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이제 됐죠?(2)
* * *
칼리우스의 원래 운명을 알기에 이걸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마법사 협회를 무너트린 뒤, 칼리우스 밑에 마법사를 두게 할 수만 있다면야 마지막 용인 칼리우스의 안전도 보장받는 셈이 아닌가.
[용용아?]
아라는 하벨의 시선을 따라가다 고개를 내밀고 있는 칼리우스를 보고는 바로 달려갔다.
[왜 그러고 있어? 어서 들어와.]
"도련님이 다쳤다며……. 내가 그런 거잖아."
칼리우스는 벌써 울먹였다.
아까 카샬이 아래를 보라고 한 뒤로 계속 그렇게 있다가 하벨의 발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을 때, 피 냄새가 났다.
아무리 몰라도 하벨이 피를 흘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바로 자신이었다.
자신이 사용한 마법에 하벨이 다친 게 틀림없었다.
"내가… 도련님을 다치게 해버렸어."
칼리우스의 큰 눈동자에 파도가 몰려왔다.
"용용아. 이건 내 실수니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이리 와봐."
하벨이 손짓했음에도 칼리우스가 미적거리자 아라가 칼리우스의 옷자락을 힘껏 당겼다.
[괜찮아아! 들어도 돼에! 그건 이 몸이 실수한 거야아!]
"그렇게 하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럼 우린 공범자니까 안심하고 들어와요."
레디나까지 손짓하자 마지 못해 안으로 들어온 칼리우스는 하벨 앞에 서서는 우물쭈물했다.
"…많이 아파?"
"아니. 그보다 물어볼 게 있어."
헤레스는 하벨의 대답에 입이 가려웠지만, 진짜냐고 묻는 칼리우스의 시선에 그저 활짝 웃어주었다.
칼리우스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뭐든 대답할게. 다 대답할 수 있어."
"이게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법사를 지배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
"마법사를… 지배해? 내가?"
"마나의 축복을 받은 너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는 아마 그 누구도 없을 거야."
"그건 맞습니다, 칼리우스 님. 용이 가진 마나는 마법사가 가진 마나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아름답습니다."
헤레스가 하벨의 말에 뒷받침하자 칼리우스는 자신이라면 가능한 일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하지만 칼리우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누구를 지배할 마음이 없어. 누구든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지배는 무조건 아픔으로 이어지진 않아."
"그럼 날 지배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뭐야?"
"용용아. 지배는 말 그대로 네 밑에 두는 거야. 마법사들이 널 공격하지 않게 하는 하나의 수단인 거지."
"나를 공격하지 않게 하는 수단이라고……?"
칼리우스는 처음 들어보는 방법에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래. 네가 마법사들의 왕이 되는 거야. 왕은 지배자이지만, 백성을 지키는 자거든."
"마법사들의… 왕?"
어쩐지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기에 칼리우스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 * *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져 잠시 늦어지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바안은 빈자리를 쳐다보는 다른 나라 대신의 시선에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빈자리의 주인은 하벨 티에라였다.
"전하. 외람되오나 아까 난 큰 소리와 관련이 있습니까?"
다 알면서 레놀드 왕국의 대신 중 한 명이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맞습니다."
바안의 시선이 넌지시 협회장을 향해 있었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넬시아였다.
"전하."
넬시아의 목소리에 협회장을 향했던 시선이 넬시아에게 쏠렸다.
옆에 앉아 있던 라르웬과 룬델 역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해보세요."
바안의 허락이 떨어지자 넬시아는 꾹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이 자리가 중요한 자리인 만큼 얼굴을 가리는 행동은 금했으면 합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드러나야 할 자리가 아닙니까?"
이곳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건 협회장뿐이었기에 노골적인 그 말에 라르웬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넬시아가 다정한 건 가족과 티에라 가문뿐.
라르웬은 곧 이어질 그녀의 말에 괜히 주먹을 쥐었다.
'제발, 적당히만 해. 적당히.'
"감히 전하 앞에서 얼굴을 가린다는 것 자체부터가 무척 수상하고, 불손한 행동이지 않습니까?"
넬시아는 당연한 사실을 꼬집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하."
찌익.
계속 이어지는 넬시아의 도발에 협회장은 더는 참지 못하고 가림막을 아예 찢어버렸다.
"됐습니까?"
"예, 이제 됐습니다. 헤일리스 퀸 씨."
넬시아가 이름을 말하자, 헤일리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마법사에게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 일부러 꺼내는 게 아닌가.
"얼굴이 드러나니 훨씬 낫네요. 일그러진 얼굴도 아주 잘 보이니 얼마나 좋아요?"
그제야 넬시아는 미소를 지었다.
무척 차갑고, 싸늘하기까지 한 미소였기에 헤일리스의 눈빛 역시 차가워졌다.
"그쪽 덕분에 내 동생이 큰일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 일은 일단 파악 중입니다."
"아직 파악이요? 참 태평한 소리네요."
넬시아는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마법사 협회가 무슨 짓을 저질렀으며 감히 정화제에 손을 대는 개같은 짓거리에 이미 치가 떨려왔다.
원래도 마법사 협회에서 정령사를 싫어하는 줄은 알았지만, 인간이길 포기할 줄은 몰랐다.
'…감히 내 동생 몸에 상처를 내? 저 개새끼들.'
하벨의 팔뚝에 길게 그어진 상처를 보는 순간, 당장 감옥으로 가 마법사 놈들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넬시아는 속마음을 꾹 누르며 바안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분위기가 냉랭해지던 와중에 레놀드 왕국의 대신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하."
그는 한쪽에 낀 안경을 올리며 깐깐한 얼굴로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무슨 일이 벌어졌지만, 이렇게 전하를 기다리게 하는 건 실례인 행동이 아닙……."
벌컥.
문이 갑자기 열렸다.
"맞습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하벨이 링거를 달고 당당히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하벨의 눈꼬리가 살짝 휘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전하. 다른 분들께서도 이렇게 늦게 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냥 대충 붕대만 두르고 왔어야 했는데 너무 이것저것 달고 왔습니다.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그렇죠?"
하벨이 고개를 숙인 자세는 어디 지적할 틈도 없이 완벽했으나, 가벼운 말투 때문에 빈정거림이 확 느껴져 방금 말을 꺼낸 레놀드 왕국의 대신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아닙니다. 몸은 괜찮은가요?"
"괜찮다고 말해야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좀 아픕니다."
하벨은 바안의 물음에 팔을 걷어 두텁게 감긴 붕대를 슬쩍 내보였다.
봐봐.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어서 앉으세요."
바안이 조금은 다급히 손으로 빈자리를 가리키자 하벨은 그제야 발걸음을 뗐다.
"아, 대신께서 무얼 하나 착각하시는 것 같아 한 말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비어 있는 자리로 걸어가던 하벨이 대신 앞에서 멈췄다.
하벨의 뒤를 이어 카샬과 칼리우스가 안으로 들어오자 헤일리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와. 용용이 효과가 대단하네. 협회장의 얼굴이 저렇게 일그러지다니.'
하벨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고,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 역시 막지 않았다.
왜인지 몰라도 협회장의 얼굴이 드러나 있질 않은가.
이럴수록 더 잘 보고 있어야지.
저들이 칼리우스를 노리는 이유는 명확하진 않았다.
-칼리우스 님이 엄청난 힘을 가졌다고 해요. 저걸 통제할 수 있는 건 자신들뿐이라 세상을 위해 보이는 즉시 무조건 데려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대요.
감옥에 갇힌 마법사한테 다녀온 레디나가 했던 말을 이곳에 오기 전에도 몇 번이나 떠올려보았다.
하벨은 여전히 긴가민가했지만,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마법사 협회에서는 용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고 있고, 용용이를 용이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야 마법사 협회가 내린 명령을 중단하지도 않고, 마법사들이 왕실에서 그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테지.
그렇기에 하벨은 지금 자신이 느낀 이 우월감 역시 막지 않았다.
'봤는가? 너희가 그토록 쫓아다니던 용용이가 내 시종이라는 사실을.'
이제 분위기가 바뀔 테니.
"착각하는 거라뇨? 그게 무엇인지 말씀해주시죠."
레놀드 왕국의 대신이 묻자 하벨은 순진한 미소로 말을 꺼냈다.
"이럴 땐 말입니다. 다친 저한테 뭐라 할 게 아니라 절 이렇게 만든 사람들한테 따지셔야죠."
하벨의 미소가 곧 비웃음을 뒤바뀌었다.
"아니면, 제가 만만합니까?"
이어 하벨이 던진 말에 룬델은 기어코 숨을 삼켰고, 라르웬과 카샬이 거의 비슷하게 입을 가리며 어깨를 들썩였고, 넬시아는 정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덩달아 눈을 깜박이던 레놀드 왕국의 대신이 뒤늦게 하벨이 자신에게 비난을 퍼부었다는 걸 알았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신의 언성이 올라갔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모든 게 용서가 되는 게 아닙니다."
대신 옆에 앉아 있던 샬룸이 가볍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좀 적당히 하시죠."
그 말에 대신은 살짝 움찔거리며 샬룸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 제가 너무 표현이 과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만한 게 아니면 왜 저만 비난합니까? 정작 제가 늦은 이유와 범인이 저기 앉아 있잖습니까."
하벨이 대놓고 헤일리스를 가리키자 샬룸의 입꼬리마저 바들거렸다.
"사과해야 하는 건 마법사 협회이고, 저는 피해자입니다. 이것도 똑바로 구분이 안 가십니까?"
탁!
레놀드 왕국의 대신은 저 건방진 소리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책상을 치며 일어났다.
"앉으시지요."
하지만 샬룸이 꺼낸 조용한 말에 대신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 앉아버렸다.
무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같은 일이 일어나자 하벨은 의외의 정보에 한쪽 눈썹을 살짝 올렸다.
'저 재수 없는 놈이 책임자가 아니라 샬룸이었다고?'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헤일리스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마법사 협회는 지금 최선을 다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다친 건 안타깝지만, 그런 식으로 협회 자체가 비난을 들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벨 공의 말씀이 옳습니다."
엘라힘이 두 손을 꽉 쥔 채로 목소리를 냈다.
"이건 하벨 티에라 공이 물 마법사인가 아닌가를 검증하는 자리 이전에 이 사태를 일으킨 마법사들의 행동과 하벨 공이 입은 부상에 대해 우선 사과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
정작 목소리를 내어야 할 에르티안의 귀족들 대신 신성 국가 시엘느의 사제인 엘라힘이 현 상황을 질타하자 하벨은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을 도와주는 건지, 아니면 어떤 이득을 노리는 건지.
엘라힘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듯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았다.'
하벨은 헤일리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아직도 그 고개가 뻔뻔히 서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번 일은… 뭐가 되었든 간에 죄송합니다."
헤일리스는 하벨의 도발에도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빨리 하벨에게 사과했다.
"마법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탓이 큽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일에 피해자는 저뿐만이 아닙니다."
갑자기 사건을 비트는 하벨의 말에 헤일리스는 주춤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또 다른 피해자는 보고 받지 못한 내용이었기에 헤일리스는 하벨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그저 빈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동안 모두 입을 다물며 하벨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또 있다는 소리는 자신들 역시 듣지 못했으니.
하벨은 바안 옆에 앉아서야 대답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피해자가… 또 있다뇨? 그게 정말입니까?"
바안 역시 모르는 내용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입니다, 전하."
"그럼, 그게 누구인지 말해보세요."
이 정도의 시간은 있기에 바안은 자신의 손가락을 매만지며 하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 시종입니다."
하벨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뒤따라와 카샬 옆에 선 칼리우스를 가리켰다.
이제 칼리우스와 마법사 협회 사이에 있던 저 악연을 끊어낼 차례였다.
다시는 칼리우스를 건들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헤일리스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숨을 토했고, 단번에 쏠리는 시선에 칼리우스가 움찔거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툭.
카샬이 칼리우스를 가볍게 쳤다.
자신의 말을 기억하냐는 눈빛에 칼리우스는 숨을 찬찬히 내쉬었다.
'기억하고 있어.'
―배에 힘을 줘.
배에 힘을 주자 허리가 펴졌다.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네가 모셔야 할 주인을 봐.
앞을 바라보자 하벨이 싱긋 웃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저 미소에 칼리우스는 어쩐지 힘이 났다.
―그게 시종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자세야.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해야 할 자세이기도 하니까 반드시 기억해.
칼리우스는 눈에 힘까지 주었다.
지금 자신이 주눅이 들 이유는 없었다.
하벨은 당당한 시선으로 헤일리스를 쳐다보는 칼리우스를 보며 만족했다.
"저도 그냥 장난이면 좋겠는데, 제가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마법사 협회에서 제 시종을 납치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벨의 고발에 분위기가 살짝 이상해졌다.
"아니, 저 시종이 대체 뭐길래 협회까지 움직였단 말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애초에 누구인지……."
대체 저 시종이 누구냐는 시선과 저 시종에게 무언가 있다는 시선이 반반 뒤섞여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벨은 느긋하게 여러 대신의 행동을 살폈다.
"전하."
그때, 코스모피안 왕국의 대신 중 한 명이 공손히 바안을 불렀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몸집이 커 보였다.
"외람되오나, 저 말은 이번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 이거지.'
하벨은 예상하던 질문이 나와 벌써 즐거웠다.
"정말 상관이 없는지 있는지는 하벨 공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시간도 있고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벨 공?"
하벨의 미소를 보았기에 바안은 자연스레 하벨에게 질문을 넘겼다.
"몹시 안타깝습니다. 이번 일과 제 시종 일이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시다니요."
하벨은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오늘 이곳은 저는 물론, 여러분들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소란이 일어나고 말았죠."
하벨의 시선이 사람들을 향해 돌아갔다. 일부러 '큰 소란'에 힘을 주었다.
"마법사 협회에서 제 시종을 납치하기 위해 무려 두 번이나 습격을 강행했습니다. 그중 하나의 습격에 바로 제가 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툭.
하벨이 책상을 가볍게 쳤다.
"보시다시피 제 시종은 일반인입니다. 대체 제 시종이 무엇이라고 대신들이 머무는, 그것도 왕실에서 제 방까지 습격할 정도로 큰일을 저질렀는지. 저는 이게 참 이상합니다."
사람들의 의문을 정확히 긁는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게 보이는 헤일리스를 제외한다면.
'네놈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제 알겠는가? 이번 일도 덮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하벨은 즐거웠다.
마법사와 칼리우스가 벌인 실수를 자신이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겠지.
게다가 오늘은 달랐다.
여러 나라가 온 만큼 이해관계가 아주 복잡하게 얽힌 날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이건 모함입니다!"
헤일리스가 하벨이 꺼낸 말을 부정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건 자신이 지시한 일이 아니었다.
하벨 티에라를 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도 없었다.
"이곳은 왕실이 아닙니까? 여러 대신께서 머무르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오늘은 선왕의 장례식이 열리는 자리일 테고요. 마법사 협회에서도 물론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음에도 고작 일반인인 제 시종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겁니다."
하벨은 귀족이라면, 특히 대신의 신분이라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명분 하나를 꺼냈다.
"이는 에르티안 왕국은 물론, 여러분들을 무시, 그 이상의 행동을 한 게 아니면 대체 뭐겠습니까?"
이래도 이번 사건이 지금 사건하고 관련이 없어?
하벨은 그렇게 대신들에게 물으며 그들의 눈빛에 달라지자 아예 말뚝을 박아버렸다.
"하여 묻겠습니다, 헤일리스 씨. 대체 마법사 협회는 다른 나라를 무시할 만큼 제 시종을 노려야 했던 이유가 대체 뭡니까? 말씀해보시죠."
하벨이 씩 웃으며 헤일리스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