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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의 귀환-2화 (2/71)

2화 당신 이상해요

“들어가도 되죠?”

“네. 대표님은 일정 마무리되는 대로 곧장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흔쾌히 말하는 듯했지만, 비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도희는 두 사람의 수상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본부장실에 들어왔다.

대표실엔 찬 공기가 그득했다. 어제 새벽까지 회의가 있었다는 주완의 말과 달리 본부장실은 오래도록 비워 놓은 것 같았다. 도희는 손님용 탁자 위에 정성스레 싸 온 도시락을 올려 두고 비어 있는 주완의 자리로 또각또각 걸어갔다.

주완의 자리 뒤엔 크게 창이 나 있었는데, 블라인드 사이사이로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다.

도희는 책상 위를 비추는 빛줄기를 바라보며 그의 책상 가까이 다가갔다. 주완의 책상 위엔 결재 서류 몇 개가 올라와 있었다. 도희는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가 그 위에 쌓인 먼지를 쓸었다.

스윽. 먼지를 쓸자마자 손가락 모양대로 길이 났다. 도희는 의아한 얼굴로 결재 파일을 슬쩍 펼쳐 봤다. 한 개의 파일 안엔 한 장짜리 결재 서류가 들어 있었고, 서류마다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가장 밑에 있는 서류는 무려 일주일 전 올린 결재 서류였다.

밀린 건가? 왜?

어제도 늦게까지 회의를 한다고 했는데. 도희는 스멀스멀 밀려드는 의심을 지워 내기 위해 고개를 황급히 휘저었다. 더 이상 주완의 책상을 살피는 건 찜찜함만 더해질 것 같아 도희는 서류들을 제자리에 놓은 뒤 손님용 탁자 앞에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밖에서 잠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헐레벌떡 주완이 들어왔다.

항상 단정하던 그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셔츠 단추조차 제대로 잠그지 않은 채였다. 한 번도 회사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주완의 모습에 놀란 도희는 그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왜 그렇게 서둘렀냐는 듯 묻자, 주완의 미간이 단숨에 찌푸려졌다.

“왜 왔어? 연락도 없이.”

“네?”

도희는 생각지 못한 주완의 반응에 당황하며 그를 올려다봤다.

..깜짝 방문 이벤트를 처음 시작한 건 도희였다.

결혼식을 올리고 일 때문에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두 사람은 서로를 매일 같이 보고 싶어 했다. 아침에 눈 뜨면 옆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엔 거짓말처럼 서로가 그리웠다. 연애할 때야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사람들 눈을 피해 집에서만 데이트를 했다지만 결혼한 이후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도희는 주완과 알콩달콩한 전화 통화 도중 충동적으로 발칙한 이벤트를 떠올렸다.

-보고 싶다.

“방금 출근했잖아요.”

-못 믿겠으면 다시 집으로 갈까?

“풉, 무슨 소리예요. 빨리 일해요.”

-알았어. 오늘 일이 많아서 좀 늦을 수도 있어.

“알죠, 바쁘신 본부장님.”

-미안. 보고 싶다.

주완은 앵무새처럼 보고 싶다는 말을 쉴 새 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을 때, 촬영이 없는 도희는 뭔가에 홀린 듯 빠르게 검은색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썼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 회사에 도착하기 위해 시간 맞춰 집을 나섰다.

처음 로비에 들어섰을 때 도희를 흘긋거리는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도희는 재빨리 직원에게 얼굴을 보이고 출입증을 요청했다.

“깜짝 이벤트라서요.”

말갛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로비 직원은 재빨리 출입증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톱스타와 재벌. 세기의 결혼식을 마친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도희의 출입은 그 존재만으로 허락된 거나 다름없었다. 다시 한번 결혼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먼저 마주친 건 정 비서였다. 전달받은 내용이 없는 정 비서는 도희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그녀가 이벤트를 준비했음을 깨달았다. 정 비서는 그녀를 돕기 위해 공손한 인사를 생략하고 말없이 본부장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어, 들어와.”

정 비서가 문을 열기 직전, 도희는 마스크와 모자를 벗은 뒤 재빨리 머리를 정리했다. 그녀는 다소곳이 서서 정 비서에게 단장이 끝났음을 눈짓으로 알렸다. 정 비서가 씩 웃으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도희와 주완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도희는 하던 일을 멈춰 버린 주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머리를 올려 드러낸 반듯한 이마, 단정하게 정리된 진한 눈썹. 매혹적인 속쌍꺼풀을 가진 눈매와 동공이 보이지 않도록 깊은 검은 눈동자. 크고 날렵한 콧날과 살짝 도톰한 입술을 가진 그는 일하다 만 모습마저 완벽하게 섹시했다.

“너무 멋있네.”

도희가 매혹적으로 웃으며 주완을 향해 싱긋 웃었다. 주완은 그녀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나왔고, 그 사이 정 비서는 눈치껏 문을 닫아 주었다. 주완은 긴 다리를 자랑하며 그녀 앞에 성큼 다가섰다. 도희는 185cm의 키를 자랑하는 주완을 사랑스럽게 올려다보며 말했다.

“놀랐죠? 남편이 보고 싶대서 톱스타가 친히 왔……읍!”

주완은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도희의 두 뺨을 잡곤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입술이 삼켜진 도희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주완의 혀가 농밀하고 집요하게 도희의 입속을 헤집었다. 도희는 바로 문밖에 서 있을 비서들이 신경 쓰였지만 갈급하게 움직이는 그의 뇌쇄적인 입술을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사무실엔 타액이 얽히는 소리만 진득하게 메아리쳤다. 그의 말캉한 혀가 도희의 혀를 누르고 핥기를 반복했다. 도희는 그가 스스로 키스를 끝내기 전엔 밀어낼 생각이 없는 듯 기꺼이 그의 움직임에 응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몇 분 동안 정열적인 키스를 이어 가던 그는 더운 숨을 헐떡이며 풀린 눈으로 말했다.

“집에 가자.”

“네?”

다짜고짜 키스를 퍼부을 때보다 더 황당한 주완의 제안에 도희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도희를 보는 주완의 눈빛은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타오르는 중이었다.

주완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도희는 그의 단단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살짝 밀어내며 경고했다.

“이러면 다음부터 나 못 오지. 방해되잖아.”

“방해라니 서운하게. 와. 앞으로 계속 와.”

“지금은 같이 밥만 먹어요.”

“그래.”

도희의 말이라면 무작정 다 들어줄 사람처럼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주완을 보며 도희가 또다시 못 말린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아요? 스케줄 확인했어?”

“다른 약속은 취소해도 돼.”

“네? 그럼 안 되지! 선약이 먼저죠!”

도희는 기겁하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물러날 리 없는 주완은 그녀의 허리를 당겨 제 몸에 꼭 붙이곤 속삭였다.

“그러지 마. 나한텐 네가 항상 우선이야.”

“아니, 그래도…….”

“밥은 먹고 가. 흥분시켜 놓고 이 정도 책임은 져야지.”

..도희의 깜짝 방문은 그 이후에도 잊을 만할 때마다 계속됐다. 주완은 도희가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이벤트를 돌려주고 싶었는지 그가 짬을 내어 직접 도희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랬던 주완이었는데.

그간 자신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었던 주완에게 익숙해졌던 걸까.

“미리 연락했어야지. 바쁘면 어쩌려고.”

도희는 깜짝 방문 이후에 느껴지는 냉랭함이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미처 문을 닫지 않은 채 다그치듯 말하는 주완의 말에 밖에 있던 비서들도 얼어붙은 게 보였다. 그러자 뒤늦게 주완을 쫓아온 정 비서가 조용히 대표실 문을 닫아 주었다.

대표실 문이 닫히고, 숨 막히는 침묵 가운데 주완이 그제야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건…… 생각 못 했어요. 미안해요.”

앞으로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열정적인 모습이 과거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도희는 문득 서글퍼졌다. 그의 사랑 덕에 반짝거렸던 시절은 이제 다신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도희는 늘 그의 눈치를 봤고, 그 때문인지 이전처럼 발랄하고 당당한 모습은 잘 나오지 않으니까. 도희는 점차 자신감이 떨어졌고, 주완이 무심한 태도를 보일수록 빛바랜 사진처럼 제 색깔마저 흐릿해지고 있었다.

도희의 사과를 들은 주완은 그제야 깊은숨을 몰아쉬며 거울 앞에 서서 헝클어진 머리를 넘겨 단정하게 정돈했다.

“나가자. 밥 먹으러 왔잖아.”

“아, 그게…….”

주눅 든 도희는 주완에게 어떤 말을 뱉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손수 만든 도시락을 싸 왔다는 말조차도.

도희가 탁자 위에 놓인 종이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주완이 머리를 만지다 말고 성큼성큼 걸어와, 종이 가방 안을 살폈다.

“……내가 만든 거예요.”

매서운 눈초리로 종이 가방에 든 도시락을 응시하는 주완을 보며 도희가 용기 내서 말했다.

도희는 기대감을 갖고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환하게 웃는 주완의 모습을 기대한 도희의 표정은 단 몇 초 만에 시무룩해졌다. 주완은 도시락을 가방 안에서 꺼내는 동안에도 전혀 기쁜 기색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건 뭐 하러 했어. 힘들게.”

……기뻐할 줄 알았는데. 도희는 실망감을 미처 감추지 못한 채 시선을 떨어트렸다.

“잘 먹을게.”

주완의 무뚝뚝한 감사 인사가 떨어졌지만, 도희는 여전히 찜찜했다.

그는 깜짝 방문이 이제 싫어진 걸까, 정성스러운 도시락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이제 뭘 해도 내가 싫은가.

4단 도시락이라 딸깍, 딸깍, 여러 번 소리가 난 끝에 도시락이 펼쳐졌다. 김밥과 유부초밥, 베이컨 말이, 김치와 멸치볶음, 된장국 그리고 후식인 파인애플까지. 간단하지만 꼼꼼한 한상차림이었다. 주완이 젓가락을 들고 도희에게 하나를 건넸다. 도희는 떨떠름하게 젓가락을 받아 들었다.

그가 먼저 베이컨 말이를 입에 넣었다. 도희는 그가 입속의 음식을 다 삼킬 때까지 음식을 먹지 않고 기다렸다. 다 먹고 나면 짧은 감상 정도는 말해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완은 된장국을 한술 떠먹더니 곧장 김밥을 입에 넣었다. 참다못한 도희가 먼저 그에게 물었다.

“맛있어요?”

“응.”

눈을 자꾸 피하는 탓에 도희는 당최 주완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태도에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도희는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곤 진지한 얼굴빛으로 말했다.

“……연락 없이 찾아와서 화난 거예요?”

도희의 질문을 듣고도 주완의 시선은 여전히 아래쪽을 향해 있었다.

“아니.”

그는 여전히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꾸했다.

“그럼 좋아요?”

“응. 좋아.”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뭘까.

도희는 그의 상태를 가늠하느라 생각에 잠겼고, 그는 이 상태를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건지 쫓기는 사람처럼 음식을 입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도희는 두 사람에게 찾아오는 잦은 침묵이 불편했다. 그가 변한 건 분명한데 그게 사랑의 변화인지, 그저 심경의 변화인지 헷갈렸다. 기업의 본부장이니까, 주완이 바빠서 그럴 거라며 억지로 이해하려고 했지만, 자꾸 불안감이 엄습했다. 불안감은 도희를 자꾸 부정적으로 만들고, 돌아오지 않는 과거를 그립게 했다.

처음엔 이렇지 않았는데.

“주완 씨, 천천히 먹어요.”

“미팅이 있어서.”

이대로 지내는 건 멀어지는 사이를 방치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도희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총명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도희는 그가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식기를 놓고, 다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얘기 좀 할래요?”

“해.”

“듣고 싶은 마음은 있죠?”

조심스럽게 묻는다고 물었지만, 다소 날카로운 말투에 주완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희는 곧장 불쾌한 티를 내는 주완의 태도에 움찔했으나, 뭐라도 결판을 내 봐야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주완에게 주눅 들지 않으리라 생각한 도희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당신 요즘 좀 이상해요. 아무리 회사 일이 바쁘다곤 하지만, 나를 대하는 게 뭔가…….”

도희가 말을 시작하기 무섭게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지금 주완 씨 여기 있으면 안 된다니까요?”

“네, 저희도 알지만…….”

여자 목소리였다. 정체불명의 여자를 달래는 듯한 정 비서 목소리가 주위를 경계하는 듯 작아졌다. 문 바깥의 대화가 신경이 쓰인 도희가 말꼬리를 흐리고, 문 쪽을 바라봤다.

“계속해.”

주완은 도희의 말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듯 그녀를 채근했다. 그러나 도희는 문밖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가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오래도록 처리되지 않은 결재 서류, 나가서 밥을 먹자던 그의 말과 헝클어진 모습으로 헐레벌떡 나타난 그의 모습, 미팅이 있다며 밥을 급하게 먹던 주완의 모든 행동이 절묘하게 의심의 근거들로 떠올랐다.

도희는 조용히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정말, 이러고 싶지 않은데.”

“뭐?”

도희는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벌컥.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건 본부장실로 다짜고짜 들어오려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막고 있는 정 비서였다.

“아, 손님이 계셨네요?”

여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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