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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19화 (119/415)

119화. 뒤바뀐다(2)

* * *

"…하악, 학!"

하벨은 그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서 해방되자마자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눈앞이 흐려질 만큼 막혀오는 숨통에 옷자락을 잡다 비틀거렸다.

쾅!

다급히 세면대를 쥐었지만, 손아귀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 기억인가.'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누가 대체 자신한테 저런 말을 했단 말인가.

이토록 소름 끼치는 목소리는 대체 누구인지.

'열쇠…….'

자신의 존재는 세계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태어나면서부터 들었다.

몇 번을 떠올려도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고, 진짜 자신에게 그런 게 있었던가 하고 의문을 갖는 소리였다.

하지만 다 떠나 가장 의문스러운 건 하나였다.

'…나만 아는 그 말을 대체 어떻게 알았는가?'

다다다!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콰앙!

문이 부서지듯 열리고, 칼리우스와 아라가 보였다.

"하벨!"

[대, 대장!]

'이건 좀.'

아라가 자신을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고, 칼리우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안한데.'

눈이 감겼다.

* * *

"…정신이 드시나요, 도련님?"

헤레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하벨은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가 아닌가.

'아니지. 화가 날만 했다.'

칼리우스가 자신을 업은 것 같은 기억이 흐릿흐릿하게 났으니.

그 속에서 펑펑 울던 아라와 당황하던 칼리우스와 다급한 헤레스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헤레스. 이번에는……."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헤레스의 얼굴에 미소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상태는 계속 호전되고 계셨어요. 물의 저주가 또 재발한 것도 아니고, 기절하실 만큼 이상 증상을 발견할 수도 없었고요."

하벨은 헤레스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옆에 꼭 붙어 웅크려 자는 아라를 바라보았다.

또 울었으려나.

"얼마나 지났는가?"

"이틀 정도 지났어요."

"이틀이나?"

"예. 몇 바탕 뒤집혔는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헤레스는 하벨에게 쏟아지는 햇살을 가릴 겸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쳤다.

"기억을… 떠올렸네."

"기억이요? 나쁜 기억이셨나요?"

"아마도 그랬던 것 같네."

하벨은 모호한 말을 꺼냈다.

소름 끼치는 그 목소리가 단순히 나쁜 기억인지, 최악이라 할 만큼 끔찍한 기억인지.

아니면 자신의 기억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벨은 팔찌에 달린 랜턴을 바라보았다.

불꽃이 피어나지 않았다.

목소리나 얼굴은 인지하면서 자신의 기억만큼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애초에… 나는 왜 죽었는가.'

하벨은 일부러 꺼내지 않았던 이유를 천천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태어났고, 수족에게 지배를 받은 세상을 구하려 일어났으며, 기어코 해방했다.

큰 맥락은 하나씩 떠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해방했으며 자신들의 사람들은 왜 죽었으며 어째서 왕좌에 묶여버렸는지는 또렷하지 않았다.

―용왕님. 백성들을 지키고 싶으시다면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그냥 왕좌에 앉아 계십시오. 그것만이 백성들을 지킬 유일한 방법입니다.

'지독한 슬픔에 빠져 관료들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 슬픔은 자신의 사람들이 죽었기에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관료들이 자신의 뒤를 쳤고, 멍청하게 모든 걸 뺏겨 왕좌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지 않았던가.

'이게 내가 기억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왜… 허수아비가 되었는가.'

가져본 적 없는 의문이 넘실거렸다.

저 바다가 자신의 것이었는데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가.

대체 무얼 빼앗겼길래.

'그렇다면 왜 그렇게 늦게 배신을 당했는가.'

허수아비가 된 이후로 이따금 올라가서 바라본 인간 세상의 발전으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비어 있는 기억이 너무도 많았다.

자신이 바다를 통제하고 있는데, 이미 허수아비 신세였는데, 왜 자신을 죽였는지.

'설마… 내가 모자란 빈 기억을 멋대로 엮은 게 아닐까.'

문득 드는 불안한 생각에 하벨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억이 불명확한데 무엇이 진짜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수족에게 해방됐다는 것도 사실 자신이 만들어낸 기억이면 어떡할까.

"…도련님?"

헤레스가 가볍게 하벨을 흔들었다.

하벨이 흠칫 놀라며 걱정을 담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이마가 축축해진 기분에 하벨은 어깨를 늘어트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도련님. 기억을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지 마세요. 천천히 다가가도 됩니다."

"…헤레스."

하벨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을 느끼며 말을 꺼냈다.

"혹시 기억이라는 게 멋대로 만들어질 수도 있는가?"

"가능합니다. 도련님께서 그게 진짜라고 믿으신다면 진짜 기억이 될 테니까요."

헤레스는 눈동자를 천천히 굴렀다.

이제 하벨에게 한계가 온 걸까.

본래의 기억과 만들어진 기억이 뒤섞여 혼란이 일어난 게 아닐까 싶었다.

"도련님."

"그래."

"내일 이곳에 도착할 겁니다."

"…마법사가?"

"예, 마법사 드웰 님이요."

하.

하벨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도 기다렸던 순간인데 이렇게도 두려울 줄이야.

모든 게 다시 또 뒤바뀔 순간이 아닌가.

'…아라가 아직 덜 성장했는데.'

아라가 걱정스러웠다.

'마법사 협회도 무너트리지 못했고.'

이걸 하벨 티에라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시간을 역행했음에도 자신에게 모든 걸 미룬 그가?

하벨은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몸으로 돌려줄 방법을 찾았다고 해도 그걸 실행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저것들을 처리하면 되겠다.'

아라한테도 용왕의 힘으로 만든 물을 조금 더 주면 되겠고.

'…많이 슬퍼하려나.'

아라의 숨소리를 듣자 하벨은 가슴이 아려왔다.

"혹시 두려우십니까, 도련님?"

헤레스는 갑자기 굳어진 하벨의 표정에 말을 꺼냈다.

"아니. 슬프다네."

가족으로 엮이든 뭐든 처음부터 인연이 닿았던 이들과 달리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오로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존재는 아라뿐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아라의 행복을 바랐다.

자신이 떠나면 그 빈 마음을 누가 채워줄까 생각하니 참 슬펐다.

"슬프다뇨?"

"이곳에 와서 만난, 가장 소중한 존재를 떠나야 하는 게 슬프고, 그 존재가 빈자리를 보며 얼마나 슬퍼할지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프다네."

하벨은 아라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많이 울지 않으면 좋겠는데.

"…아,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도련님!"

헤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의사로서 내뱉으면 안 될 무책임한 말라는 걸 알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가슴이 일렁거릴 정도로 깊은 슬픔에 위로해주고 싶었다.

"미안하네. 헤레스, 자네는 자네의 자리를 지켜도 괜찮네. 이건 내 마음일 뿐이니까."

하벨이 살짝 일그러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헤레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가끔은 하게 해주세요. 의사라는 걸 떠나 저도 사람이니까, 위로는 해드리고 싶어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 모든 건 오로지 하벨이 감당해야 했다.

자신은 그저 옆에서 의사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걸어갈 뿐이니 위로라도 건네고 싶지 않겠는가.

"아, 헤레스."

"예, 도련님."

헤레스는 입이 바짝 마르는 기분을 느꼈다.

또 무슨 말을 꺼낼까.

"혹시 용이 있다고 믿는가?"

"…예?"

헤레스는 잠깐 넋을 놓았다.

농담인가.

분위기를 바꾸려 농담한 건데, 자신이 못 알아들은 걸까.

'…그, 그럴 리가.'

헤레스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눈치가 빨랐다. 아니, 그렇게 믿어 왔는데.

"헤레스 자네도 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가?"

하벨이 살짝 실망한 듯 보이자 헤레스의 심장이 더 뛰었다.

믿는다고 해야 할까. 아니라고 해야 할까.

의사 헤레스와 사람 헤레스를 두고 갈등이 오가자 그녀는 한순간 머릿속에 '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경을 치켜 올리며 방긋 웃었다.

고민하면 뭐하겠나.

"용이 사라졌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죠."

헤레스는 사실을 언급했다.

한때 있었다는 식으로 전해져 내려왔으니.

"하지만 실제로 있다면 보고 싶어요. 정말로요. 용은 세계의 수호자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대체 무슨 이유로 수호자라는 이름까지 나온 건지. 왜 사라진 건지. 당연히 군침이 돌죠."

"오!"

하벨이 갑자기 감탄하듯 소리치자 헤레스는 괜히 안경테를 만지작거렸다.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오… 라뇨?"

"있다면 보고 싶다, 이 말인가?"

"그, 그렇죠. 용이 있다는데 안 궁금한 사람이 어디 있나요?"

"만약에 용을 만난다면 비밀을 지킬 수 있는가?"

헤레스는 이제야 가볍게 웃으며 하벨을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장난을 걸고 계신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맞장구 쳐줘야지.

"물론이죠."

용이 있을 리가 없겠지만.

"제 종이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헤레스는 얼른 종이를 꺼내 살며시 흔들었다.

"칼리우스를 보았는가?"

"아! 새로 들어온 카샬 씨의 시종이죠? 되게 귀엽게 생겼어요. 그런데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르겠던데요?"

"용이야."

헤레스가 순간 숨을 참았다.

"……."

"칼리우스가 바로 용이라네. 나도 의태를 뺀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솔직히 궁금하지 않은가? 나중에 그 모습도 보려고……."

"도, 도, 도련님?"

헤레스가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하벨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깜박거리자 헤레스는 가지고 온 가방을 열어 약품을 살폈다.

"단순히 아픈 게 아, 아니셨다니! 죄송해요. 제가 못 알아본 부분이 있나 봐요. 틈의 세계의 부작용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요.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지, 진정제부터."

"헤레스."

"예, 예!"

"진정하게."

"진정하고 있어요."

"숨 좀 돌리게."

"숨은 계속, 후… 하. 쉬고 있어요. 후하."

"진정이 됐는가?"

"저는 괜찮……."

헤레스는 손에 쥔 약품을 내려놓고 차분히 안경을 올린 뒤에 고개를 돌렸다.

"농담… 이시죠?"

"아니네."

헤레스는 순간 휘청거리다 간신히 책상을 잡았다.

하벨의 눈이 덩달아 커져 이불을 걷자 헤레스가 다급히 말했다.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도련님!"

"…괜찮은 거 맞는가?"

"노력 중이에요. 정신을 다잡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죠. 마, 마법은 정신력과 싸움이니까요. 마법을 쓰면 마나만 소비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 말 치고 헤레스의 낯빛은 창백했다.

후.

하.

헤레스는 크게 심호흡을 해서는 몇 번이나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꿈이 아니네요."

"그래. 꿈이 아니네."

"용이… 진짜 있었네요."

"나도 얼마 전에 알게 됐네. 용이 그럴… 줄은 몰랐지만."

하벨이 싱긋 웃자 헤레스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자리에 앉아 제 품을 뒤졌다.

"받으세요."

헤레스가 내민 건 종이였다.

"됐네. 필요 없다네."

"아뇨. 꼭 받으셔야 해요. 생각해보니 저만 도련님의 비밀을 알고 있잖아요?"

하벨이 정령사라는 아주 큰 비밀.

"용을 알려주신 비밀에 대한 보답이자, 도련님을 향한 제 신뢰라고 생각해주세요."

"자네의 목숨값과 맞지 않아."

"아뇨. 용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아주 가치가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계속 '받아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걸 원하시나요? 안 받아주시면 진료 볼 때마다 말씀드릴 거예요."

하벨은 그 말에 덥석 종이를 받았다.

헤레스가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소리를 죽여 웃었다.

"저 지금 손 떨리는 거 보이시죠?"

하벨은 달달 떨리는 헤레스의 손을 보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아주 잘 보인다네."

"딱 하루, 아니 이틀의 시간을 주세요. 저도 마음 준비를 해야 해서요."

"물론이지. 이렇게 말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야."

"아뇨. 이건 제가 더 고맙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이기도 하고요."

헤레스는 방긋 웃었다.

사라졌다는 용을 만나게 해준다는 사람이 하벨 말고 또 누가 나타날까.

헤레스는 하벨을 볼 때마다 참 신기했다.

자아의 혼동이 찾아오기 전과 후가 너무도 다른 사람이질 않은가.

자신이 돌보았던 다른 환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미안함과 자책이 꿈틀거렸다.

'만약에.'

'자아의 혼동'과 관련된 책을 수없이 찾았다.

정말, 정말 드문 경우이기에 이와 관련된 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하벨이 왕실로 가 자리를 비웠을 때, 자신은 직접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도련님."

헤레스는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리지도 않았다.

'정말 만약에.'

"말해보게."

하벨의 맑은 눈동자에 헤레스는 가슴이 더 조여왔다.

"어쩌면… 도련님께 사과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찾아가서 본 이들은 모두 자신이 보았던 대로, 물의 저주 때문에 기억에 손상이 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정화제를 장기적으로 투입해 차차 자신을 인지하며 돌아왔다.

하벨이 앓는 물의 저주가 특별해 오래 걸리는 거라 그렇게 믿었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실수.

'내가 오진했다면.'

이건 단순히 사과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일어나시는 것도 보았고 오늘 상태도 괜찮으시고. 저는 먼저 일어날게요."

헤레스가 고개를 숙인 뒤 빠르게 벗어나려고 하자 하벨은 그녀를 붙잡았다.

"헤레스."

헤레스의 걸음이 멈췄다.

"무슨 결과가 나오든 사과할 필요 없어. 이건 자네의 잘못이 아니니."

역시 헤레스였다.

룬델도, 라르웬도, 카샬마저 자신이 하벨 티에라가 아님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헤레스의 잘못이 아니다.'

영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헤레스는 재차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다시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헤레스 씨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카샬이 걸어오며 물었다.

꼭 하벨이 헤레스를 울린 것 같지 않은가.

"아, 이게 먼저가 아니라……."

"쉬잇."

하벨은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렸다.

"아라가 자고 있어."

"몸은 어떠십니까? 저택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제 괜찮아. 헤레스도 아무 이상 없다고 했고."

하벨은 손을 내밀었다.

"이제 줘봐. 내가 정신을 잃었다고 레디나나 페트리오가 멈추질 않았을 테니까."

"도련님. 방금 저택이 발칵 뒤집혔다는 이야기를 못 들으셨습니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만 아무것도 모를 수는 없잖아?"

이제 곧 마법사가 올 테니, 조금 더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가주님께 도련님이 깨어나셨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벨은 그 말에 움찔거렸다.

룬델.

지금은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보고해줘.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 그러니까, 카샬. 오늘은 그냥 줬으면 좋겠어."

카샬은 하벨을 빤히 쳐다보다 제 주머니를 뒤졌다.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그 말이 쏙 들어갔다.

평소의 여유는 살짝 걷어진 채 무슨 일이든 매달려야 할 사람처럼 보였으니.

참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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