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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90화 (90/415)

90화. 찾았다?(3)

* * *

'…찾았다?'

하벨은 아이가 꺼내는 말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핵이 부서져 마음을 놓던 순간, 갑자기 괴물에게 붙잡혔다.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이미 허공을 날지 않았던가.

날면서 피를 토해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틈의 세계든 그 괴물이든 당장 보이는 아이보다 놀랍지 않았다.

―찾.

―았.

―다.

왕실로 향하던 그때, 시간이 느려지고, 저 아이가 서 있었다.

분명 저 아이였다.

아니, 저 존재였다.

화르르륵!

그 어떤 순간보다 맹렬히 타오르는 검은 불꽃이 확실하다며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하벨은 당장 자신의 품에 안겨 부르르 떨고 있는 아라를 보호했다.

한껏 날카로워진 하벨의 시선에 아이는 당황했다.

"나, 나는 널 해칠 생각이 없어. 정말이야. 내 심장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아이는 하벨의 눈치를 살피다 천천히 땅으로 내려놓으며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달라…….'

그제야 하벨은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바짝 굳어져 보이는 몸과 달리 눈동자에 그인 세로줄.

어쩐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벨은 저 모습을 믿지 않았다.

어떻게든 몸을 또 움직여보나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아파……? 반쯤 정신을 놓고 있는 것 같은데?"

걱정이 섞인 아이의 물음에도 하벨은 뒤로 억지로 몸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하벨은 긴장했다.

이미 죽었기에 자신이 죽는 건 상관없었다.

다만, 이 몸을 돌려줄 때까지는 그럴 수 없기에 마음대로 움직여지질 않는 이 상황에 입안이 자꾸 말라 갔다.

"우리 저번에 봤지? 혹시 나 기억 안 나?"

아이가 그 자리 그대로 서서 물었다.

"봤지. 마차에서 말이야."

"기억하는구나. 날 기억해줬어!"

아이는 그 자리에서 기쁜 듯이 가볍게 뛰었다.

"그럼, 마차에서 내가 너한테 '찾았다'라고 했던 말도 기억해?"

"…기억해."

말을 하면 할수록 입 안에 피 맛이 감돌았다. 하벨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생각해라.'

왜 저런 말을 꺼내는 걸까.

하벨은 저 존재의 힘을 알기에 어지러움에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야만 했다.

"고마워, 기억해줘서."

감사를 표현했음에도 경계심이 가득한 저 눈빛에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하벨이 또 움직였고, 아이는 흠칫거렸다.

하벨의 품에서 바둥거리는 존재를 보더니 아이는 양 손바닥을 펼쳐 살짝 올렸다.

"너는 당연하고, 저 아이도 해칠 생각이 없어. 네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

아이의 눈동자가 빙그르르 돌아가다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네가 소중히 생각하는 아이잖아?"

아이의 시선이 아라를 향했다.

"…보인다고?"

하벨이 긴가민가하며 묻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마차에서 눈도 마주쳤잖아? 그렇지? 무섭지 말라고 방긋 웃어줬는데. 혹시 기억해?"

아라는 부드러운 아이의 목소리에 질끈 감은 눈을 떴다.

순간 움찔거렸지만, 아라는 곧 눈을 깜박였다.

[오늘은… 무섭지 않네?]

"저, 저번에 무서웠어? 미안해! 나는 웃는다고 웃었는데. 아직 표정을 짓는 게 어렵다는 걸 알았는데 무서웠을 줄이야. 절대 아니야. 나는 너를 무섭게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어. 아마… 제때 안 배워서 그런가 봐."

아이의 어깨가 힘없이 늘어지자 아라는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몸도 아직 서툴러.]

"나랑 같네? 나도 서툴러. 엄청 많이. 아직 작기도 하고."

[이, 이 몸도 작아. 앞으로 쑥쑥 클 거야!]

아라는 하벨을 붙잡으며 꼬리 끝을 살짝 흔들었다.

아이가 헤실거리자 아라는 배시시 웃었다.

둘이 내보이는 낯선 기류에 하벨은 비로소 숨을 골랐다.

아이는 한결 편해진 하벨의 숨소리에 당장 달려와 바로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이렇게 널 찾을 줄은 몰랐어."

배시시 웃었다.

"엄청 반가웠어. 아니, 너무 반가워. 정말로, 이렇게, 이렇게……."

반가움을 넘어 아이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는 그 표정에 벅찬 감정이 보였지만, 하벨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너는 반가움을 그렇게 표현하는 거야?"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아이는 자신의 눈을 비비다 활짝 웃었다.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널 봤고. 반갑다는 표현을 해야 하는데. 내가 가진 마나를 몽땅 털어 넣어 어떻게든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아직 회복도 못 했고, 쫓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말 잘했어."

'쫓기고 있다고?'

의외의 사실에 호기심이 듦에도 하벨은 왜 자신을 만나러 그래야만 했는지가 더 알고 싶었다.

"왜 그렇게……."

하벨은 말을 하다 말고 몸이 부들부들 떨려 잠깐 심호흡했다.

세 번째 막을 찌르는 불순물과 어지러움, 갑자기 날아온 충격까지 겹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저 존재가 자신을 공격한다면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까.

"숨은 천천히 쉬어야 해. 내가 대신 말해줄게. 왜 그렇게까지 한 거냐고?"

하벨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당연하지. 너는 용이니까."

어떤 고민도 없이 내뱉는 말에 하벨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세상의 수호자이신 용들의 왕이시여…….

하벨 티에라가 자신을 용의 왕이라 착각해 이 몸으로 부르지 않았던가.

저 존재조차 자신을 그렇게 부를 줄은 몰랐다.

"에이, 내 앞에서는 그렇게 널 숨길 필요 없어. 다른 인간들은 몰라도 내 눈에는 보여. 나와 같은 조금 특별한 존재잖아?"

"너와… 같은?"

하벨의 물음에 아이는 차분해졌다.

"응. 바다와 물의 냄새가 이렇게 나는데? 인간은 그럴 수 없어."

바다와 물의 지배자, 용왕.

하벨은 정확히 자신을 가리키는 말에 가슴이 꽉 막히며 두려움까지 넘실거렸다.

이제껏 자신을 알아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괜찮아. 나를 무서워하지도 돼."

"말해……!"

"나는 용이야."

아이는 드디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는 듯이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용?'

용이라니.

하벨의 표정이 얼었다.

―…용을 찾으십시오.

틈의 세계에 나온 괴물에게 끌려가 만났던, 얼굴을 가린 그자가 꺼냈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이 세계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용이었지."

아이는 너무도 환히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딸깍.

그 순간 머릿속에서 갑자기 버튼이 눌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은 칼리우스. 이 세계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용이지."

갑자기 나타난 존재는 자신을 그렇게 말했다.

용이라니.

미칠 듯한 의문이 넘실거렸다.

용은 이미 다 사라졌을 텐데.

그건 세 살짜리도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무기력하게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붉은 눈동자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저 존재는 도무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압도적이었고, 위압마저 고스란히 느껴져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

"도련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손길과 함께 카샬이 보였다.

"뭐 하시는 겁니까?"

"너도 들었지? 용이라니. 용이… 살아 있는 거야?"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서 마차로 오르시지요!"

카샬의 힘을 버틸 수 없었다.

"오늘."

하지만 그때, 칼리우스가 또 말을 꺼냈다.

카샬마저 그대로 멈출 만큼 끝을 알 수 없는 압박에 심장이 요동쳤다.

"…우욱!"

다리에 힘이 풀려 온몸이 덜덜 떨리다 못해 토악질이 튀어나왔다.

두려웠다.

저 거대한 목소리가 그저 두려웠다.

감히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피가 말라가는 기분.

한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악."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나는 마지막 용으로서 이 세상과 너희에게 복수하겠노라."

말 속에 묻은 지독한 슬픔에 눈물과 콧물을 쏟다 고개가 저절로 올라갔다.

흠칫.

어쩐지 눈이 맞은 것만 같아 몸이 절로 떨렸다.

"…세상이, 그리고 네놈들이 용을 죽였으니. 너희도, 이 세상도 이제 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용을 죽였다고……?

머릿속에 의문이 맴돌 무렵, 저 존재는 고고한 자태로 복수를 외치고 사라졌다.

그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거대한 존재였다.

쿵쿵.

심장이 계속 불안하게 뛰었다.

정말로 복수를 다짐한 저 용이 멸망을 불러올 것만 같았다.》

하벨은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기억과 함께 어떤 힘이 자신을 짓누르는 게 느껴졌다.

[대장……?]

아라는 하벨의 이상함을 눈치챘다.

옷자락을 꼭 잡으며 흔들었다.

[대장, 괜찮아? 이 몸이 보기에 지금, 지금 대장이 너무 이상해.]

"…커헉!"

하벨은 그만 피를 내뱉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라는 그대로 멈췄고, 칼리우스는 당황하며 하벨의 얼른 입가를 닦았다.

'이… 기억은 대체.'

마치 하벨 티에라가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질 않은가.

'그럴 리가…….'

이 기억이 어떻게 가능한가.

지금 자신이 본 칼리우스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죽으면 안 돼!"

칼리우스의 얼굴이 소매를 붉게 만드는 피만큼이나 짙게 일그러졌다.

"이제 너뿐인데…!"

목소리에 슬픔이 어렸다.

[우리 대장은 안 죽어! 그런 소리 하지 마!]

아라는 눈물을 글썽이나, 꾹 참고는 해결 방법을 생각하다 소리를 냈다.

[카샬…! 연락용 아이템!]

하지만 자신은 연락용 아이템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다.

심지어 그건 하벨의 아공간 주머니에 있지 않은가.

"카샬이 누군데?"

칼리우스가 다급히 물었다.

[대장의 집사! 카샬이 대장의 정화제를 가지고 있어!]

"기, 기다려 봐! 내가 불러올게! 당장…!"

칼리우스는 하벨이 날아왔던 방향을 기억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이 몸도 같이 가! 너만 가면 카샬은 믿어주질 않을 거야!]

아라는 하벨이 다치지 않게 식물로 살짝 덮어주며 토닥거렸다.

[이 몸이 금방 다녀올게. 아프지 말고 있어. 아프면 안 돼, 대장.]

아라는 하벨을 꼭 끌어안고는 앞장섰다.

'잠깐만. 잠깐만.'

하벨은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천천히 흐려지는 시선 속,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소름이 돋아났다.

고개를 힘겹게 돌리자 누군가를 보였다.

'저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후드로 가려진 존재.

자신에게 용을 찾으라고 알려준 그 존재가 아닌가.

그는 자신에게 걸어왔다.

눈동자를 위로 올리자 높이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 미소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웃지 마.'

하벨은 밀려오는 혼란스러움에 화가 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왜 자신에게 용을 찾으라고 말했는지.

랜턴의 그 빛이 저 기억과 이어져 있다면.

'대체…….'

"걱정하지 마십시오."

"…뭘?"

입에서 느껴지던 피 맛이 더 진해졌다.

"전부다."

"용을……."

용을 왜 찾으라고 한 건지.

그 질문을 꺼내기가 버거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 존재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등을 토닥거리는 부드럽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손길을 따라 하벨은 내려오는 눈꺼풀을 막지 못했다.

'제기랄…….'

의문을 품은 채로.

* * *

"기억해주십시오, 용의 왕이시여."

익숙한 목소리에 하벨은 놀라며 감았던 눈을 떴다.

'…너는.'

자신의 앞에 익숙한 존재가 서 있었다.

'하벨 티에라.'

그는 아무런 감정도 내보이질 않았다.

몇 번이고 거울을 통해서 봤던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 어색했고, 낯설었다.

"칼리우스는 세상을 멸망시킨 원인 중 하나입니다."

잠깐만.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것도 꿈일까.

'…아니야. 달라.'

과거를 보았기에 지금 펼쳐진 상황이 꿈과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오히려 꿈이라 착각할 정도로 생생했던, 아라를 만난 그 장소와 비슷하지 않은가.

'하벨 티에라. 하벨 티에라!'

자신이 하벨 티에라에게 달려가지만, 그 거리가 줄지 않았다.

'네가 나한테 보여준 그 기억은 대체 무엇인가!'

하벨은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보았다.

'나한테 남긴, 팔찌에 달린 랜턴. 그건……!'

"제발, 그 사실을 기억해주십시오."

하벨 티에라는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 * *

"…잠깐만!"

하벨은 손을 뻗으며 눈을 떴다.

손등에 꽂힌 링거가 같이 흔들렸다.

커다랗게 뜬 눈동자가 움직이길 바빴다.

[대장!]

갑자기 아라가 보여 하벨은 흠칫 놀랐다.

아라는 울상을 지었다.

[아직도 아파? 아픈 거 아니지? 이 몸이 누구인지 알겠어?]

"…괜찮아. 괜찮아, 아라야."

하벨은 아라를 토닥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방이었지만, 자신이 알던 곳이 아니었다.

아라의 보드라운 촉감이 밀려오자 그제야 이곳이 현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진땀이 흘러내렸다.

콩닥콩닥.

아라의 거친 심장 소리에 하벨은 비로소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혼란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세상이. 이 세상이… 멸망할 겁니다.

하벨 티에라가 그냥 한 말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뭔가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슬픈 그 단어를 또 떠안게 될 줄이야.

책임감.

미친 듯이 지키고 싶었지만, 지키지 못했던 그 단어가 자신을 압박했다.

'…하벨 티에라.'

하벨은 그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원망스러웠다.

'대체 너는 무엇을 위해 나를… 네 몸으로 불렀던 것인가?'

실패한 왕.

배신당한 왕이기도 한 자신은 더는 짊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린 기분이 휩싸였다.

'칼리우스와 관련된 생생한 기억은 무엇이며, 내 의식 속에 찾아와 꺼낸 그 말을 대체 무엇인가.'

마치 모든 게 처음부터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은가.

'그건…….'

찰랑.

팔찌에 달린 랜턴이 흔들렸다.

자신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했던 그 랜턴.

마치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하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보았던 그 기억이 진짜라면.

이 모든 걸 하벨 티에라가 준비했다면.

지금껏 보았던 그 불꽃들이 무얼 의미했겠는가.

멍청했다.

'빌어먹을…….'

이제껏 하벨 티에라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랜턴에 불이 붙는다고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

너무도 멍청했다.

하벨 티에라가 처음부터 원했던 건.

―부디, 이 세상을, 제 가족들을 지켜주십시오.

가족.

―세상이. 이 세상이… 멸망할 겁니다.

그리고 세상의 평화였는데.

하벨은 감았던 눈을 떴다.

'멸망.'

그래.

저 랜턴의 불꽃은 처음부터 멸망의 원인을 나타내고 있었다.

으득.

하벨은 이를 악물었다.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카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어쩐지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아마 일어나셔서 혼란스럽겠지만, 여기는 수도에 있는 티에라 가문의 별장입니다. 급히 이쪽으로 모셨습니다."

"…카샬."

하벨은 상체를 일으키며 카샬을 무겁게 불렀다.

하벨에게 안겨 있던 아라가 고개를 올렸다.

"걔는 어디 있어?"

칼리우스.

세상을 멸망시킬 마지막 용.

"칼리우스… 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 혹시 걔를 알고 있었어?"

하벨의 굳어진 표정에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하벨에게 자아의 혼동이 찾아온 뒤 처음 보는 두려움에 카샬은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카샬은 사실을 말했다.

"아뇨. 처음 봤습니다."

정말로 자신은 칼리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처음 봤으니.

쿵.

하벨은 그 대답에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쿵.

자신이 보았던 그 기억과 랜턴, 이 모든 게 확실해질 사실은 하나뿐이었다.

'…하벨 티에라는.'

미래의 일을 과거인 자신에게 알려주는 방법.

쿵.

과연 이게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과 함께 언제나 자신도 바랐던 일이었으니.

'회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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