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자유를 갈망하는 새는 날지 못한다
* * *
"...."
침묵이 흐르는 방, 도끼눈을 뜨고 한 여인이 칠러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면 안되는 것.. 아시죠?"
"예."
"그런데... 오셨군요."
마치 엮여서는 안 될 것에 엮였다는 표정의 아르티네는 자신의 기사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케미안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 당신들이 다치게 한 건 아니지만 내 소중한 사람이에요."
"예.."
아르티네는 상황에 대해서는 잘 이해한 것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올라오는 화에 물을 들이켜 조용히 삭혔다.
"...."
"... 하아.. 데브라님까지 이곳에 오시면 상당히 머리가 아픈 것 알죠?"
"안다."
"아르티네님."
"아 고마워요~."
아르티네는 자신의 옆에 당당히 앉아있는 데브라를 보며 다시 머리가 아픈 듯 감싸 쥐었지만 하인들이 차를 가져다 주려 방으로 들어오자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아르티네, 그 말투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
"데브라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 자네 아버지의 친구한테 너무하는구먼 그래."
"언제 도와주신 적 있으세요?"
"... 자유기사들은 원래 이런 법이네."
"그놈의 자유기사들 중에서는 데브라님이 말하는 것처럼 다 지키는 사람 없어요."
"...."
아르티네의 뼈를 때리는 말들에 데브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기세를 이어 아르티네는 조용히 칠러웨이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 예?"
"일은 다 벌려두고..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것 아니겠죠?"
"아르웬을 데려갔습니다."
"그분은 저희와는 상관없어요."
"이곳에 왔던 사람입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기도 했죠."
"아르웬을 어느 정도 이용할 생각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뇨, 저는 그분을 톤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었어요."
"...."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는 아르티네를 보며 칠러웨이는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지만 그녀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기에 조용히 할 수밖에 없었다.
"알아요."
"구해야죠."
"....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건.. 저에게 도움을 바라는 건 아니겠죠?"
".... 아.. 그게 저... 제가 오자고는 했는데.. 그게 미안.. 합.."
"똥 뿌려놓고 아까처럼 '죄송하다.', '미안하다.'라는 말만 하고 도와줄 생각이라면 그만두세요."
"아.. 예."
칠러웨이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열이 받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아."
아르티네는 다시 한숨을 쉬고 하인들이 끓여온 차로 다시 목을 축였고 한숨을 쉬면서도 무언가를 챙겨온 데브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데브라님?"
"... 알고 있다."
"오.."
데브라는 조용히 백작령 주변의 지형이 그려진 지도를 펼쳤고 칠러웨이는 하나하나 손으로 그린 지도를 보며 감탄했다.
"자유기사들이 이곳 모두를 돌아다니며 그린 지도네."
"이런 것까지 만들다니.."
아르티네는 데브라의 지도를 보며 그와 적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파울로 황자와 그 녀석들은 분명 합류를 할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녀석들은 '캉'이라고 저급하게 불리고는 있지만 다른 명칭으로는 강철의 기사들이라고 불리지.. 1황자의 직속 기사단이자 헬하임 제국의 최전방에 뛰어가는 녀석들이라 그 실력도 어마어마하니 현재 자네에게 호위기사들을 많이 잃은 시점에서 파울로는 그들을 불러들일 거네."
"음.."
데브라의 말에 칠러웨이는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아르티네 또한 동의하듯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겼다.
"칠러웨이 자네도 알겠지만 이 일은 아르티네가 도울 수 없네."
"...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성녀가 헬하임 제국에 완전히 넘어가 황성 깊은 곳에 감금이라도 된다면 아르티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곤란해지겠지... 하지만 귀족인 이 아이가 지금 상황에 나선다면 그것도 크게 문제가 될 수 있어."
"그럼.. 방법이 있으시겠습니까?"
".... 캉들의 앞에서는 나설 수 있었지만 황자 앞에서 내가 나선다면 자유기사들은 이 제국의 기사들과 전쟁을 벌이게 될 거야..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쉽사리 나설 수 없지."
"그렇다면?"
"자네."
"....?"
칠러웨이의 물음에 데브라는 그를 가리켰고 칠러웨이는 그 손가락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가 구해야 하는 거지."
".... 혼자 말입니까?"
"명목상."
"아."
"황자의 호위대는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캉들은 아까 봐서 알겠지?"
"예."
"절대 혼자 상대할 수 없네, 아까 자네와 함께했던 두 명을 포함해 한 명을 더 붙여주지."
"페르온과 후트.. 그분 말입니까?"
"후트? 그게 누구지?"
"그 후드를 쓰신.."
"아 엘로나 말하는 거구만."
"엘로나?"
"그 녀석 이름은 엘로나네."
".... 예?"
왠지 모를 여성스러운 이름에 칠러웨이는 깜짝 놀랐고 데브라는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손짓했다.
"마침 잘 왔군 앉게."
"데브라 친구처럼 부르지 말라니까."
"그럼 존댓말을 해야 하나?"
"내가 늙어보이잖아."
아무렇지 않게 들어온 여인, 엘로나는 환하게 빛나는 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두꺼운 옷에 가려졌던 피부는 햇빛을 많이 받지 않은 듯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 저.. 남자 아니었습니까?"
"남자? 내가?"
"예..."
"아닌데."
"근데 이름이랑.. 목소리는 왜 그렇게.."
"아.. 그거?"
엘로나는 칠러웨이의 물음에 자신의 귀를 가리켰고 이해하지 못한 그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떠있었다.
"답답하네 내 귀!"
"귀가 뭐.. 어쨌다는 겁니까?"
"어디 책도 없는 곳에 박혀서 살다가 온 거야?"
"아.. 예 뭐.."
"내 이 귀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표식이야."
"그렇습니까?"
확실히 칠러웨이가 보고 있는 엘로나의 귀는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지만 그다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았다.
"하프를 처음 본 것 같구만.. 저 귀는 인간에게는 발생하지 않는 귀일세."
"아.."
"엘로나는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네."
"...."
"저 숲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는 엘프 아버지와 인간 어머니를 두고 있는.. 즉 하프라는 얘기지."
"특이하네요."
"뭐 그렇지."
칠러웨이는 데브라가 설명을 해주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해했고 엘로나는 그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뭐야 그게 다야?"
"그럼 뭐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혹시 뭐.. 놀라 자빠져야 하는 그런 일입니까?"
".... 그건 아니지만.."
"일단 저는 후트.. 아니 엘로나님의 정체보다는 아르웬을 구하는 게 급해서.."
"뭐 그럼 됐어."
칠러웨이의 말에 엘로나 또한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겼지만 그를 지긋이 바라봤고 데브라는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데브라님?"
"아 미안하군, 나머지도 설명하지 이것 보이나?"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르티네는 답답한 듯 데브라를 불렀고 데브라는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고 백작령 옆에 있는 숲의 한곳을 가리켰다.
"비어있는데요?"
"당연히 비어있을 수밖에 없지, 아무것도 없는 공터니까 엘로나는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당연하지, 이쪽에서 머문다는 거 아냐?"
"맞네."
"그럼 결정됐네 페르온을 불러올게."
엘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칠러웨이는 조용히 지도를 지켜봤다.
"더 할 말 있나?"
".... 아뇨 길을 좀 외우는 중입니다, 그 녀석들이 아르웬을 들쳐업고 뛰어도 잡을 수 있도록..."
"그래 외워둬서 나쁠 것은 없지."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후트... 아니 엘로나는 페르온과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자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뭘 말입니까?"
"엘로나가 하프인 것을 아는 건 정확히 나밖에는 없었네."
"저도 얼마 전에 칠러웨이님을 포함한 세 분이 습격을 했을 때 저분과 얘기하면서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나저나 하프도 모르다니 참 어떻게 살아온 건가?"
"근데 왜 다들 제가 하프를 모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겁니까?"
데브라가 칠러웨이를 이상하게 바라보자 아르티네는 엘로나가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보고 조용히 그에게 얘기했다.
"하프는 차별의 대상입니다."
"... 왜요?"
"정확히는 몰라요,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죠."
"혼자 살기도 벅찬 세상 같은데 다른 사람들까지 차별하면서 살 여유가 있다니 정말.... 뭣 같은 세상이네요."
칠러웨이가 고개를 내저으며 얘기하자 데브라 또한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했다.
"맞아 각박하지."
"엘로나 저분도 보니까 상당히 아름다운 미인이시던데..."
"아무리 아름답고 강해 보여도 하프들에게는 차별이 더 심해지는 그런 어쩔 수 없던 일들이 있었네.. 얘기를 하면 길어지니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고... 아르티네?"
".... 후우.. 잘 들으세요 칠러웨이."
아르티네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하자 칠러웨이는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앉았다.
"저는 당신을 잡지 않습니다, 어떤 명령이 떨어지건 어떤 일이 벌어지던 잠시 귀를 닫을 거예요."
"예."
"그동안에 아르웬님을 구해서 톤 왕국으로 돌아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않으면...?"
"큰일이 생길 거예요."
"....."
"지금은 당신을 신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데브라님과 저는 돕지 못하는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있어요 절대.. 절대 성녀를 헬하임 제국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요."
"알겠습니다."
칠러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검을 챙겼고 데브라는 그를 조용히 바라봤다.
"검을 쓸 줄 아나?"
"뭐... 휘두를 줄만 압니다."
"본능이 살아있군."
"예... 뭐."
"늦을 수도 있으니 빨리 페르온과 엘로나와 함께 출발하게."
"예."
데브라는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다 식은 차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데브라님, 무슨 일 있으세요?"
".... 아닐세."
"다른 때와는 달리 칠러웨이를 보는 표정이 남다르던데.."
".... 그냥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아서 말이지."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에요?"
".... 못 봤다고 치는 게 좋나.. 아니면 봤다고 이야기하는 게 나을지... 잘 모르겠군..."
"데브라..? 무슨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전에 봤다는 건가요?"
아르티네의 물음에 데브라는 이내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내가 나이가 들어 노망이 오는 거라고 생각하게 아르티네."
* * *