가족을 데려왔습니다."

―봤지? 내가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니라는 걸? 항복해. 잘못했다고 빌어. 무릎 꿇고 개처럼 짖어보라고.

페트리오의 눈빛은 달랐다.

카샬 자신이 봐도 아주 섬뜩할 만큼 돌아버렸다.

―자, 이제 누가 하벨 티에라를 건드린다는 개소리를 지껄일 거지?

웃음이 섞인 페트리오의 모습은 충견이 따로 없었다.

"전투 중 도망간 마법사들도 있던 차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카샬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도련님께서 생각하시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시체 처리… 말이야?"

―시체 처리와 증거나 정보 조작을 맡았습니다.

페트리오의 주특기가 시체 처리라는 건 자신도 알고, 특히 레디나가 좋아하는 부분이 아닌가.

"예. 그 미친놈이 그럼에도 반항하는 마법사한테 가족을 죽이고 시체 처리 장면까지 고스란히 보여줬습니다."

"왜……."

"왜 안 말렸냐고요?"

카샬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왜 그래야 합니까? 꼴 좋잖습니까. 저들도 같은 사람이니 봐줘야 한다는 말씀을 하려면 그만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비라는 것도 진짜 사람한테 하는 거니까요. 저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도련님. 저들이 세뇌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만, 당장 제 목숨을 아끼기보다 마법사 협회를 배신한 도련님을 죽이려고 혈안이 됐던 놈들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헤레스는 자신의 옷자락을 꽉 쥐며 말을 꺼내다 시선을 잠깐 아래로 흘렸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한테도 자비는 아깝습니다."

"그건 됐어, 헤레스. 널 심판하는 건 애초에 내가 아니야. 그럼, 좀도둑이 시렌한테는 뭘 했는데?"

하벨이 헤레스에게 물을 튀기려다 아라가 앞발을 제법 세게 흔들자 아라를 토닥거렸다.

페트리오가 그렇게 나왔다면 시렌에게도 뭔가를 했을 가능성이 컸다.

"실험에 희생된 이들을 찾았다는 크라마의 말에 곧바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말했대요. 저는 그곳에 가지 않아서 뭘 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요."

헤레스가 말을 꺼내며 카샬을 바라보았다.

잠깐 찝찝한 얼굴을 짓던 카샬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복수할 거냐, 아니면 도망간 마법사들에게 쫓겨 이용당하거나 죽을 거냐, 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도망간다는 이들은 크라마한테 맡긴 뒤, 복수를 원하는 이들을 따로 데려가서 시렌 앞에 죽을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뭐라고?"

"도련님이 깨어나지 않아 당장 시렌을 죽일 수 없으니 시렌이 공들여 만든 사람들이 자결하는 모습을 내보여 절망을 주려고 한 모양입니다. 제대로 미치지 않았습니까?"

카샬은 혀를 찼고, 하벨은 잠깐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원해서 한 일은 맞지?"

"그건 맞습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봤으니까요."

"그래. 그러면 됐어."

하벨은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며 계속해서 물었다.

"어쨌든 이름을 모르면 용용이가 시렌을 지배할 수 없는 건 변하지 않을 거고. 그럼 헤일리스는?"

"…진정제를 주입했어요. 계속, 자해를 시도했거든요."

하벨의 물음에 헤레스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아무래도 세뇌가 풀린 모양이네."

"네. 너무도 불안정한 상태에요."

"그럼 너는?"

"저요?"

헤레스가 안경테를 올리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너는?"

하벨의 시선이 카샬에게 향했다.

"역시 그때, 뛰어내렸어야 했습니다."

카샬은 분했다.

겨우 한 끗 차이였다.

아코가 바람으로 속도를 높여줬음에도 하벨을 붙잡지 못했다.

"바로 움직이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거 말고."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도련님. 진짜 농담이 아니라 딱 한 대만 때려도 됩니까?"

"그래."

"……."

카샬은 하벨이 순순히 대답하자 흠칫거렸다.

역시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많이… 아프십니까?"

"으음. 조금?"

하벨은 그제야 조금씩 밀려오는 통증에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쩐지……."

카샬은 안도했고, 덩달아 헤레스까지 마음을 놓았다.

"뭐야, 왜 그래?"

하벨이 미간을 찌푸리다 말고 자신의 손가락을 꼭 쥐는 감각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라가 깨어나 있었다.

벌써 울상을 짓고 있어 혹여나 울까, 하벨은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깼어?"

[으응. 이 몸은 오늘은 울지 않을 거니까, 대장은 억지로 안 웃어도 돼. 이 몸은 이전에 많이 울었어.]

아라는 하벨의 손가락을 꼭 쥐며 입을 가운데로 모았다.

[이 몸은… 분하지만, 용용이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라의 눈가가 부르르 떨려왔다.

―아라야. 나, 지금 멍청하지만, 더는 멍청해지지 않을래. 꼭 그럴래.

[이 몸은 그때 최선을 다했어!]

아라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다.

할 수 없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하벨이 보여준, 바다가 갈라진 그 아득한 모습에 아라는 또 생각했다.

'대장처럼 되면 좋겠다. 대장처럼.'

아라는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잘 잤어, 대장?]

꼬리와 귀가 팍 죽어버렸지만, 하벨은 아라가 한층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어느새 참는 법을 배우지 않았는가.

뿌듯하면서도 안쓰러워 하벨은 활짝 웃었다.

"그래. 잘 잤어, 아라야. 너도 잘 잤어?"

[아니. 이 몸은 아직도 졸리지만, 대장을 보니까 너무 좋아.]

아라는 그제야 하벨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하벨이 말도 하고, 웃고 있었다.

이것만으로 아라는 가슴에 맴돌던 아픔이 싹 가셔버렸다.

[대장!]

아라는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꼬리도 힘껏 흔들며 하벨를 꼭 안았다.

[이 몸은 대장이 무사해서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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