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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116화 (116/415)

116화. 한 번 보겠습니다(2)

* * *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목은 하나도 마르지 않습니다."

데론은 입술이 바짝 말랐음에도 고개를 저었다.

"에이, 지금 입술 봐봐. 가뭄이 든 땅이랑 똑같은데? 납치까지 당했으니 지금 얼마나 물이 간절하겠어?"

"그, 그, 그게……."

"아, 그럼 입만 놀린 거야? 첩자가 되겠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그럼 그렇지."

하벨의 시선이 차차 가라앉았다.

"널 보내주면 당장 어린아이처럼 네 뒷배에 있는 놈한테 연락하겠지? 다 들켰다고. 그리고 떠날 준비를 할 거잖아?"

데론의 눈이 한순간 커졌다가 목덜미에 느껴지는 두 개의 날붙이에 다급히 눈을 질끈 감았다.

"먹겠습니다. 머, 먹겠습니다……!"

카샬은 데론에게 물을 건넸다.

데론의 손이 부르르 떨려 물이 넘쳐흘렀다.

그의 가슴팍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얼굴마저 창백해졌다.

하지만 하벨은 그가 전혀 딱하지 않았다.

모름지기 나라를 팔아먹을 놈들은 그 누구보다 비참하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저놈들이 흙탕물을 일으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저런 놈들 때문에 내 사람들이 죽었다.'

하벨은 이가 절로 갈렸다.

보기만 해도 역겨운 족속들.

"아 참, 너희가 얻으려고 했던 그 기술 말이야. 웨인이 마법사 협회에 넘기려고 하던데?"

"…마법사 협회에 말입니까?"

데론은 두 입 정도 마시다 말고 그대로 하벨을 쳐다보았다.

'마셨네?'

째깍째깍.

이제 죽음으로 향하는 놈의 모래시계가 뒤집혔다.

그 시간 동안 데론이 자신을 위해 무얼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하니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코스모피안 왕국이 마법사 협회를 경계하도록 날을 세우고, 마법사 협회가 자신을 더 주시하게끔 하는 방법이.

데론과 코스모피안 왕국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별개로 마법사 협회에 대항하는 공동의 적이 늘어나면 좋은 게 아니겠나.

"…그, 그럼, 웨인 톨 그놈이 이중… 첩자라는 말입니까?"

데론은 이를 갈며 눈을 번뜩였다.

"그렇게 되겠네. 그런데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제가 넘긴 그 돈……."

"그게 왜?"

"원래는 제가 가졌어야 할 돈이었습니다."

욕망과 뒤섞여 강한 분노가 꿈틀거렸다.

"아, 너보다 그 기술이 당연히 더 소중하지."

하벨은 데론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저렇게 알아서 이유까지 만들어주니 참 고마웠다.

분노에 불이 붙었을 때 보내줘야지.

"이제 가도 좋아."

데론은 물을 먹다 말고 콜록거렸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가도 돼. 그게 아니라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어?"

아무 대가도 없이 보내준다는 저 말에 데론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물에 독을 탄 것도 아니라니.

데론은 입가를 닦는 척하며 천천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굴려도 하벨이 자신을 순순히 보내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정말 그냥 보내주는 건가.'

웃기게도 화가 남과 동시에 고마움이 일렁거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일단 집어치우고, 강자가 내미는 저 자비를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아야 했다.

"코스모피안 왕국은 티에라 가문을 언제든 포용할 생각이 있습니다."

"오, 왕국이 티에라 가문에 호의적이라는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 언제든지 양팔을 벌리며 환영하는 건 물론, 아마 무슨 조건이든 최대한 맞춰줄 겁니다."

하벨이 호응하자 데론은 신이 나서 입을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코스모피안 왕국이 이렇게 한 이유도 티에라 가문이 필요해서가 아닌가.

자신이 그 중간 역할을 한다면 떨어질 이득이 얼마나 클까.

'머리를 굴리는 게 노골적으로 보이네. 이제 곧 죽을 놈이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구나.'

하벨은 데론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이 나라는 티에라 가문을 보호해주지 못합……."

하벨은 데론이 개소리를 더 늘려놓기 전에 그가 손에 쥔 컵 속 물을 움직여 얼굴에 고스란히 쏟아냈다.

"푸흡……!"

갑작스럽게 쏟아진 물세례에 데론은 당황한 눈초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물을 만지지 않았다.

아무도.

마법인가.

'…그럴 리가. 물 마법사는 이미 사라졌을 텐데.'

물 마법사는 물이 오염된 이후로 완벽히 사라졌다. 마법사 누구도 물을 다룰 수가 없었으니.

물을 맞았음에도 데론은 불쾌하기보다는 새로운 정보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썼다.

"꺼져."

하벨이 카샬을 보자 그는 데론의 입을 막았다.

"으… 으읍!"

"그럼 왔던 곳 그대로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래. 잘 갔다 놔."

하벨의 손짓에 카샬은 허리를 숙이고는 데론을 둘러업었다.

[대, 대장. 진짜 데론을 저대로 보내도 괜찮은 거야? 이 몸은 데론이 대장한테 해코지할까 봐 무서운데.]

하벨이 독의 힘을 사용했다는 걸 알지만, 아라는 걱정스러웠다.

하벨은 문이 닫히자마자 아라의 걱정을 달래주었다.

"물론 괜찮지. 나는 저놈이 얼마 안 남은 목숨을 활활 태워다줬으면 좋겠는데."

코스모피안 왕국에 보고할 때, 마법사 협회 이야기도 하면서 자신이 물 마법사일 수 있다는 심증을 꺼내면 얼마나 좋을까.

―…있잖아요, 도련님. 라르웬 님께서 땅을 사러 오실 때 좀 파격적인 말을 했는데 혹시 들으셨어요?

데론이 오기 전에 레디나가 자신에게 꺼낸 말이 있었다.

―도련님께서 마성물에 관심이 많다는 말을 하셨어요.

역시 라르웬이었다.

그사이 저런 재미있는 덫을 쳐놓다니.

'마성물에 관심이 많다는 뜻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진짜 마법에 관심이 있다.

아니면 마법에 재능이 있다.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쪽으로 오해하면 더 재미있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가진 힘이 사라진 물 마법사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도련님. 혹시 조금 전에 독의 힘을 사용하신 건가요?"

레디나의 물음에 하벨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봤어?"

"대놓고 꼼지락거리시는데 그게 안 보일 리가 있을까요?"

"안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요?"

레디나는 말을 하다 말고 다급히 입을 막았다.

웃음이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지금은 웃음을 참아야 할 때이기에 몇 번의 헛기침 후에 목소리를 냈다.

"방금 도련님께서 물을 움직이신 건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카샬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

하벨은 아라의 꼬리를 만지다가 깜짝 놀랐다.

"아뇨. 방금 저 카샬 같았어요?"

"좀?"

"…음. 카샬은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데요. 으음, 뭐랄까. 가끔 집사라기보다는 정체를 숨긴 귀족 같아요. 저는 귀족이 싫거든요."

레디나는 곧 자신의 입을 가리며 시선을 흘렸다.

"아, 물론 카샬이 싫은 건 아니에요. 가끔, 짜증 날 뿐이죠. 창틀의 먼지가 있니, 뭐니……."

"카샬이 귀족 같다고?"

"예, 카샬이요."

하벨은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몸에 익힌 예법만 없다면 행색은 영락없는 골목 대장 같은데.

하벨은 카샬을 비웃으며 말을 꺼냈다.

"어쨌든, 마법사 협회를 부수려면 한 가지 방법으로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미리 여러 가지를 만들어둬야지."

"도련님께서 마법사로서 당당히 마법사 협회로 들어가시는 방법 말이죠?"

[으응?]

아라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

[대장! 마법사 협회는 대장을 죽이려 했다구!]

아라의 꼬리가 바짝 섰다.

"알아, 아라야."

[그런데도 거기에 들어간다구?]

"일단은. 아직 확실한 게 아니야."

[대장은 바보야!]

아라는 소리치다 말고 흠칫 놀랐다.

이럴 수가.

하벨한테 무슨 말을 한 건지.

[이, 이건 이 몸이 잘못했어. 미안해에……!]

아라가 바로 하벨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혹시 말이에요, 도련님. 제가 좀 험한 소리 해도 되나요?"

하벨은 아라를 토닥거리다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미쳤다고?"

"그… 뭐, 비슷해요. 하지만 제가 한 게 아니니까 했다고 치시면 안 돼요."

겨우 이걸로 미쳤다니.

과거에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았다.

수족의 죽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물을 이용해 움직여 잠입했을 때도 있었는데.

하벨은 괜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런데 레디나."

"제가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생각해 봐. 마법사 협회에 들어가서 모두를 속이는 거야."

레디나의 눈동자가 살짝 굴러갔다.

입술마저 살짝 움직이자 하벨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살살 긁었다.

"되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확실히 재미는 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에요."

레디나는 간신히 유혹을 떨쳐내고는 하벨을 강제로 눕혀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이제 쉬세요, 도련님."

"……."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누워 있자 하벨은 천장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아라가 헤헤 웃으며 하벨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잠깐만, 레디나."

"왜요? 하실 말씀이 있나요?"

"지금 연락할 때가 있어."

"잡아드릴게요. 얼마든지 하세요."

"바안 저하께 할 건데?"

"누워서 받는다고 벌 받는 것도 아닌데요. 바안 저하께서 보시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솔직히 말하는 게 좋지 않아? …으함.]

하품과 함께 아라의 귀가 접혔다.

"레디나."

"네, 도련님."

"해줘야 할 일이 있는데."

"정말요?"

레디나는 활짝 웃다 엄지를 들어 자신의 목을 그었다.

"죽이면 되나요?"

"아니. 데론은 어차피 죽을 거야. 죽기 전에 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놈이 챙기려는 정보를 빼앗아 줬으면 해. 혹시 할 수 있어?"

"아. 염탐하는 거네요."

레디나가 손가락을 내렸다.

"할 수 없으면 말해줘."

정령으로 염탐하는 건 부정한 것들까지 고려해야 했다.

이건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룬델에게 부탁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직, 좀, 그런데.'

룬델이 자신을 하벨 티에라가 아님을 인정한 그 날 이후로 룬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 역시 자신이 어색했을까.

"아뇨. 할 수 있어요. 정보를 캐오는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까지 언급될 만큼 중요한 덕목이니까요."

"그럼, 웨인은 언제 죽는대?"

"빠르면 이틀, 늦으면 나흘 정도요. 정확한 시간은 아직 몰라요."

"오늘, 출발해야겠네? 내가 부탁한 일은 할 수 있겠어? 평소처럼 못하겠으면 그냥 말해줘."

하벨은 시간을 계산하며 아라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할 수 있다니까요, 도련님. 며칠 자리를 비워야 할 테니, 이 정도는 해드리고 가야죠. 제 신을 위해서."

신이라는 말에 또 발작하듯 하벨이 눈을 크게 뜨자 레디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그럼 저는… 칼리우스를 불러올까요?"

"연락용 아이템 정도는 쥘 수 있어."

"칼리우스의 마나가 회복되려면 대충 두어 달 정도 남았다면서요. 그런 것치고 카샬은 본격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던데요?"

"…뭐?"

"만약에 칼리우스가 이곳에 남겠다고 한다면 도련님은 거절하지 못하실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용이 카샬의 시종으로 일하는 걸 보고 있으라고?"

"저는 칼리우스가 용인 걸 떠나서요, …계속 이곳에 머물면 좋겠네요."

조심스러운 레디나의 말과 함께 살짝 일그러진 표정이 드러났다.

왠지 처음으로 그녀의 감정을 본 것 같아 하벨은 흠칫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칼리우스에게 보았던 짙은 외로움이 레디나에게도 보였다.

"아, 저도 군식구면서 괜한 참견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시녀로서 일하고 있는데 무슨 군식구야?"

"저, 검은 달을 배신하고 이곳에 머물러도 되는 거예요?"

레디나는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이미 그러기로 했잖아. 혹시 나만 그렇다고 알고 있었어?"

[아니. 이 몸도 아는데? 레디나는 여기에 있어도 돼! 이 몸은 레디나가 좋아.]

아라가 벌떡 일어나 레디나를 안아주었다.

"……!"

레디나는 이 포근한 감각을 알고 있었다.

아라였다.

레디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퍼졌다.

"…아뇨. 혹시나 확인 차 물어봤어요. 이래 봬도 저는 제법 신중한 편이거든요."

레디나는 아라를 토닥거린 후에 다시 이불 위에 살포시 놓았다.

"그러면 저는 이제 일하러 갈게요."

"창문 밖에 크라마가 놔둔 새가 있는데 데리고 갈래?"

"아뇨. 전 누가 감시하는 거 싫어해요. 아, 정령님들은 괜찮아요. 제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가는 길에 용용이를 불러줘."

"고마워요, 도련님."

레디나는 그제야 평소처럼 웃으며 방을 벗어났다.

딸깍.

[으하아… 압?]

아라가 하품을 길게 하자 하벨은 연락용 아이템을 건드리다가 아라의 입 속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뭐 하는 거야, 대장?]

아라가 당황하자 하벨은 낄낄 웃었다.

"네가 말도 못 할 시절에 내 손가락을 자주 물었잖아?"

[그, 그건 이 몸이 잘못했어. 하지만 대장이 주는 맛 좋은 물이 그 손가락에서 나오는 걸 어떡해.]

"많이 컸어, 아라야."

[헤헤. 다 대장 덕분이야. 이 몸은 대장이 강해지면 같이 강해지고 있어! 봐봐.]

아라가 허공에 떠서는 꼬리를 붙잡았다.

[으흠!]

화르륵.

꼬리 끝에서 불이 타올랐다.

천천히 흔들리는 꼬리에 불꽃이 궤적이 그려졌다.

[짠! 꼬리에 불을 붙일 방법을 용용이가 알려줬어! 용용이는 똑똑해!]

'용용이를 똑똑하다고 말하는 건 너밖에 없어, 아라야.'

하벨은 아라의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장, 대장! 또 있다? 이 몸이 하나 더 할 수 있어!]

아라가 두 발로 서는가 싶더니 발바닥을 허공에 파닥거렸다.

몽글몽글.

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하벨은 호기심을 느끼며 아라를 빤히 보았다.

[이 몸은 저쪽으로 갈 거야.]

아라가 물이 따라진 컵을 가리켰다.

"…세렌이 하던 건데?"

[응! 이 몸도 할 수 있어, 헤헤!]

아라는 제 꼬리를 닮은 물속으로 퐁당 뛰어들었다.

쏘옥.

컵의 물이 회전하더니 아라가 그 속에 튀어나왔다.

[짠!]

하벨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곧 감동이 치밀어 올랐다.

아라가 벌써 저만큼이나 자라다니.

"아라야."

[응.]

"조만간 금화 사러 가자. 좋은 거 사줄게."

[저, 저, 정말? 이 몸이 금화를 또 가져도 되는 거야?]

"물론이지!"

아라는 꼬리에 불꽃을 꺼트리며 다급히 금화를 찾아 내밀었다.

'대체… 꼬리 어디에 금화를 숨기는 거지?'

한 번은 일부러 찾아보려고 꼬리를 만졌지만, 아무리 해도 금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헤헤.]

아라는 금화를 꽉 안으며 행복함에 젖어갔다.

[아! 대장. 이 몸이 대장도 태울 수 있어!]

"오."

하벨은 당장 궁둥이를 들썩거렸다.

아라는 조금 전처럼 꼬리를 닮은 물을 만들어냈다.

중지보다 살짝 컸지만, 너무 조그마하지 않은가.

자신이 보기에 들어갈 수 없는 크기였다.

"이것도 용용이하고 해봤어?"

[아니. 이건 이 몸이 대장 몰라 연습했어! 어서 손을 내밀어봐.]

아라가 방긋방긋 웃자 하벨은 손가락을 슬쩍 넣었다.

무언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팔에서 걸렸다.

이건 실패였다.

뭐든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는 걸 알아도 하벨은 조금이라도 힌트를 주고자 반대 손에 물을 불러들였다.

아라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 안 돼! 대장 그러지 마!]

하벨은 찔끔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멋쩍은 눈동자로 아라를 바라보았다.

[실패해도 괜찮아! 이 몸은 진짜 괜찮다구! 대장은 어서 연락해. 이 몸은 잠깐 금화를 꼭 끌어안고 있을 거야.]

아라는 자신의 금화를 빤히 보는 하벨의 시선에 금화를 한 손으로 안고는 연락용 아이템을 발바닥으로 쳤다.

화면에 아라의 발자국이 고스란히 찍히자 하벨은 대견스러운 아라를 쓰다듬으며 바안에게 연락했다.

띠리링.

수신음 같은 게 들려오고.

띵.

연결됐다는 소리가 이어졌다.

<…하벨 공? 아까 낮에 통화하지 않았습니까? 혹시 또 무슨 일이… 설마, 벌써 데론을 잡아 왔습니까?>

"눈치가 빠르십니다, 저하."

하벨은 입꼬리를 올렸다.

쥐새끼가 언제 도망칠 줄 알고 마음 편안하게 가만히 두겠는가.

"저하. 웨인 톨과 통화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물어야 할 게 하나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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