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잡았다!(2)
* * *
"마법사 협회에 대항한다고?"
라르웬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물었다.
마법사 협회에 대항할 자들이 누가 있겠는가.
"설마 너,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야?"
"아, 아닙니다! 등록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허둥지둥하며 팔을 걷어 팔목에 찍힌 바코드를 닮은 문양을 보여주었다.
"등록되어 있지만, 마법사 협회를 탈퇴했습니다."
'헤레스도 저 말을 했는데.'
하벨은 헤레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음, 조건이 엄청 까다롭고, 불이익이 많긴 한데 탈퇴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아주 딱딱한 돌처럼 굳어버린 협회가 싫어서 나와버렸죠.
분명히 조건이 어렵지만, 마법사 협회를 탈퇴할 수 있다고 했다.
'어쨌든, 저 이유로 랜턴에 환한 빛이 감도는 건가?'
하벨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이제껏 환한 빛이 나타났던 사람들은 어떤 형태든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는가.
그래도 저 남자가 한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법사가 성장하려면 마나가 담긴, 가공되지 않은 물체가 필요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저희는 그걸 '마성물'이라고 부릅니다."
남자는 공손하게 모은 손을 꽉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이 마성물을 마법사 협회가 독점하고 있죠. 마법사들이 강제로 마법사 협회에 소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형님께 들었던 말인데?'
하벨은 마나가 깃든 땅을 사면서 라르웬에게 저 말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잘 말해줬네요. 마법사 협회도 부서트려야 할 곳 중 하나예요."
연기와 함께 레디나가 불쑥 나타났다.
"아주 썩어버렸으니까요."
"으아악!"
[우오오옵!]
남자는 갑자기 들려오는 말에 기겁했고, 아라가 한 박자 늦게 놀라다 다급히 하벨에게 매달렸다.
쿵쿵.
얼마나 놀랐는지 아라의 심장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이는 하벨도 마찬가지였기에 소리 없이 아우성을 내지르며 숨을 골랐다.
"…기척 좀 내."
"누구예요? 죽이면 되나요? 안 아프게 죽여줄게요."
레디나가 어느새 남자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고 있자 하벨이 그녀를 말렸다.
"아직은 아니야."
"아니었어요? 얼굴이 누구한테 맞은 것처럼 보여서 헷갈렸네요."
레디나가 활짝 웃으며 다른 손으로 가면을 꺼내 썼다.
"미안해요. 제가 말보다 손이 먼저 나오거든요. 누구한테 맞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쾌하시길 빌게요."
레디나는 단검을 집어넣고 뒤로 물러섰다.
"…허어."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숨을 참던 남자가 겨우 호흡했다.
이토록 생생한 살기는 처음이었다.
"아 참, 일은 깔끔하게 처리하고 왔어요."
하벨 일행이 땅을 살 동안 레디나는 뒷세계 수장을 습격했다.
모스튼 벨이 누구한테서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헷갈리게 하고자 연막을 치는 작전이었다.
"이쪽은 아직이야. 변수가 끼어들었거든."
하벨은 남자를 가리켰다.
"마법사 협회를 탈퇴한 마법사야. 우리가 샀던 땅을 요구하러 쫓아왔다고 해."
"어떻게요?"
레디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샬은 물론 라르웬까지 자신의 기척을 읽을 수 있는 수준에 있었다.
그런 그들이 저 얼빠진 남자의 미행을 눈치채지 못했다니.
"아마, 저 남자의 마법 때문이지 않을까? 말해봐."
하벨의 시선이 느껴지는지 남자는 연신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동물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하벨은 그제야 자꾸 자신이 느꼈던 시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계속 말해줘."
"당신들이 산 그 땅에 마성물이 있을 가능성이 엄청 큽니다. 그 마성물을 손에 넣는다면……."
"감당할 자신은 있어?"
"예……?"
"마법사 협회를 건드리는 거잖아. 저항이라는 말을 썼는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여. 만약에 내가 방금 했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미리 사과할게."
"……."
남자는 침묵했다.
자신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감당할 자신이 있어."
이미 빚도 있지 않은가.
단지 지금이 아닐 뿐이지 마법사 협회도 손을 볼 참이었다.
티에라 마을 뒷세계에 처음 만났던 마법사를 고용한 자가 마법사 협회이질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티에라 가문의 벽이 된 네 마을 중 하나인 아르에느 마을.
그 마을의 귀족이었던, 현재 티에라 가문 지하 감옥에서 썩어가는 뮈에르 진젤과도 손을 잡은 적이 있었다.
자신을 먼저 건드리는 건 마법사 협회였다.
"여기에서 손을 떼는 건 어때?"
하벨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저 남자를 굳이 죽여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땅을 샀다는 사실도 어차피 모스튼 벨이 알게 될 테고, 랜턴의 불도 신경 쓰였고.
"겨우 찾은… 장소란 말입니다. 지금 떼를 부린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마법사 협회를 탈퇴한 이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습……."
"이름이 뭐야?"
"크… 라마입니다."
"그래, 크라마. 널 살린 나와 우리의 자비를 생각해야 할 거야."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볼 수 없습니까? 저는… 동물을 조종할 수 있는 마법이 있습니다. 앞으로 제 마법이 성장하게 되면 분명 더 도움이 될 겁니다."
"크라마. 이 이상 자비를 시험하게 하지 마."
하벨은 갑자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하벨의 다리 위에서 상황을 빤히 지켜보던 아라가 위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대장? 머리가 아파?]
[날씨가 바뀌었어. 내일 새벽부터 비가 올 거야. 아무래도 그 영향인지도 모르지.]
루룸이 아라의 시선을 외면하지 못해 입을 열었다.
"이걸 받으십시오."
크라마는 굳은 결심을 하고는 하벨에게 종이를 꺼냈다.
일반 종이가 아니었다.
페트리오에게 받았던 종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무렵, 종이에서 '한 번 만'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무슨 짓이야? 그냥 가라니까 왜 이걸 넘겨?"
하벨은 질겁하며 종이를 내밀었다.
저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순환의 길과 이어져 있어 찢어지면 그곳에 상처가 생길 수 있는 목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제 의지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목숨이나 다름없는 걸 넘기는 멍청한 짓을 비꼬아도 괜찮습니다. 그만큼 저는 간절하고, 이번 일에 제 목숨을 걸었습니다."
크라마는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해주신 것들은 전부 인정하겠습니다. 귀족이 무서웠습니다. 놈들과 마법사 협회가 얼마나 돈독한지 알고 있기에 더 겁이 났습니다. 지금 하려는 일이 놈들 귀에 들어간다면 모든 게 무너지니까요."
"나는 안 무섭고?"
"살려주셨잖습니까."
그 말에 하벨은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크라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사실 하나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저들의 약점을 쥔 상태에서도 살려주었다는 게 얼마나 큰 사실인지 크라마는 잘 알고 있었다.
법마저도 강한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제 마법을 통해 땅을 여러 개 사신 걸 보았습니다."
"죽기 싫으면 입 잘못 놀리지 마."
카샬이 날카롭게 말을 쏘아냈다.
"입을 잘못 놀리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제 마법이 쓸 만하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 제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잖습니까."
[이 몸은 몰랐어.]
아라가 입을 살짝 벌렸다.
[대체 어디에서 마법을 사용한 걸까, 루룸?]
[아까 동물을 조종할 수 있다고 했잖아? 새를 조종해 하늘에서 본다면 눈치채기는 어렵지.]
루룸은 불만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가지고 계셔주십시오. 그때, 이번 일과 별개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를 갚겠습니다."
크라마는 허리를 숙였다.
하벨이 한숨을 내쉬자 라르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구름이도 왔으니까, 마무리하러 가자고, 꽃님아."
크라마 때문에 도중에 끊어진 일을 처리해야 했다.
"혼자 가십시오."
카샬은 레디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은 아직 페트리오도 레디나도 믿지 못했다.
끽.
하벨이 낡은 의자에서 일어나자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안 돼. 너는 여기까지야. 고집부릴 생각하지 마."
라르웬은 바로 하벨에게 따끔히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없어. 나랑 타협할 생각하지 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내일 비가 온다는 거 못 들었어?"
라르웬이 너무도 단호했기에 하벨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비'라는 말에 이번만큼은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저번 거대 정화 장치 일로 하벨 티에라의 몸을 함부로 굴려 룬델에게 미안했으니까.
"…비가 내린다고요?"
"그래."
카샬의 물음에 라르웬이 대답했다.
카샬은 숨을 짧고 깊게 내쉬었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생겨버렸다.
고집이 확 늘어난 도련님이 비가 오는 날 돌아다닌다는 말을 꺼낼 확률이 몹시 높았으니.
"갈래, 말래?"
"가야죠. 별수 있나요."
재차 이어진 라르웬의 물음에 카샬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잘 모셔."
카샬의 시선은 레디나를 향했다.
"물론이죠. 저도 누군가를 모셔본 경험은 많아요."
레디나가 안심하라는 듯 말했지만, 카샬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빨리 오겠습니다. 되도록 빨리요."
카샬은 하벨을 향해 고개를 숙인 뒤 라르웬을 따라 낡은 오두막을 벗어났다.
"할 말이 끝나셨으면 갈까요?"
레디나는 문을 가리켰다.
"그래, 가자."
하벨은 한 걸음 떼다 말고 막연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크라마를 쳐다보았다.
"감시하지 마. 두 번의 자비는 없으니까."
"그러면……."
"불러도 내가 부를 거야. 넌 기다리고 있으면 돼."
하벨은 크라마의 종이를 흔들었다.
[어, 대장. 새야, 새!]
아라의 귀가 움직이더니 꼬리가 거세게 흔들렸다.
푸드드득.
새 한 마리가 날아와 크라마의 손가락에 앉았다.
"조심해요. 죽여버릴 뻔했잖아요."
레디나의 손에 하얀 깃털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안녕, 새야.]
아라가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새는 평소와 달리 날아가지 않았다.
새의 눈동자에 무언가 일렁거리는 듯했고, 이는 크라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게 크라마의 마법인가?'
크라마와 새 사이를 연결하는 실이 보였다.
[우와아! 대장! 이 몸이 새를 만졌다?]
아라는 자신보다 더 큰 새를 꼭 안으며 행복함에 배시시 웃었다.
"제가 필요하시면 이 새를 기억해주십시오."
"그래."
하벨은 새를 안은 아라를 보며 피식 웃다 돌아섰다.
[안녕, 새야. 도망가지 않아서 고마워.]
아라는 아쉬움에 손을 흔들며 꼬리부터 뒤로 물러났다.
* * *
"…오셨습니까, 도련님? 레디나?"
임시로 구한 집으로 돌아오자 페트리오가 하벨과 레디나를 맞이했다.
하벨은 가면을 벗으며 물었다.
"벌써 거대 정화 장치 일을 알아본 거야?"
"아뇨. 도중에 알려드릴 일이 생겨 이렇게 기다렸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길래 그래?"
"거대 정화 장치 정보를 얻는 도중에 제 부하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페트리오는 일단 설명보다 종이를 넘겼다.
종이를 보자마자 하벨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꼬리가 밟힌 거야?"
"아직 완전히는 아닙니다."
하벨은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종이에 쓰인 글을 읽어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최근 뒷세계의 흐름이 달라져 이를 파악하던 와중에 '가면단'을 알게 됐습니다. 뒷세계가 귀족들의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말도 안 되는 행동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다만, 두려운 게 있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의 편입니까? 부디, 귀족들의 편이 아니길 빕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하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종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맨 마지막에 자유를 상징하듯 새의 형상을 한 문양이 찍혀 있었다.
"도련님께서 하신 일이 바람이 되었나 본데요? 음, 이걸 혁명 또는 저항의 바람이라고 하죠?"
레디나는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누가 보아도 귀족들에게 억눌렸던 세력이 튀어나오는 소식이 아닌가.
"좀도둑. 네 부하가 만났던 이자가 누구인지 파악했어?"
하벨은 종이를 흔들며 물었다.
"아직입니다. 지금 파악하고 있습니다."
"미안한 표정 지을 필요 없어. 이렇게 새로운 세력이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누구도 몰랐으니까."
하벨은 재차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일이… 뭔가 커지는데?'
그저 뒷세계를 건드렸을 뿐인데 뭐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아.'
하벨은 밀려오는 부담감에 종이를 손에 움켜쥐고서는 페트리오에게 말했다.
"또 접근해오면 말해줘. 거대 정화 장치 일도 계속 살펴주고."
"알겠습니다."
"아, 에본한테서 연락은 없었어?"
"아직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모스튼 벨에게 이 소식이 닿지 않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잘됐네."
모스튼 벨이 눈치채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할 뿐이었다.
하벨은 두 사람에게 간단히 인사한 뒤에 방으로 올라갔다.
[대장.]
아라가 눈을 깜박거리며 하벨을 바라보았다.
[혹시 슬퍼?]
"내가?"
하벨은 오히려 무슨 소리냐며 아라에게 물었다.
[이 몸 눈에는 그렇게 보여.]
"아니.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
하벨은 아직도 손에 움켜쥔 종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하려던 일에 영향을 받은 건가?'
지금까지 없던, 혹은 눌려있던 상황에서 어떤 사건 하나가 시작되면 주변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곤 했다.
사람들은 이를 '저항'이라 불렀고, 자신 역시 그런 세력을 이끌고 성장했다.
기억이 흐릿한 와중에도 남은 기억의 조각이 원치 않게 머릿속에서 맴돌아 하벨은 걸음에 맞춰 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그럴 마음도 없고.'
이곳의 왕이 될 자는 바안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하벨은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