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아주 작은 틈부터(3)
* * *
"……."
카샬은 말없이 미간을 쓸었다.
"봤지?"
하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설마 했는데 하벨도 아니고 진짜 칼리우스가 사고를 칠 줄이야.
아라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칼리우스를 바라보다 일단 놀란 그를 달래러 다가가 꼭 안아줬다.
[진정해, 용용아. 괜찮아.]
"카샬. 아까 네가 뭘 말했는지 똑같이 말해줘?"
하벨이 칼리우스에게 다가가며 씩 웃자 카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이미 이곳에 사람이 없는 건 확인했기에 카샬은 발걸음을 떼지 않고 주변 상황부터 살펴보았다.
칼리우스가 힘껏 주먹을 휘둘렀는지 벽이 파였고, 쓰러진 남자가 셋.
모두 마법사가 아닐까 추측했다.
카샬은 검을 들어 대충 파인 벽을 그어 흔적을 훼손했다.
"도련님…!"
칼리우스는 점점 다가오는 카샬을 보며 당황하고, 당황하다 뒤늦게 말문을 열었다.
"나, 나는 안 된다고. 가기 싫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저 사람들이 도련님을 욕했어!"
칼리우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저 말에 하벨은 뒤를 돌아 카샬을 보았다.
봤지?
우쭐해진 하벨의 눈빛에 카샬은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진 상황이 기가 찼다.
"일단 묶고 있어 봐. 혹시 줄 가지고 있어? 없으면 줄게."
하벨의 자연스러운 명령에 카샬은 아공간 주머니를 열려다 말고 잠깐 멈칫거렸다.
"…묶으라뇨? 죽이는 게 아니고요?"
"데리고 가야지. 용용이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고도 이걸 가만히 둬?"
하벨은 칼리우스를 진정시키고자 자신의 안쪽 주머니에 젤리랑 사탕이랑 넣어둔 곳에서 막내 사탕을 꺼냈다.
"용용아, 사탕 먹으면서 무슨 일인지 천천히 말해 봐봐."
사탕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뜬 칼리우스는 바로 손바닥 위에 올려진 막대 사탕을 쥐며 옅은 미소로 말을 꺼냈다.
"으응. 나는 집사님이 요리장 아저씨한테 '도련님은 고기로 가득 주세요'라고 말하려고 주방으로 갔는데, 저 사람들이 갑자기 날 쫓아왔어."
칼리우스는 입에 문 막대 사탕을 천천히 돌렸다.
"도련님 말대로 이전처럼 나를 강제로 데려가진 못했어. 그냥 자꾸 쫓아오고, 자꾸 어디로 가자는데 나는 너무 싫어서, 싫다고 확실히 말했어."
"그런데 갑자기 나를 욕했다고?"
하벨이 묻자 '까득' 하며 사탕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칼리우스는 당장 인상을 썼다.
"응! 도련님이 가짜라고! 도련님은 거짓말쟁이라 검사하면 다 나올 거라고. 어차피 몰락할 게 뻔한 티에라 가문에 있지 말고 자신들하고 가자고 했어!"
"이런, 개같은!"
저 말에 발끈한 카샬은 묶고 있던 마법사를 걷어찼다.
팍!
아직 기절 전인지 소리치는 놈도 있자 카샬은 복부를 쥐어짜듯 누르며 제대로 기절시켜버렸다.
"그래서 도련님.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때렸어! 죽지 않을 만큼 때렸어! 벽을 부순 건 미안해!"
칼리우스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고, 카샬도 덩달아 언성을 올렸다.
"잘했어, 칼리우스! 기왕 때리는 거 더 쥐어패지 그랬어? 뼈가 부러진 놈이 없네."
하벨은 칼리우스와 카샬의 말을 듣다 말고 눈을 반짝거렸다.
"…이거네."
물 마법사를 검증하는 자리에서 검증만 하면 심심하지 않을까 했는데, 거기서 추가할 게 보였다.
"예? 이거라뇨?"
카샬은 하벨의 중얼거림을 듣자 긴장이 됐다.
또 뭘 하는 건지.
"카샬."
"…예, 도련님."
"용용이를 찾는 척 그 근처 왕실 시종에게 물어봐. 누가 대답했는지, 얼굴을 기억하고. 증인이 빠지면 되겠어?"
하벨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으음, 일단 알겠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은 아십니까?"
카샬이 믿음직스럽지 못한 눈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다른 건 몰라 길은 생각보다 빨리 외우지 못했다.
"아니."
"걱정하지 마, 도련님! 내가 알아!"
칼리우스가 손을 번쩍 들자 아라가 뒤따라 들었다.
[이 몸도 알아! 이 몸이랑 땅이랑 바람도 알아!]
"됐지? 어서 흩어지기 전에 가봐."
하벨은 카샬에게 손을 흔든 뒤, 아라를 바라보았다.
"아라야. 내 방으로 물의 길 좀 열어줄 수 있어?"
아라가 성장하면서 예쁜 파란 리본과 함께 이동기가 더 튼튼해졌다.
얼마 전, 리본을 얻어 신이 난 아라가 리본을 자랑하다 말고 자신에게 다가와 보여줄 게 있다며 물의 길을 열었고, 문득 드는 호기심에 자신은 혹시나 해 베개를 던져보았다.
베개가 다른 물의 길로 나왔음에도 이전과 달리 물의 길이 사라지지 않자 긴가민가했고, 그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던 칼리우스가 자진해서 물의 길로 뛰어들어 베개가 떨어진 자리로 나왔다.
그제야 아라가 이동하지 않으면 물의 길이 그대로 유지가 된다는 걸 알자 아라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응! 이 몸은 아직 힘이 넘쳐서 할 수 있어!]
아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방에서 낯선 소리가 나는 순간, 레디나가 문을 열어보겠지.'
하벨은 레디나를 믿었다.
묶인 마법사들을 보는 순간, 자신이 뭘 요구하는지도 알아챌 게 분명했다.
아라가 배시시 웃으며 자신의 꼬리를 닮은 물을 만들자 하벨은 마법사를 가리켰다.
"저 안으로 던져줘, 용용아. 내가 던지고 싶지만, 힘이 모자라……."
하벨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칼리우스는 마법사들을 다 들어 안으로 던져버렸다.
'…아니, 아니 대체 용은 왜 사라진 거지?'
하벨은 너무도 쉽게 해결하는 모습에 다시금 의문을 가졌다.
"이제 우리가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초롱초롱한 칼리우스의 눈빛에도 하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다음에. 우리까지 들어가면 아라가 지치기도 하고, 지금은 걸어가는 편이 여러모로 좋아."
자신을 보는 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때였다.
"어쨌든, 둘 다 잘했어."
하벨은 아라와 칼리우스를 칭찬하며 왔던 길을 돌아갔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해서야 하벨은 칼리우스를 불렀다.
"용용아."
"응?"
"마나를 얼마만큼 조절할 수 있어?"
"으응?"
하벨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이걸 제일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
"혹시 마법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마법사가 되면 나는… 어음, 마법사 협회에 가야 해?"
"꼭 그렇지는 않지만, 여기에 등록된 마법사라는 문양이 박히는 걸 피하기는 어렵겠지. 헤레스 손목에 새겨진 걸 봤잖아?"
하벨은 손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싫어. 나는 몸에 뭘 새기는 게 싫어. 다른 사람들도 나한테 뭘 새기려고 했단 말이야. 칼이 잘 안 들어가니까, 엄청 날카로운 송곳을 들고 왔는데, 그건… 정말 싫었어!"
칼리우스는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자신의 손목을 꽉 잡았다.
덩달아 아라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인지 말해! 이 몸이 혼내줄게, 용용아! 완전 나빴어!]
대체 누구길래 칼리우스를 공격한 건지.
아라는 화가 났다.
"그건……. 아니야. 마주치고 싶지 않아."
칼리우스는 말을 꺼내려다 그냥 입에 문 사탕이나 할짝거렸다.
"용용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다만, 네가 마나를 조절할 수 있는지 몰라서 묻는 거였어."
"조절할 수 있어. 마나를 하나도 움직이지 않게 할 수도 있고. 그런데 마법사가… 되지 못하면 마법을 못 쓰는 거야?"
"지금까지 네가 마법을 쓰지 못하게 누가 막았어?"
"아니. 막은 적은 없어. 도련님이 마나를 아끼라고 해서 지금도 그러고 있어."
"봤지? 그런 거랑 아무 상관 없어. 마법을 쓰든 말든 그건 네 의지야."
"그럼, 마법사는 안 할래. 그래도 돼?"
칼리우스는 그제야 자신의 손을 놓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용아."
"으응?"
"나 봤지? 내가 뭘 선택하면 우르르 말리는 거?"
"봤어. 전부 다 도련님한테 안 된다고 말하면서 말리는 게 웃겼어."
칼리우스는 그 광경을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나도 그래 줄 테니까, 아까처럼 짜증 나면 죽지 않게 주먹 좀 휘둘러. 아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냥 저질러버려."
"응. 확 저질러버릴게. 그런데 있잖아, 도련님."
"왜?"
"도련님을 우르르 말리는 게 웃기긴 한 데, 도련님은… 내가 보기에도 음, 좀 자제할 필요가 있어."
하벨은 티 없이 꺼내는 칼리우스의 말에 멈칫거리다 못 들은 걸로 하기로 했다.
[오오, 맞아. 이 몸도 그렇게 생각해.]
아라가 꺼낸 말도.
"그럼 레디나가 마법사들을 죽이기 전에 가볼까?"
"응!"
칼리우스는 신이 난 걸음으로 하벨의 앞에 섰다.
카샬이랑 다른 길로 칼리우스가 안내하자 벌써 사람들의 숫자가 달랐다.
왕실 시종들과 귀족들, 그리고 대신들 속에 섞여온 시종 등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늘어나자 하벨은 만족스러웠다.
* * *
"…연락은?"
덩치가 큰 남자가 누군가를 재촉했다.
"아직도 먹통입니다."
"빌어먹을……."
덩치가 큰 남자는 주변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가면 에르티안 왕국이거늘, 검은 물이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좀처럼 잠잠해지질 않았다.
"장례식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3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제기랄."
덩치가 큰 남자는 기어코 입술을 깨물었다.
보통 때라면 5시간 안에 갈 거리가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이대로 참석도 못 하면 국격이 얼마나 내려갈지, 상상만으로도 암담했다.
"내성이 높은 놈들은 당장 나와서 노 저을 준비 해."
덩치 큰 남자는 솔선수범하며 바로 밖으로 나갔다.
해일이 몰아치는 바다에 덩달아 배까지 요동쳐 우비를 뒤집어쓰고 우르르 나온 사람들은 거친 흔들림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정신 차려! 저 깃발이 뭔지, 우리가 누구인지만 기억해라!"
덩치 큰 남자가 가리킨 곳에 코스모피안 왕국을 상징하는 깃발이 힘차게 나부꼈다.
"쪽팔리게 장례식에 참석도 못 하면 되겠어? 자자, 다 노 들어라, 이 자식들아!"
남자는 노를 들고는 힘차게 소리쳤다.
* * *
[어어……!]
"…안 돼!"
아라와 하벨은 마법사에게 단검을 휘두르려는 레디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그대로 단검이 멈췄다.
레디나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키득거리며 바로 단검을 집어넣었다.
"짠. 당연히 장난이죠. 제가 설마하니 도련님의 의도도 모르겠어요? 죽여야 할 놈이면 카샬이 당장 죽였겠죠."
"장난치는 건데 살기까지 내뿜어?"
"실감 나게 해야 재밌죠. 그런데 놈들은 왜 잡아 오셨어요? 마법사 같은데요?"
"레디나는 마법사인지 어떻게 알았어?"
칼리우스가 놀라며 묻자 레디나는 자신을 가리키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저 불법 마법 시술자에요. 마법사가 근처에 있으면 등에 있는 시술 흔적이 따끔하거든요."
"불법 마법 시술자? 그게 뭔데?"
칼리우스가 묻자 레디나는 입술을 잠깐 핥았다.
"그렇게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을 텐데요. 괜찮겠어요?"
"…어, 마나가 레디나 널 싫어하던데. 그거랑 관련 있는 거야?"
"맞아요. 저는 마나한테 미움받았어요."
"왜에? 마나가 막 사람을 싫어하는 일은 없는데."
"저는 이 힘을 손에 넣으려고 마법사를 마구마구 죽였어요. 그래서, 으음, 미움받을 짓을 했죠?"
"자자.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서둘러 조작 좀 해볼까?"
하벨은 아라를 바라보았다.
자신도 불법 마법 시술이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은 시간이 촉박했다.
[조작은 나쁜 거야, 대장.]
"먼저 용용이를 끌고 가려고 한 건 저놈들이야. 난 분명히 용용이가 내 시종이라는 걸 드러냈어, 아라야."
[어음.]
아라가 귀를 접었다.
[조작도… 가끔 필요하다고 생각해.]
"어떤 조작을 하실 건데요?"
레디나는 두근거림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내가 말이지, 이번에 독의 힘을 새로 얻었거든."
하벨이 활짝 웃자 레디나는 당장 기절한 마법사의 입을 잡아 벌렸다.
"저는 준비됐어요."
"아라야."
하벨의 부름에 아라는 우물쭈물하다가 하벨의 등에 살포시 앞발을 올렸다.
하벨은 차오르는 정령수를 느끼며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삼지창 모양을 띤 독의 힘을 선택했다.
[어?]
아라의 눈이 커졌다.
하벨의 손 위에 이상한 모양을 한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지 않는가.
"어?"
칼리우스와 레디나의 시선이 하벨의 손 위를 향했다.
"저게 뭔가요? 저걸 먹이려고요?"
"으음. 나도 이건 모르겠네."
하벨은 레디나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손가락 크기 정도의 앙증맞은 삼지창 모양은 누가 봐도 장식품처럼 보였다.
'이걸 던지면 맞을까.'
하벨은 문득 드는 궁금증에 삼지창을 잡아 벽을 향해 던졌다.
팍!
자신이 생각한 조준점에서 살짝 벗어나긴 했지만, 벽에 꽂혔다.
'공격이 되긴 되네.'
곧 삼지창 끝에서 무언가를 질질 흘리는 모습에 하벨은 다급히 다가가 뽑았다.
'설마… 독은 아니겠지?'
킁킁.
아라는 새로운 무언가에 반응해 냄새를 맡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거 독이야, 대장!]
그 말에 하벨은 삼지창 끝을 보았다.
언제 독을 흘렸냐는 듯이 끝은 말끔했다.
"진짜… 저걸 먹이실 건가요?"
레디나는 익숙한 냄새에 독이라는 걸 알아챘지만, 사용법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하벨은 벽을 타고 흐르는 독을 지웠다.
정령수가 깃들어 만들어진 것이라도 무언가 흘러내린 흔적은 남아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있겠어?"
하벨은 등을 돌리며 움켜쥔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에 보라색을 띠는 작은 알갱이 세 개가 만들어졌다.
"환각을 보여주는 독이야."
"아."
레디나는 그 말에 활짝 웃었다.
물 마법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단 우위를 점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칼리우스 님. 저랑 칼리우스 님 중에 누가 뛰어갈래요?"
"뛰다니?"
"'와아아' 하면서 소리 질러야죠. 확실히 저보다 칼리우스 님이 더 나을 것 같은데요."
"그냥 뛰면 되는 거야?"
"아니. 저쪽 벽을 밖에서 안으로 부수고, 도와주세요 하면서 질러야 해."
하벨은 문 반대쪽에 있는 벽을 가리켰다.
칼리우스는 그 손가락을 따라가더니 눈을 깜박거렸다.
[대장 있잖아. 저번에 용용이 마나를 아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은 마나를 썼다는 흔적을 남겨야 하는데 지금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용용이밖에 없잖아?"
[흐어어. 그건 맞아! 용용이밖에 없지!]
아라가 놀라며 대답하자 그제야 칼리우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니까 지금 습격받은 것처럼 꾸민다는 거였어?"
"맞아, 용용아."
"어어, 나는 연기에는 자신 없는데."
"넌 그냥 소리 지르기만 해도 충분해. 나중에 누가 뭘 물어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눈을 꼭 감고 있어."
"알았어! 그런데 벽을 부수면 위험하지 않을까?"
칼리우스가 머뭇거리자 레디나도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파편이 튀어서 어디 다치기라도 한다면 언니의 분노를 피하기 어려우실 텐데요?"
[이 몸도 위험하다고 생각해! 다른 걸로 하자, 대장.]
아라마저 하벨의 옷자락을 흔들며 말했다.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자, 좀 더 실감 나는 행동을 위해 카샬이 오면 시작하자고."
하벨은 가볍게 손뼉을 치자 레디나는 마지못해 마법사 입을 다시 벌렸다.
툭.
하벨은 벌린 입속에 만들어 놓은 독을 넣었다.
[카샬이 언제 오는지는 이 몸이 보고 있을게.]
칼리우스가 건물을 부숴버릴 준비를 하자 아라는 문 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아라야. 알아보는 건 레디나가 할 거고, 용용이가 마법을 쓰면 바람을 더 거세게 일으켜줘."
[아, 습격이 더 위험하게 보이려는 거야?]
"그래."
[헤헤, 되게 웃기겠다. 그런데 대장은 뭘 할 거야?]
하벨은 그 말에 장난스레 웃었다.
* * *
"…하."
카샬은 어쩐지 새어 나오는 한숨과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오한이 돋는 기분이었다.
'도련님 말대로 일단, 칼리우스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다니는 연기를 했는데, 이 과정이 왜 필요하다는 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 마법사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해 물 마법사를 증명하는 자리에서 마법사 협회를 압박하려는 수단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단지 그것만으로 증명이 될지 모르겠네.'
카샬은 하벨의 방으로 향하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상하게 하벨이 잠잠한 것 같지 않은가.
언제든 무슨 사고를 터트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
갑자기 하벨의 방에서 터진 소리에 카샬은 잠깐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런 미친…!'
뭘 판단하게 전에 그대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