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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223화 (223/415)

223화. 엣헴

* * *

'류아가…….'

하벨은 모든 게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여기에 정말로 있었다니.'

직접 봤지만, 하벨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류아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살았다면.'

저들과 정말 같은 편이었는지.

'살았다면 대체 왜 내게 오지 않았는가.'

하벨은 자신을 휩쓰는 감정을 이겨내기가 너무 벅찼다.

오만 감정이 밀려오고 또 밀려와 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내 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정말 몰랐…….'

하벨은 류아 뒤에 보이는 이들을 바라보며 조금 전 놈에게 열쇠를 뺏겼을 때 느꼈던 그 고통보다 더한 통증이 가슴속에서 휘몰아쳤다.

'무날도.'

무날이 걸어왔다.

'태련도.'

태련이 울먹이며 걸어왔다.

'대체 왜…….'

깜박거리며 흐려졌다가 보이길 반복하던 시야에도 하벨은 저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니,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너희가 왜.'

하벨은 이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잠깐 어둠으로 감쌌던 자신의 시야가 다시 돌아오자 갑자기 주변이 조금씩 흔들렸다.

류아가 자신을 안았는지 그가 이전보다 더 가까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있는 건 류아가 아니라 포악한 짐승처럼 날뛰는 바다였다.

점점 탁한 검은 빛으로 물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안 돼."

자신은 바다를 향해 말했다.

바로 코앞에 있는 류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슬픔이 너무도 커 이를 어떻게 진정시킬지 모르는 바다가 걱정스러웠다.

바다가 날뛰면 이곳에 사는 어인들도, 지상에 사는 인간들도 모두 무사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바다만으로 잠재워야 한다는 생각이라니.'

하벨은 어처구니없었다.

왜 이렇게 미련했던가.

"착… 하지."

자신이 이어 꺼낸 말에 류아는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류아는 말문을 열다 말고 곧 울음을 터트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왜 이렇게… 미련하십니까?"

그가 흘리는 눈물은 바다에 먹혀갔다.

"왜 매번 이러시는 겁니까?"

류아의 말은 눈물에 잡아먹혔다.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왔다.

"…미안합니다."

류아는 사과했다.

무얼 사과하는지도 모르는 채 류아는 자신을 껴안고 오열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 니다, 용왕님."

류아가 흘린 눈물이 자신의 뺨을 스친다고 생각할 무렵, 누군가 뒷덜미를 잡고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 * *

"…바다가 갑자기 술렁거리네?"

그는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창문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눈이 부시게 들어오는 이 아름다운 날 더러운 바다가 기분 나쁘게 술렁거리다니.

'진짜 재수 없게.'

그는 창문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바다가 술렁거릴 일이 왜 있겠는가.

아직도 옛 주인을 그리워하며 지금까지 쭉 울기만 한 머저리 같은 존재였다.

혹시.

문득 드는 생각에 그는 하나씩 확인했다.

'내 힘은 발동되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되어 한 번씩 망가지는 힘일지라도 바다가 술렁거릴 정도면 무슨 일이 있다는 게 분명한데.

그는 웃었다.

'뭐가 이상하든 무슨 상관이람. 바다의 술렁거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니.'

툭.

어여쁜 미소를 짓을 품은 채로 손가락으로 식물을 건드리자 단숨에 바스러졌다.

'놈은 죽었고.'

그날, 바다가 폭주했다.

아니, 바다와 물이 사라진 세계가 완전히 사라질 뻔했다.

'그리고 그 힘을 내게 됐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 세계를 구했으니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낙인까지 새긴 마당에 겨우 바다가 술렁거린다고 이렇게 반응하다니.

'나도 참, 예민해지다니.'

하나씩 맞추고 있던 조각들은 이제 이어질 일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씩 죽여버린 식물을 바라보다 화분을 떨어트렸다.

쨍그랑!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그제야 그는 치밀어오르는 기쁨을 드러냈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아주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그는 햇살 앞에 서서 보드라운 감각을 느꼈다.

'네가 멍청해서 정말 고맙다.'

몇천, 몇만 번을 생각해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환희에 찬 미소를 그리며 그는 입을 열었다.

"용왕."

* * *

바다였던 그곳은 갑자기 까만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하벨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그곳에 하벨 티에라가 쭈뼛쭈뼛 선 채로 서 있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당신과 이렇게 말을 나눌 수가 없었어요."

미안함이 얼굴에 가득 쓰여 있기에 하벨은 조금 전에 느꼈던 충격을 꾹 누른 채 하벨 티에라를 보게 된다면 하고 싶었던 말부터 꺼냈다.

"고맙다."

"당신이 가진 영혼의 격이 너무…… 네?"

하벨 티에라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 괜히 만지다 말고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들었다.

"지, 지금 뭐라고 한 겁니까?"

"고맙다고. 그날 네가 날 도와주지 않았던가."

자신의 속에서 문자가 올라왔던 그 날, 하벨 티에라가 랜턴으로 빛을 내뿜지 않았다면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물론 이게 네 몸이기는 하나……."

"아니… 에요."

하벨 티에라는 머뭇거리다 하벨에게 말을 꺼냈다.

"아니라니?"

"당신이……."

"용왕이라 불러. 적어도 너한테는 그렇게 불려도 되니까."

"용왕님이 절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고 있어요."

"거기서 멈춰."

하벨은 하벨 티에라가 뒤이어 꺼낼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예측해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요. 들으셔야 해요. 용왕님은 이 말을 꼭 들으셔야 합니다."

"나는 방금 본 기억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미칠 것만 같다. 왜 여기서 나를 흔들려고 하는 건가?"

"제가 가진 시간이 이제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말해야 해요."

"시간이 없다니?"

"제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요."

"그래."

"저번에는 이상한 놈이 끼어드는 바람에 너무 갑작스러워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하벨 티에라는 잠깐 입술을 깨물다 회귀라는 사실에 밀려드는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바로 뒷말을 이었다.

"용왕님께서는 회귀의 대가가 정말 없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듣고 싶지 않다."

"이미 다 아시잖아요. 어렴풋이 예상하고 계시잖아요?"

"다를 수 있다. 아직은… 달라질 수 있다."

하벨이 고개를 살짝 내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뇨. 이렇게 질질 끄는 건 용왕님한테 너무 잔인한 일입니다."

하벨 티에라는 하벨을 처음으로 똑바로 바라보았다.

만날 때마다 하벨에게 내보였던 미안함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저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용왕님."

"그 입 다물어."

"아무리 용왕님께서 노력하셔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닥치라고!"

하벨이 단숨에 하벨 티에라의 멱살을 쥐었다.

"내 말 안 들려? 그 입 다물……."

"그게… 제가 회귀한 대가입니다!"

"…뭐?"

하벨의 눈이 커졌다.

"누군가 시간을 건드린다면 그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힘이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이게, 이 방법이 시간을 속이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하벨은 하벨 티에라가 꺼내는 저 말에 잠깐 주춤거렸다.

회귀에 대가가 있다는 것도, 시간을 건드리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가진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저 말이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줬던 말과 너무도 비슷했다.

'…누구더라. 내가 누구한테 말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설령 몸이 뒤바뀐다고 해도 시간은 이를 알아채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할 뿐입니다. 세상이 멸망하는 그 당연한 결말로 가는 것뿐이라고요! 아시겠습니까……?"

하벨 티에라의 얼굴이 가득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저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이대로 사라지는 걸 기다릴 뿐입니다."

하벨 티에라가 답답함을 호소해보나 하벨은 여전히 멱살을 잡은 채로 말을 꺼냈다.

"네 가족은. 네 가족은 어쩌고?"

가족이라는 말이 나오자 하벨 티에라는 애타는 심정으로 토로했다.

"…지키고 싶어요. 너무, 정말 간절히 지키고 싶어요."

"그럼 네가 지켰어야지!"

"제가 할 수 없다고 말해도 믿지 못하겠지만, 다 거짓말 같겠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유를 말하라고! 왜 네가 할 수 없는지. 어째서 나여야만 했는지."

"덜떨어진 저는 안 되고, 용왕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무엇보다 저는 미래에서 왔어요. 제 말은 다른 이들과 다릅니다. 시간이 그 흐름을 알아챌 겁니다. 용왕님이시라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죠."

하벨은 하벨 티에라의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저 말이 의미하는 걸 알고 있었다. 시간은 모든 걸 듣고 있기에 엇나간 흐름을 단번에 아는 힘을 가졌다.

설령 그 말이 우스운 소리로 '내일 세상이 멸망하면 좋겠다'라고 꺼내는 농담일지라도 시간을 역행한 자가 꺼내는 말은 그 의미가 달랐다.

하벨 티에라가 입조심을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용왕님."

하벨 티에라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모든 건 제 잘못입니다. 제가 저지른 일에 용왕님은 휩쓸렸을 뿐이니 이제 더는 괴로워하지 마세요."

"괴로워… 하지 말라고? 내가 네가 가진 걸, 네 가족이 소중히 생각하는 전부를 빼앗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전부 제 잘못입니다."

대체 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하벨 티에라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그냥 솔직히 털어놓았다.

"아버지께서 용왕님을 받아들이셨잖아요?"

하벨 티에라는 자랑스러움을 담아 말했다.

역시 자신의 아버지란 생각을 했다. 용왕을 마음으로 품어주지 않았던가.

"…후회하셨잖아요."

아주 찬찬히 꺼내는 하벨 티에라의 말에 하벨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보았다.

하벨이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자신은 그 과정을 다 보았다.

어떻게 저런 존재가 있을까 싶은 생각과 지켜보고 있던 자신이 괴로움을 느낄 정도로 하벨은 정말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다.

하벨 티에라는 자신의 가슴에 올린 손을 고스란히 들어 하벨의 어깨에 가볍게 올렸다.

하벨을 보는 그 시선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러니 이제 이 몸은 용왕님 겁니다."

이제야 하벨 티에라는 모든 걸 내려놓았기에 홀가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계속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보고… 있었나?"

하벨이 놀라며 물었다.

"예. 다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용왕님을 구할 수 있었어요."

"미안하다……."

하벨은 시선을 살짝 떨구었다.

"용왕님이 제게 미안해하실 이유가 전혀 없어요. 정말로요."

하벨이 멱살을 스르르 놓자 하벨 티에라는 티 없이 맑은 웃음을 보였다.

분명 똑같은 얼굴임에도 하벨이 짓던 그 미소와 달랐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벨이 있기에 자신 역시 모든 걸 시작할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바로 잡을 기회를.

"…그건 알아냈는가? 저번에 이곳에 멋대로 쳐들어온 놈 말이다."

하벨은 하벨 티에라가 꺼내는 감사의 인사가 마냥 부담스러웠다.

그저 제멋대로 행동했을 뿐이니.

"예. 얼마 전에 만났어요."

"만나다니? 내가?"

하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만나셨어요. 장례식장이 열린 왕실에서요. 그때, 제가 느꼈던 그 파장과 비슷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곳에 내 의식을 침범한 놈이 있었다고?"

하벨은 도무지 믿을 수 없었기에 하벨 티에라의 말을 기다렸다.

"네. 정화제 사건 때 정령수가 끓어질 무렵 칼리우스가 보았다던 그 검은 손과 몸을 침식하던 그 힘. 그리고 오늘 용왕님의 권능을 막은 그 힘 말이에요."

"설마……."

"예. 같은 거였어요. 저는 그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하벨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몸을 침식하던 그 문자는 자신의 열쇠를 빼앗은 그놈이 새긴 게 아닌가.

―하여 나는 정당하다. 승리자로서 패배자인 네놈에게 낙인을 새겨주마.

분명 낙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게 아직 어떤 힘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가진 힘과 상충되는 건 분명했다.

"…나 때문인 거야?"

하벨은 숨을 섞으며 물었다.

놈이 자신에게 새긴 그 힘이 어떻게 하벨 티에라한테 옮겨갈 수 있는가.

"그렇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벨 티에라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활짝 웃었다.

"무엇보다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잖아요, 용왕님?"

하벨 티에라는 점점 무너져가는 하벨을 보며 대화의 방향을 뒤틀어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 사실이 아니었다.

"…그래."

하벨은 하벨 티에라가 꺼내려는 말을 받아들였다.

불확실한 사실은 제외하고 사실만을 바라보았다.

지금 봐야 하는 건 과거에 자신이 가진 열쇠를 빼앗았던 그놈이 이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아주 명확한 사실이었다.

"내가 놈을 죽였다고 했다."

과거에 자신은 놈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들었어요."

"대신들과 놈이 무얼 거래했는지 몰라도 죽었던 그놈이 대신들을 속이고 내가 있던 곳까지 기어 올라와 나를 죽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그래. 이번에는 내가 먼저 알았으니까."

"…죽으면 안 됩니다, 용왕님."

"이전에는 놈이 없었다는 건가?"

하벨의 물음에 하벨 티에라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었다.

하벨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전에는 없었고, 지금은 존재한다는 건 결국 자신이 놈의 존재를 깨웠다는 사실과 뭐가 다를까.

"죽지 않겠다."

하벨은 주먹을 내밀었다.

"그렇게 약속했다."

룬델하고.

"그러니 하벨 티에라, 너하고도 약속하겠다."

"역시… 마음이 따스하신 분이네요. 고마워요, 용왕님."

하벨 티에라 역시 주먹을 내밀어 살짝 부딪혔다.

"…랜턴으로 보는 건가?"

하벨이 코웃음을 치며 묻자 하벨 티에라는 키득거렸다.

"맞아요."

"어쩐지 거지같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하벨 티에라. 랜턴 좀 제대로 작동하든지, 헷갈리지 않게 행동해줬으면 한다."

"으음. 아직 서툴러서 그래요. 좀 더 제대로 잘 해내 보일게요."

머쓱한 듯 짓는 하벨 티에라의 미소에 하벨은 뭔가 홀가분한 마음을 느꼈다.

"자, 이제 보내줘. 너도 알다시피 내 마지막이 꼴사나웠잖아? 여기에서 잠깐이지만 눈을 뜨면 며칠씩 흘렀더라고. 아마 난리가 났을 거다."

"두 마디만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얼마든지."

"용왕님.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뭘 말하는 건가?"

"원래 가지신 권능을 끌어오지 못해 초조해하시잖습니까."

"……."

하벨은 정곡을 찌르는 말에 말문을 닫아버렸다.

'다 보고 있었으면 그 꼴사나운 모습도 봤다는 의미인데.'

하벨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향했다.

"초조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다는 언제나 용왕님을 기다릴 테니까요."

"너도 알고 있었어?"

하벨은 희망찬 이야기는 한 귀로 흘렀다.

바다가 자신을 기다린 건 이미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열쇠를 가져간 그놈도, 바다도 전부 한 가지 사실을 가리켰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쩌면……."

하벨은 하벨 티에라의 재촉에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어쩌면 이곳이 내 원래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가설 말이야."

하벨 티에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만, 애틋함밖에 보이질 않았다.

이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용왕님은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존재였어요. 좌절하셔도 금방 일어나셨잖아요."

하벨 티에라가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

"웃기고 있네. 내가 금방 일어났다니. 지나가던 바다가 다 웃을 소리네."

하벨은 비웃음을 그렸다.

좌절해서 금방 일어난다는 말만큼 자신하고 어울리지 않는 게 있을까.

"그럼, 확실한 걸 말씀드릴게요."

"그게 두 가지 중 하나야?"

"아뇨. 그냥 잡담이죠. 원래 두 가지만 말하려고 했는데요, 갑자기 말하고 싶어졌어요."

하벨은 하벨 티에라의 주둥아리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빙의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저 주둥아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곤혹을 치웠는가.

'그럼 그렇지. 저 주둥아리가 어디 가겠어?"

"용왕님 덕분에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어요. 달라지는 게 느껴지시나요?"

"글쎄."

"바안 전하도, 칼리우스도, 마법사 협회도."

하벨 티에라는 활짝 웃었다.

"그건 말해도 되는 거야?"

"이미 과거가 됐잖아요? 시간이 덧대졌으니 이 정도는 됩니다. 아시잖아요."

"생각해보니 그 말은 대체 어디에서 들은 건데?"

하벨은 팔짱을 꼈다.

"너는 인간이잖아, 하벨 티에라?"

"아. 이게 말하고 싶은 거였어요."

곧 손가락 하나를 올린 하벨 티에라는 실실 웃다 입을 열었다.

"용왕님."

하벨을 부르며 그를 살짝 밀었다.

"인간이 어떻게 회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

하벨은 그 마지막 물음을 들으며 한없이 바닥으로 꺼져갔다.

"알아내면 좋은 거 드릴게요. 아, 젤리나 스프를 좋아하시지만 그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차, 누가 사준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을 쫓아가시면 안 됩니다. 저번에 좋다고 따라가는 거 다 봤어요."

하벨 티에라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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